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22/12

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22/12/28
    우리의 삶 2 - 운동
    곰탱이
  2. 2022/12/28
    우리의 삶 1-죽음을 가로지르기
    곰탱이
  3. 2022/12/28
    결정된 공포(형용모순)..
    곰탱이
  4. 2022/12/27
    물(水) = 몰(物)자체 = 보편 = 저항, 투쟁
    곰탱이
  5. 2022/12/27
    게릴라 전의 한계..
    곰탱이
  6. 2022/12/06
    자기를 생산한다는 것 5...
    곰탱이

우리의 삶 2 - 운동

김훈의 장편 소설 <<칼의 노래 2>> 중 58~59쪽에서 발췌함. 

 

======================================================= 

 

삶은 집중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분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르기는 하되, 삶은 그 전환 속에 있을 것이었다. 개별적인 살기들을 눈보라처럼 휘날리며 달려드는 적 앞에서 고착은 곧 죽음이었다. 달려드는 적 앞에서 나의 함대는 수없이 진을 바꾸어가며 펼치고 오므렸고 모이고 흩어졌다. 대장선이 후미에 있을 때 이물 너머로 바라보면 함대는 적과 마주잡고 쉴새없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무도자처럼 보였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고정된 적을 조준하는 일은 어려웠고 나를 고정시키고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도 어려웠다. 나를 이동시키면서 이동하는 적을 조준하기는 더욱 어려웠으나, 모든 유효한 조준은 이동과 이동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 내가 적을 조준하는 자리는 적이 나를 조준하는 표적이었다. 함대가 이동할 때, 적을 겨누는 나의 조준선은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리의 삶 1-죽음을 가로지르기

김훈의 장편 소설 <<칼의 노래 2>> 중 55~56쪽에서 발췌함. 

 

=======================================================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더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게 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죽음은 돌이킬 수 없으므로, 그것은 결국 같은 말일 것이었다. 나는 고쳐 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이러한 세상에서 죽어 없어져서, 캄캄한 바다 밑 뻘밭에 묻혀 있을 내 백골의 허망을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결정된 공포(형용모순)..

김훈의 장편 소설 <<칼의 노래 2>> 중 48~49쪽에서 발췌함. 

 

========================================================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새없이 밀어닥쳤다. 끼니를 건너뛰어 앞당길 수도 없었고 옆으로 밀쳐낼 수도 없었다. 끼니는 새로운 시간의 밀물로 달려드는 것이어서 사람이 거기에 개입할 수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물(水) = 몰(物)자체 = 보편 = 저항, 투쟁

김훈의 장편 소설 <<칼의 노래 1>> 중 143쪽에서 발췌함. 

 

============================================================== 

 

물에 맞서는 배의 저항은 물에 순응하기 위한 저항이다. 배는 생선과 같다. 배가 물을 거스르지만, 배는 물에 오래 맞설 수 없고, 물을 끝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명량의 역류를 거슬러 나아갈 때도, 배를 띄워주는 것은 물이었고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도 물이었다. 생선의 지느러미가 물살의 힘과 각도를 감지하듯이 노를 잡은 격군들의 팔이 물살의 함과 속도와 방향을 감지한다. 장수의 몸이 격군의 몸을 느끼고, 노 잡은 격군의 몸이 물을 느껴서, 배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서 역류를 헤치고 나아간다. 배는 생선과도 같고 사람의 몸과도 같다. 물 속을 긁어서 밀쳐내야 나아갈 수 있지만, 물이 밀어주어야만 물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싸움은 세상과 맞서는 몸의 일이다. 몸이 물에 포개져야만 나아가고 물러서고 돌아서고 펼치고 오므릴 수 있고, 몸이 칼에 포개져야만 베고 찌를 수가 있다. 배와 몸과 칼과 생선이 다르지 않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게릴라 전의 한계..

김훈의 장편 소설 <<칼의 노래 1>> 중 155쪽에서 발췌함. 

 

===============================================================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지금 명량 싸움에 대한 기억도 꿈속처럼 흐릿하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경험론의 한계에서 비롯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기를 생산한다는 것 5...

이순신을 그리는 역사소설 <<불멸의 이순신>>(김탁환 지음,  황금가지, 2004) 중 4권의 내용 중에서 발췌함(270~273쪽).  

 

============================================================ 

 

(월인) "예, 큰 스님!" 

(휴정) "나는 널 안다. 네가 원하는 것은 승병이 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는 것 정도가 아니지. 너는 이 나라를 불국토로 바꾸고 싶은 게 아니냐? 어쩌면 이번 전쟁을 기회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허나 내가 보기에 너는 다만 공맹의 무리들이 싫은 것이다. 정작 네가 원하는 불국토를 위해서는 아직 탑 하나도 쌓지 못하고 있어." 

