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바우길 ⑤ 솔향기 솔솔, 심스테파노길(2012년 10월 20일)
 
버스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태백에서 출발한 기차는 강릉역에 13시 05분 도착한다. 그런데 심스테파노길이 시작되는 명주군왕릉을 가는 버스도 13시 05분에 종점에서 출발하니. 버스를 타야하는 곳까진 걸어서 10분 남짓이지만. 이게 참 애매하다. 종점에서 버스가 여까지  얼마나 걸릴지 종잡을 수 없으니 말이다. 아침나절 부지런히 쌌던 김밥을 두고 오는 통에 어디서 먹을 걸 사야긴 사야겠고.
 
하는 수 없어 택시를 집어타고 정류장에 도착,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과 빵 등등을 사고 보니. 어이쿠, 그새 20분이 다 되간다. 버스 놓친 것 아닌가, 발을 동동 구르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했나. 하는 줄도 몰랐던 세계무형문화축전 덕에 버스가 늦게 도착, 겨우 탈 수 있다. 뭐, 또 그 덕에 길이 막히기도 했고, 돌아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버스를 놓쳤다면 천상 다음 차를 타야 하는데, 그랬다간 해가 꼴딱 다 넘어간 후에야 위촌리에 도착했을 거고. 나오는 버스도 한 시간 넘게 더 기다려야 하고, 줄줄이 시간이 뒤로 밀리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탔어야 했으니 참 다행이지, 싶고. 이번도 이번이지만 다음번도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으니. 이래저래 꼼꼼히 준비해야겠단 생각이 다시 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기차 안에선 흐렸던 날씨가 군왕릉에 도착하니 맑게 개었고. 뒷자리에 앉아 눈치 보며 허겁지겁 먹긴 했어도. 김밥에 빵까지 든든히 먹었더니 힘도 나고. 10구간과 4구간 갈림길부터 시작되는 푹신한 솦 숲길에선 솔솔, 솔향기 그득하고. 땀이 채 나기도 전에 시원한 바람이 뒷목을 간질간질. 아까까지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싹 날아간다. 또 강릉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다시 시작된 솔 숲 길 임도, 멀리 동해바다와 강릉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솔바위까지 내처 걸으니. 바우길, 참 좋다.
 
4구간처럼 거꾸로 걸었다면 엄두도 나지 못했을 가파른 내리막길을 로프를 잡고 한참을 내려올 땐 이거 만만치 않은데, 하다가도. 법륜사를 지나 다시 시작된 동네 뒷산 길 같은 산길이 다시 이어지고. 심스테파노가 숨어 지냈다던 골아우 마을을 지나는 동안 멀리 바다가 보일 듯 말듯. 길 가에 바짝 붙여 묶어둔 산만한 개 두 마리에 오금이 다 저리다가. 오랜만에 재미없는 아스팔트 길과 눈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송전탑과 고속도로 교각들을 지나고 난  끝, 송양초교까지 내처 쉬지 않고 걸으니. 다리는 조금 찌릿찌릿, 해는 뉘엿뉘엿, 버스 타는 곳은 또 어딜까 마음은 조마조마.     
 
11km로 비교적 짧은 거리지만, 바우길이 가진 재미를 온전히 다 갖고 있는 솔향기 솔솔, 심스테파노길. 그 길을 어느 가을, 맑고 바람 부는 날 그렇게 온전히 다 걸어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심스테파노길:
바우길을 탐사하던 중 구한말 병인박해 때 심스테파노라는 신자가 포도청 포졸에게 잡혀가 순교한 골아우라는 마을을 찾았다고 합니다. 해서 탐사대는 이 마을을 심스테파노 마을이라 부르고, 길 이름도 심스테파노길이라 지었답니다.  
 
