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곳곳에 현수막이 요란합니다. 이제 곧 지방선거니까요. 시장이든 도지사든, 지방의회든 교육감이든 꽤 짭짤한 보수와 각종 이권에 개입할 여지가 많아서인지(선거 뒤 뇌물 수수로 처벌 받거나 직을 잃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선거가 거듭될수록 나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동네에서도 각 당(黨)마다 나오는 후보들이 여러 명입니다. 현수막 가게가 때 아닌 호황인 이유지요.
 
2.
선거라는 것을 하고 나서부터 말입니다. 지금까지 표를 던진 사람이 당선이 된 경우가 있었나, 되돌아보면요. 6번의 대통령선거와 또 6번의 지방선거까지. 두 번의 교육감 선거만은 분명한데요. 나머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손에 무슨 신기라도 있는 건가요. 어쩌다 산 복권도 5등 한 번 안 되는 것처럼. 아니, 꼴등이나 안 하면 다행입니다. 개표방송 본지도 오래됐으니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3.
선거를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합니다. 선거라도 제대로 하자며 피 흘리며 싸운 분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래야 하겠는데. 지난 경험으로는 선뜻 동의가 되질 않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승자독식 문제까지 생각했어야 했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땐 체육관 대통령 말고 우리 손으로 뽑아보자, 시장도 군수도 민의를 거스르지 말라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으니까요.
 
4.
국회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선출합니다. 경상도에는 이당, 전라도에는 저당, 충청은 이저당, 지역주의가 여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이나 두 명을 뽑습니다. 뭐 세 명, 많게는 네 명까지 의원이 되는 선거구도 있지만요. 그러니 늘 빨간 색 아니면 파란 무늬, 거대 양당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1번과 2번. 기껏해야 3번 또는 4번. 그 이후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납니다.
 
5.
민주노동당이 처음 무상급식을 얘기했을 때 다른 정당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기초연금도 그렇고 무상의료 역시 그랬습니다. 녹색당과 노동당이 내걸었던 기본소득은 또 어떻습니까. 지금은 그 누구도 허황되고 무책임한 공약이라며 대놓고 무시하진 못합니다. 선거연령을 낮추자는 것도 그렇고 핵발전소를 멈추자는 목소리도 헌법 개정안에 반영되고 고리 1호기는 아예 영구정지 되지 않았습니까.
 
6.
가만 생각해보니 찍은 사람이 당선되지 않아 기억이 없는 게 아닙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아니 보수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처음 집권을 했던 10년 전쯤부터였을 겁니다. 더 이상 이대로 둬선 큰 일이 나도 여러 번 나겠다 싶은 겁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어차피 안 되는 사람보다는 저 사람은 꼭 떨어뜨려야 하니요. 늘 최선이 아닌 차악을 택하게 됐습니다.   
 
7.
그렇다고 민주정부라고 했던 때라고 뭐 크게 달랐겠습니까. 파병이다, FTA다, 비정규직법이다 해서 보수정권과는 얼마나 달랐나요. 하는 수 없어 다시 거리에 나서보았지만 달라지기는커녕. 이제 민주주의 사회가 됐으니 그런 ‘과격한 방법’은 버리고 선거로 의견을 표출하라는 점잖은 경고. 맞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선거라는 제도에 가두는 순간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릅니다.
 
8.
정당등록취소 요건을 완화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2번 국회의원 선거, 득표율이 1% 미만일 경우로 제한한답니다. 선심이라도 쓰듯 여야 합의로 ‘국회 헌법 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개혁소위원회’를 통과했다는데요. 4년 전, ‘득표율 2% 미만’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아낸 소수정당들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벌써부터 다음 이름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9.
선거구 분할은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한 선거구에서 4인까지 뽑을 수 있는 곳을 반으로 쪼개 2명씩 뽑는다는 겁니다. 이럴 땐 어찌나 짝짜꿍이 잘 맞는지요. 물론 대구와 같이 한 당이 영구 집권하는 곳 얘기가 아닙니다. 서울과 같은 곳마저 4인 선거구가 모두 2인 선거구로 나눠졌으니 하는 말입니다. 이럴 거면 헌법 개정안에 ‘비례성’원칙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0.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가 아닙니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한 번씩 투표소로 사람들을 불러내는 대의민주주의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1번이나 2번만을 강요하는 대의민주주의라면요. 다른 견해를 가졌다고 배제해버리거나 머릿수로 결정해버리겠다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맞습니다. 민주주의를 제도 안에 가두는 것도 모자라 차악을 강요하는 사표민주주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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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22:41 2018/04/03 22:41
연일 때리기입니다. 보고 있자니 쥐 잡는 고양이도 그리 안할 터인데. 궁지로, 궁지로만 몰고 가는 격입니다. 마치 진실이란 애당초 없는 거며,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냐는 듯 말이지요. 하지만 뭣에 홀린 걸까요. 아님 이런 걸 데쟈뷰라고 하는 건가요. 누군 ‘받았다’고 했고, 누군 ‘줬다’는 차이뿐, 노통 때와 어쩜 이리도 같을 수 있는지.
 
