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완서의 유년기는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 이야기는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온전히 다 그려져있구요. 후편 격이라 할 수 있는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와 함께 읽으면 작가의 말처럼 "자료로서 정형화된 것보다 자상하고 진실 된 인간적인 증언"을 올곧게 마주할 수 있으니 꼭 소설이라고만 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화상'과 같은 글이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어린 박완서가 겪은 혼란과 파탄은 동 시대를 살아왔던 모든 이들의 아픔입니다. 물론 좌익에 몸담기도 했던 오빠가 마주해야 했던 참혹함 역시 그렇습니다.
 
오빠는 거의 한 트럭분은 됨직한 죄수들을 거느리고 돌아왔다. 죄수라고 했지만 머리를 빡빡 깎고 죄수복을 입고 있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지, 그들의 표정은 훈장을 주렁주렁 단 개선장군보다 더 당당하고 위엄과 영광에 넘치고 있었다. 그들에 비해 평상복을 입은 오빠가 되레 자기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이해 못하는 사람처럼 맹하니 무표정했다. 그들 중 하나가 댓돌 아래서 역시 표정이 바랜 채 우두망찰하고 서 있는 엄마를 사뿐히 안아올려 좌정을 시키고 큰절을 하자 모두 따라했다. 엄마도 그제야 그를 알아보고 그의 손을 잡고 그간의 고생을 위로했지만 한번 바랜 핏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p. 238
 
우두망찰하다: 갑자기 닥친 일에 정신이 얼떨하여 할 바를 모르다.
 
처음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공천파동과 "0박"논란이 참패를 불렀다는 얘기가 나오고. '정권 심판론'이 '국회 심판론'을 우세했다는 주장, '호남홀대론'이 3당을 만들었다는 말들이 넘쳐납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총선 결과는 여소야대(與小野大),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일방독주에 대한 일침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 일에 정신이 얼떨하여 할 바를 모르고 있는 새누리당은 그렇다 쳐도.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정의당들은 대체 뭡니까. 아무리 20대 국회가 개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지요. 댓글이나 다는 국정원에 무소불위 권력을 쥐어준 법도 폐기해야 하고. 세월호 진실을 건져내기 위한 법도 개정해야 하는데. 아니 전경련에 청와대, 국정원까지 연루됐다는 의혹이 연일 제기되고 있는 '어버이연합게이트'를 철저히 파헤쳐야 하는데 그저 우두망찰하고만 있으니요. 그러니 말입니다. '불통' 대통령은 여전히 제 갈 길을 가는 것이겠고요. 국정원은 법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겠지요. 밤새 개표방송을 보며 맘 졸였던 국민들, 풀리던 속이 다시 타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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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1 11:56 2016/05/11 11:56

두동지다 : 앞뒤가 서로 모순이 되어 맞지 아니하다.

 
국회에서 합의한 법안을 놓고 여당 원내대표에게 “심판”이란 말까지 해가며 호통을 치는 대통령과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에 위배되거나 법률의 위임절위를 일탈한다는 등의 의견이 제시된 때에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에 따르도록 함”을 주요 내용으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공동발의 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인가요?
 
유가족과 만난 자리에서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있어서 유족 여러분들이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던 대통령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무력화시킬 시행령을 만든데 이어 예산 집행까지 하지 않아 그나마 출범한 특조위가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정부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인가요?
 
취임 일 년도 되지 않아 두동진 말을 한 게 어디 한 두 번이었어야지요. 기초연금에서 누리과정, 경제민주화까지. 그러더니 사면권 남용을 거부하겠다는 말을 뒤집고 특별사면을 하겠답니다. 메르스로 떨어진 지지율 때문인가요, 세월호특별법시행령 때문인가요. 이렇게 앞뒤가 서로 모순이 되어 맞지 아니하는 사람을 대체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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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7 12:00 2015/07/17 12:00
죄어치다: ① 재촉하여 몰아내다. ② 바싹 죄어서 몰아치다. ③ 몹시 조르거나 몰아내다.
 
언제든 찾아오라던 세월호 유가족들을 뿌리치고 외국으로 나갔더랬습니다. 경찰은 이때다 싶었던지 최류액과 캡사이신 물대포를 쏘아대며 죄어쳤습니다. 더 이상 청와대로 향하지 말라고, 더 이상 진실을 알려하지 말라고. 가라앉지 않는 추모열기와 성완종 게이트 때문인지, 긴 여행에서 돌아온 노독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돌아온 대통령은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웠습니다. 그러다 선거가 끝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아니 지난번처럼 연일 바싹 죄어서 몰아치고 있습니다. 전.현직 비서실장 이름들이 줄줄이 오르내리고; 본인이 지명한 총리가 수사대상에 올랐어도 부정부패 척결만을 외치고.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킬 시행령이 뻔한데도 끝내 통과시키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라도 있었다면 이런 유체이탈(流體離脫)에 어이없어하기라도 할 터인데. 하도 많이 봐왔던 거라 이젠 통 관심도 가지 않고. 앞으로 남은 3년 동안 또 얼마나 보여줄지 대충 짐작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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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2 10:53 2015/05/12 10:53
이제 보름 후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년이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참 많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참 많이 반성도 했고, 많은 다짐들도 했습니다.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 진실을 반드시 밝히자, 말입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수많은 눈물, 반성, 다짐들 어느 하나라도 진정 마음이 담겼었는지 의구심이 들게 되는 시간들이었지 싶습니다.
 