* 열한 번 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10구간 심스테파노길 11km를 걷는데 3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 가고, 오고
바우길 어느 구간이나 들머리, 날머리 모두 버스가 있지만 시간 맞추기가 까다롭다. 미리 시간을 확인하는 건 당연하고 10분 정도는 일찍 정류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자칫 시간에 못 맞추면 택시를 부르거나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 잠잘 곳
10구간은 짧은 구간이기 때문에 따로 잠잘 곳을 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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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4 11:00 2013/07/14 11:00
사용자 삽입 이미지바우길 ④ 나눠서 걷는 사천둑방길: 둑방길 끝나자 산 넘어 가는 길,  명주군왕릉을 찾아(2012년 9월 22일)
 
해살이마을은 근래에 붙여진 이름이다. 봄엔 축제까지 열만큼 개두릅 나무가 지천으로 있는 곳이지만, 대략 200년 전 사기 막사발 사기그릇을 만들던 움막이 많았던 곳이라 해서 ‘사그막’또는 ‘사기막’으로 불렸다. 물론 지금도 사기막리가 행정구역상 명칭일 뿐만 아니라, 사천면사무소 앞에서 탄 택시 운전기사분이 말해주듯이. 사기막이라 해야 금방 금방 알아듣는다.  
 
나눠서 걸은 바우길 4구간은 반대편 명주군왕릉에서 출발했다면 긴 내리막 임도(林道)를 걸었겠지만. 지난번에 사천해수욕장에서 출발해 사천천을 따라 둑방을 걸었으니. 오늘은 여기 사기막리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길고 긴 오르막을 올라야한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서 숨이 헐떡헐떡 거리고 다리가 풀릴 만큼 가파른 길도 아니고. 곳곳에 솔 숲 사이 송이 밭이 널린 만큼 소나무가 빽빽하게 있어. 걷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한여름에도 덥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명주군왕릉은 4구간 출발점이면서 3구간 도착점과 10구간 출발점을 겸하고 있다. 4구간을 거꾸로 걸었던 이유가 애당초 고성에서부터 내려오는 길이기도 했거니와 가능한 바우길을 이어서 걸어보자 했던 이유가 있었으니. 군왕릉에서 다시 10구간과 이어 걷고, 또 11, 5, 6, 7, 8, 9구간을 연달아 이어붙이면 자연스레 동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물론 해변을 따라 걸었다면 진즉에 동해나 삼척까지 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올 봄에 이사한 곳이 강릉과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에 있고. 또 앞으로 이쪽 언저리에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지어야겠단 마음도 있으니. 급할 것도 없는데다 살만한 곳도 찾아보는 셈치고 에둘러 가는 것이니. 
 
조금 길다 싶은 구간은 이번 걷기여행처럼 나눠서 걷기도 하고. 10년 전 태풍 루사 때 난리도 아니었단 얘기며, 줄 쳐진 산에 잘못 발 들여 놨다간 크게 곤혹을 치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도 물어물어 귀동냥으로 얻어들으며. 사기막처럼 이름만큼이나 예쁘고 아기자기한 마을도 천천히 둘러보고. 내처 걸었다면 10구간까지 마칠 수 있었겠지만 그리하지 않은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출발했던 사기막과 달리 도착했던 보광리엔 분청사기를 굽던 가마터가 있다고 한다. 강원도에서 유일한 곳이라고 하던데. 명주군왕릉도 그렇고 분청사기도 그렇고. 산 하나를 두고 사기막과 대비되면서 느낌이 묘하다. 지금이야 임도로 연결돼있어 막사발을 굽던 곳과 분청사기를 굽던 곳을 쉽게 둘러볼 수 있겠지만. 예전엔 그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이 조금씩은 달랐을까?
 
