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하늘빛 따라 눈부시게 파란 바닷길(2015년 5월 25일) 

 

사람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正) 동쪽에 있다는 정동진을 어떻게 기억할까. 드라마 ‘모래시계’에 잠깐 나왔다 지금까지도 그 여배우 이름으로 불리는 소나무가 있는 곳? 새해가 되면 누구랄 것도 없이 해 뜨는 것 보러 가는 곳? 세상에서 그 어느 곳보다 바다가 가까운 역(驛)? 젊은 시절 밤기차 타고와 벌건 눈으로 깡소주를 마시며 새벽을 맞이하던 곳?

 

작년 이맘 때 한 청년이 이곳에서 목숨을 끊었다. ‘해가 뜨는 곳’에서,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승리하길 기원하면서. 그 청년은 자신을 이곳에 뿌려 달라 했다. 하지만 유언을 배반하도록 부추긴 자본에 의해 어딘지도 모를 곳에 뿌려졌고. 그렇게 정동진에는 자본이 세운 거대한 모래시계만 남았다. 

 

씁쓸한 모래바람이 산 쪽으로 휘몰아치는 정동진을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드는데. 이 산길, 만만치가 않다. 헉헉 숨을 참고 뒤돌아 멀리 바다를 볼 땐 좀 낫지만. 저기가 끝이겠지 싶은 고갯길이 계속 이어지고. 이건 숫제 등산이다. 그나마 등에 짊어진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예상을 했으니 망정이지. 만만하게 봤다간 딱 큰 코 닥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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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서보니 높이 올라온 만치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또 산길을 다 내려와 만나는 심곡항 바다색은 눈이 다 부시다. 뭐, 이제 바닷길을 걷겠거니 싶었는데 또 숨이 꼴딱 넘어가는 고개를 넘긴 하지만. 그 정도야 아까 지나온 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보상치곤 꽤나 크다.

 

헌화로(獻花路)는 신라시대 강릉 태수로 부임한 순정공(純貞公)과 그 부인, 그리고 한 노인이 얽힌 일화로부터 붙여졌다고 한다. 예컨대 순정공 부인이 절벽에 핀 철쭉을 탐냈고,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위험을 무릎 쓰고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부른 노래가 헌화가(獻花歌)라는 설(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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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차하면 바닷물이 넘쳐 길을 덮치는 헌화로는 옥계면 낙풍리에서 정동진리 정동진역 삼거리까지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정동진에서 산길을 타는 바우길만 아니었다면 이 헌화로를 따라 쭉 왔을 것을. 때론 에둘러가는 길이 아기자기하고 색다른 볼거리를 주긴 해도. 이번처럼 때 아닌 고생길이기도 하다.

 

여름 피서철에는 북적이는 차들로 몸살을 앓았겠지만 다행히 지나는 차도 드물다. 덕분에 심곡에서 금진해변까지 헌화로를 제대로 걸을 수 있다. 해안 단구와 해안 절벽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바위들, 떡두꺼비바위, 구선암, 괴면암, 합궁골, 저승골, 백두대간, 해룡신전, 공룡가족 등을 차례로 둘러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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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항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고 나니 시간이 빠듯해 보인다. 옥계까지는 해변길과 솔숲길, 아스팔트길을 차례로 지나야하지만 평지길이라 해 넘어가기 전에 갈 것도 같고. 하지만 곧 금진초 앞에서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좀 전에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었나. 배가 살살 아파오는 게 탈났나보다. 딴 건 몰라도 이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날, 바우길 안녕(2015년 5월 30일)

 

분명 비가 오질 않는다고 했는데 오락가락한다. 버스 안에서도 그랬고 종점인 여기 금진초등학교 앞도 그렇다. 비 핑계 삼아 어디 먹을 데 없나 찾아 두리번 두리번. 다행히 지난 번엔 문을 닫았던 바로 앞 카페가 문을 열었다. 떼 지어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입구에서 왁자지껄하지만 재고자시고 할 것 없다. 일단 문 열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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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요기를 하고 나니 요란한 오토바이들도 안 보이고. 하늘을 보니 잔뜩 흐르긴 해도 비는 그친 듯. 솔숲 길로 접어들어 발걸음을 빨리 한다. 거리상으로 따지자면 넉넉잡아 한 시간 반이면 될 듯해도 언제 또 비가 올지 모르니. 게다가 얼마 전 오염물질 유출로 크게 문제가 됐던 곳이 코앞이라. 더 머물러 있으라고 해도 서둘렀을 터.

