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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8/31
    아침 9시부터 일할 수 없는 이유.(1)
    조지콩
  2. 2007/08/28
    세상에 관심 갖기
    조지콩
  3. 2007/08/25
    <술집>
    조지콩
  4. 2007/08/24
    집주인. 부동산업자. 임대인. 그리고 교.회.(2)
    조지콩
  5. 2007/08/23
    이놈의 언론들.(2)
    조지콩
  6. 2007/08/22
    거짓말
    조지콩
  7. 2007/08/21
    '니가 그렇게 말했다며?'
    조지콩
  8. 2007/08/19
    감정? 감정조절?
    조지콩
  9. 2007/08/18
    이타적 인간의 출현
    조지콩
  10. 2007/08/18
    꽃피는 봄이오면
    조지콩

아침 9시부터 일할 수 없는 이유.

출근길

 

지하철.

한 두번 경험하면 '좋은 경험했다'로 마무리 될 수 있을테지만, 이거 매일이라면? 일 시작하기도 전에 지친다는 거. 인.정.

 

버스.

출발하는 기점이 아니면? 대부분 서서. 흔들리고 막히고. 일 시작하기도 전에 지친다.

 

직장인들은 출근하자 마자. 일 시작 안하고 잠시 쉬어줘야한다.

 

자가용.

안 밀릴려면 완전 일찍 출발하거나. 지각하거나.

출근하자 마자. 일 시작 할 이유 없다.

 

결국. 우리는 아침 9시부터 일을 시작할 이유가 없다. 쉬어야할 이유만 있을 뿐.

 

그래서 난 출근하자마자 눈치 안보고 차마시고 신문보면서 논다.(ㅋ 사실 전 알바)

 

 

9시에 출근하는 일.

너무 오랜만에 한다. 알바가 무슨 9시 출근인지....대략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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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관심 갖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관심을 갖고 살기가 참 힘들다.

쏟아지는 많은 뉴스, 길을 지나며 보게 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가끔씩 오는 주변인들의 소식.

 

친구들과 뉴스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니 인생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뭔 관심이야'.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의 말이 '옳다구나' 싶어. 애써 관심을 피하려해도 마음이 쏠리는 건 사실이고. 가끔 내게 힘든 일이 닥쳐오면, '세상엔 고민할 것도 관심 가져야할 것도 많은데 왜 니 안에서만 고민해'.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의 말이 또 '옳다구나'싶어. 애써 참으려고 하는 것도 사실이고.

 

결국.

세상과 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운명으로 엮어버렸으니, 이 세상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하고, 그 관심을 지속하기 위해 나에게도 관심을 가져야하고.

 

솔직히.

가끔은 세상에 대한 관심을 없애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사실은 요즘.

오로지 나만을 고민하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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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1-1. 무대가 아닌 곳.

무대가 아닌 곳에서 연극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솔직히 궁금하지 않았다. 물론 난 영화나 드라마 등에 나오는 배우들의 뒷모습도 별로 궁금하지 않다. 어쨌건 그들도 사람이니 아마 나와 별 다름없는 삶을 살꺼라고 혼자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조금 다르겠지?)

 

#1-2. 나의 상상

공연이 있기 직전. 그 동안 함께 모여 연습했던 사람들과 최종연습을 한다. 이제는 시간도 어느 정도 흘러서인지 막힘이 없다. 간혹 보이는 실수는 그냥 애교로 넘어가 준다.

 

공연 연습 중. 역할을 잘 이해하는 이가 있는 반면, 아직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건성 건성인 이와 정말 열심인 이가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리라 생각할려고 한다. 그래야 좋은 연극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

 

오늘은 왠지 우울하다. 경제적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벌어들이는 돈은 없는데, 나가는 돈은 많으니 늘상 겪는 일이지만 늘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도 힘들테니 조금 더 웃으면서 연습해야겠다. 하지만 역시나 상황이 그래서인가? 동료들의 실수가 보일때면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참으려고 하지만 결국.

 

술집. 엄하다라는 표현을 이럴때 쓰는 걸까? 그냥 무작정 취하고만 싶다.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다 듣기도 보기도 싫다. 그냥 난 취하고 싶을 뿐이다. 소란스럽다. 그 동안 참아왔던 짜증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러다 연극 막도 못 올리는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래도 한편으론 난 이들을 믿는다. 아이러니.

