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는 쌀가게 이름을 ‘충남상회’로 지었습니다. 분명 나고 자란 곳이 아니며, 혹여 놀러라도 가본 적이 있을까. 그런데 ‘충남’ 상회라니요. 하지만 아버지는 고향을 물어보던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논산’에서 올라왔다, 말하시곤 했습니다.
 
전두환이었던가요, 노태우였던가요. 아버진 반장에 이어 통장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엔 민주정의당 당원에도 가입을 하셨지요. 그리고는 중앙연수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란 듯이 가게에 딸린 쪼그만 방 한 쪽에 걸었습니다.
 
2.
‘일간베스트’라는 사이트에서는 특정 도를 ‘홍어’에 빗대 비하하고 있다지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말로 돌아가신 대통령을 조롱하고. 배설하듯 내뱉는 이런 말들은 ‘마케팅’에 이용됩니다. 말뜻도 모를 아이들도 심심치 않게 쓴다고도 합니다.
 
지금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은 ‘광주사태’라 부르길 서슴지 않습니다. 총칼로 도려낸 누이의 젖가슴을 ‘폭도’라 하고, 후벼 판 동생의 가슴을 ‘빨갱이’로 칠하는 겁니다. 기념식은 열리지만 노래 한곡으로 반쪽이 되다 끝내 둘로 갈라졌습니다.
 
3.
빈곤과 착취의 땅이었습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세월이었지요. 봉건 왕조를 위해, 조국근대화를 위해 받친 숟가락이었던 겁니다. 씨 뿌리며 울고, 거두며 흘린 피눈물이 남도의 땅을 차고도 넘칩니다.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자들은 ‘식민지’가 필요했습니다. 위태위태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도 그러했고. 등 따습고 부른 배 두들기기 위해서도 그러했습니다. 역사가 이미 증명했듯 ‘착취’와 ‘수탈’이 또다시 자행된 겁니다.
 
4.
아직도 아버진 전라도가 고향이란 말을 내놓고 하진 못하십니다. 몇 년 전부터 다니시던 동창생들 모임도 소문내지 않고 다니시고, 동향 사람을 만나면 반가우실만도 한데. 무덤덤하기 이를 데 없고. 이력서에 본적 쓰지 않는 걸 어찌나 반기셨던지요.
 
가끔 술 한 잔 마시면 사투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아버진 여전히 완벽한 서울말만 쓰십니다. 우리끼리만 있는 집에서도 그러실 뿐만 아니라. 제사 때나 뵙는 작은 아버지들, 외삼촌들 모두 그렇지요.
 
5.
‘성공한 쿠데타’는 ‘예우’를 받지만 ‘실패한 혁명’에는 ‘모욕’ 뿐입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사투리’를 지키지만 ‘실패한 혁명’은 ‘말’과 ‘글’을 버릴 수밖에 없지요. ‘성공한 쿠데타’가 찍는 ‘줄투표’는 당당하지만 ‘실패한 혁명’의 ‘80%’는 ‘폐쇄’라 손가락질 받습니다.
 
‘호남상회’엔 ‘호남’사람들만 드나들고 ‘충남상회’엔 팔도 사람이 모입니다. ‘광주’는 가깝지만 멀고 ‘부산’은 멀지만 가깝습니다. ‘목포상회’는 ‘회칼’과 ‘용(龍)문신’으로 찍히지만 ‘부산상회’는 ‘근면’과 ‘성공’신화가 됩니다.
 
6.
‘충남상회’ 쌀가게 주인아저씨는 87년 6월 항쟁 뒤 첫 국회의원 선거 개표 날, 이상수씨가 당선됐다는 소식에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선거에 이겼던 날엔 마치 집안사람이 대통령이 된 듯했구요.
 
