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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버타리아트 10

@ 11장 누가 기다리고 있는가? @

- 시간 논쟁 -

 

 

“이 장의 논지는,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시간을 둘러싼 다툼은 시간을 둘러싼 다른 사회적 분쟁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그 관계는 역동적이라는 것이다. 또 그래서 이 문제는 단지 노동생활의 질만이 아니라 피고용인이냐 여부를 떠나 모든 시민의 일반적 삶의 질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271쪽)

 

“이 책 전반에 걸쳐 주장한 것을 다시 한번 반복하겠다. 경제사는 점차적인 상품화의 역사로 볼 수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화폐경제 밖에서 단순한 사용이나 교환을 위해 하던 활동들이 돈벌이를 위해 하는 활동으로 천천히 변화했다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무보수 가내 활동(예컨대 빨래)으로 시작한 어떤 활동은 서비스 활동(세탁업)의 기반이 되고 이는 다시 기술 진보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제조업(세탁기와 건조기, 가루비누 또는 섬유유연제 제조업)의 기반이 된다.” (271쪽)

 

 

“점점 더 많은 ‘상품’을 창출하려는 불굴의 추진력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 노동’ 창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비스 노동’의 성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72쪽)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일들을 하려면 시간이 든다. 어떤 상황에서 이 ‘시간’은 무보수 시간에서 보상을 받는 시간으로 바뀌거나 그 반대가 됐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다른 상황에서는 이 시간의 성격이 바뀌지 않지만, 필요한 기술과 작업 과정의 변화가 이 시간에 얽혀 있는 개인의 자율성 정도에 극적인 변화를 불러온다. 그 개인의 지위가 임금 노동자이건 무보수 소비 노동자건 마찬가지다.” (272쪽)

 

“상품화 과정은 가게나 전시 판매장에서 살 수 있는 물건들의 생산에 한정되는 게 아니다. 이런 물건들이 계속 새롭게 생겨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과정은 서비스 업계에까지 확대되고 전통적으로 ‘공공재’라고 여기던 분야를 포함한 다른 경제 영역으로도 확산된다. 서로 연관된 몇 가지 과정이 지금 이런 현상을 촉발하고 있다.” (272쪽)

 

“이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기술 덕분에 가능해진 시스템이 그 전에는 표준화와 단순 노동화를 거부했던 관료 영역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의사결정을 할 때 개인의 전문적 판단을 활용하는 관행이, 몇 가지 표준적인 규칙 곧 예컨대 은행 대출 적합성, 병원 초지의 우선순위, 대학교 직원 선발 같은 판단을 위한 규칙 몇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 ‘인텔리전트’ 시스템에 밀리는 일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결정에 관여하는 노동이 규격화되는 순간, 결과를 수량화하고 기능을 별도 기관으로 이양하고 외부 기관에 넘기거나 경쟁 입찰에 부치는 게 가능해진다.” (272~273쪽)

 

“두 번째 관련 요소는 기술의 확연한 융합 현상 때문에 많은 직무의 성격이 점점 일반적인 게 되고 작업과정도 따라서 일반화하며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몇몇 표준 공급업자가 전 세계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꼭 지적해야 할 것은, ‘기성’ 소프트웨어의 구성 방식이 점점 더 업무 절차의 성격을 규정하게 되고 예컨대 소규모 기업들에게는 사업 관리, 회계 또는 데이터베이스의 구조에 표준방식을 적용하도록 강제하는 현상이다. …… 조직들이 서로 맞바꿔도 될 정도로 유사한 업무 처리 절차를 갖추게 되면, 이런 처리 절차는 과거처럼 내부의 ‘고정 비용’이나 ‘본사 업무’로 보지 않고 외부에 용역을 주거나 ‘내부 용역을 주거나’ 또는 아예 수익 사업으로 외부 기관에 판매할 수 있는 별도의 기능으로 보는 게 훨씬 쉬워진다.” (273쪽)

 

“세 번째 요소는 서비스의 제공이 날로 통신을 매개체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 현상은 몇 가지 요소가 결합된 결과인데, 통신 및 컴퓨터 기술의 가격 하락과 빠른 확산, 시자으이 세계화, 24시간 문화의 확산이 이런 요소들이다. 24시간 문화의 확산은 자기 확신적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이것으로 인해, 서비스업 노동자는 소비자 처지가 되는 순간엔 ‘정상적인’ 시간이 아닌 때에 다른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잦아지고, 이는 다시 이런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노동자가 더 늘어야 할 필요성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그래서 이미 전통적인 시간의 경계는 상당 부분 허물어졌다. 통신을 매개로 한 서비스 제공의 확산은 콜 센터 유행을 불러왔고, 공공부분을 포함한 전체 경제 분야에서 다양한 서비스에 콜 센터 모델을 적용하는 일이 늘게 했다.” (273~274쪽)

 

“네 번째 요소는 사유화, 자유화 또는 병원 청소부터 가정 관리까지, 우편배달부터 세무까지를 망라하는 공공 서비스 영역의 경쟁 도입이다.

