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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빼앗은 집의 평화1-층간소음

이 아파트에 이사온 지 어언 2년하고도 1개월이 지났다.

그 전에는 단독주택 2층, 1층에서 살았다.

처음에 살던 2층 집은 너무 덥거나 춥거나 보일러가 겨울이면 고장나거나 했다.

그 다음 살던 1층 집은 화장실이 바깥에 있어

추운 겨울이나 장마철에 화장실에 가려면 잠을 깨기 일쑤에,

비오는 날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화장실 다니려면

화장실 전등 스위치가 낡아 전기를 먹곤 했다.

그 집에서 이사 나올 때에는 전세금 없다고 배째라는 집주인때문에

남편도 나도 술만 부어대고 날마다 사정했다.

그러다 아파트~ 아파트~ 노래를 불렀고 결국

이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러나 이 아파트의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층간소음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복도식 5층 짜리 집.

이 아파트는 400세대가 사는, 주로 저소득층에

젊은 부부에, 잠시 살다가 다시 이사가야 할 사람들이 많다.

6층에는 현대자동차 생산직에 근무하는 남자와, 그 부인인 여자,

그 자식들인 딸과 아들 이렇게 넷이 산다.

처음에는 무슨 천둥번개가 치는 줄 알았다.

창을 열면 날만 개운하다.

밤이고 낮이고 둥둥둥~ 퍽~드르럭~퉁 온갖 종류의 소음이 들려왔다.

편두통과 정서불안 같은 증상이 생겼다.

참다못해 한달이 지난 12월에 6층에 올라가서

"너무 힘들어서 병원에라도 가야할까보다"고 했다.

여자는 5살과 9살 남자, 여자 아이가 있으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시끄러우면 전화하란다.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더 심각해졌다.

그 집 여자가 한번은 "혼자 사세요? 남자 없어요?"

그러는 거였다. 참 어처구니없다.

아침 일찍 나가고 저녁9시에나 들어오는 남편에게 얘기해봤자

공감은 커녕 나만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다.

그들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며 가봤자 헛수고라는 것이다.

그들보다 남편을 더욱 미워했다.

전화를 해도, 올라가봐도 서로 기분만 나빠진 채

더욱 시끄러워졌다.

그게 2년이다.

 

작년 8월 임신 3개월부터 아기낳을 때인 올 3월까지

그 스트레스는 말로는 다 못한다.

아기 엄마가 그러면 안되지..그건 소용없는 메아리일뿐.

 

그러다 3주 전에 정말 참을 수 없이 시끄러웠다.

죽이고 싶었다. 늘 그들이 한꺼번에 탄 자동차가 사고가 나기를 바라는 등

저주를 퍼부었지만 그 날은 정말 내가 무슨 일을 낼 지 몰랐다.

전화를 했다. 조카들이 놀러 왔단다.

나는 아무 일도 못했고 불안해서 왔다갔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다가도

가슴이 벌렁거려서 살 수가 없었다.

아이를 안고 있다가 폭발했다. 한번도 그렇게 큰 소리를 내본적이 없는데..

욕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남편이 전화를 하고 올라갔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더란다.

내가 올라가면 단 한번도 그런 말을 한적이 없는데...

또 하나. 남편이 그 집 남자와 얘길 하자고 해서 복도에서 얘기하는데,

그 남자 첫 마디, "저는 현대자동차에 근무합니다."였다.

그래서?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야??

대기업 노예로 사는게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인가??

암튼. 그동안 내가 화만 낸 것은 아니다. 집에서 차마시자고 연락도 해서

얘기도 해보고 올라가서 차도 마시고..

별별 짓 다 해봤다.

현대가족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여자, 만날 때마다 자기 남편의 연봉이 많아서 손해보는게 많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다. 가엾다.

 

조금 전, 엄청 뛰어다닌다. 침대에서 뛰어 내리고 소리지르고 이 작은 평수 아파트에서

백미터 달리기라도 하는 것만 같다.

아이들은 뛰어 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적어도 나름의 질서가 필요하다.

 

이제는 아파트가 싫다. 땅을 밟고 살고 싶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먹이용으로 사육되어지는 닭들의 집 닭장이나

투기꾼, 자본가의 필요에 의해 구획, 정리되어지는 우리들의 집 아파트나

이건 너무 일방적이다.

 

편리함은 덫이다. 자본의 덫. 남성주의의 덫, 국가주의의 덫.

누구나 전기, 가스, 물과 같은 공공서비스의 편의를 누려야 한다.

전기세 못내서 단전된 가구가 수백만 가구에 이른다는 것이나

비싼 기름값때문에 전기장판에서 자다가 불에 타죽은 노인들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자다가 불에 타죽은 아기들의 얘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용인되는, 어쩔수 없는 가난 빈곤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상황은

어떻게든 뒤집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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