‘충남상회’를 20년 넘게 하셨던 아저씨는 통일민주당에서 평화민주당으로 다시 돌고 돌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바뀌었어도 늘 ‘민주당’이라 부릅니다. 딴 건 몰라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때면 여전히 2번을 찍으십니다. 투표 전에 꼭 자식들에게 물어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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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0 14:45 2014/08/20 14:45

지방선거가 두 달 남짓 않았습니다. 손바닥 뒤집듯 공약을 폐기하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판가름할 수 있겠고. 여론조작에 증거조작까지, 연이어 터져 나온 국가기관들의 국헌문란도 있고. 대선 후 첫 선거니 중간평가는 아니라도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될 수 있겠으니 다들 사력을 다하겠지요.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이건 뭐, 아직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이 시작된 건 아니라 해도. 지금으로선 재미없게 될 공산이 커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약이야 좀 전에도 말했듯, 어차피 맨 위 대통령부터 손바닥 뒤집듯 하니 애초 별 관심들은 없는 것 같고. 선거 때만 나타나 90도 허리 굽혀 인사하는 토호세력들 사이에서 그래도 참신한 사람이 나올까 아무리 둘러봐도, 온통 번지르르한 이들만 득실득실하니 말입니다. 게다가 언제부터인가 정당이라곤 달랑 두 개만 남았더니만. 정작 대놓고 싸울 일이 터질 때는 슬금슬금 눈치들만 보더니.
 
적과 싸우다 빨갛게 돼버린 새누리당은 그렇다 쳐도. 애초 뚜렷한 청사진이나 내용도 없는 뜬구름 ‘개혁’을 외치다. 꼴랑 보수 양당의 품안에 들어간 ‘새정치’ 세력들이 한다는 일이 고작. 표를 의식해 써 넣었던 ‘공천’이니 ‘무공천’이니 하는 것을 가지고 이제 와 무슨 대단한 것 인양. ‘약속’을 지키겠다느니, 당이 망하니 번복해야 된다느니 갈팡질팡하다. 마치 국민들이 원해서 공약했던 것처럼 되묻는 꼴만 보이고 있으니 그렇습니다.
 
결국 방구 뀐 놈이 성내는 꼴이라고. 처음부터 그 놈의 ‘약속’이란 걸 안 지킨 쪽으로부터 호되게 공격만 당할 게 뻔하고. 모르긴 몰라도 선거 끝날 때까지 ‘너네가 먼저 약속을 안 지켰다’니, ‘새정치한다더니 약속이나 깨느냐’니로 서로 헐뜯기만 할 겁니다. ‘종북’이라는 프레임에 ‘약속’만이 더해졌으니. 잇따른 대선 공약 파기도, 국가기관의 국기문란도, ‘통일 대박’도 다 무슨 소용이냐 이겁니다.         
 
한때 국회의원을 10명씩이나 당선시키기도 했던 이들이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흩어진 건. 그동안 한 지붕 아래 두 집이 용케도 잘 어울려 살았었다 생각하는 게 속편합니다. 물론 그들이 좀 더 동거하면서 판을 더 크게 짰으면 좋았을 겁니다. 요 몇 번의 선거동안 ‘복지’ 논쟁이 붙었던 것도, 속내는 다르지만 어쨌든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 유행된 것만 봐도 그러니까요. 그러니 그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지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후세대에 돌이킬 수 없는 폐기물만 남기는 핵발전 정책을, 온 산하를 파내고 뚫고 닦아내는 일을 그만두자는 녹색당은 ‘정당해산’이라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힘을 내고 있습니다. 주민투표와 주민소환 등 주민참정제도 전면 개선, 주민참여예산과 주민자치위원회 개선과 같은 공약을 내놓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간 겁니다. 비록 많은 곳에서 이런 얘기를 들을 수는 없겠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약속’들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아침, 저녁으로 교차로마다 자기 몸만큼이나 큰 푯말을 목에 걸고 환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틀이나 선거일이 늘었다고 요란한 현수막도 곳곳에 내걸리고, 가증스런 웃음과 몸짓이 담긴 명함도 길거리에 너저분합니다. 하지만 보이는 건 온통 빨간색과 파란색 일색입니다. 언제는 ‘약속’을 지키기는 했나 싶은, 그들뿐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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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9 11:37 2014/04/09 11:37
1.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핵발전 비중을 20%대로 낮추는 것을 권고했다기에 말입니다. 이 보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도 ‘수요관리 위주’로 에너지 기본 계획을 바꾸겠다고 했으니.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철석같이 그 말을 믿을 뻔 했던 겁니다.
 
