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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0/31
    남편에게
    봄밤
  2. 2008/10/19
    내적불행
    봄밤

남편에게

오늘은 우리가 함께 산 지 만 8년이 되는 날이다.

남편은 친구와 술을 마시다 11시에 들어와 12시가 다 된 시간에 통닭과 소주를 마시고 있다.

자고나면 자기가 그걸 먹었는지도 모를 거면서...

게다가 아이를 옆에 두고서....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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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사랑아빠

 

우리는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살았어...

 

지금, 선배는 사랑이에게 치킨을 주고 있네. 나는 자다 깬 8개월 둘째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있다네. 그래서 이 시간은 폭풍전야의 시간이지.

우리가 돈을 물려줄까, 집을 물려줄까. 세살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얼마나 치명적인데 이밤에 술마시는 것도 부족해서 애한테 튀긴닭을 주면 그게 사랑일까.

 

선배는 내게 이 모든 상황을, 그로인한 고통을 돌리더군. 그래 내책임 전혀 없지 않아.

그런데 요즘 정말 힘드네. 내 내적불행을 만나는 것도 괴로운 일인데 말이야.

선배 탓을 하자는게 아니야.

선배도 그렇게 자라왔으니 그럴 수밖에.

 

내게 한 말, '기다려줘'라는 말...난 지금 기다릴 수 있어,

그런데 선배는 선배를 기다릴 시간이 아니라 돌아보고 살아온 날들, 아주 어릴적부터를 되돌아보고

그 속의 자신을 대면해야 할 시간인 것 같어.

 

어쨌든,

밤 12시에 이러는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편으로는 너무 화가 나고 한편으로는 내가 내 발등 찍었다는 생각에 절망적이기도 하고.

 

난 이런 생활 이런 부모모습 물려주고싶지않아...

 

 

내 아버지라는 사람, 나를 직접 때린 적은 없지만 언어폭력은 말할 수 없이 지독했어.

늘 욕하고 비난하고 자기비하하고 무서운 괴물같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밥상을 엎고 제사상 앞의 접시를 발로 찍어눌러 깨고...

늘 술에 취해서 붉은 핏발 선 그 눈...

자기 인생이 우리 때문에 엄마와 우리 셋 딸들 때문에 펴보지도 못하고 그리 되었다고 원망만 했어.

아들도 아닌 것들이 자길 무시한다고, 남자인 자기를 무시한다고 그런 것만 같았지...

그래서 내게 남자 컴플렉스가 있는지도 모르겠군.

난 어릴때 아빠가 늦은 저녁과 술을 먹을때 옆에서 뭔가 얻어먹곤 했는데(군것질, 먹는것, 자위, 그게 날 안정되게 했나봐)그러다가도 불호령이 떨어지면 가슴조리고 숨을 죽여야 했어.

언니들도 엄마도 나도, 이유도 모른채 죄인이 되어야 했어.

 

아빠를 흘겨볼라치면 엄마는 슬쩍 나를 꾹꾹 찌르고..그러지 말라고..

그때는 정말 가슴이 답답해서 집을 나가고 싶거나 저사람들 말고 어디선가 돈많고 교양있는

친아빠와 친엄마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그러고 나면 엄마는 다음날이나 그다음날쯤 어김없이 우리들과 아빠에게(물론 우리만 있을때) 욕을 하고

나나 언니들에게 분풀이를 했어.

 

다정하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면,

날 한겨울에 냉방에 혼자 내버려두고 모두 어디론가 가버리지 않았다면,

내가 아파서 운다고 아빠가 욕하고 화낼때, 엄마가 한마디라도 애가 아파서 그러는걸 왜 화내냐고 한번이라도 말해줬다면,

모두가 화내고 욕할때 내가 얼마나 무섭고 가슴이 먹먹했는지 알아줬다면,

사는게 조금 덜 힘들수도 있었을텐데.

 

선배가 화내고 내 탓하며 내 존재를 깡그리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할때, 난 꼼짝없이

그런 아빠 앞에 다시 서있는 어린아이가 되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고 가슴만 두근거리고 무서워.

술에 취해서 날 모욕하고 애 앞이라는 것도 잊은채 욕하는 걸 보면 나역시 엄마처럼 되겠구나,

그래서 내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면 어쩌나, 중요한 일이 생겨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발만 동동 구르는 내 언니들처럼 그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면

그냥 내 생각과 감정과 이성의 모든 회로가 끊겨.

그건 마치 죽음과도 같은, 살았지만 죽은거나 마찬가지인 삶이야.

 

또 10월의 마지막날이네.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만8년전... 그래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우린 우리 사이의, 우리 존재의 모든 문제를 그저 회피하며

봉합하며 살아왔네..

