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강릉 단오축제날, 굴산사 가는 길을 걷다(2013년 6월 7일)
 
강릉항은 안목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항이나 해변보단 거피 거리로 통한다. 그게 다 모 방송사 프로그램 덕에 유명세를 탔기 때문인데. 가만 들여다본다면, 여기라고 예외가 있을 리가 있나. 사람 많은 곳이라면 어김없이 들어서 있는 대형 체인 커피전문점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어 사뭇 눈에 거슬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래서 그런지 어디서 이만큼이나 바다를 가까이 마주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 싶은 것만 빼면. 홍대 앞이나 여느 대도시 커피 거리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바글바글한 차들로 걷기조차 힘든 해변길만큼이나 브랜드 커피 집만 바글바글하니.

 
하지만 어느 때고 대관령에서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솔바람 다리를 건너서 만나게 되는 남항진은, 가까운 곳에서 시도 때도 없이 전투기가 떠다녀서 그렇지. 요란한 대신 호젓함이 있어 머물고 쉴만하다. 떠들썩한 노랫소리가 나오는 횟집도 없고, 길을 다 차지하고 서있는 차들도 보이질 않으니.
 
7번 국도를 따라 걷자면, 바닷길을 가로막고 있는 비행장 때문에라도 여기서 돌아가야 하는데. 마침 바우길이 굴산사지 가는 길로 이어주고 있다. 조금은 요란한 강릉항과 호젓한 남항진이 다리 하나를 두고 시작해, 강릉 시내를 거쳐 꽤 먼 거리를 가야 길이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은 좋다. 게다가.
 
중앙시장은 출출할 때쯤 딱 맞춰 지나게 되니 다양한 음식 맛을 볼 수 있고. 임영관과 객사문, 칠사당은 한 낮 더위를 피하며 쉬어가기 좋다. 또 단옷날쯤 맞춰 걷는다면 단오관 근처와 둔치 벌어지는 강릉 단오 축제 구경에 하루 쯤 더 시간을 내야하고. 길 끝에서 만나는 굴산사지를 둘러싼 이야기까지. 강릉이 가진 또 다른 맛과 문화를 느낄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길 왼쪽으론 솔숲이, 오른쪽으로는 아파트가 맞대어 있는 숲길은,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때맞춰 열린 환경영화제를 함께 즐길 수 있었다면, 이거야 말로 금상첨화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오늘은 성미산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춤추는 숲>을 볼 수 있으니, 걷는 길과 영화가 꼭 맞춘 듯하다.
 
하지만 굴산사지 길은 시내로 향하는 도중, 왼쪽으론 하천을 경계로 군부대에서 나는 총소리가 요란스럽고. 오른쪽으론 논, 밭, 과수원을 경계로 개 짖는 소리가 또 요란스러워 정신이 없는데다. 잘 못 날을 택한다면 뜨고 내리는 전투기까지 덧 들린다면. 이건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라 처음 시작할 때 호젓함이 다 날아가니. 그럴 땐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래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커피 향과 아파트 숲에서 불어오는 솔향을 맡으며, 시장 통에서 어깨를 부대끼며 느끼는 맛과 사람들. 천년을 이어온 축제와 오늘은 지켜낸 싸움까지 보고 나면. 강릉이 가진 진면목을 다 보고 간다, 말하려면. 분명 빼놓지 말아야한다.
 
둘째 날, 두 번씩이나 길을 잃고서도 끝내 만나지 못한 굴산사지( 2013년 9월 3일)
 
고성에서부터 바닷길을 따라 내려온 지도 그새 2년이다. 그동안 틈나는 대로 걸었는데, 아직도 강릉 언저리니. 울진 앞바다와 감포, 해운대는 언제 볼 수 있을까 싶다. 머, 저 땅끝에서 7년 넘게 걸어 여기까지 왔으니 부산이 대수일까. 거제, 남해를 돌아 여수, 목포, 태안을 거쳐 도라산도 금방이겠지.
 
그리고 어쩌다 태백을 거쳐 강릉에 와 사니 딱 맞춘 듯. 모두를 다 잇지는 못해도 향호에서부터 묵호까지 바우길을 걸을 수 있고. 딱딱한 아스팔트 7번 국도 대신 해파랑길과 저 아래 영덕 블루로드도 걸을 수 있으니. 생각했던 것 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려도 상관없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굴산사 가는 길은 시내 한복판을 지난다. 덕분에 오늘은 집에서부터 걷는데, 실은 지난 번 걸을 때 때맞춰 열린 단오 축제를 구경하느라 단오문학관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해서 중앙시장이나 임영관지는 몇 번씩 둘러봤고. 잠수교도 지난 번 단옷날 축제 때 건너봤으니 건너뛰고. 쭉 남대천 둔치를 따라 걷다 단오관에서부터 7코스로 들어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교육청을 지나고 노암초 담장을 따라 걸으니 곧 다른 풍경이다. 좀 전까지만 해도 여느 도시나 다름없었는데.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가 심어져 있는 밭은 물론이고 벼이삭이 팬 논이 펼쳐지고 있으니. 간간이 솔 숲 사이로 난 길을 걷기도 하고, 꽤 가파른 산을 10분이나 오르기도 한다. 그러다 저수지를 따라 논두렁길에 이를 때쯤엔, 대체 여기가 어딘가도 싶다.
 
그래서일까. 지도도 챙겼고, GPS도 가져왔는데 길을 두 번이나 잃었다. 한 번은 정신없이 개 피해 어디로 갈까 허둥대다가 또 한 번은 심하게 좌, 우로 뒤로 가야 하는 곳에서. 나중에 해가 지고 버스를 기다리며 든 생각인데. 여기서 헤매지만 않았다면 굴산사까진 갔겠지 싶다.
 
그러나 저러나 동네 길이라고 생각하고 준비 없이 나선 것도 아니고. 딴 데 걸을 때처럼 똑같이 준비했는데도 길을 잃었으니. 어디 가서 강릉 산다고 말하긴 이른가 싶다. 하긴 아직 가본 곳보단 안 가본 데가 더 많다. 구정이나 강동 같은 데엔 근처에도 안 가봤고. 가을이면 그렇게 단풍이 좋다는 소금강도 못 갔으니.
 
그래도 그렇지, 웬만한 곳은 처음 가도 길을 헤매진 않은데. 지도니 GPS를 가지고 다닌 게 되레 방향 감각이나 주변 지형을 보는 눈을 잃게 만든 건 아닐까도 싶다. 전에는 길을 걸으면서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고 기웃기웃 했는데. 요즘은 조금 걷다 갈림길이 나오면 지도 펴고 GPS 보는 게 습관처럼 됐으니 말이다.
 
점심 먹고 출발해 담 넘어 ‘정의윤가옥’ 구경하고 학마을에 도착하니 부쩍 짧아진 해가 지기 시작한다. 집에서 나올 땐 굴산사지에 당간지주까지 구경하고 차 탈 생각으로 버스 시간을 알아왔는데. 다행히 맛난 감자전에 동동주 한 사발 마시고 나니 바로 앞이 정류장. 시간도 딱 마지막 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열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강릉항에서 시작되는 바우길 6구간 굴산사 가는 길은 중앙시장, 임영관, 객사문 등이 있는 시내를 지나 굴산사지로 이어진다. 전체 길이는 18.5km로 두 번에 나눠 걸었다.
 
* 가고, 오고
강릉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 참고.
 
* 먹을 곳
중앙시장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4/09/24 11:29 2014/09/24 11:29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nongbu/trackback/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