 

오랜만에 갓길도 좁은 2차선 도로를 걷는다. 때맞췄는지 잠잠하던 하늘에 비가 다시 내리고. 산만한 덤프트럭들은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질주한다. 급기야 도로 공사로 한 차선이 없어지고 그나마 있던 갓길도 없다. 그래도 지난 번 해질 녘에 멈추길 잘했지. 어둑어둑한 시간에 여길 지났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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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옥계IC를 지나면서부터는 동네 마실 나온 듯. 농로를 따라 이제 막 모내기한 논 사이를 걷기도 하고. 한참 잘 여문 마늘밭과 이제 막 모종을 옮겨 심은 옥수수밭도 곁을 지나고. 옥계초등학교 옆으로 난 길을 놓치긴 했어도, 이제 딱 한 시간 지났으니 딱 여기까지다. 그래도 바우길이 이제 끝이다 싶으니, 좀은 아쉽다.

 

 

* 열여덟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헌화로 산책길을 마지막으로 바우길 걷기는 끝이다. 바우길 9구간 헌화로 산책길은 12.8km로 그다지 길지 않지만 정동진에서 심곡항까지는 등산에 가까운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넉넉히 시간을 잡아야한다. 첫날은 등산을 한데다 여기서 쉬고 저기서 쉬고, 밥 먹고 어쩌고 하느라 5시간 정도 걸렸고 다음엔 동네 산보 하듯 2시간 정도 걸었다.

 

 

* 가고, 오고

강릉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 참고.

 

 

* 잠잘 곳, 먹을 곳

정동진에는 너무 복잡하다 싶을 만치 식당도, 숙박할 곳도 많다. 이후 심곡항, 금진항, 옥계로 이어지는 길에는 제법 맛집들이 있으니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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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7 14:43 2016/04/07 14:43
사용자 삽입 이미지첫째 날, 꽃보다 할매, 할배(2013년 10월 5일)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이 큰 화제였던가. 할배들에 이어 누나들까지 나왔으니. 호감 가던 사람이 만든 거라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대기업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만들었다는 점. 굳이 돈까지 안 줘도 몇 번씩은 나다닐 만치 돈 깨나, 시간 깨나 있는 연예인 할배들이 나온다 해서 마땅찮았다.
 
그래도 한두 번은 봤던 것도 같은데, 통 기억에 남질 않는다. ‘꽃보다 할배’라는 말을 만든 나PD에겐 미안하지만. ‘꽃보다 할배’들은 그들이 아니란 생각이 내내 맴돌았기 때문일 듯. 모처럼 걷기여행에 나섰던 오늘도 마찬가지. 이 세상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할배들, 할매들은 딴 곳에 있음을 알았으니. 
 
일단, 학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출출하다. 지도를 보니 면사무소까진 마땅히 요기할 만한 곳이 없어 보인다. 가방에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넣어오긴 했어도, 일단은 식후경이다. 게다가 높은 하늘, 뭉게구름 사이로 가을 햇볕이 따갑다. 밥도 밥이거니와 아무리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찌감치 벼 베기가 끝낸 논 한 가운데 우뚝 솟은 굴산사 당간지주는 보물치곤 좀 허술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 듯하다. 달랑 안내문 하나가 전부니. 그렇다고 요란하게까진 필요 없겠으나. 이웃한 곳에 굴산사지와 부도, 석불좌상 등을 엮어낼 필요는 있어 보인다. 단순히 표지판만 세워놓는 걸 넘어서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인가 뭔가도 있으니.
 
바우길을 걸으며 한 시간 넘게 아스팔트길을 걷는 건 처음이다. 포도, 사과, 복숭아 과수원 들을 차례로 지나 널따란 양배추 밭 끝 금광초교까지. 발바닥이 다 후끈하다. 아무래도 잠시 쉬었다 가야지. 좀 더 가면 솔 숲길이니 내처 걸을 수도 있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 모르겠지만. 신발부터 벗고, 발 쭉 뻗고 드러눕는다.
 
