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첫 핵발전소는 큰 저항 없이 들어섰습니다. 지금은 이름으로만 남은 ‘고리’. 주민들은 ‘공장’이, ‘전기’를 만드는 ‘공장’이니 하며 되레 기대를 갖기도 했습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헐값에 토지를 넘기고 쫓겨나야 했던 사람들은 그 살벌한 독재체제에서도 ‘물리적 저항’을 했습니다만. 영구 정지되는 마당에까지 ‘경제발전’이라는 담론으로 치장되고 있으니 그 당시엔 오죽했을까요. 무너져 내리고 해체된 건 해당 마을 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이름아래 순응, 동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핵무기 개발을 꿈꿨던 박정희가 월성에 중수로 핵발전소를 지으면서 주민들에게 했던 말은 ‘남북대치 상황’과 ‘국익’이었습니다. 경수로에 비해 최고 100배까지 삼중수소(저에너지의 베타선을 방출하며, 외부피폭 위험은 적으나 체내 흡수 시 같은 이유로 모든 방사선이 주변 세포에 즉시 흡수됨)가 만들어진다는 건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발전소를 가동 하는 중에는 거의 매일 핵연료를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은 지금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반핵운동이 일어나자 정부는 의도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인근에 도시가 없는 ‘인구가 과소한 지역’이면서 ‘고학력자가 적은 곳’을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하고는 ‘소득향상과 삶의 질 개선’이라며 꼬드기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트로이 목마’가 울진에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목마가 트로이를 집어삼켰듯 ‘돈’이 지역사회를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지역에 핵 관련 시설을 짓고 또 짓고. 그렇게 신화리는 송전탑에 포위됐습니다.  

 

주민들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폭발음에 일상적인 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중고 부품’, ‘짝퉁 부품’, ‘위조된 품질보증서와 시험성적서’가 영광 5, 6호기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는데... “이게 폭발을 한 건지, 그냥 트립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발전소 주변 마을 도로는 고작 2차선입니다. 위급상황에서 주민들은 핵발전소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집결해야 한답니다. “사고 나면 피할 길이 뻔한데. 법성까지만 도망가고 홍농 사람들은 다 죽으란 말이나 마찬가지죠.” 

 

밀양 할매, 할배들은 콘센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정확히 꿰뚫어봤습니다.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송전탑이 생기는 것도 알게 된” 겁니다. 그러다보니 ‘핵마피아 비리, 핵발전소 수출,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과 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당연스레 알게 됐습니다. ‘싸움 속에서 국가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그 정체를 깨달’았으며, 이제는 ‘국가’의 빈자리에 ‘연대’라는 새로운 기반을 채워 넣고 있지요. 이 땅,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험한 동거: 강요된 핵발전과 위험경관의 탄생>은 이상헌, 이보아, 이정필, 박배균 네 사람이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가 들어선 고리, 월성, 울진, 영광과 전기를 소비하는 대도시, 대공장을 연결하는 송전선로가 지나는 밀양에 사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이곳들을 찾아보면 금방 알겠지만. 달리 공통점이라고는 해안가에 있다는 것, 또 서울과 멀리 떨어진 것 외에. 맞습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엇비슷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전기 만드는 공장을 만든다는 것, 헐값에 토지가 수용되고 사람들은 쫓겨났다는 것. 집단 이주한 마을에서는 원주민의 마찰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 발전소 건설 초기 반짝 건설 경기로 돈이 풀렸다는 것, 어장은 황폐화되고 농지는 쓸모없게 되면서 다시 핵발전소를, 또 다른 핵산업을 유치하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것, 정치인들은 문제해결이나 대책 마련보다 자기 자리 지키기 위해 이용만 한다는 것 말입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이 한창일 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했더랬습니다. “당신들은 전기 안 쓰느냐? 전기 없이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님비니 어쩌니 손가라질 하기 바빴지요.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서 찾아보면요. “전력자급률 서울 3%, 경남 210%. 수도권 전기 공급 하느라 지방 사람은 죽어갑니다.”라는 광화문 앞 1인 시위 푯말이 틀린 말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니요. 누군가의 고통을 대가로 값싼 전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눈감고, 외면하고, 모른 채 하는 겁니다.  

