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곳곳에 현수막이 요란합니다. 이제 곧 지방선거니까요. 시장이든 도지사든, 지방의회든 교육감이든 꽤 짭짤한 보수와 각종 이권에 개입할 여지가 많아서인지(선거 뒤 뇌물 수수로 처벌 받거나 직을 잃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선거가 거듭될수록 나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동네에서도 각 당(黨)마다 나오는 후보들이 여러 명입니다. 현수막 가게가 때 아닌 호황인 이유지요.
 
2.
선거라는 것을 하고 나서부터 말입니다. 지금까지 표를 던진 사람이 당선이 된 경우가 있었나, 되돌아보면요. 6번의 대통령선거와 또 6번의 지방선거까지. 두 번의 교육감 선거만은 분명한데요. 나머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손에 무슨 신기라도 있는 건가요. 어쩌다 산 복권도 5등 한 번 안 되는 것처럼. 아니, 꼴등이나 안 하면 다행입니다. 개표방송 본지도 오래됐으니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3.
선거를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합니다. 선거라도 제대로 하자며 피 흘리며 싸운 분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래야 하겠는데. 지난 경험으로는 선뜻 동의가 되질 않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승자독식 문제까지 생각했어야 했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땐 체육관 대통령 말고 우리 손으로 뽑아보자, 시장도 군수도 민의를 거스르지 말라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으니까요.
 
4.
국회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선출합니다. 경상도에는 이당, 전라도에는 저당, 충청은 이저당, 지역주의가 여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이나 두 명을 뽑습니다. 뭐 세 명, 많게는 네 명까지 의원이 되는 선거구도 있지만요. 그러니 늘 빨간 색 아니면 파란 무늬, 거대 양당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1번과 2번. 기껏해야 3번 또는 4번. 그 이후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납니다.
 
5.
민주노동당이 처음 무상급식을 얘기했을 때 다른 정당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기초연금도 그렇고 무상의료 역시 그랬습니다. 녹색당과 노동당이 내걸었던 기본소득은 또 어떻습니까. 지금은 그 누구도 허황되고 무책임한 공약이라며 대놓고 무시하진 못합니다. 선거연령을 낮추자는 것도 그렇고 핵발전소를 멈추자는 목소리도 헌법 개정안에 반영되고 고리 1호기는 아예 영구정지 되지 않았습니까.
 
6.
가만 생각해보니 찍은 사람이 당선되지 않아 기억이 없는 게 아닙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아니 보수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처음 집권을 했던 10년 전쯤부터였을 겁니다. 더 이상 이대로 둬선 큰 일이 나도 여러 번 나겠다 싶은 겁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어차피 안 되는 사람보다는 저 사람은 꼭 떨어뜨려야 하니요. 늘 최선이 아닌 차악을 택하게 됐습니다.   
 
7.
그렇다고 민주정부라고 했던 때라고 뭐 크게 달랐겠습니까. 파병이다, FTA다, 비정규직법이다 해서 보수정권과는 얼마나 달랐나요. 하는 수 없어 다시 거리에 나서보았지만 달라지기는커녕. 이제 민주주의 사회가 됐으니 그런 ‘과격한 방법’은 버리고 선거로 의견을 표출하라는 점잖은 경고. 맞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선거라는 제도에 가두는 순간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릅니다.
 
8.
정당등록취소 요건을 완화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2번 국회의원 선거, 득표율이 1% 미만일 경우로 제한한답니다. 선심이라도 쓰듯 여야 합의로 ‘국회 헌법 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개혁소위원회’를 통과했다는데요. 4년 전, ‘득표율 2% 미만’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아낸 소수정당들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벌써부터 다음 이름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9.
선거구 분할은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한 선거구에서 4인까지 뽑을 수 있는 곳을 반으로 쪼개 2명씩 뽑는다는 겁니다. 이럴 땐 어찌나 짝짜꿍이 잘 맞는지요. 물론 대구와 같이 한 당이 영구 집권하는 곳 얘기가 아닙니다. 서울과 같은 곳마저 4인 선거구가 모두 2인 선거구로 나눠졌으니 하는 말입니다. 이럴 거면 헌법 개정안에 ‘비례성’원칙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0.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가 아닙니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한 번씩 투표소로 사람들을 불러내는 대의민주주의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1번이나 2번만을 강요하는 대의민주주의라면요. 다른 견해를 가졌다고 배제해버리거나 머릿수로 결정해버리겠다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맞습니다. 민주주의를 제도 안에 가두는 것도 모자라 차악을 강요하는 사표민주주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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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22:41 2018/04/03 22:41