교전교를 지나 농로를 따라 5분이 넘게 딴 길을 걸었다. 분명 숲길이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 이런 아스팔트길에서 왕복 10분길은 치명타다. 숨을 고르고 다시 걷는데, 이번엔 알림판 때문에 또 헤맨다.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제 길을 찾았을 터인데. 요상하게 한 길로 난 곳엔 표시가 잘 돼 있는데 갈림길엔 안 그렇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정감이마을 등산로에 접어드니 구름이 많아진다. 나무그늘 하나 없을 땐 해가 계속 등 뒤에서 쫓아다녔는데. 솔숲에 구름이라, 영 날씨가 그렇다. 그래도 딱딱한 길을 벗어났으니 발걸음만은 가볍다. 키 작은 소나무 사이로 길이 한참 이어지는데, 머리 위 송전선만 없었으면 금상첨화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밀양에 들어설 송전탑 아래선 전기 없이도 등이 켜진다고 한다. 대도시에서 대량 소비하는 전기 때문에 세워질 거대한 탑. 결코 우리 세대에 처리할 수 없는 핵폐기물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그 송전탑. 지금 머리 위에 있는 저 송전선은 몇 kV일까. 윙윙, 듣기에도 저리 소름이 끼치는데. 밀양은 오죽이나 할까.
 
누군들 얼마 남지 않은 삶, 한량하게 유람이나 하고 싶지 않을까. 매일 제 무덤이라 파 놓은 구덩이로 올라가는 할매들. 제 목멜 동아줄을 다시 묶고 또 묶는 할배들. 자식들, 손주들이 살 세상엔 핵폐기물을 남길 수 없다고. 한 평생 일군 땅과 집에서 떠날 수 없다고 외치는 그들이 새삼 ‘꽃보다 할매.할배’란 생각이 든다.
 
송전선 따라 난 산길을 한참 걸어 강동면사무소에 도착하니 때 마침 버스가 온다. 허겁지겁 올라 어디까지 가는 버스인가 하고고 보니, 바로 집까지 간다. 그제야 맥이 탁 풀리며 바닥에 주저앉는데. 그렇게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내릴 때다. 멀리 대관령 너머로 빨간 노을이 진다. 오늘 ‘꽃보다 할매, 할배’들은 안녕할까.
 
둘째 날, 철길, 습지, 사구, 바다를 차례로 걷다(2014년 6월 6일)
 
바우길 요 몇 구간은 두 번에 나눠 걷게 됐다. 집이 가까워서인데, 학교 앞에 사는 친구들이 지각한다는 말이 딱 맞다. 일찍 나서 중간에 밥 먹고 또 걸으면 넉넉했을 길을. 늘 느지막이 걷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아마 딴 데서 기차타고 왔으면 서둘렀을 테고. 모르긴 몰라도 정동진까진 갔어도 이미 갔을 것 같다.
 
풍호연가 길도 그렇다.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걷지만. 서울서 온 친구와 점심까지 먹고도 한 참이나 더 놀다 겨우 강동면사무소에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남은 길을 따지자면 동네 한 바퀴 마실가는 셈밖에 안 되고. 이제 바우길도 두어 번만 더 걸으면 끝이니. 천천히 느끼는 것도 좋을 듯싶다.
 
유월치곤, 또 곧 있으면 넘어갈 해치곤 제법 따갑다. 그래도 금방 시원한 바람을 내주는 숲길로 들어서니 좀은 낫다. 언뜻언뜻 부는 솔바람이 언덕을 오르느라 흘린 땀이며, 따가운 등이며, 목덜미를 시원하게 하니까. 조금 심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솔숲을 내주는, 바우길만이 가진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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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숲길을 지나니 이번엔 왜 풍호연가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는 길이 기다린다. 바로 바람을 머금고 있는 드넓은 연꽃 습지가 펼쳐져 있는 것. 아직은 연꽃은커녕 연잎도 많지 않지만. 바다 쪽에서인지 산 쪽에서인지 부는 바람이 호수 위 연잎들을 휘감아 도는 곳. 이만하면 이름 한 번 제대로다.

