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곳곳에 현수막이 요란합니다. 이제 곧 지방선거니까요. 시장이든 도지사든, 지방의회든 교육감이든 꽤 짭짤한 보수와 각종 이권에 개입할 여지가 많아서인지(선거 뒤 뇌물 수수로 처벌 받거나 직을 잃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선거가 거듭될수록 나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동네에서도 각 당(黨)마다 나오는 후보들이 여러 명입니다. 현수막 가게가 때 아닌 호황인 이유지요.
 
2.
선거라는 것을 하고 나서부터 말입니다. 지금까지 표를 던진 사람이 당선이 된 경우가 있었나, 되돌아보면요. 6번의 대통령선거와 또 6번의 지방선거까지. 두 번의 교육감 선거만은 분명한데요. 나머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손에 무슨 신기라도 있는 건가요. 어쩌다 산 복권도 5등 한 번 안 되는 것처럼. 아니, 꼴등이나 안 하면 다행입니다. 개표방송 본지도 오래됐으니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3.
선거를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합니다. 선거라도 제대로 하자며 피 흘리며 싸운 분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래야 하겠는데. 지난 경험으로는 선뜻 동의가 되질 않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승자독식 문제까지 생각했어야 했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땐 체육관 대통령 말고 우리 손으로 뽑아보자, 시장도 군수도 민의를 거스르지 말라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으니까요.
 
4.
국회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선출합니다. 경상도에는 이당, 전라도에는 저당, 충청은 이저당, 지역주의가 여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은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이나 두 명을 뽑습니다. 뭐 세 명, 많게는 네 명까지 의원이 되는 선거구도 있지만요. 그러니 늘 빨간 색 아니면 파란 무늬, 거대 양당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1번과 2번. 기껏해야 3번 또는 4번. 그 이후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납니다.
 
5.
민주노동당이 처음 무상급식을 얘기했을 때 다른 정당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기초연금도 그렇고 무상의료 역시 그랬습니다. 녹색당과 노동당이 내걸었던 기본소득은 또 어떻습니까. 지금은 그 누구도 허황되고 무책임한 공약이라며 대놓고 무시하진 못합니다. 선거연령을 낮추자는 것도 그렇고 핵발전소를 멈추자는 목소리도 헌법 개정안에 반영되고 고리 1호기는 아예 영구정지 되지 않았습니까.
 
6.
가만 생각해보니 찍은 사람이 당선되지 않아 기억이 없는 게 아닙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아니 보수라고 자칭하는 이들이 처음 집권을 했던 10년 전쯤부터였을 겁니다. 더 이상 이대로 둬선 큰 일이 나도 여러 번 나겠다 싶은 겁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어차피 안 되는 사람보다는 저 사람은 꼭 떨어뜨려야 하니요. 늘 최선이 아닌 차악을 택하게 됐습니다.   
 
7.
그렇다고 민주정부라고 했던 때라고 뭐 크게 달랐겠습니까. 파병이다, FTA다, 비정규직법이다 해서 보수정권과는 얼마나 달랐나요. 하는 수 없어 다시 거리에 나서보았지만 달라지기는커녕. 이제 민주주의 사회가 됐으니 그런 ‘과격한 방법’은 버리고 선거로 의견을 표출하라는 점잖은 경고. 맞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선거라는 제도에 가두는 순간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릅니다.
 
8.
정당등록취소 요건을 완화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2번 국회의원 선거, 득표율이 1% 미만일 경우로 제한한답니다. 선심이라도 쓰듯 여야 합의로 ‘국회 헌법 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개혁소위원회’를 통과했다는데요. 4년 전, ‘득표율 2% 미만’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아낸 소수정당들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벌써부터 다음 이름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니지 모르겠습니다.
 