 

글 쓴 이들은 우리가 위험을 담보로 이룬 ‘근대적 발전의 달콤하게 소비할 수 있는 계급에 속하거나 그런 장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외면하면서 살아가기 쉽다고 말합니다. ‘위험은 울리히 벡이 말하듯 공평하고 민주적으로 우리에게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물리적으로 드러난 위험경관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살게 되는’ 것이랍니다. 해서 위험경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확대해 한국 사회에 널리 퍼뜨리는 확성기 역할을 맡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위험한 동거>는 확성기로써의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핵발전으로부터 고통 받고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듣는 사람이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아니 여전히 듣기를 외면한다면요. 모처럼 열린 탈핵으로 가는 발걸음이 더딜 수 있습니다. 아니요. 핵 문명의 어둔 그림자가 다시 무대 위로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라도 책 곳곳에 새겨 있는 목소리들에 더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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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3 21:11 2018/03/23 21:11
스물한 번째 여행 - 해파랑길 ③ 건너뛰면서 추암에서 덕산까지 걷는 32구간
 
첫째 날, 삼척 시내를 앞두고 건너뛰기(2016년 7월 9일)
 
이번 구간은 꽤 길다. 게다가 삼척 시내를 앞두고는 산길이다. 시내를 거쳐 가는 길이야 장미공원도 둘러보고 둔치를 걸으니 좀 낫긴 하겠지만. 죽서루에서 오십천도 봐야겠고, 시립미술관도 구경해야 하니 하루에 걷긴 무리다. 해서 느긋이 집을 나선다. 터미널쯤에서 마치는 걸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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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암은 지난번에 차 기다리면서 오래 있었던 곳인데도 또 한참을 있다 가게 한다. 그게 꼭 촛대바위 때문만은 아니고, 날씨가 좋아서인가. 바닷물에 비치는 모래가 어찌나 곱던지. 발까지 담그고 놀진 않았지만 ‘어이쿠 늦겠다’ 싶을 만큼 꽤 오래 머물렀다.
 
이름 때문일까? ‘후진’, 그것도 ‘작은 후진’이라는 이름말이다. 물론 바로 옆 추암보다야 덜 하긴 하지만. 한적한 곳에 자그마한 해변이라 호젓하게 놀긴 딱 좋은데, 뭣 때문인지 황량하기만 하다. 뭐 아직 피서철이 아니니 꼭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새천년도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해안길을 따라 비치조각공원을 지나고 나면 산길로 올라서야 한다. 헌데 별 생각 없이 숨을 헐떡이며 언덕을 오르다 느닷없이 짖어대는 개소리에 쫓겨 내려오고 만다. 뭐 해가 살짝 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라는 핑계로 산길을 건너뛰긴 했지만, 어찌나 놀랐던지.
 
이런 색도 다 있나 싶으리만치 다양한 장미가 있는 공원을 지나니 해가 저문다. 삼척 시내니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아까 가슴 철렁하게 한 덩치 큰 개가 아니었음 밤길을 걸을 뻔 했겠다. 또 덕분에 산길도 피하고 오롯이 해안을 따라 걸었으니 몸도 가뿐하다. 이제 어디 맛난 밥만 먹으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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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시내 천변길은 또 건너뛰고(2016년 9월 24일)

 
결국 죽서루엔 못 올라본다. 지난 번 걷기 후에 삼척 올 일이 있어 그때 시립박물관은 구경했고. 굳이 빙 돌아 올 필요가 없어 또 건너뛰어 오십천교부터 시작하니 그렇다. 날씨가 좋아 죽서루에서 보는 오십천이 볼 만하겠는데, 좀 아쉽다.
 