나는 당신을 사랑이란 이름의 의존으로 파먹고 당신은 스스로를 파먹고 나를 파먹고...

 

우리의 지금 삶이 뭐가 부족할까.

선배 문자대로 선배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을까.

정말 그럴까.

나는 행복한데, 나는 태어나 처음 내가 여자고 엄마인게 다행인데,

나는 우리가 뭐가 부족할까 싶은데...

그것도 나의 착각일까. 선배 말대로 판단능력을 상실한 비정상의 미친년의 생각일까.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선배를 사랑하고(지나보니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인것같아)

함께 살자 하고, 결혼하고 애도 낳았는데...

행복이 그렇게도 힘든 건가.

그동안의 내 모든 것들이 선배에 의해 부정당한 느낌이야.

물론 아무리 선배가 나를 부정해도 내가 부정되지 않는게 그나마 다행인 사실이네.

 

그래, 시간이 필요하면 기다릴게.

나도 선배를 존중하고 올바르게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께.

우리가 사랑해야 행복해져야 우리 부모가 내게 물려준 불행의 유산을 내 대에서 끊지.

그래 목숨걸만한 싸움, 아니 목숨걸만한 사랑 아냐?

 

다시 해보자고.

내게 이런 시간, 이런 행복을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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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불행

최근 푸름이닷컴을 알고 나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육아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깨지고 새로운 개념?화두?패러다임이 생겼다.

그 중 하나가 육아는 그저 아이를 기르는 일(마치 동물을 기르는 것같은)이 아니라

나를 성숙하고 행복하게 이끈다는 것이다.

아이키우는 것이 한편으론 행복하면서도 내게는 얼마나 고된 일인지 늘 힘들어 힘들어를 달고 사는 내게

육아는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독서영재교육법을 소개하는 사이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있다.

최근 이 사이트에서는 '내적불행'이 화두로 일고 있다.

그동안 여러가지 방어기제를 통해 자신을 감추고 살아온 부모들이 아이와 만나면서 유아기때부터 가져온 불행해지고자하는 욕망(내적불행)을 키우며 살아온 자신을 아이에게 투사하고, 아직 그 내면에서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기가 양육된 방식 그대로 아이에게 불행을 대물림한다는 내적불행과 불행한 육아 혹은 불행한 삶.

 

나도 한권두권 읽던 육아서를 보며 그동안 넘겨보았던 많은 경험과 사실을 다시보게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남편이 왜 그렇게 죽도록 미웠는지, 사람들을 대할때마다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해 관계맺기에서 늘 실패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는지 등.

그리고 사랑이와 해랑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겪는 그 많은 갈등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무언가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다.

물론 이 사이트에서 말하는 것들을 모두 지지하지는 않는다.

때론 이거 엄마를 완전 혹사시키는거 아냐 하는 생각에 화날때도 있는데, 그건 그동안의 나를 이루는

좁은 틀로 봤을 때의 이야기다.

 

그 사이트의 소위 고수들이 추천하는 육아에 참고할만한 서적들을 보면,

아동발달과 심리에 관한 것, 정신분석, 긍정심리학, 가족관계에 관한 심리학 등 정신분석을 토대로 한 심리학이 큰 토대이자 핵심을 이룬다. 나아가 비폭력대화법과 위에 말한 내적불행에 관한 책들, 명상서적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보다 더욱 폭넓지만 내가 읽은 것이 아직은 여기까지다.

나는 이점이 참 흥미롭다.

언젠가 조문익선배가 말한 성장하는 사람, 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게 아닌가 싶다.

요즘 나또한 나의 내적불행을 접하면서 차마 마주하기 어려운 고통에 대면하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내가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영성수련, 미술치료에서 못다한 나의 내면으로의 여행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다.

더욱 깊이 빠지고 싶다. 더 깊게 응시하고 싶다.

 

여전히 사랑 해랑에게 사랑과 분노를 갈팡질팡하며 오가고 있지만 이제는 달라진다.

달라지고 있다.

나는 치유하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여성인 것이 다행이며 고맙다.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가질수 없던 계기 아닌가.

내 안의 여신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낸다.

사랑한다. 내 안의 나여, 내안의 아기들이여, 내안의 우주여...

사랑한다, 미숙아...

어릴적 한번도(적어도 내기억에)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준 적없는(혹은 그렇게 내가 오해하고 있는)

나의 엄마, 아빠...언니들...

이제는 그 아이를 데려와 내가 키우고 어루만지고 사랑을 주겠다.

그래, 이젠 내가 되었다.(become &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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