9.
선거구 분할은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한 선거구에서 4인까지 뽑을 수 있는 곳을 반으로 쪼개 2명씩 뽑는다는 겁니다. 이럴 땐 어찌나 짝짜꿍이 잘 맞는지요. 물론 대구와 같이 한 당이 영구 집권하는 곳 얘기가 아닙니다. 서울과 같은 곳마저 4인 선거구가 모두 2인 선거구로 나눠졌으니 하는 말입니다. 이럴 거면 헌법 개정안에 ‘비례성’원칙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0.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가 아닙니다. 선거는 주기적으로 한 번씩 투표소로 사람들을 불러내는 대의민주주의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1번이나 2번만을 강요하는 대의민주주의라면요. 다른 견해를 가졌다고 배제해버리거나 머릿수로 결정해버리겠다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맞습니다. 민주주의를 제도 안에 가두는 것도 모자라 차악을 강요하는 사표민주주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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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3 22:41 2018/04/03 22:41

나이가 든다는 것

from 말을 걸다 2017/05/10 22:25
1.
남자는 세 번 운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태어났을 때야 아무것도 모르는 때니 넘어가더라도. 두 번째 울음은 군대는커녕 대학 신입생이던 91년 5월 대한극장 앞과 종로 거리에서 맡았던 최루가스에 젠장. 앞으로 살면서 흘릴 눈물을 다 흘린 만큼이나 될까 싶게 밤낮으로 줄줄줄. 그리고는 93년, 화생방 훈련 때 남들은 죽네사네 할 때 코웃음 치며 그 말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 후로도 저 되지도 않는 말이요. 남자아이에게는 권총을 여자아이에게는 인형을 사다주는, 뿌리 깊은 남성우월주의, 아닙니다. 마초이즘일 뿐이라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믿어왔던 것 같습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말이지요.
 
2.
지금은 고기를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잘 입에 올리지 않지만요. 대학원 다닐 때쯤부터 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전까지 고기는 술과 늘 함께였습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세 번은 술을 마셨으니 고기 역시 삼겹살에 목살, 치킨, 적어도 껍데기를 그만큼은 먹었을 겁니다. 물론 술과 함께 먹었던 것 말고도 제육볶음이니, 불고기덮밥이니 시도 때도 없이 먹어댔으니 그 양이 꽤나 됐겠지요. 게다가 밥은 또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요. 아버지가 쌀가게를 했던지라 어렸을 때부터 밥 하나는 걱정 없이 먹었던 게 몸에 배서였나요. 그 나에 때면 으레 그 정도는 먹어야 했던 건가요. 고봉밥을 그것도 두 그릇은 게 눈 감추듯 먹어댔었습니다. 덕분에 어머니는 도시락을 몇 개씩 싸셔야했지요.
 
3.
공부를 그리 썩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다시 선생님께 갖다드려야 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성적표를 고치다 부모님께 들통 나 혼쭐이 난 적도 있었고요. 고등학교 때는 밤 10시까지 이어지던 야자를 빼먹고 당구장을 기웃거리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렇지만. 아무리 1시간 넘게 버스타고 친구 하나 없는 재수학원을 다녔다고 해도 말이지요. 대학이라는 데를 간 건. 역사책 129페이지 오른 쪽 상단에 무슨 그림이 있었는지, 사회책 몇 페이지에는 어떤 표가 있는지 까지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곯아떨어진 이등병이 한 밤중에 불려 들어간 당직실에서 사단장부터 훈련소 동기들 이름까지 줄줄이 꿰차 몽둥이찜질을 피할 수 있었던 것 말입니다.
 
4.
밤새 술 마시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2박 3일 MT를 다녀와서도 그날 바로 다른 MT를 갔습니다. 아무리 20대 때라고 해도 말이지요. MT라면 밤새 술 마시는 거 말고는 딱히 하는 것도 없으니 말 그대로 4일, 5일 내리 술만 마셨단 얘깁니다. 물론 속은 부대꼈지만 그렇다고 다음 날 수업을 빼먹거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되레 어디 또 무슨 건수나 없나 만나는 사람마다 슬쩍 떠보기도 하고 학교 근처 술집을 배회하기도 했으니까요. 누군 40일 연속 마셨다고 하기도 하고 또 누군 두 달 째라고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아침엔 세미나, 오후엔 집회, 저녁엔 술, 밤에도 술. 방학이고 학기 중이고, 주중이고 주말이고 달력이 따로 필요치 않았더랬습니다.
 
