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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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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 그토록 미워하시는 것이 벼승이온데, 벼슬이란 대체 어떻다고 하십니까?
- 제놈들끼리 서로 못 먹어하며 부리로 찍고 발톱으로 찢고 하여 피가 마를 새가 없는 게 벼슬 아니더냐.
- 제가 묻잡기는 닭이의 볏이 아니라 사람 위에 있는 벼슬이올시다.
- 허어, 네 이놈, 닭이는 대가리에 얹힌 것이나 사람의 대가리에 얹힌 것이나, 각각 제고기에다 제값을 놓는 명색이기는 일반이거늘, 항차 두 발 가진 것들끼리 구태여 분간할 까닭이 뭣이더란 말이냐.
우는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마주 농을 할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문 거였다.
- 네 물었으니 말하리라. 대저 벼슬이란 남 못하는 일을 맡아서 남 못할 짓을 잘하는 자일수록 얻기를 더하고, 높기를 더하고, 길기를 더하고자 주둥이와 손모가지를 잠시도 쉬지 않으며, 그런 까닭에 얻은즉 얻을수록 탐하고, 높은즉 높을수록 탐하고, 길은즉 길고 오래기를 탐하는 흉물인가 보더라.
- 하오면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서 한번 해볼 만한 일이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 배울 만큼 배운 연후에 그 배운 것을 남 주는 일이니라.
- 반드시 그렇다고 하십니까?
- 반드시 그러리라.
- 제가 감히 선생님의 꾸중을 무릅쓰고 여짜오면, 선생님께서는 대개 남 주시기에는 꼭 인색하시고 그냥 내버리시는데는 썩 후한 바가 있으시온데, 이는 어떻다고 하십니까?
- 그게 무엇이더란 말이냐. 에둘러서 비치지 말고 바로 대어라.
- 여짭기 미안하오나 이를테면 사장(詞章)을 처리하심이 대개 그러신 듯합니다. 시를 지으실 때와 버리실 때는 심기가 몹시 엇갈리시는 현상이옵니까?
- 이놈이 보자보자하니 이젠 삼가는 말이란 없구나. 이놈아, 남들은 내 노래와 똑같을 필요가 없기로써 같지 않은 것인데, 그남들의 노래에다 또 다른 남의 노래를 섞는다면, 대체 그 노래는 어떤 노래가 된단 말이냐. 하물며 내 노래는 웃음도 울음인 것을.......
- 예.
- 세상에 같은 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많아도 같은 마음으로 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문지라, 짐짓 주고 싶기 전에 버리고, 버리고 싶기 전에 잊고 마느니라.
우는 말없이 일어나서 절을 하고 나갔다.
(320~321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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