지방선거가 두 달 남짓 않았습니다. 손바닥 뒤집듯 공약을 폐기하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판가름할 수 있겠고. 여론조작에 증거조작까지, 연이어 터져 나온 국가기관들의 국헌문란도 있고. 대선 후 첫 선거니 중간평가는 아니라도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있겠으니 다들 사력을 다하겠지요.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이건 뭐, 아직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된 건 아니라 해도. 지금으로선 재미없게 될 공산이 커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약이야 좀 전에도 말했듯, 어차피 맨 위 대통령부터 손바닥 뒤집듯 하니 애초 별 관심들은 없는 것 같고. 선거 때만 나타나 90도 허리 굽혀 인사하는 토호세력들 사이에서 그래도 참신한 사람이 나올까 아무리 둘러봐도, 온통 번지르르한 이들만 득실득실하니 말입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정당이라곤 달랑 두 개만 남았더니만. 정작 대놓고 싸울 일이 터질 때는 슬금슬금 눈치들만 보더니.
 
적과 싸우다 빨갛게 돼버린 새누리당은 그렇다 쳐도. 애초 뚜렷한 청사진이나 내용도 없는 뜬구름 ‘개혁’을 외치다. 꼴랑 보수 양당의 품안에 들어간 ‘새정치’ 세력들이 한다는 일이 고작. 표를 의식해 써 넣었던 ‘공천’이니 ‘무공천’이니 하는 것을 가지고 이제 와 무슨 대단한 것 인양. ‘약속’을 지키겠다느니, 당이 망하니 번복해야 된다느니 갈팡질팡하다. 마치 국민들이 원해서 공약했던 것처럼 되묻는 꼴만 보이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결국 방구 뀐 놈이 성내는 꼴이라고. 처음부터 그 놈의 ‘약속’이란 걸 안 지킨 쪽으로부터 호되게 공격만 당할 게 뻔하고. 모르긴 몰라도 선거 끝날 때까지 ‘너네가 먼저 약속을 안 지켰다’니, ‘새정치한다더니 약속이나 깨느냐’니로 서로 헐뜯기만 할 겁니다. ‘종북’이라는 프레임에 ‘약속’만이 더해졌으니. 잇따른 대선 공약 파기도, 국가기관의 국기문란도, ‘통일 대박’도 다 무슨 소용이냐 이겁니다.         
 
한때 국회의원을 10명씩이나 당선시키기도 했던 이들이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흩어진 건. 그동안 한 지붕 아래 두 집이 용케도 잘 어울려 살았었다 생각하는 게 속편합니다. 물론 그들이 좀 더 동거하면서 판을 더 크게 짰으면 좋았을 겁니다. 요 몇 번의 선거동안 ‘복지’ 논쟁이 붙었던 것도, 속내는 다르지만 어쨌든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 유행된 것만 봐도 그러니까요. 그러니 그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지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후세대에 돌이킬 수 없는 폐기물만 남기는 핵발전 정책을, 온 산하를 파내고 뚫고 닦아내는 일을 그만두자는 녹색당은 ‘정당해산’이라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힘을 내고 있습니다. 주민투표와 주민소환 등 주민참정제도 전면 개선, 주민참여예산과 주민자치위원회 개선과 같은 공약을 내놓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간 겁니다. 비록 많은 곳에서 이런 얘기를 들을 수는 없겠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약속’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저녁으로 교차로마다 자기 몸만큼이나 큰 푯말을 목에 걸고 환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틀이나 선거일이 늘었다고 요란한 현수막도 곳곳에 내걸리고, 가증스런 웃음과 몸짓이 담긴 명함도 길거리에 너저분합니다. 하지만 보이는 건 온통 빨간색과 파란색 일색입니다. 언제는 ‘약속’을 지키기는 했나 싶은, 그들뿐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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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9 11:37 2014/04/09 11:37
사용자 삽입 이미지예전엔 ‘선거투쟁’이란 말도 있었더랬습니다. 듣기엔 거창할지도 모르겠지만. 솔까, 당선되긴 어려우니 하고 싶은 말이라도 실컷 해보자던 건데. 지금 봐도 참 그럴듯한 말을 갖다 붙였지요. 아무튼 그땐 소로우가 누군지 몰랐었음이 틀림없었을 터인데.   
 