 

공연 결정. 대본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배역도 정해지고, 후원도 정해지고. 당분간 많지는 않지만 수입이 들어온다. 그 동안 잠시 모른 척했던 경제. 다시 관심 좀 가져줘야겠다. 그런데 이게 웬일. 주인공이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래도 저치는 주인공 역할을 소화해낼 능력이 없는데. 그래 그건 단지 나의 생각일뿐일꺼야. 하지만 그래도...아~ 그래서 그렇구나. 어쩔 수 없는 연극쟁이 인생. 연극을 하기 위해선 그저 순응할 수 밖에.

 

대본작업 중. 아직 대본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 또 어떤 아르바이트를 해야하나. 늘어만 가는 빚에 견디기가 조금 힘들다. 영화판이나 드라마에서 간혹 단역 제의가 온다. 하지만 난 연.극.을 하러 왔다. 자존심이 있지. 조금 흔들린다. 아는 선배는 영화판과 연극판에 다리를 걸치고 있다. 영화판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름을 알려서 연극판에서 조금 입지가 커지고 있다. 혼란스럽다. 연극인이야? 그러다가도...현실....

 

#2. 그들

<술집>의 연극인들은 아마 너무나 편하게 무대에 오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거니까. 단지 관객들이 연극쟁이들이 무대가 아닌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을지가 의문일뿐이다. 그들은 지금 연극을 하는게 아니라 일상의 삶을 살고 있는거다. 그래서 더더욱 쉬운 연극일지도 모른다.

 

#3. 그런데?

그런데는 결국 앞의 말을 뒤집는 단어다. 그런데.

과연 그들은 편하게, 그저 자신들의 삶을 무대에 올린걸까? 아마 아닐꺼다.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쉬운건 아니니까.

 

#4. 나의 상상과 <술집>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연을 할 연극이 정해졌다. 그런데 주인공이 연습에 나타나지 않는다. 더 문제는 그 주인공이 없이는 후원도 없단다.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어느날 주인공이 없는 연극을 하자고 장난처럼 말한다. 그런데. 그 장난이 더 현실이다. 하지만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더 자세한 내용은 직접 관람을~^^;;)

 

#5. 다른 이야기.

소극장 연극은 아마도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더욱 긴장감을 가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처럼 편집이 있어 술술 넘어가는 것도 드라마처럼 다음회를 기약하는 것도 아니면서 가끔 연극을 찾게되는 이유 중 하나가 직.접.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6. 막내.

극 중 막내. 아니 무대에서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막내는 참 힘들다. 선배 눈치보랴, 시키는 것 다 하랴, 자기 감정 표현도 쉽지 않다. 그래서 아마 더 그들에게 마음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술집>의 막내 두 명. 내가 이 연극이 재밌다고 다른 이에게 추천해주고 싶다고 느끼기 시작하게 만들어준 이들일지도 모른다.

 

#7. 보실분!

막내 두 명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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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부동산업자. 임대인. 그리고 교.회.

#1. 임대차 인생

근 13년을 서울에서 혼자 살고 있다. 매년 방을 구해야한다. 가끔은 집주인에 의해. 가끔은 스스로.

부모님과 함께 부모님 집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고마운 일인지 깨닫는다.

험한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게지.

 

#2. 전세방

학생시절은 돈이 없다. 알바? 알바로 전세비를 마련할 수 있을만큼 능력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마련할 수 있는 알바는 흔치 않은 듯 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그런 알바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주 허름한 전세방도 구할 여력이 없다. 결국 친구들과 힘(?)을 합쳐 전세방을 얻는다. 아주 저렴하게. 이때까지는 그 방이 좋다 나쁘다의 개념이 없었다. 그저 그 곳은 잠시 잠을 자는 곳일뿐이었으니까.

 

#3. 월세방

인터넷을 통해 내가 원하는 방을 찾아본다. 불현듯 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얼른 클릭.

썩 괜찮다. 이 정도 방이면 살만 하겠다. 그 순간 보증금과 월임대료에 기가 죽어버린다. 이제 직접 돌아디니기 시작한다. 각 지역에 넘쳐나는 부동산.

보증금과 월임대료를 고려해 방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집주인, 부동산업자 -'당신더러 저 방에서 살라고 하면 살겠습니까?'라고 묻고 싶다. 만일 주인이 '예'라고 한다면 두말없이 그 집에서 살겠다. 아마 그들도 거기서 살고 싶지는 않을께다. 분.명.히.