서비스 자체는 공영이라 하더라도 민간 서비스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종종 ‘목표’ 달성 요구사항과 연관되는) 절차, 비용의 엄밀한 감시와 ‘비효율’ 방지가 새롭게 강조되고 있다.” (274쪽)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을 외부화하는 건 새로운 전략이 아니다. 1950년대에 셀프서비스 개념이 상점에 도입됐고 이는 슈퍼마켓의 등장을 촉발했다. 1960년대에는 이 개념이 금융 분야에 도입됐는데 처음에는 고객들에게 출금전표를 직접 쓰도록 유도하는 편리한 방식으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현금 자동 입출금기의 개발과 함께 은행 창구 직원의 임금노동을 거의 대부분 은행 고객의 무보수 노동으로 대체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때 이후, 종종 대기 시간을 줄임으로써 이용자의 불편을 없애준다는 명분과 함께 셀프서비스 원칙이 다양한 분야에 걸쳐 도입됐다.” (275~276쪽)

 

“첫 단계에는 이런 외부화가 권한을 부여 받았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에게 종종 환영 받았다. 기차표를 사고 도서관에 책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래 줄서서 기다리고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는 것과 채소 무게를 달고 가격표를 붙이는 걸 오래 기다려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록 직접 일을 처리하려면 익숙지 않은 장치들과 씨름해야 함에도 직접 하는 걸 선호한다. 문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발생한다. 사람이 도와주는 게 아예 없어지고 각 개인이 홀로 서서 휘발유를 넣어야 할 때 말이다. 그런데 기계가 어떤 식으로든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어떤 사람이 기계를 처리할 능력이 없을 때 (예컨대 사람이 앞을 잘 못 보거나 외국에 갔을 때) 또는 어떤 이가 필요한 것이 표준화된 메뉴를 선택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때 고객은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소비자의 필요만 충족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 (대가도 받지 못하는) 몇 시간이 허비된다. 대신 처리해 줄 사람이 없어지면 공급자는 눈앞에 경쟁자가 존재하지 않는 한 기계가 제대로 공급되도록 확실히 처리할 동기가 없게 된다. 그럼 고객들은 다시 한 번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이번에는 사람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계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다르다.” (276~277쪽)

 

“진화와 인터넷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느 서비스가 날로 늘어나고 사람을 직접 대면해 처리하는 건 제한되거나 추가 비용을 내야 하거나 아예 완전히 없어져가는 이 세상에서 소외 문제는 더 없이 분명하게 대두된다. 이 소외는, 기반시설, 하드웨어 또는 소프트웨어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당하는 것이고, 언어 능력이 떨어지거나 글을 못 읽거나 언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사회적 기술이 결여된 이들에게 닥쳐 로는 것이며, 시력이나 청력, 지력이나 손재주가 심각하게 훼손된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소외이다.” (278~279쪽)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좀더 일반적인 수준의 문제도 있다. 서비스 제공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거래 시간 최소화 압력은 생산라인식 대처를 낳고 양적 목표를 강조한다. 서비스 제공 기관의 이익은, 모든 직원이 언제나 생산적인 활동을 하도록 만드는 데 달려 있다. 이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는 직원 가운데 일부는 상황이 느슨한 때는 놀고 있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쁜 시간에는 줄서서 기다리는 걸 피할 수 없게 되고, 이럴 때 기다리는 과정에서 허비되는 시간은 노동자의 시간이 아니라 고객의 시간이다. 이 과정은 노동자에겐 스트레스가 밀려오는 것이고 고객에게는 짜증이 밀려오는 것이다.” (279쪽)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양적 차원과 질적 차원에서의 시간이다. 양적인 면에는 노동자가 ‘소비한’ 시간의 양, 고객이 기다리고 질문에 답하느라 ‘소비한’ 시간과 비교해 자신의 말에 상대가 귀기울여주는 형태로 ‘돌려받은’ 시간 등이 포함된다. 질적인 면에서는, 노동자나 고객이 발휘할 수 있는 자율성의 정도에 주목해야 한다. 또 서비스 노동의 테일러주의화(컨베이어벨트 작업화)가 노동의 외부화와 결합되면서 소비 과정조차 같은 작업으로 바뀌어 가는 정도에도 주목해야 한다.” (281쪽)

 

“이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지금까지 거의 수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의 시민이 자신들의 ‘여가’ 시간 가운데 상품화한 서비스의 소비에 들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이 소비 과정이 서비스 노동자의 노동 가운데 전가된 부분을 떠안는 것과 어느 정도 결부되어 있는지, 테일러주의화가 무보수 소비 노동과정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또는 이 모든 게 어떤 비율로 늘어나고 있는지 등등은 여전히 추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추정대로 이것이 실제적인 것이라면, 원격으로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의 범위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거리를 확대시켜 주는, 표면적으로는 해방의 기능을 하는 전보통신기술이 실제로는 일상생활의 질 하락을 초래할 위험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281쪽)

 

“이런 진전 상황은 몇 가지 주요 질문을 유발한다. 이 질문들은 한편으로는 미래의 경험적 연구 조사의 틀 개발을 위한 것인 동시에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이런 것들이다. 날로 상품화하는 경제에서 인간의 작용을 이해해는 데 적용할 ‘개인적 자율과 선택’의 모델은 무엇인가? ‘노동’과 ‘여가’의 경계, ‘생산’과 ‘소비’의 경계, 그리고 ‘서비스 공급’과 ‘서비스 이용’의 경계가 날로 유동적이 되는 걸 어떻게 개념화해야 하는가? 시민들이 한편으로는 노동자 처지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자 처지에서 자신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앞 다투는 상황에서, 어떤 형태의 사회조직을 갖추면 그들이 집단적 이익을 표현하는 게 가능해지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힘을 얻을 수도 있게 될까? 고용과 소비 관계가 날로 지리적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이뤄지고, 가끔식은 국경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어떤 대의구조, 협상구조, 규제구조가 가능할까?” (281~2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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