역시나. 아니 제대로 낚였습니다. 발표했던 것처럼 핵발전 비중을 20%대로 낮추는 건 맞는 말이었습니다. 22-29%로 ‘대폭 축소’할 것을 제시한 것 말이지요. 헌데 말입니다. 의도적이었던 건지 숨기고 싶었던 건지. 정작 중요한 건 쏙 빼놓았던 거 아니었겠습니까.
 
정부가 ‘수요관리 위주’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으면 그만큼 에너지 수요 전망치도 낮춰 잡았어야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된 안을 보니. 최종 에너지 수요 전망은 물론 전력 수요는 어찌나 높게 잡아놨는지. 결국 비중은 축소됐는지 몰라도 핵발전소는 예정됐던 거에 추가로 더 지어야만 가능한 얘기였습니다.
 
산 너머 산입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주최한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에서 산자부 에너지자원실장이 핵발전 비중을 권고안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로 해야 한다고 밝힌 겁니다. 지금도 핵발전 비중이 26.4%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증핵(增核)’하겠단 얘기니. 삼척엔 당연히 핵발전소가 들어설 것이고, 제2, 제3의 밀양이 생길 수밖에요.    
 
2. 
지난여름 핵발전소 부품 비리 사건으로 전력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기 아끼라는 정부 권고에 말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전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 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했을 땐. 사업계는 물론 일반인들도 한 목소리를 냈던 것 같았습니다. ‘아니 위기는 정부가 자초해놓고 왜 값을 올리려고 하나.’
 
그래도 이를 계기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많이 드러났지요. 주택용보다 싸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 전력위기 속에서도 황금알을 낳고 있었던 전력 재벌들, 전력 낭비 주범은 가정보다는 공장, 사무실 등 산업시설이라는 것 등등.
 
하지만 지금처럼 전기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달리 방도가 없다는 사실엔 모두 외면했습니다. 에너지기본계획이 2035년에 80% 이상 전력 수요가 증가할 거라는 예측치를 내놓은 게 이를 반증합니다. 결국 핵발전소는 더 지어야하고 이에 따라 송전선도 더 세워야합니다. 그러니 우선은 정부말대로 아끼고 또 아껴 써야 할 텐데.
 
물론 ‘지금 이대로’를 앞장서 외치고 있는 건 산업계입니다. 전기 과소비 공장들이 즐비한 산업단지도 그렇고 대도시에 밀집된 고층 빌딩들이 주범인 것이지요. 하지만 돌아보면 아파트 베란다에 에어컨 없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고. 집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하고, 시장도 차 끌고 가야하니. ‘수요 관리 위주’ 정책이 들어설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결국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 여기저기서 두들겨대고 있기는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 전봇대를 세워 전기를 넣어주는 것도 모자라. 발전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전기를 보내주는 한전에 모두가 길들여진 탓입니다. 그러니 민간합동워킹그룹이고 뭐고 간에 이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3.
오래전부터 분산형 그리고 수요 관리 위주 에너지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외딴 바닷가에서 전기 만드는 짓 하지 말자. 고압송전선 설치하느라 드는 돈은 물론, 이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도 해소하자는 겁니다. 송.배전 과정에서 생기는 전력 손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수요가 많은 곳 근처에 발전소를 짓고,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정책 수립으로 전환하면 가능합니다.   
 