찬찬히 습지를 둘러보고 다시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나면 모래언덕이다. 헌데 사구(砂丘)라는 이름만 남았지 다른 모래사장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동해안에 무려 30개가 넘는 해안 사구 가운데 그나마 생태.경관 보존지구로 지정됐다는 곳이 이러니. 당장 보기에도 안 좋고 야생동물들이 지나기도 힘든 저 절책부터 없애던가.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나는 안인항을 휘돌아 철길을 건너면 길은 산우에 바닷길로 연결된다. 막바지에 비릿한 바다냄새 대신 코를 쥐게 하는 악취와 길을 다 차지하고 다니는 대형트럭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바람이 불고 연꽃이 피면 꼭 다시 걷고 싶은 길. 시원한 바람이 손등을 타고 간질간질 지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풍호연가길은 17.5km이다. 시작은 6구간 굴사사지길 마지막 굴산사지며 끝은 8구간 산 우에 바닷길 시작인 안인항이다. 풍호연가길은 땡볕이긴 하지만 풍호마을 연꽃 밭에 연꽃이 한창 피는 8월이나,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가 바닷바람에 몹시도 한들대는 10월이 좋겠다.
 
* 가고, 오고
강릉 시내버스 노선을 참고.
 
* 잠잘 곳, 먹을 곳
시작하는 곳과 끝나는 곳 그리고 풍호마을 등에 식당이 꽤 있고, 안인항 주변엔 숙박할만한 모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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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31 16:31 2015/03/31 16:31
첫째 날, 강릉 단오축제날, 굴산사 가는 길을 걷다(2013년 6월 7일)
 
강릉항은 안목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항이나 해변보단 거피 거리로 통한다. 그게 다 모 방송사 프로그램 덕에 유명세를 탔기 때문인데. 가만 들여다본다면, 여기라고 예외가 있을 리가 있나. 사람 많은 곳이라면 어김없이 들어서 있는 대형 체인 커피전문점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어 사뭇 눈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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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어디서 이만큼이나 바다를 가까이 마주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싶은 것만 빼면. 홍대 앞이나 여느 대도시 커피 거리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바글바글한 차들로 걷기조차 힘든 해변길만큼이나 브랜드 커피 집만 바글바글하니.

 
하지만 어느 때고 대관령에서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솔바람 다리를 건너서 만나게 되는 남항진은, 가까운 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전투기가 떠다녀서 그렇지. 요란한 대신 호젓함이 있어 머물고 쉴만하다. 떠들썩한 노랫소리가 나오는 횟집도 없고, 길을 다 차지하고 서있는 차들도 보이질 않으니.
 
7번 국도를 따라 걷자면, 바닷길을 가로막고 있는 비행장 때문에라도 여기서 돌아가야 하는데. 마침 바우길이 굴산사지 가는 길로 이어주고 있다. 조금은 요란한 강릉항과 호젓한 남항진이 다리 하나를 두고 시작해, 강릉 시내를 거쳐 꽤 먼 거리를 가야 길이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은 좋다. 게다가.
 
중앙시장은 출출할 때쯤 딱 맞춰 지나게 되니 다양한 음식 맛을 볼 수 있고. 임영관과 객사문, 칠사당은 한 낮 더위를 피하며 쉬어가기 좋다. 또 단옷날쯤 맞춰 걷는다면 단오관 근처와 둔치 벌어지는 강릉 단오 축제 구경에 하루 쯤 더 시간을 내야하고. 길 끝에서 만나는 굴산사지를 둘러싼 이야기까지. 강릉이 가진 또 다른 맛과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길 왼쪽으론 솔숲이, 오른쪽으로는 아파트가 맞대어 있는 숲길은,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때맞춰 열린 환경영화제를 함께 즐길 수 있었다면, 이거야 말로 금상첨화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오늘은 성미산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춤추는 숲>을 볼 수 있으니, 걷는 길과 영화가 꼭 맞춘 듯하다.
 
하지만 굴산사지 길은 시내로 향하는 도중, 왼쪽으론 하천을 경계로 군부대에서 나는 총소리가 요란스럽고. 오른쪽으론 논, 밭, 과수원을 경계로 개 짖는 소리가 또 요란스러워 정신이 없는데다. 잘 못 날을 택한다면 뜨고 내리는 전투기까지 덧 들린다면. 이건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라 처음 시작할 때 호젓함이 다 날아가니. 그럴 땐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래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커피 향과 아파트 숲에서 불어오는 솔향을 맡으며, 시장 통에서 어깨를 부대끼며 느끼는 맛과 사람들. 천년을 이어온 축제와 오늘은 지켜낸 싸움까지 보고 나면. 강릉이 가진 진면목을 다 보고 간다, 말하려면. 분명 빼놓지 말아야한다.
 