겉보기에도 흉물처럼 보이는데다 노동자 탄압으로 악명 높은 시멘트 공장은 먼지도 먼지거니와 어찌나 소음이 심하던지. 사진 찍는다고 가까이 가도 눈만 껌뻑이던 고양이 말고는 호젓하기 이를 데 없던 곳인데. 하는 수 없다, 서두르는 수밖에. 햇빛에 반짝이는 오십천이 눈에 밟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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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이라는 마을을 지나니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지도를 보니 한재로 이어지는 옛 7번 국도인 듯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아스팔트 고개니 마음을 다잡고 오른다. 9월도 보름이 지났건만 여전히 햇볕은 따가우니. 그나마 등 뒤로 있으니 다행이다. 바람도 선선히 불어오고. 
 
어디서고 탁 트인 곳에는 이름도 요상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한재공원 아래도 그렇다. 그 보기 좋은 풍경을 다 가로막고 서 있는 꼴이라니. 그것도 절벽에 콘크리트를 처발라 지어진 것들이다. 다행히  한재공원에는 이르니 한결 낫다. 산마루가 그늘도 만들고 눈에 거슬리는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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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쉬었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저 밑에서 얼굴 까만 아저씨 한 분이 올라오고 있다. 얘길 들어보니 부산에서 출발해 20여일 째 걷고 있는 중이란다. 부인은 같이 못 걷고 중간에서 기다린단다. 해파랑길을 걷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드문 일인데 완주하는 이라니. 힘내시라!!
 
맹방은 꽤나 큰 곳이다. 맹방초에서 잠깐 볼 일 보고 줄곧 걸었는데 상맹방, 하맹방. 한 시간은 족히 걸었다. 사람 많을 때 라면이야 여기저기 상점도 열었을 거고 그러면 화장실도 있었을 테지만. 한 달 도 더 전에 해수욕 끝났다는 안내문이 내걸렸으니 말 다했다. 겨우 해변에서 잠깐 쉬었다 간다.
 
삼척은 오랜 시간 핵발전소 문제로 정부와 싸우고 있는 곳이다. 덕봉대교 건너 팔이구공원은 그 싸움에서 이긴 삼척 시민들이 세운 기념탑이 있는 곳이고. 80년대부터 시작된 싸움이 지난 지방 선거로 끝을 맺나 싶은데 아직은 아닌가보다. 정부가 여전히 지정고시를 철회하지 않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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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벌써 산 너머로 넘어갔고 노을마저 어둠으로 바뀌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부안에서였던가. 집집마다 골목마다 새겨있던 원전반대 그림들도 떠오른다. 탑에는 그 고되고 지난했던 과정들을 그저 담담히 담고 있을 뿐이겠지만 그걸 어찌 모른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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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한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추암에서 덕산까지 이어지는 32구간은 22.5km로 꽤 긴 편이다. 아침 일찍부터 걸으면 해 지기 전에 마칠 수 있겠지만 오며가는 시간 때문에 두 번에 나눠 걸었다.
 
* 가고, 오고
해파랑길 홈페이지(http://www.haeparanggil.org/?main)에는 구간별 교통편이 자세히 나와 있다.
 
* 잠잘 곳, 먹을 곳
삼척 시내를 벗어나 맹방으로 가는 길은 먹을 만한 곳이 없다. 편의점이나 동네 슈퍼도 없는데다 화장실은 여름 한철이 아니면 맹방초등학교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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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0 17:07 2018/03/10 17:07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됩니다. 6월 16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에너지위원회 권고 사항을 받아들여 2년 뒤 가동 연장을 신청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결국 1978년 첫 운전을 시작한 후 첫 핵발전 폐로(閉爐)라는 또 다른 기록을 남기게 됐습니다.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이하 ‘기본계획안’)도 공개됐습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조금씩 그 내용이 알려지긴 했습니다만,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이를 보고하면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셈입니다. 2015년부터 15년간에 대한 전력 공급 기본 계획 말입니다.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는 지난 금요일(에너지위원회가 열린 12일)에 사실상 결정됐습니다. 이에 앞서 7차 기본계획안은 8일 제출됐구요. 불과 1주일 사이에 에너지 문제와 관련된 중요 결정들이 나온 겁니다. 그렇지만 메르스 때문일까요. 별다른 반응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만 해도 첫 폐로 결정이라는 상징성은 물론이고. 이미 한 차례 연장된 월성 1회기가 다시 수명 만료일이 되는 2022년부터 29년까지. 무려 11기나 되는 노후 핵발전소 문제를 본다면, 맞습니다.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최근 미세먼지로 주목을 받고 있는 화력발전소 건설은 취소된 반면. 신규 핵발전소 2기를 건설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및 신재생에너지의 공급을 확대 하겠다는 7차 기본계획안 역시 꼼꼼히 살펴봐야 할 문제입니다.
 