5.
꼭 세월호 참사 때부터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전에는 영화나 특히 드라마를 볼 때 옆에서 누가 눈물이라도 흘릴라치면 좀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요. 정확하진 않지만요. 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40이 넘어가는 언저리부터였을까요. 그땐 옆 사람 몰래였겠지만요. 한 번씩 쓱 눈을 훔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장실에 간다던가, 물을 마신다던가. 아무튼 그런 횟수가 조금씩 늘더니요. 지금은 옆에 누가 있던, 혼자 보던 말입니다.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올라치면 복받쳐 오르는 눈물 때문에 자꾸 멈춰보게 됩니다. 물론 세월호가 물속으로 잠기는 걸 지켜보던 그 때.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통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6.
밥을 고봉으로 먹고 하루가 멀다 고기를 먹어도 30인치를 넘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좀 살이 불었다 싶을 땐 며칠 운동 하거나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한결 몸이 가뿐해졌구요. 남들은 제대하고 난 후에는 살이 좀 졌다, 담배를 끊었더니 배가 나오더라 하던데요. 어찌된 게 변하는 게 없더라구요. 체중도 그렇고 허리도 그랬습니다. 그런데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했던 때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옆구리에 살이 좀 붙는가 싶긴 했지만 배는 그대로였거든요. 헌데 지금은요. 먹는 건 예전에 비해 반도 안 됩니다. 물론 고기는 연례행사마냥 거의 먹질 않구요. 하지만 조금씩 잡히던 허리 살부터 윗배까지 만만치 않습니다. 맘먹고 산에를 오르고 아침, 저녁으로 1시간씩 걸어도 말입니다.
 
7.
책상 위는 말할 것도 없고 노트북 여기저기에도 포스트잇이 붙어있습니다. 탁상달력은 중요한 일정을 적어놓는 것하고 자잘하게 기억해야할 것들을 써 넣은 것, 두 개입니다. 일을 할 때 요긴하게 쓰기도 했지만요. 이젠 년 말이나 년 초 다이어리를 사러가는 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들고 다니는 기자수첩에 노트만도 몇 개씩. 그런데도 약속 날을 잊기도 하고, 치과 갈 날을 놓쳐버리기가 일쑤니. 대체 이게 뭔 일란 말입니까. 어제 분명 이건 꼭 사야 돼, 하고 다짐해봐야 소용없다는 건 이미 꽤 됐습니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내일 꼭 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꼭 하는 거야”라고 아무리 되새겨도 안 되기에. 메모지에 적고 수첩에 써 놓는데도 깜빡깜빡. 머리통이 비워가는 느낌입니다.
 
8.
새로 이사 한 집이 동남향집인 탓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해가 뜰 때쯤 눈이 떠졌으니까요. 또 오래된 아파트라 층간 소음 때문 아닌가도 싶었지요. 낮잠을 자든 밤이 됐든 소스라쳐 일어나고 나면 어디선가 쿵쿵 거리는 소리가 났거든요. 그런데요. 밖에 나가 잘 때도 역시 새벽녘이면 절로 깨어나고 조그만 소리나 움직임만 느껴도 쉬이 잠들 수 없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갑니다. 해서 새로 암막커튼을 달아보기도 하고 안대를 써보기도 합니다. 하지만요. 할머니가 그랬던가요. 아니요, 할아버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닭이 채 울기도 전, 마당 쓸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모습. 단잠을 깨우던 그 소란스러움이 말입니다.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건만 몸이 따라가고 있는 겁니다.
 
9.
지난주 연휴에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왔습니다. 거리가 워낙 먼 탓도 있지만요. 한 이틀, 사흘 걷고 나면 그만큼은 또 쉬어야 합니다. 그러니요, 연휴가 아니면 쉽게 맘먹기도 어렵습니다. 동해안 바닷길 따라 걷기도 그렇습니다. 강릉에서 가까운 삼척을 걷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춘천 살면서 다녔던 고성, 속초보다도 속도를 못 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거리를 짧게 잡고 무리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지요. 버스타고 걷고 그러고 나면 다음날 일요일은 종일 쉬어야 하니요. 주말이 짧게 느껴져 나서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헌데요. 이렇게 걸어서 여행한 것 말구도요. 어디 한 삼, 사일 밖에 나갔다 오거나, 혹 아침 일찍 또는 저녁에 조금만 늦게 집에 들어오기만 해도요. 다음날은 꼬박 쉬어야 합니다.
 