 

거의 한달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 세상에 집을 소유하고 누군가에게 집을 임대하고자 하는 사람들(특히, 임대료로 먹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난 그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수준으로 생각한다고. 아니었다.

 

그리고 부동산업자들에게. 예전 복덕방시절 아저씨나 아주머니는 참 좋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정말 인간미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완전 돈에 미친것 같다. 그리고 임대료를 무지하게도 올려놨다. 도대체가.

 

#4. 교회

뜬금없이 교회?. 내가 돌아다닌 곳마다 교회가 있다. 물론 상가건물에 고이 들어가 있는 곳도 있지만, 으리으리한 건물들로 이루어진 곳이 조금 많았다. 평상시였다면 그냥 그랬으니까 그냥 그렇게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이 상황인만큼. 많아야 일주일에 2번? 3번? 저 건물 조금 작게하고, 필요없는 공간 줄이면. 누군가 또 나처럼 방을 찾아다니는 사람. 그들이 조금 더 편히 쉴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 그리고 이어 드는 분노. 대단히 아이러니 하지만, 예전에 교회다닐 때, 목사가 한말이 생각난다. '하나님은 인간의 돈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왜? 돈이 필요하겠냐? 그런데, 그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우리는 교회(여기선 아마 교회건물을 말하는 것일꺼다)가 필요하고 그 교회는 다른 곳보다 아름답고 웅장해야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신다.'라는 류의 이야기. 이거 하나님 팔아서 돈 달라는 이야기 아닐까?

 

#5. 20:80? 임대인

서울에 자기집에서 자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럼 임대로 사는 사람은? 내 주변을 기준으로 보면 자기집에서 사는 사람과 임대로 사는 사람의 비율은 거의 2:8이다. 난 다수에 속하니 좋아라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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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언론들.

오늘 뉴스를 잠깐 보니.

명박이가 대통령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과 그게 진짜 사실인양 알리는 언론이 보인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늘 처음 한국에 와서 뉴스를 봤다면, 난 아마 명박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놈의 언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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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오늘 나는 몇 번 거짓말을 했을까?

진짜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까?

 

잘 생각해보면 난 아마도 오늘 하루종일 거짓말만 하고 돌아다녔을지도 모른다.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 아닌 나를 속이기 위한 거짓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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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그렇게 말했다며?'

참 슬프다.

내가 그렇게 말한 적도 없는데, 어느날 누군가에게서 '니가 그렇게 말했다던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카더라'류의 이야기.

 

한 두번의 경우이거나, 별 의미 없는 경우에는 그래도 그냥 넘어가기 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듣게 되는 그 말은 참 난감하다. 그 이야기가 돌아 돌아 내 귀로 들어왔다면 이미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전해졌으리라.

 

그로 인해, 조금 난감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타인이 나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인데, 결국 그로 인해 내가 아닌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 그것도 조금 따가운. 솔직히 두렵고 무섭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의도적이든 무심결에든 그런 말들을 전하곤 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말이라면 덜하겠지만, 돌아 돌아 들은 이야기를 나도 분명히 그렇게 타인에게 전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도 그러니 뭐'라고 하면서 넘어가기엔 뭔가 걸리는게 많다.

 

그렇다고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나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라고 해명하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문이나 대중매체에 해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오해가 해결되거나 할 것도 아닌 것 같다. 결국 조심하는 수 밖에. 직접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이상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 수 밖에. 나부터. 그리고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인지를 확인하면서 주변에서도 조심스럽게 하는 수 밖에.

 

난 아직도 배워야할 것도 깨달아야할 것고 고쳐야할 것도 많은 부족한 인간임을 다시 한번 인정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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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감정조절?

사람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번이 변한다.

그러다보니, 간혹 자기 스스로도 자기의 감정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그런 감정(자기 스스로도 알 수 없는 그런) 표출로 인해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매순간마다의 감정이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 전의 감정이 거짓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감정 표출이 없었다면 자신만의 문제로 치부되고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은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 순간의 감정이 표출되었을 때다.

 

그렇게 나타난 감정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다. 문제는 그 순간 그 감정 표현에 대한 합리화는 이루어지지만, 시간이 흘러 그 감정이 거짓으로 변했을 때, 그 뒷감당은 쉽지 않다. 솔직하게 그 땐 그랬어라고 말하기엔 뭔가 걸리는게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존심이건 부끄러움이건 자기합리화에 대한 정당성 부여건 간에.

