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첫 핵발전소는 큰 저항 없이 들어섰습니다. 지금은 이름으로만 남은 ‘고리’. 주민들은 ‘공장’이, ‘전기’를 만드는 ‘공장’이니 하며 되레 기대를 갖기도 했습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헐값에 토지를 넘기고 쫓겨나야 했던 사람들은 그 살벌한 독재체제에서도 ‘물리적 저항’을 했습니다만. 영구 정지되는 마당에까지 ‘경제발전’이라는 담론으로 치장되고 있으니 그 당시엔 오죽했을까요. 무너져 내리고 해체된 건 해당 마을 뿐.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이름아래 순응, 동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핵무기 개발을 꿈꿨던 박정희가 월성에 중수로 핵발전소를 지으면서 주민들에게 했던 말은 ‘남북대치 상황’과 ‘국익’이었습니다. 경수로에 비해 최고 100배까지 삼중수소(저에너지의 베타선을 방출하며, 외부피폭 위험은 적으나 체내 흡수 시 같은 이유로 모든 방사선이 주변 세포에 즉시 흡수됨)가 만들어진다는 건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발전소를 가동 하는 중에는 거의 매일 핵연료를 교체해야 한다는 사실은 지금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반핵운동이 일어나자 정부는 의도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공략하기 시작합니다. 인근에 도시가 없는 ‘인구가 과소한 지역’이면서 ‘고학력자가 적은 곳’을 핵발전소 부지로 선정하고는 ‘소득향상과 삶의 질 개선’이라며 꼬드기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트로이 목마’가 울진에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목마가 트로이를 집어삼켰듯 ‘돈’이 지역사회를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핵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지역에 핵 관련 시설을 짓고 또 짓고. 그렇게 신화리는 송전탑에 포위됐습니다.  

 

주민들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폭발음에 일상적인 불안을 겪고 있습니다. ‘중고 부품’, ‘짝퉁 부품’, ‘위조된 품질보증서와 시험성적서’가 영광 5, 6호기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는데... “이게 폭발을 한 건지, 그냥 트립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발전소 주변 마을 도로는 고작 2차선입니다. 위급상황에서 주민들은 핵발전소가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집결해야 한답니다. “사고 나면 피할 길이 뻔한데. 법성까지만 도망가고 홍농 사람들은 다 죽으란 말이나 마찬가지죠.” 

 

밀양 할매, 할배들은 콘센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정확히 꿰뚫어봤습니다.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송전탑이 생기는 것도 알게 된” 겁니다. 그러다보니 ‘핵마피아 비리, 핵발전소 수출,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과 2차 에너지기본계획’은 당연스레 알게 됐습니다. ‘싸움 속에서 국가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그 정체를 깨달’았으며, 이제는 ‘국가’의 빈자리에 ‘연대’라는 새로운 기반을 채워 넣고 있지요. 이 땅,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험한 동거: 강요된 핵발전과 위험경관의 탄생>은 이상헌, 이보아, 이정필, 박배균 네 사람이 전기를 생산하는 핵발전소가 들어선 고리, 월성, 울진, 영광과 전기를 소비하는 대도시, 대공장을 연결하는 송전선로가 지나는 밀양에 사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습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이곳들을 찾아보면 금방 알겠지만. 달리 공통점이라고는 해안가에 있다는 것, 또 서울과 멀리 떨어진 것 외에. 맞습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엇비슷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전기 만드는 공장을 만든다는 것, 헐값에 토지가 수용되고 사람들은 쫓겨났다는 것. 집단 이주한 마을에서는 원주민의 마찰로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 발전소 건설 초기 반짝 건설 경기로 돈이 풀렸다는 것, 어장은 황폐화되고 농지는 쓸모없게 되면서 다시 핵발전소를, 또 다른 핵산업을 유치하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것, 정치인들은 문제해결이나 대책 마련보다 자기 자리 지키기 위해 이용만 한다는 것 말입니다.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이 한창일 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했더랬습니다. “당신들은 전기 안 쓰느냐? 전기 없이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님비니 어쩌니 손가라질 하기 바빴지요.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내서 찾아보면요. “전력자급률 서울 3%, 경남 210%. 수도권 전기 공급 하느라 지방 사람은 죽어갑니다.”라는 광화문 앞 1인 시위 푯말이 틀린 말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니요. 누군가의 고통을 대가로 값싼 전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눈감고, 외면하고, 모른 채 하는 겁니다.  

 

글 쓴 이들은 우리가 위험을 담보로 이룬 ‘근대적 발전의 달콤하게 소비할 수 있는 계급에 속하거나 그런 장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외면하면서 살아가기 쉽다고 말합니다. ‘위험은 울리히 벡이 말하듯 공평하고 민주적으로 우리에게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물리적으로 드러난 위험경관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살게 되는’ 것이랍니다. 해서 위험경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확대해 한국 사회에 널리 퍼뜨리는 확성기 역할을 맡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위험한 동거>는 확성기로써의 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핵발전으로부터 고통 받고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듣는 사람이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아니 여전히 듣기를 외면한다면요. 모처럼 열린 탈핵으로 가는 발걸음이 더딜 수 있습니다. 아니요. 핵 문명의 어둔 그림자가 다시 무대 위로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라도 책 곳곳에 새겨 있는 목소리들에 더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8/03/23 21:11 2018/03/23 21:11
사용자 삽입 이미지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폭발이 났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가 아직도 또렷합니다. 먼저, 결국 일이 터졌구나,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든 생각은, 맞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전에 있었던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 사고가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던 것인데요. 대량으로 누출된 방사능에 수많은 사람들이 피폭을 당한데다. 사고 인근 지역은 아직까지도 폐쇄된 채 언제 복구가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후쿠시마에 살고 있던 200만이 넘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피난구역으로 지정했던 반경 20-30km 내에 있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면서도 더 걱정이 됐던 건.
 