전 국민이 보는 가운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던 이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유가족들 면담 요청에 경찰을 내세웠구요. 관피아다 모피아다 요란스레 굴었지만 결국 해경만 해체됐고 ‘박하산’은 여전하니까요. 곡기를 끊어가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가족들 앞에서는 치킨과 피자를 나눠먹으며 한껏 조롱을 일삼았고,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미국 잠수함을 말하는 것이냐”며 또 ‘종북’ 타령이니 말입니다.
 
처음부터 세월호는 시간과의 싸움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배는 기울어 침몰하고 있지만 선원들만 구조하고 있었던 시간들. 대조기(大潮期)니 정조(停潮)니 하며 때만 기다렸던 시간들. 언제든 만나겠다던 말만 믿고 청와대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시간들.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안산에서 팽목항에서 무수히 걸었던 시간들 말입니다.
 
사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어찌됐는지 알 수 없는 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속 시원히 알 수 없는 시간들. 코앞에 닥친 선거를 위해 무슨 말이든 못하랴 싶게 연일 속없는 말들을 내뱉던 시간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속절없는 공방만 하는 그 시간들 말입니다.
 
유가족들이 다시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엔 416시간 농성이랍니다. 세월호 특위를 무력화시킬 시행령을 즉각 철회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청와대로 가는 길은 경찰에 막혀있습니다. ‘기레기’들은 철지난 철새들 마냥 보이지도 않고, 대통령은 그리 자주 해외에 나가면서도 청와대 밖으론 한 발짝도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세월호는 분명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시작된 농성이 비록 416시간이라고는 하지만. 416일이 되더라도 아니 4년 1개월 6일이 되더라도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또 왜 우리는 그걸 지켜보기만 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때야만 비로소 수많았던 다짐, 약속, 눈물들이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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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16:31 2015/04/02 16:31
사용자 삽입 이미지1.
사람들은 종종 ‘진실’과 마주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합니다. ‘진실’을 아는 순간 겪게 될 갈등과 죄책감 때문이지요. 가령 물을 가둬둔다면 썩게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뛰게 될 집값과 죽어갈 강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은 의미가 없게 될 것입니다. 또 녹조로 변해버린 강을 보며 마냥 쾌재를 부를 수만은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종종 ‘거짓’을 ‘진실’이라 믿기도 하고. 때론 나서서 ‘진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특례입학이니 의사자 지정을 요구하지도 않았건만. 세월호 유가족들이 제출한 특별법이 어느새 ‘노후보장특별법’으로 얘기되고. 법률에 의해 설치된 될 국가기관인 특별위원회에 수사와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마저 ‘초헌법적 요구’가 되기도 합니다.
 
2.
매우 자극적인 제목을 뽑았다는 것만 빼면. 이 책 역시 사람들에게 갈등과 죄책감을 주기에 충분한 ‘진실’들을 담고 있습니다. 예컨대 1980년 이후로 1인당 식량생산량이 5배나 증가했지만 여전히 10억 명 이상이 굶주리고 있는 기이한 현상에는 공장식(기업식)축산업이 자리하고 있다는 ‘진실’ 말입니다.
 
그러니 188쪽에 소개돼 있는 낭비되는 단백질 비율과 185쪽의 고기 생산에 필요한 물의 양, 그리고 195쪽에 제시된 해결책을 보고 있노라면. 굶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기부를 요청하는 것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빠지는 대신. 식탁에 비육식 식단을 올림으로써 기아 해결에 효과적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습니다.
 
3.
국정조사는 하기는 했었나 싶게 아무런 성과가 없이 끝났습니다. 검찰 수사와 관련 재판은 피의자들이 부인하고 떠넘기기를 작정한 마당에 지지부진하구요. 대통령은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보다는 단호히 사법체계를 흔드는 쪽을 택했습니다.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허망하게 보낸 만큼이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골든타임’ 역시 그렇게 지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유가족이 그토록 알고 싶어 하는 ‘진실’은 아직 저 진도 앞 바다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축산업계에 지원되고 있는 직.간접 보조금 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형 축산기업이 내뿜는 환경오염은 피해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측정조차 하질 않구요. 동족의 뼈와 살에 항생제, 성장촉진제를 섞은 먹이는 사일로에 늘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 공장식 축산업이 환경에, 건강에, 지역사회에, 노동자들에게, 납세자들에게, 기아문제 해결에 어떻게 해로운가 하는 ‘진실’은 축사 안에 갇혀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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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3 10:48 2014/12/03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