우선 고리 1호기는 그 동안 핵발전소를 둘러싼 경제성 평가에서 늘 지적돼왔던 폐로 후 처리 비용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폐로 과정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 및 각종 중.저준위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따진다면 결코 만만찮은 일이 아닙니다.
 
또 이미 수명이 연장된 월성 1호기를 비롯, 향후 15년 동안 11기의 핵발전소가 수명만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고리 1호기 폐로 논의 과정에 있었던 제도적 허점 역시 이번 기회에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여 걱정입니다.
 
기본계획 역시 우선 6차 기본계획에서는 유보했던 영덕 1, 2호기 건설을 확정한 데다 신규 핵발전소 2기를 추가로 더 짓겠다고 하는데. 앞서 봤듯이 핵발전은 폐로과정은 물론 짓는 과정과 운영상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 밖에 안 됩니다.
 
더구나 기본계획은 에너지 문제를 공급 측면에서만 접근했습니다. 그러니 추가 발전소 건설에 초점이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배출감소량을 맞추려다보니 엉뚱하게도 핵발전이 친환경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고리 1호기를 영구 정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계속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한 데에는. 이들보다 조금 앞선 11일에 발표됐던 205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이하 ‘목표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답이 있는 것 아닌가도 싶습니다.
 
뭐, 벌써부터 산업계라는 이름 아래 목표치를 더 낮게 잡아야 한다는 볼 멘 소리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2005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오히려 배출량이 증가하고, 2020년 목표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으로 제시된 감축 목표 말입니다.
 
이 목표안에 따르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BAU)이 연평균 1.3% 증가하는 것으로 잡혀있습니다. 결국 203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 전망(BAU)이 8억 5,060만톤CO2-e로 늘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에너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86.9%입니다.
 
결국 늘려 잡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맞추기 위해서 핵발전소와 민간발전설비 증가라는 답 아닌 답을 내놓은 것입니다. 사실 정부는 지난 2011년 순환정전 사태 이후 발전 설비를 늘릴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목표안이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황까지 나서서 환경 관련 회칙까지 준비하고 있는 마당에 ‘개발도상국’이라는 되도 않는 엄살을 되풀이 하고 있는 건 좋은 모양새가 아닙니다. 전세계가 나서서 지구를 살리자는 데 우리만 ‘지금 이대로’를 외칠 수는 없으니까요.
 
온 나라가 메르스와 가뭄으로 시름을 앓고 있습니다. 메르스야 의학기술이 발전하면 백신도, 치료약도 만들 수 있겠지만. 매년 악화되는 가뭄과 잦아지는 집중호우와 같은 기상이변은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피할 수가 없습니다.
 
고리 1호기 폐로는 10년 연장 후 나온,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한 발 앞으로 나아간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발표된 목표안과 기본계획안은 에너지 문제에 있어 오히려 뒤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늦진 않았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과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은 말 그대로 목표안과 계획안이니까요. 지금부터라도 이 목표안과 계획안이 핵발전소 폐쇄라는 결정에 뒤이어 좀 더 나아간 계획들로 바꿔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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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17:58 2015/06/19 17:58
사용자 삽입 이미지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폭발이 났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가 아직도 또렷합니다. 먼저, 결국 일이 터졌구나,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든 생각은, 맞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전에 있었던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 사고가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던 것인데요. 대량으로 누출된 방사능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폭을 당한데다. 사고 인근 지역은 아직까지도 폐쇄된 채 언제 복구가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후쿠시마에 살고 있던 200만이 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피난구역으로 지정했던 반경 20-30km 내에 있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면서도 더 걱정이 됐던 건.
 