둘째 날, 두 번씩이나 길을 잃고서도 끝내 만나지 못한 굴산사지( 2013년 9월 3일)
 
고성에서부터 바닷길을 따라 내려온 지도 그새 2년이다. 그동안 틈나는 대로 걸었는데, 아직도 강릉 언저리니. 울진 앞바다와 감포, 해운대는 언제 볼 수 있을까 싶다. 머, 저 땅끝에서 7년 넘게 걸어 여기까지 왔으니 부산이 대수일까. 거제, 남해를 돌아 여수, 목포, 태안을 거쳐 도라산도 금방이겠지.
 
그리고 어쩌다 태백을 거쳐 강릉에 와 사니 딱 맞춘 듯. 모두를 다 잇지는 못해도 향호에서부터 묵호까지 바우길을 걸을 수 있고. 딱딱한 아스팔트 7번 국도 대신 해파랑길과 저 아래 영덕 블루로드도 걸을 수 있으니. 생각했던 것 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려도 상관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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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산사 가는 길은 시내 한복판을 지난다. 덕분에 오늘은 집에서부터 걷는데, 실은 지난 번 걸을 때 때맞춰 열린 단오 축제를 구경하느라 단오문학관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해서 중앙시장이나 임영관지는 몇 번씩 둘러봤고. 잠수교도 지난 번 단옷날 축제 때 건너봤으니 건너뛰고. 쭉 남대천 둔치를 따라 걷다 단오관에서부터 7코스로 들어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교육청을 지나고 노암초 담장을 따라 걸으니 곧 다른 풍경이다. 좀 전까지만 해도 여느 도시나 다름없었는데.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가 심어져 있는 밭은 물론이고 벼이삭이 팬 논이 펼쳐지고 있으니. 간간이 솔 숲 사이로 난 길을 걷기도 하고, 꽤 가파른 산을 10분이나 오르기도 한다. 그러다 저수지를 따라 논두렁길에 이를 때쯤엔, 대체 여기가 어딘가도 싶다.
 
그래서일까. 지도도 챙겼고, GPS도 가져왔는데 길을 두 번이나 잃었다. 한 번은 정신없이 개 피해 어디로 갈까 허둥대다가 또 한 번은 심하게 좌, 우로 뒤로 가야 하는 곳에서. 나중에 해가 지고 버스를 기다리며 든 생각인데. 여기서 헤매지만 않았다면 굴산사까진 갔겠지 싶다.
 
그러나 저러나 동네 길이라고 생각하고 준비 없이 나선 것도 아니고. 딴 데 걸을 때처럼 똑같이 준비했는데도 길을 잃었으니. 어디 가서 강릉 산다고 말하긴 이른가 싶다. 하긴 아직 가본 곳보단 안 가본 데가 더 많다. 구정이나 강동 같은 데엔 근처에도 안 가봤고. 가을이면 그렇게 단풍이 좋다는 소금강도 못 갔으니.
 
그래도 그렇지, 웬만한 곳은 처음 가도 길을 헤매진 않은데. 지도니 GPS를 가지고 다닌 게 되레 방향 감각이나 주변 지형을 보는 눈을 잃게 만든 건 아닐까도 싶다. 전에는 길을 걸으면서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고 기웃기웃 했는데. 요즘은 조금 걷다 갈림길이 나오면 지도 펴고 GPS 보는 게 습관처럼 됐으니 말이다.
 
점심 먹고 출발해 담 넘어 ‘정의윤가옥’ 구경하고 학마을에 도착하니 부쩍 짧아진 해가 지기 시작한다. 집에서 나올 땐 굴산사지에 당간지주까지 구경하고 차 탈 생각으로 버스 시간을 알아왔는데. 다행히 맛난 감자전에 동동주 한 사발 마시고 나니 바로 앞이 정류장. 시간도 딱 마지막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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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강릉항에서 시작되는 바우길 6구간 굴산사 가는 길은 중앙시장, 임영관, 객사문 등이 있는 시내를 지나 굴산사지로 이어진다. 전체 길이는 18.5km로 두 번에 나눠 걸었다.
 
* 가고, 오고
강릉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 참고.
 