하기야 분청사기든 막사발이든 굽는 이들이야 다 민초들이었으니. 차이가 있으면 얼마나 있고, 다르면 또 얼마나 다를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한쪽엔 전통체험마을이 있고 다른 한쪽엔 왕릉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딱 부러지지는 않지만, 어째 요상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반골기질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똥 누기 전과 후가 다르다고, 힘들게 산을 넘어와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 명주군왕릉은 신라하대의 진골 귀족으로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소다. 김주원은 공식적으론 신라의 왕위에 오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명주군왕으로 봉해졌기에 그의 무덤을 왕릉이라 부른다.
 
* 열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4구간 사천둑방길 나머지 구간을 걷다. 해살이마을에서 명주군왕릉까지 임도를 따라 약 km.
 
* 가고, 오고
강릉 시내에선 해살이마을을 가는 버스가 있지만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주문진 쪽에서는 더욱(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 참고). 사천면사무소에서 콜택시를 불러 갔더니 따로 콜비는 없고 7,000원을 달라고 한다.  
 
* 잠잘 곳
해살이마을 홈페이지(http://haesari.invil.org/)에 방문하면 농가민박 전화번호와 민박집 내.외부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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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7 22:09 2013/03/27 22:09

바우길 ③ 나눠서 걷는 사천둑방길: 여우비 맞으며 사천에서 해살이마을까지(2012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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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사천(沙川)은 모래가 많은 냇물이 흐른다해 모래내라고 불렸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천진리 해변가 모래만 해도 예전만 못하고. 사천천(沙川川)가도 여기저기 아스팔트로 포장된 반듯한 둑방과 보(洑)들로 그 이름이 무색하다. 지금이야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간판들로 한과로 유명한 마을이구나 싶지만, 그것도.
 
‘호당 농가소득이 인근 전업농에 비해 월등히 높은데다 부채마저 없는, 고소득 마을’로 바뀐 터라. 또 강릉 시내와 가까운 곳이어서인지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길을 내고 호사스런 집들을 지어 대고 있어. 지나는 사람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덩치가 산만하고 소리 하나로도 기를 팍 꺾게 만드는 개들이 심심찮게 많다. 해서 조용히 걷기엔 그닥 좋지만은 않다.     
 
또 둑방길이란 이름이 붙어 있긴 하지만. 구불구불 모래톱을 만들며 흘러가는 물 대신, 철마다 흐드러진 꽃을 피워내는 보드라운 흙 대신. 반듯하게 흐르는 강물에, 아스팔트로 발라진 둑방이라 걷는 맛은 덜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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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쪽으로는 깨끗한 바다가, 뒤로는 준엄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과 마을 뒷산, 사천천 양쪽으로 펼쳐진 너른 들판사이로 난 농로와 둑방길을 번갈아 걸으며,  
 
하평마을은 강릉 시내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형적인 해안 농촌마을이다. 강릉 곳곳에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듯. 이곳 역시 허 남매의 외가인 애일당(愛日堂) 김참판이 살았던 곳으로도 알려졌다.
 
이 마을에서는 음력 2월 초엿새 좀생이날* 저녁이면 마을 주민들이 다리에 모여 횃불을 들고 그 해 농사가 잘 되기를 빌며 다리밟기를 했다. 이런 횃불놀이, 불놀이, 다리밟기는 다른 지방과 다를 바가 없긴 한 것이지만 좀생이날에 행하는 것은 이 마을이 유일하다. 풍년을 기원하는 세시풍속으로 종교적이면서도 놀이적인 것들이 어우러진 하평답교놀이는 횃불, 솔문 같은 것들을 태워 황덕불을 해놓고는 밤을 새워가며 축제를 즐긴다.
 
는, <사천둑방길>이 끝나는 곳. 아니 거꾸로 걸으면 시작하는 곳에서 만나는, 하평마을과 답교놀이 얘기와.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사기막리 마을은 200년 전 사기 막사발을 만들던 움막이 많아 ‘사그막’ 또는 ‘사기막’이라고 불렸던 곳으로 지금도 가마터와 사기그릇 잔흔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마을에서 빚은 사기 막사발은 ‘옛날 서민들의 마음을 담은 밥그릇이 되기도 했고, 애환을 달래줄 술잔이 되기도 했으며, 그윽한 향기를 담은 찻잔이 되기도 했다.’
 