 

결국, 이런 상황에 직면하지 않기위해서는, 순간 순간 나타나는 감정을 얼마나 잘 조절하고 어떤 것이 지금 그 순간만의 감정이 아닌 조금 더 오래 지속되어오거나 지속될 감정인지 판단할 능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끔 이런 행동들이 지나칠 경우, 가식적이 되거나 자기 속에서 자기가 무너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걸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아마 적절하게 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것 같다. 그걸 내가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과연 내가 인간일까 하는 의문이 잠시 든다.

 

결국 난 그냥 그렇게 매 순간 조금은 조심하겠지만 지나치지 않게 내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가면,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욕먹어가며, 가끔 그런 뒷감당 때문에 가슴 아파하거나 분노하거나 하며, 그렇게 살아가야만 할 듯 하다. 그게 조금 더 진실된 인생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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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인간의 출현

 

이타적 인간의 출현

최정규

뿌리와 이파리

2005


#1. 이론

세상에 이기적인 인간과 이타적인 인간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그리고 우리가 늘상 말하곤 하는 인간은 합리적일 때.


#2. 현실

그런데, 현실에선 그렇지 않다.

두 번째 가정, 인간은 어느 때에는 합리적이지만 어느 때에는 무척이나 합리적이지 못하다.

첫 번째 가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에는 이기적인 인간과 이타적인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인간이 존재 발생한다. 즉 인간은 복잡하다는 거다.


#3. 다시 이론

그러나 어떠한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자할 때, 첫 번째 가정은 유용하다. 그리고 두 번째 가정도 상당히 유용하다. 이론의 설명은 최대한 사회현상을 최대한 단순화해야만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1.

이기적 인간과 이타적 인간이 함께 살고 있는 사회에선 늘 이기적인 인간이 더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인간은 합리적이기때문에 결국 이기적인 인간이 된다. 이론상은


#4. 다시 현실

그런데, 현실은 모든 인간이 이기적이 않다. 왜? 인간은 합리적이기도하면서 그렇지 않기도 하고, 이기적이기도 하면서 이타적이기도 하고, 그 중간에 있기도 하니까.


#5. 이론과 현실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줄여보자. 그러기 위해 우선,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정도를 줄여보자 그러기 위해 사용한 이론틀이 진화적 게임이론(인간은 조금 더 나은 것을 선택하며 진화해 간다)이다.


혈연인가? 유전자를 조금 이라도 포함하고 있는 객체를 세상에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만 이타적인가? 실험에선 아니다라는 것이 나왔다. 그러면 반복-호혜성인가?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그 누군가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내게 도움을 주기때문만 인가? 아니다. 반복-호혜성이 전제하는 경제적 인간.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에게 무언가가 돌아오지 않아도 이타적 행위를 한다. 그럼 유유상종? 잘난체? 의사소통? 집단선택인가?


여기까지의 많은 이론들이 일정부분 이타적 행위를 설명하긴하지만 각 가설이 갖는 한계점들이 있다. 하지만, 부분적 유유상종 현상, 이타적 집단이 이기적 집단에 비해 조금 더 이익을 가져다 주는 점, 국지화, 모종의 집단선택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이타적 행동의 진화에 유리한 조건을 생성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6. 이타적 인간

결국 이타적 인간은 실제 존재하고 그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타적 인간은 존재하며, 여전히 진화 발전해 가고 있다. 즉 이타적 인간이 이기적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즉, 집단선택, 국지화된 상호작용, 국지화된 지식전수과정, 의사소통 등 때문이다.


#7. 어떤 식으로 존재? 어떤 경우 강하게 발현? 어떤 역할?

인간은 공평성 혹은 이타심에 근거해 행동한다. 이러한 행위는 학습되었다고 봐야한다.(어른과 아이들에게 같은 실험을 했을 경우,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서 더 많은 이타성을 볼 수 있다)


또 공평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불공평에 징계를 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그 집단이 협조적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가? 경제생활이 시장경제에 통합되어 있는 정도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호의적 제안에 호의적 답을 할 수 있는 호혜적 인간형이 존재하며, 그것은 신뢰가 그 밑바탕에 있다.


이러한 강한 호혜성의 존재는 불완전한 계약이 불가피한 시장 상황에서 시장거래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즉 강한 호혜성은 집단 내 무임승차 행위를 최대한 억제하며, 집단 구성원 사이의 이타적 협조행위의 가능성을 높인다.