* 먹을 곳
중앙시장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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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4 11:29 2014/09/24 11:29
바우길 ⑧ 시대를 앞서갔던 이, 허균․허난설헌의 애틋함을 쫓아(2013년 6월 6일)
 
허균은 누이 허난설헌에게 세 가지 잘못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잘못이요, 둘째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잘못,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잘못이란다.  그 역시 지배계급의 일원인 양반가, 그것도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긴 했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누이가 그 재능을 세상에 떨쳐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을 저리 표현했다.     
 
누이 난설헌에 대한 애틋함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자신이 지은 시 구절처럼 27세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언마저 지키지 않았던 거다. 자기가 죽으면 자기 시를 모두 태워버리라 했음에도. 초희가 친정에 남긴 것들과 자신이 외우던 시들을 모아 <난설헌집>을 펴낸 것이니. 지독한 누이 사랑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을까.
 
碧海浸瑤海
靑鸞倚彩鸞
芙蓉三九朶
紅墮月霜寒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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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조선 왕조가 끝날 때까지 복권되지 못했다. 그가 남긴 글들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거나, 몇몇 목숨을 건 이들 덕분에 겨우 전해질 수 있었다. 이전에는 겨우 <홍길동전>을 쓴 이로, 어느 책들에선 균이란 이름만 남겨졌는데. 근래 새삼스레 관심을 받고 있으니. 봉건왕조가 물러난 뒤에야 겨우 살아나고 있다.

 
허난설헌은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중국과 일본에서 그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살았던 조선에서는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아니 고루하고도 비루한 유생들로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당했으니. 일곱 살 때, 하늘나라 황제가 살고 있다는 백옥루에 올릴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써냈던 그이가 그렇게도 못마땅했나.
 
솔직히 오죽헌은 세계최초 부자 화폐 인물이라는 요란한 현수막 때문에 못마땅한 구석이 있고. 김시습문학관은 그저 구색만 맞춰 놓았다는 인상이 짙긴 하나. 오죽헌에서 허난설헌 생가까지 이어지는 길은 문학길이라 이름 붙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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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도 그렇고 그 아들 율곡 이이에. 호수를 사이에 두고 이쪽에는 김시습과 저쪽에는 허균, 허난설헌 남매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길 끝에서 만나는 작은 도서관. 그 툇마루에 앉아 이들이 남긴 글들을 읽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애틋한 두 오누이를 뒤에 두고 솔 숲길을 나서자 경포호수다. 바우길과는 5코스 바다 호숫길과 연결된다. 시내 어디서 또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싶은 둔치길 끝에 바닷길이 있는 것이다.
 
찻길을 가운데 놓고 한 번은 바다 옆 솔숲 길로. 또 한 번은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솔숲 길을 번갈아 걸으면. 어느새 송정과 안목해변을 지나 솔바람 다리에 이르는 길이니. 이번에도 쉬엄쉬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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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네 번 째 여행에서 걸은 길
사천해변에서 시작하는 5구간 바다 호숫길과 위촌리 송양초교에서 출발한 11구간 신사임당길과는 경포대에서 허균.허난설헌 생가까지 겹친다. 이후 5구간은 6구간 출발점이기도 한 솔바람다리 건너 남항진으로 이어진다. 허균.허난설헌 생가에서 만난 작은도서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탓에 고작 7Km 정도를 1시간 반 남짓이나 걸었는데 시간은 반나절 넘게 걸렸다.  
 
* 가고, 오고
아직까진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을 챙겨야 한다.  
 
* 잠잘 곳
경포해변에서 남항진까지 이어지는 5구간에는 식당도, 숙박시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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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1 10:55 2014/07/01 10:55

바우길 ⑦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다시 만난 신사임당길(2013년 5월 25일)

 
오죽헌 입구에는 세계 최초 모자 화폐 인물이라는 요란한 문구가 걸려있다. 처음 신사임당이  5만 원 권에 선정됐을 때 벌어졌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워낙에 ‘세계 최초’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가만 생각해보니 이도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닌가 싶다. 유관순 열사도 좋았겠고. 신사임당길 끝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초희도 있었다는 데에 이른다면 말이다.
 