전력을 과다 소비하는 대기업들이 전력 대란 속에서 ‘절전보조금’으로 돈을 버는 식의 수요 관리는 있으나 마나 합니다. 또 ‘자가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재벌 기업들에 전력 시장을 개방하는 식의 ‘민영화’는 특혜일 뿐이지요. 환경파괴적인 그래서 ‘재생가능’이라는 말이 무색한  대규모 발전단지를 만들 뿐인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 역시 재검토 돼야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건, 앞서 지적한 것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거꾸로 가는 에너지 정책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 싼 전기에 중독된 사회, ‘절전은 개나 줘라’는 식의 무책임한 목소리를 바꿔내는 겁니다. 더 이상  기업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싼 전기가 무조건 필요하다는 생각. 반팔 입고 난방, 냉방하면서 긴팔 입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에너지 수요 전망치부터 낮춰야 핵발전소 폐기든, 재생에너지 확대 보급이든 가능하니까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던진 충격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던진 외침도 멀리 퍼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예측도 못할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전기를 물 쓰듯 쓰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요. 그 소름끼치게 ‘웅웅’거리는 고압송전선 아래에는 가보지도 않으면서 ‘너희는 전기 안 쓰냐?’며 몰아붙이기를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이제 불과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민관합동워킹그룹 권고안 보다 나은 안을 정부가 내놓을 거라 예상치 않기에. 사실 그나마 남은 시간도 의미가 있을까도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제대로 낚였다며 허탈해하지 말고 ‘극적’인 에너지 정책 전환이 가능하도록 뭐라도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절약'이 미덕이라는 덕담말고 우리 미래를 위해 그렇게 하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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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4 11:44 2013/11/14 11:44
여름 내내 도서관엘 다녔습니다. 전부터 사람 많은 휴가철엔 어딜 다니지 않았기도 했지만. 작년부턴 한여름을 어찌 보내야 하는 게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 된 후론. 올 여름엔 또 어찌 보내야하나 고민고만하다. 가까운 모루도서관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 제쳐놓고. 명색이 국립대학교인 강릉원주대 도서관을 찾아낸 후, 바로 여기다 싶어. 더위 피하러 도서관엘 다녔습니다. 때마다 해먹어야 하는 밥도 싼 값에 해결하고, 에어컨 설정온도가 27-28도이긴 해도 집보단 훨씬 시원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한 공간에 책 속에 파묻혀 있으니, 이거야 말로 제대로 된 피서가 아닐까요.
 
그날도 아침부터 내리쬐는 해를 피해가며 도서관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날도 그렀고 그 전날도 그랬을 게 틀림없는데. 눈에 보이질 않던 송충이가 그날따라 발밑으로, 조금 과장해서 발 옮길 틈도 없이 빽빽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나온 길을 보니 헉, 꽤나 많은 송충이들이 지나는 사람들 발걸음에 짓이겨 죽어 있는 게 아닙니까. 하자만 그 모습을 보면서도 사람 마음 참 간사한 게, 나무 그늘이라고 벗었던 모자를 얼른 집어 쓴 거 아닙니까. 아무튼 저 만치 버스는 오는데 발을 어디로 떼야 할 지 모르겠고, 가만 보니 바람에 떨어지는 송충이들도 있는데. 혹여 이쪽으로 떨어지는 건 아닌지 연신 모자와 옷을 털어대고. 어떻게 버스를 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네요.
 
매미나방 애벌레는 등에 노란 줄무늬가 특징인 우리 토종 벌레랍니다. 생긴 게 색깔만 다르지 송충이와 비슷한데. 요놈들도 여름이면 어김없이 출몰해 사람들이 놀래 신고를 많이 하는데요, 올 해도 여기저기서 나타나긴 했나봅니다. 하지만 유충 때를 지나 성충이 되면 크게 나무에 피해를 주지도 않을뿐더러 유충이라도 자연생태계에 특별히 유해하지 않다고 하는데. 일단 출몰만 했다하면 어떻게든 눈에 안 보이게 해달라는 말들이 많아서인지 서둘러 방역에 나서곤 합니다. 단지 징그럽다는 거 말곤 딱히 죽여야 할 이유도 없고. 죽은 시체들 때문에 바위나 의자에 앉지를 못한다는 것 빼곤 치워야 할 이유도 없는데도 말이지요.
 