해살이라는 이름은 요즘은 희귀식물이 된 창포가 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볕이 들기만 하면 잘 자란다 하여 "해살이풀" 이라고도 하고 여러 증상에 도움을 주는 약초로 아픈 것의 해답이 된다 하여 "해답이풀" 이라 불리기도 한 것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는, 명주군왕릉에서 산을 넘어 처음 만나는. 반대로 걸으면서 그것도 나눠 걷느라 오늘은 여기까지다, 멈춰 선. 해살이마을과 ‘사기막’ 얘기를 찾아간다면. 아무리 천천히 둘러보며 걷는다 해도 세 시간이면 넉넉할 만큼 짧은 길이라도, 걷는 재미만큼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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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처음 길을 나설 땐 등 뒤가 따가우리만치 해가 쨍쨍 떴는데. 농로에서, 둑방에서 두어 차례 여우비를 맞으며 걷다가. 허기질 때쯤 나타난 막국수집에서 목도 축이고 배도 채우고.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해도 뉘엿뉘엿. 버스 정류장에 앉아 담아둔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많이, 많이 남으니. 내처 명주군왕릉까지 걸어 볼까, 싶기도 하다.  

 
* 좀생이날은 음력으로 이월 초엿새 날이다. 이날 서쪽 하늘에 모여 있는 작은 별들을 보고 풍흉을 점치는 풍속이 있는데, 이 별들을 좀생이라 부르기 때문에 좀생이날이라고 한다.
 
* 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4구간 사천둑방길을 또 거꾸로 걸었다. 사천 해변에서 해살이마을까지 약 12km.
 
* 가고, 오고
지난 번 여행과 마찬가지.
 
* 잠잘 곳
사천 해변에는 잠잘 곳이 많으나 해살이마을, 명주군왕릉까진 식당만 몇 개 있을 뿐이고 숙박할 곳이 없다. 다만 걸어서 한 기간 거리에 저렴한 가격에 아침까지 먹을 수 있는 바우길 게스트 하우스가 있긴 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에서고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버스 시간을 꼭 확인해야 하고, 또 시간보다 미리미리 정류장에 나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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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2 17:59 2012/12/22 17:59

사용자 삽입 이미지바우길 ② 주문진 가는 길? 사천항 가는 길!(2012년 5월 27일)

 

태백을 출발할 때만 해도 괜찮았다, 날씨도 몸도. 기차가 동해를 지나 바닷가와 나란히 달릴 때쯤. 몸살기가 도는 가 싶더니 하늘에 먹구름이 낀다. 비가 온다는 얘기가 없었느니 괜찮겠거니 싶었는데. 정동진을 지나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더구나 덩달아 몸도 으실으실. 따뜻한 걸 먹으면 좀 나아질까, 없는 걸 겨우 찾아 마셔 봐도 그 때뿐. 다 허사다. 이까지 아프니. 아무리 오늘 걸을 길이 길지 않고, 해변가 마을들을 걷는다고 해도. 날씨에 몸까지 이러니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강릉역 앞 안내소에서 일하시는 분 얘기론 소나기고 양도 많지 않을 거라니. 일단은 주문진으로 향한다.

 
아들바위는 지난번에도 구경을 못했는데 이번에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소돌에 도착하니 비는 오질 않지만. 걸어야 할 거리와 시간에 딱 맞춰 온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감기 기운 때문에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늘 그렀듯 언젠가 다시 오겠지, 라는 말을 해보지만. 그때뿐인 걸 알아서인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되돌아서기엔 몸이 못 따라간다. 정말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로 몸이라도 추슬러야한다. 그래야 오늘 걸을 길, 바우길 두 번째 걷기, 12구간 주문진 가는 길, 아니 사천항 가는 길을 걸을 수 있기에.
 