상대적으로 방사능 피폭에 취약한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었습니다. 가급적 빨리, 다른 무엇보다 우선 대피시켜야 한다. 20-30km가 아니라 50km, 100km까지 방사능 수치를 조사해 평상시보다 높으면 싹 다, 신속히 비워야 하는 거 아닌가 말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일본 정부도 같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20킬로미터 권역, 30킬로미터 권역을 설정하고 옥내 대피지역, 자발적 피난지역 등을 지정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사고 수습은 결코 적절하지도, 세심하지도 아니었음이 곧 드러납니다. 책에서 지적하듯이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피해보다 세심하지 못한 일괄 소개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된 겁니다.
 
수송과정에서 사망한 것은 물론이고 집과 땅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까지 더하면. 모두를 몰아내는 것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아니 무책임한 방법이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정확한 정보를 주지도 않은 상황에서 시행되는 일방적이고도 강제적인 방식은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글쓴이가 살고 있는 미나미소마 시 하라마치 구만 해도 옥내대피역이지만 주민 3만 명 중 80퍼센트가 자발적 피난생활을 택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사사키 다카시 역시 같은 지적을 합니다. 98세의 노모와 치매에 걸린 부인을 데리고 집을 떠나는 것, 그것은 그 자체가 또 다른 재앙이라는 겁니다. 면밀하고 세심하게 주의를 살피며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않는 이상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사사키가 머물렀던 지역은 방사능 수치가 낮았습니다. 그러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전소로부터 반경 몇 km 이내는 모두 ‘어쩌구, 저쩌구’와 같은 대책들은 세심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반경 안이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서는 방사능 오염 정도가 다를 수가 있기도 하구요. 경계선을 놓고 한 마을 내에서도 어느 집은 대피지역으로 어느 집은 대피하지 않아도 되는 지역으로 나누어지기도 하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처음 사고 소식을 접하고 들었었던 생각도, 사고 직후 일본 정부가 취했던 조치들은. 그다지 세심하지 않은데다 사태를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대처하는 모습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집니다.
 
물론 전대미문의 사태 앞에서, 또 피해 수준을 예상할 수 없는 사고 앞에서는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할 수 있는 한의 최대치를 해야 한다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과거에 발생했던 비슷한 사례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되레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세심하고 주의 깊은 대처가 있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태를 신속히 수습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속에서 지속되는 삶은 그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이니까요.
 
다카시가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핵발전의 재앙 속에서 행한 ‘농성’에 대한 기록은 2012년 12월 3일이 마지막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는, 인간 존재와 실존에 대한 물음과 무책임한 국가에 대한 분노, 그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처럼 “내 삶이 계속되는 한, 내 ‘이야기’는 계속 것이다. 그리고 분노할 것이고, 그 정당한 분노를 에너지 삼아 끝까지 꿈을, 희망을, 이상을 이야기 할 것”(p.313)임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거대한 사태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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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0 15:11 2014/12/20 15:11
1.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핵발전 비중을 20%대로 낮추는 것을 권고했다기에 말입니다. 이 보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도 ‘수요관리 위주’로 에너지 기본 계획을 바꾸겠다고 했으니.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철석같이 그 말을 믿을 뻔 했던 겁니다.
 
역시나. 아니 제대로 낚였습니다. 발표했던 것처럼 핵발전 비중을 20%대로 낮추는 건 맞는 말이었습니다. 22-29%로 ‘대폭 축소’할 것을 제시한 것 말이지요. 헌데 말입니다. 의도적이었던 건지 숨기고 싶었던 건지. 정작 중요한 건 쏙 빼놓았던 거 아니었겠습니까.
 
정부가 ‘수요관리 위주’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으면 그만큼 에너지 수요 전망치도 낮춰 잡았어야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된 안을 보니. 최종 에너지 수요 전망은 물론 전력 수요는 어찌나 높게 잡아놨는지. 결국 비중은 축소됐는지 몰라도 핵발전소는 예정됐던 거에 추가로 더 지어야만 가능한 얘기였습니다.
 