#8. 인간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를 함께 가진 인간에게 조금 더 강한 정도의 이기적 유전자는 학습(의사소통, 사회제도, 교육 등의 요인에 의해)을 통해 이타적 유전자로 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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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이오면

꽃피는 봄이오면 (2004년 류장하)


#1. 최민식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면 '열정' 이 말 외에는 더 찾기 힘들다. 그가 만들어내는 삶은 너무나 진실처럼 보인다. 그 속에 동화되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영화는 나의 삶이 되어버린다. 언제나 영화속의 최민식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2. 옛날 그리고 겨울


 겨울은 매우 많이 힘든 시기를 표현하곤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힘든 시기는 또다시 옛날이라는 시간을 말해주는 듯 하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오면 그것도 꽃피는 봄이오면 사람은 힘든 시기가 지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위해 많은 것을 잃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현우에게 우연히 찾아든 도계중학교의 관악교사자리는 그가 엄마에게 말하던 '처음부터....다시 시작하고 싶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이미 처음부터...다시 시작하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준 것은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에게서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지만 결국 그는 아이들에게 배우고 온다. 그렇게 현우의 기나긴 겨울은 끝이 난다.



#3. 사랑


 3 가지의 사랑. 가족에게로의 사랑, 이성에게로의 사랑, 그리고 아이들에게로의 사랑. 현우는 내리사랑과 동시사랑과 치사랑을 함께 가지고 있다. 동시사랑을 사랑할 수 없음을 내리사랑에게 풀어버리고 치사랑을 통해 내리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고 또 다시 동시사랑의 가능성을 발견하게된다. 이 3가지 사랑은 늘 동시에 우리에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현실의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현우가 배운 사랑은 우리가 이루고 싶어하는 사랑의 완결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을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현우가 깨닫는 순간 그는 3가지 사랑을 모두 얻게된다.

#4. 꿈


우리는 꿈을 가졌었다. 부모들도 아이들도 우리도. 모두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들의 못남으로 인함이라기보다 그것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꿈이라는 것이 너무나 추상적이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곧잘 잊어버리는 것은 우리 부모들의 꿈이다. 우리의 꿈과 아이들의 꿈은 기억되고 이야기되지만 부모들의 꿈은 그렇지 않다.현우가 불현듯 엄마에게 물었던 '엄마 꿈은 뭐였어?' 라고 했을 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시인이나 소설가도 되고 싶었고 선생님도 되고 싶었다고 그러다가 가정이 행복한 것이 꿈이었다고 그리고 현우가 잘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언제나 우리 부모들의 꿈은 우리에게로 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잃어야 할 것과 잃어서는 안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잃어도 괜찮은 것과 꿈을 이루지 못한다해도 잃지 말아야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5-1. 호감


 호감과 사랑은 다르다. 이미 사랑중에 있는 이들에게 호감은 사랑에 대한 애절함을 더욱 안겨준다. 호감이 언제나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감은 곧잘 사랑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현우에게 있어서의 호감은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했던 상황에 다가온 도피처다. 그러한 도피처는 결국 호감에서 끝날 수 밖에 없다.

#5-2. 질투


 질투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곤 한다. 그런 질투가 있기에 사랑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6-1. 내기억


 내가 오래동안 살았던 동네는 태백이다. 탄광촌.... 어쩌면 탄광촌이야기라는 것이 나를 이영화로 끌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잠깐 나오는 거리의 모습들과 익숙한 탄광의 모습...그리고 그 속에 있는 광부들...떠나온 곳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나에게 잠시 잠깐 추억을 전해주었다. 어느덧 내 머리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던 그곳을 다시 나의 기억속에 담아주는 장면들에 고마워해야하는 것인지 화를 내야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가슴은 아련하게 저려온다.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것이 아닌 것을 읽을려고 한다면 감독에 대한 모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개인의 사적경험은 이 영화에서 사적인 말을 한다.


#6-2. 떠나는 이와 떠나지 못하는 이와 남는 이


 태백을 떠나면서 난 훨훨 날고 싶었다. 더 큰 도시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더 큰 도시에서 느낀 것들은 허전함과 외로움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떠나는 이였다. 그런데 떠나지 못하는 이와 남는 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하다. 가끔 아주 가끔 찾아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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