월인이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일입니다. 이미 탑은 충분히 쌓았습니다." 

휴정이 답을 미루고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월인도 그 눈길을 받자 더 말을 보탤 수가 없었다. 

"어떤 경우를 당해서라도 마음이 흔들리리지 않는 것을 태어나지 않음이라 하고, 태어나지 않는 것을 생각 없음이라 하며, 생각이 없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그동안 너를 곁에 둔 것은 네가 이 이치를 깨닫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한데 이제 보니 넌 바람이 불어오기도 전에 먼저 흔들리는구나. 그렇게 흔들려서야 네가 쌓았다는 탑이 무너지지 않을 도리가 있겠느냐?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너는 네가 쌓았다는 그 탑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것을 볼 게다. 엉절거리지(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자꾸만 군소리를 내는 것) 마라. 네가 한 번 성낼 때마다 백만 가지 바람이 불어온단다. 월인아!" 

"예, 큰스님!" 

"서두르지 마라. 손 내미는 자가 있더라도 덥석 쥐지 마라. 가장 늦게까지 서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 오랜 인연을 접을 때가 가까웠느니라." 

월인이 깜짝 놀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소승에겐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큰스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언젠가 헤어질 날이 오리라 생각은 했지만, 너무나 급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월인은 이미 휴정이 승병을 일으키리라는 밀서를 내리면 그것을 들고 팔도를 돌아다니리라고 결심하고 있었다. 

'큰스님이 전면에 나설 수 없다면 그 수족 노릇을 제대로 할 사람이 필요하다. 맡겨 주시면 성심을 다하리라.' 

의주로 오는 동안 월인은 이 결심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 그런데 휴정은 도와달라는 말 대신 인연을 접자고 한다. 승병을 일으키는 일에서 아예 손을 떼라는 것이다. 

"정녕 모르겠느냐? 전쟁이 끝나면 나는 살아남더라도 나를 따른 문하 중 몇은 크게 곤욕을 치를 게다. 더구나 너는 더욱 큰 생각을 품고 있지 않느냐? 내 일을 돕다가 탑을 쌓기도 전에 세상 눈에 띌까 걱정이구나." 

"그래도 전국에 밀서를 보내려면....... 큰스님 뜻을 충분히 아는......." 

"염려를 거두어라.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너는 날이 밝는 대로 떠나라. 전쟁이 이 나라 백성들을 얼마나 참혹하게 만드는지 네 눈으로 직접 보아라. 백성들 곁에 머물며 그 아득한 절망과 눈물과 한숨을 끌어안아라. 싸우고 싶으면 무기를 들고, 달아나고 싶으면 달아나라. 아무도 네 언행에 트집 잡지 않을 게다. 나와 함께 지낸 시절은 잊어라. 누가 묻더라도 내 법명을 내밀지 마라. 월인아! 이제 혼자 힘으로 부딪혀 보는 게다. 가거라. 당장!" 

월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정은 벽을 보며 다시 돌아누웠다. 월인은 휴정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큰스님! 

눈 감았다가 뜨면 한 삶이 다 흘러가고 또 눈 감았다 뜨면 겨우 기침 한 번 뱉는 순간이라 하셨지요. 모기가 무쇠로 된 소 엉덩이에 주둥이를 찔러 넣듯 정진하라고도 하셨습니다. 저놈은 늘 달아날 궁리만 하는 놈이라고, 망아지처럼 날뛰다 제 명에 죽지 못할까 염려하여 데리고 있는 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이제 큰스님께서 스스로 우리 문을 열어 주시니 한 걸음 내딛는 것도 벅찹니다. 달은 지고 오경(五更) 깜깜한 밤입니다. 당신의 가늘고 긴 손 어지러이 움직이는 가락을 따라 어두운 숲도 곧잘 돌아다녔습니다만, 이제 마음만 아지랑이처럼 어지럽고 길은 도무지 보이지 않습니다. 

큰스님! 

그 깊은 뜻을 어렴풋이 느낄 것도 같습니다. 잊고 또 잊으며, 되새시고 또 되새겨, 몸도 마음도 의지할 곳 없는 순간을 찾으라는 것이겠지요. 죽음의 자리에서, 치욕과 번민의 자리에서, 저만의 탑을 쌓아 올리라는 것이겠지요. 첫 마음 잃지 않고 큰스님 가르침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나날을 쌓아 가겠습니다. 불국토를 이루는 길을 꼭 찾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