투표란 장기나 주사위 놀음과 같은 일정의 놀음이다. 다만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노는 약간 도덕적 냄새가 풍기는 놀음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기에 자연스럽게 따른다. 투표하는 사람의 인격은 내기가 상관없다. 나는 어쩌다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표를 던진다. 그러나 그 옳은 것이 승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생명을 건 관심사는 아닌 것이다. 나는 기꺼이 그 결과를 다수자들에게 맡긴다. 그러므로 투표의 의무는 결코 편의(便宜)의 의무를 넘지 못한다. 옳은 것을 위해 던진 표도 진작 그 옳은 것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것은 다만 사람들에게 정의가 이기기를 바라는 당신의 소원을 미약하게 나타낼 뿐인 것이다. 현명한 사람은 정의를 다수자의 손에 맡기거나 아니면 그 다수자들의 힘을 통해 승리에 이르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수자들이 결국에 가서 노예 폐지를 위해 투표를 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이 노예에 대하여 흥미를 잃었거나 아니면 그들의 투표로 해방될 노예들이 거의 없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때에 그들은 남아있는 유일한 노예가 될 것이다. 다만 자신의 투표로 자신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는 노예들의 투표만이 이 노예제도의 폐지를 빠르게 할 것이다. pp.193-194
 
라는 말을 들었더라면. ‘선거투쟁’보다는 좀 세련된 말을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듭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당시엔 선거에 통 관심이 없었었지요. 누가 되도 상관없단 식은 아니었지만. ‘부르주아 선거’에서 얻을 거라곤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이 잇따라 대통령이 되고. 진보정당들도 의회에 들어가는 호시절을 지났어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을 보면. 영 틀린 말도 아니다,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투표를 하되 옹근 표를 던지라. 그저 한 장의 종이쪽만 던질 것이 아니라 당신의 전 영향력을 던지라. 소수자는 다수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한 무력하다. 그렇게 되면 소수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소수자가 그 온 힘을 다하여 버티면 그것을 당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p.203
 
라는 소로우의 말도 또한 여전히 유효하단 생각도 듭니다. 금배지 달아보겠다고 과거에 잘못한 일들을 반성조차 하지 않는 이들과 손잡는 일도 벌어지고. 대중의 마음을 얻어 보겠다며, 고매한 ‘도덕’을 강요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생기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종이쪽만 던지는 게 아니라 내 온 영향력을 던진다면.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며 다시 싸움을 시작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평화로운 제주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는 강정마을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어깨를 건 이들에게 표를 던진다면. 맞습니다. 한 발은 더 내딛는 거란 얘깁니다. 물론 지금도 정부는 최소한도여야 한다는 소로우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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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6 13:37 2012/08/06 13:37
선거가 시작됐나, 싶었는데 그새 내일이 투표일입니다. 워낙에 선거운동 기간이 짧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대선을 앞둬서인가요. 각 정당들이 이전 선거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선거를 치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선 정당들이 인기를 잃으면 당 이름을 바꾼다”는 해외기사까지 나게 하는 두 거대 양당, 새누리당은 박근혜가 전면에 나서 총력전을 펼쳤고, 민주통합당 역시 MB정권 심판을 내걸고 ‘야권연대’까지 이뤘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직접 선거에 나오지도 않았는데도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안철수까지, 아무래도 다들 이번 선거를 통해 다음 대선까지 어찌어찌해볼 생각들을 갖고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 아니 다 끝나가는 마당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50년, 100년을 두고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싸우기는커녕 진흙탕 싸움만 하다 볼일 다 봤으니. 뭐, 새누리당이야 어차피 정책이라고 해봐야 공약(空約)에 불과한 말잔치에 불과하니 볼 것도 없었지만.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뭉친 반MB 진영 역시 솔직하고 뼈저린 반성 없이 내건 ‘한미FTA폐기’ 주장에서 보듯 일단 표부터 얻고 보자는 속셈이 뻔히 보였고.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봐도 정당이나 정책보단 인물을 보고 뽑겠다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 좋아 인물이지, 또 ‘그 밥에 그 나물’들이 잔칫상에 올라올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요란스레 떠들어대는 선거 관련 뉴스에도 그닥 관심이 가질 않았고. 집으로 배달 온 공보물도 봉투만 겨우 뜯어내고 투표소 위치만 확인했다 뿐이지 거들떠도 안 봤는데요. 그나마 진보신당에서 낸 한 장짜리 공보물 “세상을 바꾸는 동행/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정당투표”가 없었다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을 겁니다. 지역구 후보자들이라고 해봐야 달랑 세 명, 그것도 꼴도 보기 싫은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 이렇게 셋인데다, 그나마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던 녹색당은, 혹시 빠진 거 아닌가 싶어 몇 번이나 뒤적거렸는데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입니다.
 