번잡한 오죽헌을 뒤로 하고 선교장으로 가는 농로로 올라서려는데. 어라, 농로가 막혔네. 경포에 생태습지원을 만든다고 하던데. 얼추 공사는 끝나 보이건만, 어째 바우길 표지판만 그대로이고 길이 막힌 것이다. 농로로 올라서는 길은 가로수로 막혔고. 농로는 농로인가 싶을 만치  황량하다. 이런 황당할 데가. 공사가 마무리되면 길이 연결되려나. 아님 길이 딴 데로 나려나.
 
지난 번 걷기 때만해도 봄이 오는 건지 마는 건지 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여름 날씨다. 덕분에 점심을 먹고도 한참이나 지나 집을 나섰는데도 찻길은 땡볕이고. 농로였다면 그나마 나았을 터인데. 아스팔트길을 걸으려니 고역이다. 게다가 근처가 모두 관광지라 가게가 많을 거라 생각해 물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없다. 어쩔 수 없다. 부지런히 걸어야지. 선교장에 가면 뭔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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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장에 도착하니 북적북적 사람들이 꽤 많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집 구경도 하고 목도 축이려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가보다. 단체관광이라도 왔나. 안 그래도 헉헉 숨 돌릴 틈도 없이 걸어와 땀이 송골송골한데. 서둘러 앞질러 가던가, 뒤로 처져 쉬었다가 구경해야겠는데. 어랏, 선교장이 어쩌고저쩌고.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 속에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첨엔 쭈뼛쭈볏 무리 뒤를 따라가며 설명을 들었는데. 얘길 듣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것들을 하나, 하나 다시 보고. 안채 대청에 서서 경포들을 멀리 내다보기도 하고. 행랑채 툇마루에 앉아 열화당 채양시설도 보고. 그러다 몽양 여운형 얘기가 나올 때쯤엔. 어느새 바로 코앞에서 고개를 끄덕끄덕. 눈 깜짝할 새에 다 둘러본다.
 
하지만 율곡과 신사임당이 어제의 사람이라면 허균과 허난설헌은 오늘의 사람이라는 말은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할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 오르막길이며, 지나는 이와 동물마저 배려해 만든 문지방. 줄행랑의 행랑채, 안주인들의 애환이 담긴 숨구멍과 내외벽엔 자꾸만 눈길이 간다. 무엇보다 여운형이 영어 선생을 했다던 동진학교 터에선 오랫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니. 생각지도 못한 호사스런 집 구경이다.
 
반대로 선교장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김시습 기념관은 호젓하게 둘러보고 쉬어가기 좋다. 애니메이션으로 들려주는 김시습 일대기와 금오신화도 보고 있노라면. 먼 길을 걸어오면서 뻣뻣해진 다리를 풀기 좋기 때문. 또 경포대를 찾아가는 산길을 걷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들러야 할 듯. 다행히 따갑던 해도 많이 수그러진 데다. 때마침 구경 온 사람도 없어 퍼질러 앉아 둘러보고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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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선교장, 김시습 기념관을 차례로 들렀다면 이번엔 산길이다. 하지만 해는 산을 넘어 보이질 않고 바람만 살랑살랑. 경포들 너머 아파트 숲과 높다란 시청 건물을 보며 산길을 걷는데. 이렇게 시내 가까운 곳에 솔향 숲길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시루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엔. 멀리 동해바다와 경포호까지 보이니. 산길이 아니라 보물이다.

 
해가 진 경포 호숫길을 길게 돌아 허균과 허난설헌이 태어났다고 하는 초당동에 이르니 어둑어둑하다. 생가(生家)야 전에도 한 번 둘러본 적이 있고. 버스 한 번이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 밥 먹을 곳을 찾아야겠는데. 다행히 그 유명하다던 초당 순두부 집들이 많아 허기를 달래기엔 안성맞춤. 다만 호숫길을 길게 돌아야 겨우 버스 종점에 이르니. 발길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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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세 번 째 여행에서 걸은 길
신사임당길은 오죽헌, 선교장, 김시습문학관을 거쳐 허균.허난설헌 생가를 이어준다. 이번 걷기에선 이곳 모두를 다 천천히 둘러봤으니 걸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시간은 많이 걸렸다. 오죽헌에서 허균․허난설헌 생가까지 대충 6.6km 정도.
 
* 가고, 오고
이번에도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을 참조.
 
* 잠잘 곳
경포호 주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관광지라 값이 비쌀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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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17:36 2014/03/24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