10.
30대엔 30km로 40대엔 40km, 50대는 50km 속도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도 있지요. 젊었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 느끼는 세월의 흐름을, 갓 입대한 병사와 말년 병장이 가지는 서로 다른 마음입니다. 하지만 세월유수(歲月流水)는 30대도 70대도, 이등병도 예비역도 막지 못합니다. 다만 느낌만 저리 다를 뿐이지요. 그러면서도 마음 아린 건. 청춘이 오래지 않음을 모르는 건 그들 뿐, 나이가 든다는 걸 애써 외면하는 것도 오직 그때뿐이라는 겁니다. 쉬이 피곤하고 눈물이 많아지며, 아침잠이 없어지는 것. 나오는 배가 더는 어쩔 수 없다고 돌아서면 자꾸만 까먹는 걸요. 40이 넘고 50이 다 돼서야 이제 겨우 깨닫는 것. 언제쯤 깊고 넓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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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22:25 2017/05/10 22:25
1.
대세라던 인기 그룹 멤버들이 안중근 의사를 몰라본 일로 시끌벅적합니다. 급기야 SNS에 사과 글을 올린데 이어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않지 않았는데요. 이번엔 앨범 발표회를 중계하던 포털 앱이 문제였습니다. '안중근'을 금칙어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미 찍힌 '낙인'에 겹쳐 반응이 싸늘하기만 합니다.
 
반면 늘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던 한 연예인은 어렸을 적 안중근 이름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단번에 '천재' 소리를 들었습니다. 더구나 묘하게도 엇비슷한 때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까요. 비교당하는 건 기본이었습니다. 누군 역사의식 없는 요즘 아이돌로, 누군 '역사의 신'으로까지 등극하고 있는 겁니다.
 
그 밖에 1932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를 묻는 질문에 안창호를 택했던 사람. 초대 대통령으로 이수만을 외쳤던 이. 급기야 주말 예능프로그램에서마저 '조선무역팀', '칠공주' 같은 답들을 써낸 아이돌들까지. 뭐, 이번 일이라고 안 그렇겠습니까마는. 한동안은 비슷한 일만 생기면 또 이러쿵저러쿵 꺼내질 게 뻔합니다.
 
2.
예전 이맘때면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단골 뉴스였지요. 하지만 지금은요, 철 가리지 않고 발생하기 때문인가요. 황사보다는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어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대낮인데도 어둑어둑하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던 날씨가. 글쎄 미세먼지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정부가 갑작스레 미세먼지 대책으로 경유 값 인상을 솔솔 흘리고 있습니다. 물론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한 차량으로 '저공해차량인증제'를 통해서이긴 했지만요. 환경개선부담금 유예, 통행료 감면, 환승주차장 및 공영주차장 할인 등을 통해 디젤차 인기를 주도할 때는 언제더니 말입니다.
 
그러니 경유차 운전자들이 뿔날 수밖에요. 더구나 담배 값 인상 때 한 차례 경험도 했습니다. 값을 올려봐야 그때뿐, 결국 세금 더 걷으려는 꼼수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왜 그런지를 찾기보다는 말입니다. 없애버리거나 혹은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아왔으니 더 그렇습니다.
 
3.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가가 발행하는 단 하나의 교과서로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또 역사교육 강화라는 목적으로 한국사를 수능필수과목으로 지정했구요. 취임 때부터 단골로 등장했던 ‘비정상의 정상화’가 역사교육에도 등장한 것인데요. ‘올바른 역사의식’과 ‘자랑스런 현대사’를 국정화와 수능으로 하겠다는 겁니다.
 
역사에서 ‘올바른’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생각부터 대단하다고 생각됐지만요. 그동안 교육부에서 검정해왔던 교과서를 이제와 '비정상'으로 내모는 지 당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또 ‘역사지식’말고도 외워야할 게 많은 아이들에게 뭘 더 외우라고 하는 건가요.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은 아버지가 ‘자랑스런 현대사’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닌 건가요.
 
'안중근'이 어떻게 생겼고 어렸을 적 이름이 '안응칠'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 역사의식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더구나 내가 아니 너도 반드시 알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 그걸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구요. 역사적 사실을 줄줄 꿰어 차고 있다고, 수능 '1등급'이 수능 '6등급'보다 역사의식이 반드시 높은 것 또한 아닙니다.
 