바우길 12구간은 길 이름이 보여주듯 주문진이 도착점이다. 하지만 고성에서부터 7번 국도를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걷는 중이라. 오늘은 주문진 가는 길이 아니라 사천항 가는 길이 됐다. 원래부터 길을 만들 때부터 거꾸로 걷는 사람들도 염두에 둔 덕에 이정표도 잘 돼 있으니 걱정은 없고. 또 연휴에 몰려든 사람들로 복작복작한 주문진보다야 여유로운 사천항이 끝내는 곳으로는 더 적당할 것 같으니. 꼭 정해진 방향으로만 걷는 것보단 나을 수도 있겠다. 더구나 이어지는 4구간도 또 반대로 걸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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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바우길 12구간은 사천항에서 주문진으로 간다해서 주문진 가는길이란 이름이 있다>

 

뜨끈한 매운탕에 밥을 먹고 나니 한결 몸이 좋아진다. 덩달아 먹구름 사이로 통 보이질 않던 해도 고개를 내미니, 이제 슬슬 걸어볼까. 헌데 이런, 조금 걷다 보니 이번엔 오뉴월 해치곤 따가운 해가 등 뒤에서 비춘다. 다행히 짐을 가볍게 싸 가져왔고. 또 아직은 해가 짧은 탓에 금세 햇살이 잦아들겠거니 싶지만. 그래도 따가운 해를 피해 커피도 마시고,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놀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또 신리하교를 건너 접어든 동네 뒷산 길. 푹신푹신한 솔잎이 잔뜩 깔려 있고. 지나는 작은 마을이며 숨바꼭질 하듯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바다를 보니. 걷는 재미가 쏠쏠하고 수월하다. 아픈 몸을 참고 온 거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에도 일단 가보자, 며 온 것이. 참 잘했다, 싶고. 아무래도 이 바우길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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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하면 ‘감자바우’가 떠오른다. 둥글둥글하면서 제멋대로인 모양.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는 감자와 바우(강원도 말로 바위를 가르킨다)처럼. 개성이 서로 뚜렷하다는 걸 표현하는 것인지, 그저 감자가 많이 나는 곳이니. 편하게 붙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도 벌써 5년씩이나, 아직은 낯선 강원도에, 춘천과 태백에서 살고 걷기도 많이 걸었지만 말이다. 강원도 하면 ‘감자바우’요, ‘감자바우’하면 강원도라는 말은 따질 말이 아닌 듯하다. 그만큼 친근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말이니.

 
바우길은 이런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과 많이 닮았다. 우선 동네 골목길을 돌아 뒷산으로 올라 돌아가는 길이 많다. 또 푸근한 인심과 웃음을 볼 수 있는 집들을 끼고 걸으니 친근하지 않을 수 없다. 숲길에 들어서도 고개만 돌리면 푸른 바다를 볼 수 있고, 바닷길을 걸으면서도 늘 산을 바라볼 수 있으니. 이만큼이나 강원도 풍경을 한껏 즐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친근하고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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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구간부터 죽 이어서 걸어도 좋고 마음 내키는 대로 숲길과 계곡길을 걷다, 심심할 쯤 하루 종일 바닷길을 걸을 수도 있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산꼭대기 등줄기만을 밟고 걷는 길, 산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길, 바다에서 바다를 따라 걷는 길, 바다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 산 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바다를 밟듯 걷는 길, 바다와 숲길을 번갈아 걷는 길’이 바우길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바람과 함께 아카시아 향이 코를 찌르고 파란 바다가 보일락 말락, 한 고개 넘으면 보였다 또 한 고개를 넘으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숲길에서 내려오니 이번엔 탁 트인 바닷길인데, 이건 또 그냥 바닷길이 아니다. 작은 어촌마을 길을, 해송 숲길을 걸으니 마냥 바다만 보고 걷는 건 아닌 셈. 길가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난 차들이 있지만 거기서 한 발 빗겨나니 이런 한적 길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티격태격 이 말이 맞니 저 말이 맞니 하며 걸으니. 여기가 서해바다인가 싶게 빨간 노을이 등 뒤에 있다. 멀리 지나온 주문진이, 오르락내리락 동네 뒷산이 보일 때 쯤.
 