그날 본 벌레가 송충이인지 매미나방 애벌레들처럼 다른 애벌레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겉모양만 봐선 다르다고 하는 말만 듣는다고 가려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다만 도로 주변에 소나무 대신 플라타너스가 죽 심어져 있는 걸로 봐선 송충이가 아닐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송충이도 다른 낙엽송을 먹는다고 하니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지요. 어쨌든 방제 덕택인지 요즘엔 보기 힘들었던 송충이들이 난데없이 나타나니 놀라기도 했는데. 거의 반사적으로 든 생각이란 게 고작. 여긴 약 치지 않나 보군, 이었으니. 그게 송충이인지 애벌레인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저 징그러운 해충일 뿐인 것이었겠지요.
 
언제부턴가 우린 벌레 한 마리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매년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방역차를 불러내고. 집집마다 뿌리는 것도 모자라 빛으로 유인해 태워 죽이는 것까지 설치하지요.  단지 생긴 게 징그럽다는 이유로. 또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는 핑계로 곳곳에 살충제를 뿌려대고 불태우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애벌레와 송충이는 어김없이 내년에도 다시 나탈 겁니다. 모기와 파리, 쥐, 바퀴벌레가 결코 박멸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다만 독성은 강해지고, 내성은 커질 뿐입니다. 결국 새들마저 외면하게 될 애벌레와 송충이들은 이전보다 더 큰 피해를 만들 것이고. 자연생태계는 그 균형을 잃게 될 겁니다. 벌레와 함께 그 많던 새들도 보이질 않잖아요.
 
비가 오고 나면 길에 온통 지렁이가 꿈틀댑니다. 날이 더워진다 싶으면 송충이가 출몰하구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모기가 극성이고 가로등 밑으로 나방들이 몰려듭니다. 하지만 딴 데서는 보기 힘든 참새 떼가 날아드는 모습도 볼 수 있구요. 이름 모를 온갖 새들이 아침, 저녁으로 요란하게 울어대는 소리도 함께 들을 수도 있답니다. 맞습니다.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여긴 먹을 게 참 많거든요. 그래서요.
 
내년 여름, 송충이가 우수수 떨어지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도서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재미를 벌써부터 기다리게 됩니다. 까짓 송충이가 대수겠습니까. 병을 옮기는 것도 아니고, 무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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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6 14:11 2013/09/06 14:11

또 ‘빨갱이’ 타령입니다. 물론 이번엔 직접적으로 ‘빨갱이’라 하지 않았지요. 다만 ‘운동권’ 출신, 그것도 ‘부총학생회장을 지낸 PD계열 인물’이라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곧이어 조.중.동을 위시해 앞 다퉈 옮기며 물 타기를 할 게 뻔하니까요. 아니, 이미 시작됐습니다. ‘주임검사’와 ‘운동권’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벌써 여기저기서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으니요. 한쪽에선 ‘언쟁’이니 ‘감정싸움’이니 하며 국회 내 공방을 전달하는 척하면서. 또 한쪽에선 본격적으로 ‘운동권’ 검사에 대한 이력을 세세히 소개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새누리당이나 조.중.동.일베 등으로 대표되는 보수들이 이런 짓을 벌이는 게 한, 두 번도 아니라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문제는 건건이 다 통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대응할 만한 가치도 없다는 얘긴 하나마나한 소리고. 전형적인 ‘물 타기’라고 길길이 날뛰며 목소리만 높이는 것도 역시 하나마나한 대응입니다. 그래봐야 ‘좌파’, ‘운동권’, ‘진보’라는 말이 ‘빨갱이’와 자동 연상되는 걸 바꿀 수도 없고. ‘빨갱이’ 소리만 들어도 움츠러들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도 바꿀 수 없으니까요. 또 엊그제 아침, 용어 혼란으로 생긴 문제를 가지고 호들갑을 떨며 “교육현장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대통령의 생각도 바뀌는 게 아니까요.