4.
하다하다 이젠 식당에서 구어 주는 고등어에 돼지고기까지 미세먼지 주범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하기야 정부로서는 공장과 화력발전소로 불똥이 튀는 걸 막아야 하니 무슨 얘긴들 못하겠습니까. 이쪽에서 때리고 저쪽에서 또 때리고. 기업 눈치 보랴 여론 눈치 보랴 방향을 잃는 건 당연합니다.
 
또 생색내기 대책입니다. 노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거나 LNG로 대체하겠다는데, 지금 만들고 있거나 만들 예정인 석탄발전소 설비용량만 그것에 6배에 달하니 그렇습니다. 또 중국발 미세먼지 탓은 하면서도 함께 대책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는 없고, 나머지 미세먼지 절반을 뿜어내는 국내 기업과 공장에 대해서는 아예 무대책이니 말입니다.
 
분명 화력발전소보다야 못하겠지요. 또 공장 굴뚝보다야 낮을 겁니다. 하지만 경유차 역시 미세먼지를 내뿜으며 질주합니다. 정도만 다를 뿐이지요. 그러니 이런 저런 이유를 붙인다고 해도 말입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과시욕에 경쟁하듯 굳이 그렇게 큰 차들을 끌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요.
 
5.
오래 전, 한 사람은 월남 파병에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갈비에 기름덩어리가 나왔다고 '분개'하는 옹졸한 자신을 시로 옮겼습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안중근 의사를 몰라봤다고 '분개'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금, 우리는 지구를 먹고 자라는 자본주의에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세금 못 내겠다, '분개'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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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3 23:18 2016/06/13 23:18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됩니다. 6월 16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에너지위원회 권고 사항을 받아들여 2년 뒤 가동 연장을 신청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결국 1978년 첫 운전을 시작한 후 첫 핵발전 폐로(閉爐)라는 또 다른 기록을 남기게 됐습니다.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이하 ‘기본계획안’)도 공개됐습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조금씩 그 내용이 알려지긴 했습니다만,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이를 보고하면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셈입니다. 2015년부터 15년간에 대한 전력 공급 기본 계획 말입니다.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는 지난 금요일(에너지위원회가 열린 12일)에 사실상 결정됐습니다. 이에 앞서 7차 기본계획안은 8일 제출됐구요. 불과 1주일 사이에 에너지 문제와 관련된 중요 결정들이 나온 겁니다. 그렇지만 메르스 때문일까요. 별다른 반응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만 해도 첫 폐로 결정이라는 상징성은 물론이고. 이미 한 차례 연장된 월성 1회기가 다시 수명 만료일이 되는 2022년부터 29년까지. 무려 11기나 되는 노후 핵발전소 문제를 본다면, 맞습니다.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최근 미세먼지로 주목을 받고 있는 화력발전소 건설은 취소된 반면. 신규 핵발전소 2기를 건설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및 신재생에너지의 공급을 확대 하겠다는 7차 기본계획안 역시 꼼꼼히 살펴봐야 할 문제입니다.
 
우선 고리 1호기는 그 동안 핵발전소를 둘러싼 경제성 평가에서 늘 지적돼왔던 폐로 후 처리 비용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폐로 과정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 및 각종 중.저준위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따진다면 결코 만만찮은 일이 아닙니다.
 
또 이미 수명이 연장된 월성 1호기를 비롯, 향후 15년 동안 11기의 핵발전소가 수명만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고리 1호기 폐로 논의 과정에 있었던 제도적 허점 역시 이번 기회에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여 걱정입니다.
 
기본계획 역시 우선 6차 기본계획에서는 유보했던 영덕 1, 2호기 건설을 확정한 데다 신규 핵발전소 2기를 추가로 더 짓겠다고 하는데. 앞서 봤듯이 핵발전은 폐로과정은 물론 짓는 과정과 운영상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 밖에 안 됩니다.
 
더구나 기본계획은 에너지 문제를 공급 측면에서만 접근했습니다. 그러니 추가 발전소 건설에 초점이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배출감소량을 맞추려다보니 엉뚱하게도 핵발전이 친환경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고리 1호기를 영구 정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계속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한 데에는. 이들보다 조금 앞선 11일에 발표됐던 205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이하 ‘목표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답이 있는 것 아닌가도 싶습니다.
 