주문진 가는 길, 아니 주문진에서 사천항으로 가는 길, 끝이 보인다. 내처 5구간 강릉 바다 호수길을 따라 경포대까지도 걷고 싶은 마음도 들고. 다음 걷기를 위해 4구간 사천 둑방길을 따라 7번 국도가 보이는 길까지 걷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때맞춰 강릉까지 가는 버스도 있고. 아슬아슬하겠지만 태백 가는 버스 타기 전, 저녁 먹을 시간도 있을 법 하니. 오늘 하루 참 잘 걸었다, 다독이고 버스에 오르니. 금세 해가 지고 가로등 불이 환하게 켜진다. 
 
* 여덟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12구간 주문진 가는 길을 반대로 걸었다. 약 12km.
 
* 가고, 오고
지난 번 여행과 마찬가지.
 
* 잠잘 곳
당분간은 따로 소개하지 않아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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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0 13:29 2012/10/30 13:29
바우길 ① 향호 바람의 길을 걷다(2012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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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다시 이사를 했다. 춘천보다 더 춥고. 밭뙈기는 더 구경하기 힘든 곳으로. 첫 느낌은 황량하고 삭막함. 앞뒤로 서 있는 산 때문에 느낀 갑갑함은 좀 더 나중에 든 느낌. 그래도 녹지 않을 것 같던 앞산 눈도 녹고. 과연 꽃이 피기나 할 까 했던 뒷산 벚나무에 벚꽃이 피는 5월이 되니. 한결 낫다. 정 붙이이려면 아무래도 또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서일까, 전보다 더 자주 바깥나들이에 나선다. 다행히 한 시간만 열차를 타고 나오면 바닷가라. 게다가 재작년 겨울에 멈춰선 곳, 소돌에서부터 다시 길을 걸으려고 하니. 이런, 바우길이 여서 시작하니 말이다.

 
바우길은 얼마 전 새로 정한 16구간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를 포함한 바우길 이외에도. 울트라 바우길, 계곡 바우길, 대관령 바우길이 있다. 7번 국도를 따라 걷다보면 매양 바닷가를 끼고 바다만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위쪽 고성에서 시작되는 해파랑길과 아래쪽 영덕 블루로드, 그리고 여기 강릉 언저리를 에둘러 가는 바우길을 거쳐 간다면. 자칫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느껴질 동해안 바닷가 길 걷기가 새삼 재밌으니. 시간에 쫓겨 걷는 길이 아니라면 천천히 다 둘러봐도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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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호를 중심으로 향호저수지를 끼고 산길을 돌고 돌아 주문진 해수욕장으로 되돌아오는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 역시. 호숫가를 빙 둘러 걷기도 하고, 개구리가 놀라 논으로 뛰어드는 농로를 걷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난 산만한 개에 놀라 주춤, 아카시아 향이 코를 찌르는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여기 이 길이 맞나, 싶은 숲길을 헤매기도 하다, 눈만 껌벅이며 요란하게 울어대는 소들을 뒤로 하고, 솔향기 가득한 솔 숲길에 취해 정신없이 걷다보면. 어느새 푸른 바다와 향호가 보이니, 딱 좋을 수밖에 없다.
 
