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바우길 ② 주문진 가는 길? 사천항 가는 길!(2012년 5월 27일)

 

태백을 출발할 때만 해도 괜찮았다, 날씨도 몸도. 기차가 동해를 지나 바닷가와 나란히 달릴 때쯤. 몸살기가 도는 가 싶더니 하늘에 먹구름이 낀다. 비가 온다는 얘기가 없었느니 괜찮겠거니 싶었는데. 정동진을 지나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더구나 덩달아 몸도 으실으실. 따뜻한 걸 먹으면 좀 나아질까, 없는 걸 겨우 찾아 마셔 봐도 그 때뿐. 다 허사다. 이까지 아프니. 아무리 오늘 걸을 길이 길지 않고, 해변가 마을들을 걷는다고 해도. 날씨에 몸까지 이러니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강릉역 앞 안내소에서 일하시는 분 얘기론 소나기고 양도 많지 않을 거라니. 일단은 주문진으로 향한다.

 
아들바위는 지난번에도 구경을 못했는데 이번에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소돌에 도착하니 비는 오질 않지만. 걸어야 할 거리와 시간에 딱 맞춰 온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감기 기운 때문에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늘 그렀듯 언젠가 다시 오겠지, 라는 말을 해보지만. 그때뿐인 걸 알아서인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되돌아서기엔 몸이 못 따라간다. 정말 이번만은 어쩔 수 없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로 몸이라도 추슬러야한다. 그래야 오늘 걸을 길, 바우길 두 번째 걷기, 12구간 주문진 가는 길, 아니 사천항 가는 길을 걸을 수 있기에.
 
바우길 12구간은 길 이름이 보여주듯 주문진이 도착점이다. 하지만 고성에서부터 7번 국도를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걷는 중이라. 오늘은 주문진 가는 길이 아니라 사천항 가는 길이 됐다. 원래부터 길을 만들 때부터 거꾸로 걷는 사람들도 염두에 둔 덕에 이정표도 잘 돼 있으니 걱정은 없고. 또 연휴에 몰려든 사람들로 복작복작한 주문진보다야 여유로운 사천항이 끝내는 곳으로는 더 적당할 것 같으니. 꼭 정해진 방향으로만 걷는 것보단 나을 수도 있겠다. 더구나 이어지는 4구간도 또 반대로 걸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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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바우길 12구간은 사천항에서 주문진으로 간다해서 주문진 가는길이란 이름이 있다>

 

뜨끈한 매운탕에 밥을 먹고 나니 한결 몸이 좋아진다. 덩달아 먹구름 사이로 통 보이질 않던 해도 고개를 내미니, 이제 슬슬 걸어볼까. 헌데 이런, 조금 걷다 보니 이번엔 오뉴월 해치곤 따가운 해가 등 뒤에서 비춘다. 다행히 짐을 가볍게 싸 가져왔고. 또 아직은 해가 짧은 탓에 금세 햇살이 잦아들겠거니 싶지만. 그래도 따가운 해를 피해 커피도 마시고,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놀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또 신리하교를 건너 접어든 동네 뒷산 길. 푹신푹신한 솔잎이 잔뜩 깔려 있고. 지나는 작은 마을이며 숨바꼭질 하듯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바다를 보니. 걷는 재미가 쏠쏠하고 수월하다. 아픈 몸을 참고 온 거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에도 일단 가보자, 며 온 것이. 참 잘했다, 싶고. 아무래도 이 바우길 마음에 쏙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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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하면 ‘감자바우’가 떠오른다. 둥글둥글하면서 제멋대로인 모양.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는 감자와 바우(강원도 말로 바위를 가르킨다)처럼. 개성이 서로 뚜렷하다는 걸 표현하는 것인지, 그저 감자가 많이 나는 곳이니. 편하게 붙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도 벌써 5년씩이나, 아직은 낯선 강원도에, 춘천과 태백에서 살고 걷기도 많이 걸었지만 말이다. 강원도 하면 ‘감자바우’요, ‘감자바우’하면 강원도라는 말은 따질 말이 아닌 듯하다. 그만큼 친근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말이니.

 
바우길은 이런 강원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과 많이 닮았다. 우선 동네 골목길을 돌아 뒷산으로 올라 돌아가는 길이 많다. 또 푸근한 인심과 웃음을 볼 수 있는 집들을 끼고 걸으니 친근하지 않을 수 없다. 숲길에 들어서도 고개만 돌리면 푸른 바다를 볼 수 있고, 바닷길을 걸으면서도 늘 산을 바라볼 수 있으니. 이만큼이나 강원도 풍경을 한껏 즐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친근하고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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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구간부터 죽 이어서 걸어도 좋고 마음 내키는 대로 숲길과 계곡길을 걷다, 심심할 쯤 하루 종일 바닷길을 걸을 수도 있다.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산꼭대기 등줄기만을 밟고 걷는 길, 산에서 바다로 나아가는 길, 바다에서 바다를 따라 걷는 길, 바다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 산 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바다를 밟듯 걷는 길, 바다와 숲길을 번갈아 걷는 길’이 바우길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바람과 함께 아카시아 향이 코를 찌르고 파란 바다가 보일락 말락, 한 고개 넘으면 보였다 또 한 고개를 넘으면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숲길에서 내려오니 이번엔 탁 트인 바닷길인데, 이건 또 그냥 바닷길이 아니다. 작은 어촌마을 길을, 해송 숲길을 걸으니 마냥 바다만 보고 걷는 건 아닌 셈. 길가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난 차들이 있지만 거기서 한 발 빗겨나니 이런 한적 길이.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티격태격 이 말이 맞니 저 말이 맞니 하며 걸으니. 여기가 서해바다인가 싶게 빨간 노을이 등 뒤에 있다. 멀리 지나온 주문진이, 오르락내리락 동네 뒷산이 보일 때 쯤.
 
주문진 가는 길, 아니 주문진에서 사천항으로 가는 길, 끝이 보인다. 내처 5구간 강릉 바다 호수길을 따라 경포대까지도 걷고 싶은 마음도 들고. 다음 걷기를 위해 4구간 사천 둑방길을 따라 7번 국도가 보이는 길까지 걷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때맞춰 강릉까지 가는 버스도 있고. 아슬아슬하겠지만 태백 가는 버스 타기 전, 저녁 먹을 시간도 있을 법 하니. 오늘 하루 참 잘 걸었다, 다독이고 버스에 오르니. 금세 해가 지고 가로등 불이 환하게 켜진다. 
 
* 여덟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12구간 주문진 가는 길을 반대로 걸었다. 약 12km.
 
* 가고, 오고
지난 번 여행과 마찬가지.
 
* 잠잘 곳
당분간은 따로 소개하지 않아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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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30 13:29 2012/10/30 1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