상대적으로 방사능 피폭에 취약한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었습니다. 가급적 빨리, 다른 무엇보다 우선 대피시켜야 한다. 20-30km가 아니라 50km, 100km까지 방사능 수치를 조사해 평상시보다 높으면 싹 다, 신속히 비워야 하는 거 아닌가 말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일본 정부도 같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20킬로미터 권역, 30킬로미터 권역을 설정하고 옥내 대피지역, 자발적 피난지역 등을 지정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사고 수습은 결코 적절하지도, 세심하지도 아니었음이 곧 드러납니다. 책에서 지적하듯이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피해보다 세심하지 못한 일괄 소개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된 겁니다.
 
수송과정에서 사망한 것은 물론이고 집과 땅을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까지 더하면. 모두를 몰아내는 것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아니 무책임한 방법이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정확한 정보를 주지도 않은 상황에서 시행되는 일방적이고도 강제적인 방식은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글쓴이가 살고 있는 미나미소마 시 하라마치 구만 해도 옥내대피역이지만 주민 3만 명 중 80퍼센트가 자발적 피난생활을 택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사사키 다카시 역시 같은 지적을 합니다. 98세의 노모와 치매에 걸린 부인을 데리고 집을 떠나는 것, 그것은 그 자체가 또 다른 재앙이라는 겁니다. 면밀하고 세심하게 주의를 살피며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않는 이상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사사키가 머물렀던 지역은 방사능 수치가 낮았습니다. 그러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발전소로부터 반경 몇 km 이내는 모두 ‘어쩌구, 저쩌구’와 같은 대책들은 세심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반경 안이라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서는 방사능 오염 정도가 다를 수가 있기도 하구요. 경계선을 놓고 한 마을 내에서도 어느 집은 대피지역으로 어느 집은 대피하지 않아도 되는 지역으로 나누어지기도 하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처음 사고 소식을 접하고 들었었던 생각도, 사고 직후 일본 정부가 취했던 조치들은. 그다지 세심하지 않은데다 사태를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대처하는 모습이 아니었음이 분명해집니다.
 
물론 전대미문의 사태 앞에서, 또 피해 수준을 예상할 수 없는 사고 앞에서는 가장 보수적이면서도 할 수 있는 한의 최대치를 해야 한다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과거에 발생했던 비슷한 사례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되레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세심하고 주의 깊은 대처가 있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태를 신속히 수습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속에서 지속되는 삶은 그 무엇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이니까요.
 
다카시가 치매에 걸린 아내와 함께 핵발전의 재앙 속에서 행한 ‘농성’에 대한 기록은 2012년 12월 3일이 마지막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는, 인간 존재와 실존에 대한 물음과 무책임한 국가에 대한 분노, 그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저자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처럼 “내 삶이 계속되는 한, 내 ‘이야기’는 계속 것이다. 그리고 분노할 것이고, 그 정당한 분노를 에너지 삼아 끝까지 꿈을, 희망을, 이상을 이야기 할 것”(p.313)임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거대한 사태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을 것이니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4/12/20 15:11 2014/12/20 15:11

죽음을 수출하는 나라. 죽음의 기술을 ‘녹색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나라. 어때요. 이만하면 MB식 ‘녹색성장’이란 게 뭘 뜻하는 것인지 확실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요. 자동차 100만대 수출에 맞먹는다며, ‘녹색외교’의 쾌거라며, 호들갑들을 떠는 게 결국 핵발전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니요. 

 

굳이 1986년에 발생했던 그 저주의 체르노빌 핵발전소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핵폐기물 처리를 둘러싸고 지난 20여 년 동안 벌어졌던, 1980년대 말 안면도, 1990년대 중반 굴업도, 2005년의 부안들을 돌아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단지 핵테크놀로지에 대한 경배와 찬양이 MB이 말하는 ‘녹색’이라는 이름아래 행해지고 있다는 게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2MB이 말하는 ‘녹색성장’이라는 것이 결국 죽음의 기술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그러니요. 한 가지만은 귀찮더라도, 아니 지금부터라도 꼼꼼히 챙겨봐야 할 것이 있는데요.  

   

지금 국회에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라는 게 제출돼 있습니다. 현재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 통과됐으니 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머지않아 국회를 통과할 겁니다. 헌데 이 법안 말이지요. 물산업 민영화, 탄소배출권 거래제과 같은 문제들은 둘째치더라도 말이죠. 이 법안에 대한 논의가 오가는 과정에서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규정하는 문구는 삭제됐지만 말이지요. 핵에너지에 대한 위험성과 그로 인한 정치-사회적 갈등들을 무시하면서까지 원자력 산업 육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핵발전을 녹색성장의 주력산업으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 쳇. 상황이 이러하니 2MB이 어찌 UAE까지 날아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원전 수출과 관련해 뒷얘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막판 협상과정에서의 여러 과정들을 소개하면서 이번 ‘쾌거’에 대한 성과를 한껏 부풀리기 위해서지요. 헌데요. 그 호들갑들 속에요.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몰랐을텐데요. 이미 UAE와 군사교류협력 증진과 방산협력에 기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군사협력협정’을 재작년에 체결한 바 있는데요. 이번 협상과정에서 글쎄. 양국이 기존보다 확대 심화된 군사협력을 맺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번 원전 수출이 ‘죽음’의 기술을 수출하는 것이라는 걸 여지없이 또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래저래 죽음을 수출하면서 국방장관에 대통령까지 나서는 나라. 어찌해야 하는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2/28 21:23 2009/12/28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