뭐, 벌써부터 산업계라는 이름 아래 목표치를 더 낮게 잡아야 한다는 볼 멘 소리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2005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오히려 배출량이 증가하고, 2020년 목표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으로 제시된 감축 목표 말입니다.
 
이 목표안에 따르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BAU)이 연평균 1.3% 증가하는 것으로 잡혀있습니다. 결국 203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 전망(BAU)이 8억 5,060만톤CO2-e로 늘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에너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86.9%입니다.
 
결국 늘려 잡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맞추기 위해서 핵발전소와 민간발전설비 증가라는 답 아닌 답을 내놓은 것입니다. 사실 정부는 지난 2011년 순환정전 사태 이후 발전 설비를 늘릴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목표안이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황까지 나서서 환경 관련 회칙까지 준비하고 있는 마당에 ‘개발도상국’이라는 되도 않는 엄살을 되풀이 하고 있는 건 좋은 모양새가 아닙니다. 전세계가 나서서 지구를 살리자는 데 우리만 ‘지금 이대로’를 외칠 수는 없으니까요.
 
온 나라가 메르스와 가뭄으로 시름을 앓고 있습니다. 메르스야 의학기술이 발전하면 백신도, 치료약도 만들 수 있겠지만. 매년 악화되는 가뭄과 잦아지는 집중호우와 같은 기상이변은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피할 수가 없습니다.
 
고리 1호기 폐로는 10년 연장 후 나온,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한 발 앞으로 나아간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발표된 목표안과 기본계획안은 에너지 문제에 있어 오히려 뒤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늦진 않았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과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은 말 그대로 목표안과 계획안이니까요. 지금부터라도 이 목표안과 계획안이 핵발전소 폐쇄라는 결정에 뒤이어 좀 더 나아간 계획들로 바꿔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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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17:58 2015/06/19 17:58
이제 보름 후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년이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참 많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참 많이 반성도 했고, 많은 다짐들도 했습니다. 다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 진실을 반드시 밝히자, 말입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수많은 눈물, 반성, 다짐들 어느 하나라도 진정 마음이 담겼었는지 의구심이 들게 되는 시간들이었지 싶습니다.
 
전 국민이 보는 가운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던 이는 선거가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유가족들 면담 요청에 경찰을 내세웠구요. 관피아다 모피아다 요란스레 굴었지만 결국 해경만 해체됐고 ‘박하산’은 여전하니까요. 곡기를 끊어가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유가족들 앞에서는 치킨과 피자를 나눠먹으며 한껏 조롱을 일삼았고,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미국 잠수함을 말하는 것이냐”며 또 ‘종북’ 타령이니 말입니다.
 
처음부터 세월호는 시간과의 싸움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배는 기울어 침몰하고 있지만 선원들만 구조하고 있었던 시간들. 대조기(大潮期)니 정조(停潮)니 하며 때만 기다렸던 시간들. 언제든 만나겠다던 말만 믿고 청와대 앞에서 밤을 지새웠던 시간들.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안산에서 팽목항에서 무수히 걸었던 시간들 말입니다.
 
사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어찌됐는지 알 수 없는 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속 시원히 알 수 없는 시간들. 코앞에 닥친 선거를 위해 무슨 말이든 못하랴 싶게 연일 속없는 말들을 내뱉던 시간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며 속절없는 공방만 하는 그 시간들 말입니다.
 
유가족들이 다시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엔 416시간 농성이랍니다. 세월호 특위를 무력화시킬 시행령을 즉각 철회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청와대로 가는 길은 경찰에 막혀있습니다. ‘기레기’들은 철지난 철새들 마냥 보이지도 않고, 대통령은 그리 자주 해외에 나가면서도 청와대 밖으론 한 발짝도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세월호는 분명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시작된 농성이 비록 416시간이라고는 하지만. 416일이 되더라도 아니 4년 1개월 6일이 되더라도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지, 또 왜 우리는 그걸 지켜보기만 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때야만 비로소 수많았던 다짐, 약속, 눈물들이 진심이었음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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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2 16:31 2015/04/02 1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