 

김동춘 교수(성공회대 사회학과)는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유산(遺産)으로 ‘전쟁이 사회 운영원리로 내재화되고 냉전적 정치경제 질서가 가장 철저하게 착근된 사회’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전쟁’중이라는 건데요. 여기서 논의를 더 진전시켜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면 말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이 ‘전쟁’을 누구와의 ‘전쟁’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또 바라보고 있는 지를 묻는다면. 맞습니다.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빨갱이’면 다 통하는 우리 현실을 온전히 드러내 줍니다. 아직도 ‘빨갱이’와 ‘전쟁’을 하고 있는 마당이니요. ‘적’으로 간주된 이는 ‘사살’되거나 ‘포로’로써 무장해제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또 힘없는 민중들은 정처 없이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북쪽이 대화를 제의하면서 남.북간 막혔던 통로가 열리는 가 싶었는데. ‘격’이 맞아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남쪽 주장으로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습니다. 6.15 행사는 반쪽행사로 끝났고, 북미 고위급회담도 ‘선(先)비핵화 조치’라는 압력에 막혀버렸습니다. 지난 ‘잃어버린 10년’을 돌이켜보면 한, 두 번 접촉으로 화해무드가 조성될 리가 없을 겁니다. 또 5.18 당시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마당에. 북쪽을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는 것 또한 쉽진 않을 겁니다. 더구나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상태인데다, 자국민마저 여차하면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판이니 말입니다.    

 

정연주 전 KBS사장은 <작은책>에서 행한 강연에는 37이라는 숫자를 반복해서 얘기했습니다. 지난 대선과 총선, 여론조사 결과 등등. 정 전 사장에 따르면 이 37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37은 우리 사회에서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보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인 겁니다. 진보는 ‘빨갱이’인 셈이고, ‘빨갱이’는 곧 ‘종북세력’이며, ‘좌파’와도 한 몸, ‘운동권’, ‘전교조’, ‘민주노총’은 물론 ‘민주당’까지도 관련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인 겁니다. 다시 말해 한국전쟁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포로’로써 무장해제를 당한 사람들인 것이지요. 여기에 ‘피난’ 떠나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맞습니다. 결코 이기기 쉽지 않습니다.  

 

‘핵’을 앞세운 카드를 만지작, 만지작하는 북쪽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핵’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을 초래할 무기로 현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생각은 결코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한반도 평화는 물론이고 급격한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과 미국에 견줄만한 군사력을 갖추기 위해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는 중국 등 동북아지역을 놓고 봤을 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초등학교 학생에게 헤비급 권투선수가 나서 한판 붙자고 하는 건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고양이가 쥐를 몰 때도 도망갈 곳은 만들어놔야 한다는 말처럼. 마냥 몰아세워서는 일이 되질 않기 때문입니다. 

 

‘빨갱이’에 ‘빨’만 나와도 눈치를 봐야 하는 사회입니다. 아니 너도나도 손가락질이라 해야 살아남는 요상한 나라입니다. 그러니 정부를 향해 이제 그만 이 ‘전쟁’을 끝내자고 말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가면서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행동도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라는 가치를 확고히 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당장 실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북.미간 국교도 정상화해야 합니다. 한반도, 아니 동북아 평화공동체 구성을 위한 논의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고, 발전소를 포함한 모든 ‘핵’을 동북아에서 제거하는 일도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들이야말로 ‘빨갱이’ 콤플렉스에 빠진 우리 사회를, 여전히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우리 국민들을 ‘민주주의’의 장으로, ‘평화’의 장으로 건져내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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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8 16:29 2013/06/18 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