해서 내일이 투표긴 하지만 녹색당 홈페이지도 가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당.정책정보시스템에서 비례대표 선거공보 e-book도 다운받아 보고. 정당별 10대 공약이며 지역구 후보들 공약까지 쭉 훑어봤는데요. 느닷없이 이번 선거에서 정당투표는 통합진보당을 집중투표하기로 결정한 민주노총이 떠오르더군요. 국회의원 뺏지에 목매달아 신자유주의 세력과 손을 잡은 것도 눈꼴사나워 죽겠는데, 성폭력 사건 당사자를 비례후보로 내세운 것도 모자라, 남근 중심 성적 조롱에 환호하는 이들을 보며 우쭐대는 김용민까지 감싸고도는 통진당을 팍팍 밀어 주기로 한 민주노총이 말입니다.
 
내심 진보신당은 지지한다고 선언하진 않더라도 통진당을 꼭 짚어 투표하라고 하진 않겠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그래도 5년 넘게 한솥밥을 먹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가진 짝사랑이었나 봅니다. 물론 5년 전에도 설마 그러겠어, 하며 뒤통수를 맞았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어서 충격은 좀 덜하지만, 그래도 씁쓸함은 쉽게 지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새로운 시작은 늘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우직하게 제 길을 가는 것도 만만치 않은 걸 알면서도 그걸 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살만한 것인 걸요. 그러니 아무래도 내일 투표소에선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습니다. 지역후보야 대충 1번과 3번을 빼고 찍으면 되겠지만. 정당투표, 11번과 16번 사이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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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3:26 2012/04/10 13:26

 

1.
자식이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또 당(黨) 하고도 같이 이런저런 사업을 한다는 얘길 들어서일까요. 아님 때맞춰 국회에 입성한 의원이 10명이나 생겨서였을까요. 지금은 “MBC뉴스도 KBS와 똑같아. 차별이 없어”라고 말씀하실 만큼 정치를 꿰뚫어 보시긴 하지만. 그땐 “이번엔 누구 찍어야 하냐?”라 물으시던 게. 정말 꿈만 같았지요. 그때까지 적어도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 모습은. 지게에 솥단지 하나 짊어지고 올라온 전라도 ‘깽깽이’가 출신성분을 감추려 민주정의당 당원으로 가입도 하고. 가겟집 간판도 ‘충남상회’로 달고. 반장을 거쳐 통장까지 도맡아 했었던. 그래요. 그런 아버지께서 선거 때만 되면 몇 번 찍어야 하느냐고 전화를 하셨던 겁니다.
 
