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여행 - 해파랑길 ③ 건너뛰면서 추암에서 덕산까지 걷는 32구간
 
첫째 날, 삼척 시내를 앞두고 건너뛰기(2016년 7월 9일)
 
이번 구간은 꽤 길다. 게다가 삼척 시내를 앞두고는 산길이다. 시내를 거쳐 가는 길이야 장미공원도 둘러보고 둔치를 걸으니 좀 낫긴 하겠지만. 죽서루에서 오십천도 봐야겠고, 시립미술관도 구경해야 하니 하루에 걷긴 무리다. 해서 느긋이 집을 나선다. 터미널쯤에서 마치는 걸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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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은 지난번에 차 기다리면서 오래 있었던 곳인데도 또 한참을 있다 가게 한다. 그게 꼭 촛대바위 때문만은 아니고, 날씨가 좋아서인가. 바닷물에 비치는 모래가 어찌나 곱던지. 발까지 담그고 놀진 않았지만 ‘어이쿠 늦겠다’ 싶을 만큼 꽤 오래 머물렀다.
 
이름 때문일까? ‘후진’, 그것도 ‘작은 후진’이라는 이름말이다. 물론 바로 옆 추암보다야 덜 하긴 하지만. 한적한 곳에 자그마한 해변이라 호젓하게 놀긴 딱 좋은데, 뭣 때문인지 황량하기만 하다. 뭐 아직 피서철이 아니니 꼭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새천년도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해안길을 따라 비치조각공원을 지나고 나면 산길로 올라서야 한다. 헌데 별 생각 없이 숨을 헐떡이며 언덕을 오르다 느닷없이 짖어대는 개소리에 쫓겨 내려오고 만다. 뭐 해가 살짝 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핑계로 산길을 건너뛰긴 했지만, 어찌나 놀랐던지.
 
이런 색도 다 있나 싶으리만치 다양한 장미가 있는 공원을 지나니 해가 저문다. 삼척 시내니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아까 가슴 철렁하게 한 덩치 큰 개가 아니었음 밤길을 걸을 뻔 했겠다. 또 덕분에 산길도 피하고 오롯이 해안을 따라 걸었으니 몸도 가뿐하다. 이제 어디 맛난 밥만 먹으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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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시내 천변길은 또 건너뛰고(2016년 9월 24일)

 
결국 죽서루엔 못 올라본다. 지난 번 걷기 후에 삼척 올 일이 있어 그때 시립박물관은 구경했고. 굳이 빙 돌아 올 필요가 없어 또 건너뛰어 오십천교부터 시작하니 그렇다. 날씨가 좋아 죽서루에서 보는 오십천이 볼 만하겠는데, 좀 아쉽다.
 
겉보기에도 흉물처럼 보이는데다 노동자 탄압으로 악명 높은 시멘트 공장은 먼지도 먼지거니와 어찌나 소음이 심하던지. 사진 찍는다고 가까이 가도 눈만 껌뻑이던 고양이 말고는 호젓하기 이를 데 없던 곳인데. 하는 수 없다, 서두르는 수밖에. 햇빛에 반짝이는 오십천이 눈에 밟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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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이라는 마을을 지나니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지도를 보니 한재로 이어지는 옛 7번 국도인 듯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스팔트 고개니 마음을 다잡고 오른다. 9월도 보름이 지났건만 여전히 햇볕은 따가우니. 그나마 등 뒤로 있으니 다행이다. 바람도 선선히 불어오고. 
 
어디서고 탁 트인 곳에는 이름도 요상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한재공원 아래도 그렇다. 그 보기 좋은 풍경을 다 가로막고 서 있는 꼴이라니. 그것도 절벽에 콘크리트를 처발라 지어진 것들이다. 다행히  한재공원에는 이르니 한결 낫다. 산마루가 그늘도 만들고 눈에 거슬리는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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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쉬었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저 밑에서 얼굴 까만 아저씨 한 분이 올라오고 있다. 얘길 들어보니 부산에서 출발해 20여일 째 걷고 있는 중이란다. 부인은 같이 못 걷고 중간에서 기다린단다.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드문 일인데 완주하는 이라니. 힘내시라!!
 
맹방은 꽤나 큰 곳이다. 맹방초에서 잠깐 볼 일 보고 줄곧 걸었는데 상맹방, 하맹방. 한 시간은 족히 걸었다. 사람 많을 때 라면이야 여기저기 상점도 열었을 거고 그러면 화장실도 있었을 테지만. 한 달 도 더 전에 해수욕 끝났다는 안내문이 내걸렸으니 말 다했다. 겨우 해변에서 잠깐 쉬었다 간다.
 
삼척은 오랜 시간 핵발전소 문제로 정부와 싸우고 있는 곳이다. 덕봉대교 건너 팔이구공원은 그 싸움에서 이긴 삼척 시민들이 세운 기념탑이 있는 곳이고. 80년대부터 시작된 싸움이 지난 지방 선거로 끝을 맺나 싶은데 아직은 아닌가보다. 정부가 여전히 지정고시를 철회하지 않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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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벌써 산 너머로 넘어갔고 노을마저 어둠으로 바뀌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부안에서였던가. 집집마다 골목마다 새겨있던 원전반대 그림들도 떠오른다. 탑에는 그 고되고 지난했던 과정들을 그저 담담히 담고 있을 뿐이겠지만 그걸 어찌 모른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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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한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추암에서 덕산까지 이어지는 32구간은 22.5km로 꽤 긴 편이다. 아침 일찍부터 걸으면 해 지기 전에 마칠 수 있겠지만 오며가는 시간 때문에 두 번에 나눠 걸었다.
 
* 가고, 오고
해파랑길 홈페이지(http://www.haeparanggil.org/?main)에는 구간별 교통편이 자세히 나와 있다.
 
* 잠잘 곳, 먹을 곳
삼척 시내를 벗어나 맹방으로 가는 길은 먹을 만한 곳이 없다. 편의점이나 동네 슈퍼도 없는데다 화장실은 여름 한철이 아니면 맹방초등학교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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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0 17:07 2018/03/10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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