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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 현실 그리고 인간...

지금은 <<압록강>>(김탁환 지음, 열음사, 2000)이라는 역사소설을 읽고 있다. 이 소설은 광해와 인조반정 사이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그 중 또 눈에 띄는 대목들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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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께서 바라시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야승은 임경업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되받아쳤다.

무위이치(無爲而治)가 이루어지는 나라라네. 그 나라는 작고 백성은 많지 않아야만 하네. 온갖 기물이 있어도 쓰지 않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삶을 아끼고 멀리 떠돌지 않게 해야 하네.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타는 일이 없으며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사용할 일이 없지. 백성들이 그 안에서 맛있게 먹고 멋있게 입고 편안하고 즐겁게 살도록 하는 걸세. 그런 나라라면 살 만하지 않겠는가?

스승님은 그런 나라가 정말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건 노자가 만들어낸 헛된 공상이 아닐까요? 저는 제가 발 딛고 있는 이곳에 세울 수 있는 나라를 원합니다.

야승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허면 자네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일찍이 <<예기>>에 적힌 대동사회는 어떻습니까?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가 공평해진다. 똑똑한 사람을 뽑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며 신의를 논하고 화목을 닦게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제 부모만을 부모로 대접하지 않고 제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아 늙은이는 여생을 마칠 수 있고 장년들은 일할 수 있고 어린이는 길러지며 과부, 홀아비, 병든 자들은 부양받게 된다. 남자는 짝이, 여자는 시집갈 곳이 마련된다. 재물이 땅에 버려지는 것을 그대로 두지 않지만 꼭 자기 것으로 하지도 않는다. 놀고 먹는 것을 싫어하지만 꼭 자기를 위해 일하는 것만은 아니다. 남을 해치려는 꾀가 날 리 없고 도적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바깥문을 닫을 필요가 없다. 이러한 세상을 대동이라 한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네. 자네는 <<태평경>>을 헛읽었구만. 아무리 공맹을 좇아서 훌륭한 일을 해도 그 사람의 몸을 평안하게 하고 또 만물을 변화시켜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지 못하면 소용없다네. 자네가 말한 대동사회에서도 여전히 자네의 몸은 불편하고 만물은 제 역할을 못할 걸세.

다시 한번 가르침을 주십시오. 스승님이 원하시는 나라는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입니까?

순임금의 후손이 사는 질민국을 아는가? 그곳에서는 길쌈이나 베를 짜지 않아도 옷을 입을 수 있고 파종이나 추수를 하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다네. 그 나라에는 춤추는 새가 있으니, 난새는 절로 노래부르고 봉새는 절로 춤을 춘다네. 온갖 짐승이 무리 지어 살며 온갖 곡식이 쌓여 있는 나라라네.

참으로 어렵고 모호합니다.

어렵지도 않고 모호하지도 않다네. 자네가 너무 서두르니 저 높고 우뚝한 산을 오르는 것이 그렇게 느껴질 뿐이야.

(<<압록강>> 2권, 173~4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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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인간을 알지. 칼날 같고 바위 같고 폭포 같은 인간.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인간. 돈과 재물과 이름보다 자기 자신의 완성에만 관심이 있는 인간.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인간. 타인에겐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항상 외줄 위에 올리는 인간. 허위나 가식을 싫어하고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 술 마시고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인간. 바르게 사는 만큼이나 멋지게 죽는 법도 고민하는 인간.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많아 낯선 인간과 상황 속으로 흔쾌히 뛰어들어 다치고 상처받고 또 무엇인가를 깨닫는 인간.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고쳐나가며, 어제의 나보다도 오늘의 나가 더 크고 오늘의 나보다도 내일의 나가 더 크리라고 믿는 인간. 모순을 지양하면서도 모순에 들면 그 모순을 섣불리 부정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인간. 지금은 비록 허점투성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는 인간.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백두보다도 높고 동해보다도 깊은 인간. 천하를 품을 인간.

(<<압록강>> 2권, 249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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