2.
지금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국민승리 21>시절 가입했던 민주노동당 당원번호. 그땐 버는 돈도 없었던 백수시절이었는데도. 꼬박꼬박 당비 내는 당원으로 가입을 했지요. 물론 그 후 대학원을 거쳐 연맹에서 일을 할 때까지도. 아니 그보다 더 후에도. 당 활동이라고는 지구당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도 않을 만큼 전무했지만. 그래도 선거 때가 되면 컬러링도 바꾸고. 경기도 모 지역에 파견을 자처, 보름 넘게 국회의원 선거 지원활동도 하고. 일이 일인지라 가끔은 당과 함께 이런저런 정책도 만들기도 했지요. 생각해보면 “부자에겐 세금을 민주노동당, 서민에겐 복지를 민주노동당”이란 노랠 많이 조금이라도 더 듣게 하려고 부러 신호가 한 참 간 후에 받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3.
당이 쪼개지고 난 후. 민주노동당에 남긴 죽어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진보신당에 들어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뭐, ‘농사짓는 사람이 돈이 어디 있어.....’라는 핑계거리를 둘러 대긴 했지만 솔직한 속마음은. 북쪽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나 비판하는 사람들이나. 당비대납에 대리투표, 위장전입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나 이를 패권주의니 다수파니하며 몰아가며 탈당 명분으로 삼은 이들이나. ‘민주정부’ 수립 이외엔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그건 또 죽어도 못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이나. 모두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차피 합법 정당을 만들었을 땐. 그리고 그 정당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후보를 냈을 땐. 권력을 잡는 게 당연한 목표고 또 그럴 때야만 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또 그 과정에서 1명, 10명 의원이 늘어나면 날수록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서 빠질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둘 다 옹고집, 아니 똥고집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4. 
먼저 진보신당이 부결시켰더군요. 내심 부결되길 바라기도 했지만 속은 편치 않았습니다. 뒤이어 민주노동당도 부결됐습니다. 이 역시 내심 부결 돼야지, 부결 될 거야, 했지만. 똑같이 속은 쓰렸습니다. 하지만 심상정, 노회찬 전 대표가 당을 뛰쳐나가고. 유시민과 책까지 냈던 이정희 대표가 찬성표를 던지는 모습을 보니. 편치 않고 쓰렸던 속이 언제 그랬냐는 듯, 연신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남들이야 급격한 우경화니, 금뺏지에 넘어갔다느니 하지만. 역시나. 짝사랑, 외사랑이었던 겁니다.
 
5.
작년 지방선거 하루 전날에도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었습니다. 안 그래도 투표를 앞두고 전화가 올 거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심상정이 막 사퇴를 하고난 터라 마땅히 드릴 말씀이 없어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하다. 결국 받았습니다. “이번에 심상정 나왔던데. 심상정 찍으면 되냐?”는 어머님 물음. 잠깐사이 ‘아니요. 심상정은 사퇴했으니까 김문수 빼고 아무나 맘에 드는 사람 찍으세요.’라는 하나마나한 얘길 할까. ‘어머니 심상정은 사퇴했으니까요. 유시민 찍으세요. 김문수가 되면 안 되니까 유시민 찍으세요.’라는 맘에도 없는 말을 할까. 정말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더군요.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던 거고. 그걸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는. 어머님 몫이 아니었던 겁니다. 
 
6.
민주노동당은 물론이고 진보신당 홈페이지엔 기웃거리기조차 하질 않은 지 꽤 오래됐습니다. 간간이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들려오는 소식만 듣는 셈이지요. 당을 나올 때도 그랬지만 당체 들어가 보고 싶질 않더라구요. 인신공격이야 안 보면 그만이지만. 넘쳐나는,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 말깨나 한다는 사람들 얘기가 더 보고 싶지도, 더 듣고 싶지도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돌아가는 꼴을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뭐하고. 또 아직까지 당을 떠난 줄 모르고 있는 아버지, 어머님이 이것저것 물어 오실 때 딱히 드릴 말씀도 없는 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20년 전만도 못한 것 같으니.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7.
5세훈이 몽니부리다 쫓기듯 내놓은 시장 자리를 누가 차지할 건가를 놓고 연일 요란합니다. 헌데, 한나라당이야 말할 것도 없으니 그렇다 쳐도. 또 안철수와 박원순 열풍에서마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민주당까지 그렇다 쳐도. 대체 ‘진보’를 내거는 두 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요. 뭐, 당이 또 쪼개질 판이니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핑계를 대려나요. 아님 그래도 우린 후보라도 내서 경선에 참여했으니 면피했다고 하려나요. 서울시장 선거니 아버지가 전화를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야당 쪽에서 박원순으로 됐던데 어떠냐? 박원순 찍어야겠지.”라는 뻔한 물음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올 겁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고민입니다. 대체 이번엔 뭐라 답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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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4 17:36 2011/10/04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