산 너머 산입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주최한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에서 산자부 에너지자원실장이 핵발전 비중을 권고안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로 해야 한다고 밝힌 겁니다. 지금도 핵발전 비중이 26.4%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증핵(增核)’하겠단 얘기니. 삼척엔 당연히 핵발전소가 들어설 것이고, 제2, 제3의 밀양이 생길 수밖에요.    
 
2. 
지난여름 핵발전소 부품 비리 사건으로 전력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기 아끼라는 정부 권고에 말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전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 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했을 땐. 사업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한 목소리를 냈던 것 같았습니다. ‘아니 위기는 정부가 자초해놓고 왜 값을 올리려고 하나.’
 
그래도 이를 계기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많이 드러났지요. 주택용보다 싸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 전력위기 속에서도 황금알을 낳고 있었던 전력 재벌들, 전력 낭비 주범은 가정보다는 공장, 사무실 등 산업시설이라는 것 등등.
 
하지만 지금처럼 전기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달리 방도가 없다는 사실엔 모두 외면했습니다. 에너지기본계획이 2035년에 80% 이상 전력 수요가 증가할 거라는 예측치를 내놓은 게 이를 반증합니다. 결국 핵발전소는 더 지어야하고 이에 따라 송전선도 더 세워야합니다. 그러니 우선은 정부말대로 아끼고 또 아껴 써야 할 텐데.
 
물론 ‘지금 이대로’를 앞장서 외치고 있는 건 산업계입니다. 전기 과소비 공장들이 즐비한 산업단지도 그렇고 대도시에 밀집된 고층 빌딩들이 주범인 것이지요. 하지만 돌아보면 아파트 베란다에 에어컨 없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고.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하고, 시장도 차 끌고 가야하니. ‘수요 관리 위주’ 정책이 들어설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결국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여기저기서 두들겨대고 있기는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 전봇대를 세워 전기를 넣어주는 것도 모자라. 발전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전기를 보내주는 한전에 모두가 길들여진 탓입니다. 그러니 민간합동워킹그룹이고 뭐고 간에 이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3.
오래전부터 분산형 그리고 수요 관리 위주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외딴 바닷가에서 전기 만드는 짓 하지 말자. 고압송전선 설치하느라 드는 돈은 물론, 이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도 해소하자는 겁니다. 송.배전 과정에서 생기는 전력 손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수요가 많은 곳 근처에 발전소를 짓고,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정책 수립으로 전환하면 가능합니다.   
 
전력을 과다 소비하는 대기업들이 전력 대란 속에서 ‘절전보조금’으로 돈을 버는 식의 수요 관리는 있으나 마나 합니다. 또 ‘자가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재벌 기업들에 전력 시장을 개방하는 식의 ‘민영화’는 특혜일 뿐이지요. 환경파괴적인 그래서 ‘재생가능’이라는 말이 무색한  대규모 발전단지를 만들 뿐인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 역시 재검토 돼야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건, 앞서 지적한 것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거꾸로 가는 에너지 정책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싼 전기에 중독된 사회, ‘절전은 개나 줘라’는 식의 무책임한 목소리를 바꿔내는 겁니다. 더 이상  기업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싼 전기가 무조건 필요하다는 생각. 반팔 입고 난방, 냉방하면서 긴팔 입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에너지 수요 전망치부터 낮춰야 핵발전소 폐기든, 재생에너지 확대 보급이든 가능하니까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던진 충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던진 외침도 멀리 퍼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예측도 못할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전기를 물 쓰듯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요. 그 소름끼치게 ‘웅웅’거리는 고압송전선 아래에는 가보지도 않으면서 ‘너희는 전기 안 쓰냐?’며 몰아붙이기를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이제 불과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민관합동워킹그룹 권고안 보다 나은 안을 정부가 내놓을 거라 예상치 않기에. 사실 그나마 남은 시간도 의미가 있을까도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제대로 낚였다며 허탈해하지 말고 ‘극적’인 에너지 정책 전환이 가능하도록 뭐라도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절약'이 미덕이라는 덕담말고 우리 미래를 위해 그렇게 하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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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4 11:44 2013/11/14 1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