또 “태백 산지의 동해 사면을 흐르는 하곡의 계류와 동해안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향나무를 묻고 미륵보살이 다시 태어날 때 이 침향으로 공양을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옛 이야기와 “향골의 천년 묵은 향나무를 아름답고 맑은 호수 아래에 묻었는데, 나라에 경사스런 일이 있으면 향호의 침향(沈香)에서 빛이 비쳤다고 한다.”는 향호라는 지명의 유래를 찾아가는 재미와
 
동해사면에서 흘러드는 담수와 동해바다의 염수가 혼합돼 있어 하천과 향호가 만나는 곳에는 수문을 만들었으니 이를 찾아보는 재미며, 경치가 뛰어나 호숫가 여기저기 취적정(取適亭)이니 강정(江亭)이니 향호정(香湖亭) 같은 정자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또 이들 자취를 짚어가는 재미, 향동・향호동・향호리・향호교・향호저수지와 같은, 모두 향호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름 붙여진 마을과 다리, 호수를 걷는 재미가 있으니. 부러 찾아서 걸을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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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호 - 안정례
한걸음 향했던 설레임의 발자국도 지워지고
낮게 깔린 어둠에 무게는 떨쳐낼 수 없는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어버린 지금
버티다 버티다 이제 갈 길을 돌립니다.
 
눈감아도 젖은 모습 저만치서 내 그리운 사람이
웃음 지며 서있던 그 자리 한 바퀴 돌고나면 있으려나
기약 없는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돌아서는 등 뒤로
낮 익은 음성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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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길 안내 책자에 따르면 13구간은 15km정도라는데. 대충 4시간이면 되겠거니 했지만. 오르락내리락 고갯길도 많고 또 길 절반 이상이 산길이라. 처음 바닷물에 발 담그고 놀다 출발했던 모래사장으로 돌아오니.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걸렸고 몸도 꽤나 노곤하다. 마음 같아선 주문진 방파제까지 내쳐 걸어 등대까지 보고 싶지만. 오랜만에 걸은 발이 무겁기까지 하니. 여섯 번째 걷기에서 멈췄던 곳, 소돌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는, 저만치 오는 강릉 시내버스에 또 그렇게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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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호는 사주나 사취가 발달해 만 입구가 좁아짐으로써 생기는 해안지형인데요. 가장 큰 것은 함경남도 동남쪽 함주군과 정평군 사이에 있는 광포(廣浦)로 주위가 14㎞에 달한다고 합니다. 남쪽에는 강릉의 경포(鏡浦), 주문진의 향호(香湖), 속초의 청초호(靑草湖)와 영랑호(永郎湖),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송지호(松池湖), 화진포(花津浦) 등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석호는 육상과 해상의 점이지대로 다양한 생물종이 분포하고 멸종위기동식물과 천연기념물이 서식 하는 등 생태계 보존을 위한 중요한 지형입니다. 하지만 보존은커녕 난개발로 인한 훼손이 심각하지요. 또 외래 어종이 다수 발견되는 등 생태계 지형에도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경포, 청초, 영랑과 같이 도심지 내에 있거나 가까이에 있는 석호들은 그 훼손 정도가 심하다고 합니다만. 시멘트로 막혀 있는 청계천을 살아난 생태하천이라고 하는, 4대강 살린답시고 삽질해대는 그런 정부에서 복원과 보존 사업을 한다고 하니. 석호도 그런 꼴 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건. 기우(杞憂)이길 바랄 뿐입니다. 
 
* 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13구간 향호 바람의 길 약 15km.
 
* 가고, 오고
태백에서 강릉을 가는 길은 삼척을 들러 가는 시외버스와 바닷가를 따라 달리는 기차 두 가지가 있다. 기차는 시간도 적게 걸리고 재미도 쏠쏠하지만 하루 다섯 차례밖에 없기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반대로 시외버스는 언제고 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2시간 반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지루함이 있다. 굳이 호불호(好不好)를 따진다면 값도 저렴하고 재미도 있는 기차가 낫지 싶다.
 
* 잠잘 곳
걱정 붙들어 맨다는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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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 19:51 2012/07/24 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