‘검찰에 따르면.....’, ‘측근에 따르면.....’으로 시작되는 검찰 발(發) ‘카더라’ 통신에서부터. 이번 참에 ‘진보진영’을 작살내겠다,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보수우익까지. 피의사실 공표야 정치인뿐만 아니라 ‘잡범’에게도 비일비재한 일이었고. 일단 혐의만 있으면 친.인척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죄다 소환하는 건 기본. 계좌추적에, 압수수색. ‘대가성’에서 시작해 자금출처 조사까지. 여차하면 딴 걸로라도 엮어 넣으려는 데. 웬만한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살려 달라 했을 터입니다.
 
그리고 또, 적이 강요하는 ‘항복’문서에 빨리 사인하라 등 떠미는 이들도 또 나타났으니. ‘구정물’에 담근 발 빼듯 재빨리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것도 모자라. 자기는 무슨 고매한 ‘도덕성’이라고 갖고 있는 양 손가락질하기 바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여기에 ‘진보’쪽엔 겨우 체면치레나 하는 정도로 전락한 신문들까지 앞장서서. 35억을 토해내야 할 수도 있다며 사퇴를 종용하질 않나. 유죄땐 받은 사람보다 더 처벌이 크다며 경고하질 않나. 아니 그저 ‘2억’이라는 숫자에 사로잡혀 경마 중계하듯 주변 얘기만 열심히 받아쓰고 있으니. 이런 젠장. 차라리 잠자코 지켜보기나 하던지. 아님 슬슬 돌아가는 눈치나 보고 있던지. 이젠 너도 나도 앞장서서 돌 던지는 데. 참, ‘비겁’하기 짝이 없습니다.
 
물론 거금을 건네줬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도 못할 돈이 오갔으니 무슨 ‘대가’가 있는 건 아닌가하는 ‘혐의’도 짙겠지만. 게다가 ‘법학자’이자 ‘교육자’인 ‘공직자’가 돈을 줬으니 ‘의혹’이 생기는 건 당연하고. 또 그것이 선거가 맞물려 있으니 아무리 ‘선의’라고 해도 문제가 되는 건 마땅할 터입니다. 그리고 법리적인 문제를 떠나 그들 말마따나 이미 ‘도덕성’에 치명적인 흠집을 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당사자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아니 ‘줬다’는 사실에는 집착하면서도 ‘선의’라는 ‘진심’엔 색안경을 쓰면서. 덮어놓고 돌 던지고, 매 맞으라니요. 하다못해 우익들은 대놓고 제 식구 감싸기를 밥 먹듯 하는 몰염치를 보이는데.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과 ‘권력’과 ‘우익’들에 맞서 싸우겠다는 사람들이. 무에, ‘적하고 싸우다가 적을 닮아간다면, 굳이 싸울 필요가 없지요. 그때는 이미 자기가 적이 되어 있을 테니...’라고 훈계까지 하고. 아무리 서울시장 선거가 코앞이고. 내년 총선에, 대선까지 있다지만. 설마 벌써 ‘적’으로 삼고 내치려는 겁니까?
 
옛말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로 다른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았을 때나 생각과 다른 행동을 목격했을 때 황당함을 담아 잘 내뱉는 말이지요. 하지만 자기 머리론 이해가 안 된다고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자기 잣대로 재버리는 일에도 빗댈 수 있다면. 지금 비겁한 ‘진보’가 되새겨볼 만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교육감 말만 믿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에겐, 본 말이 가진 뜻을 잘 알고 쓰라며 충고할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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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2 08:47 2011/09/02 0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