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는 쌀가게 이름을 ‘충남상회’로 지었습니다. 분명 나고 자란 곳이 아니며, 혹여 놀러라도 가본 적이 있을까. 그런데 ‘충남’ 상회라니요. 하지만 아버지는 고향을 물어보던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논산’에서 올라왔다, 말하시곤 했습니다.
 
전두환이었던가요, 노태우였던가요. 아버진 반장에 이어 통장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엔 민주정의당 당원에도 가입을 하셨지요. 그리고는 중앙연수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란 듯이 가게에 딸린 쪼그만 방 한 쪽에 걸었습니다.
 
2.
‘일간베스트’라는 사이트에서는 특정 도를 ‘홍어’에 빗대 비하하고 있다지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말로 돌아가신 대통령을 조롱하고. 배설하듯 내뱉는 이런 말들은 ‘마케팅’에 이용됩니다. 말뜻도 모를 아이들도 심심치 않게 쓴다고도 합니다.
 
지금도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은 ‘광주사태’라 부르길 서슴지 않습니다. 총칼로 도려낸 누이의 젖가슴을 ‘폭도’라 하고, 후벼 판 동생의 가슴을 ‘빨갱이’로 칠하는 겁니다. 기념식은 열리지만 노래 한곡으로 반쪽이 되다 끝내 둘로 갈라졌습니다.
 
3.
빈곤과 착취의 땅이었습니다.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세월이었지요. 봉건 왕조를 위해, 조국근대화를 위해 받친 숟가락이었던 겁니다. 씨 뿌리며 울고, 거두며 흘린 피눈물이 남도의 땅을 차고도 넘칩니다.
 
총칼로 권력을 찬탈한 자들은 ‘식민지’가 필요했습니다. 위태위태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도 그러했고. 등 따습고 부른 배 두들기기 위해서도 그러했습니다. 역사가 이미 증명했듯 ‘착취’와 ‘수탈’이 또다시 자행된 겁니다.
 
4.
아직도 아버진 전라도가 고향이란 말을 내놓고 하진 못하십니다. 몇 년 전부터 다니시던 동창생들 모임도 소문내지 않고 다니시고, 동향 사람을 만나면 반가우실만도 한데. 무덤덤하기 이를 데 없고. 이력서에 본적 쓰지 않는 걸 어찌나 반기셨던지요.
 
가끔 술 한 잔 마시면 사투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아버진 여전히 완벽한 서울말만 쓰십니다. 우리끼리만 있는 집에서도 그러실 뿐만 아니라. 제사 때나 뵙는 작은 아버지들, 외삼촌들 모두 그렇지요.
 
5.
‘성공한 쿠데타’는 ‘예우’를 받지만 ‘실패한 혁명’에는 ‘모욕’ 뿐입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사투리’를 지키지만 ‘실패한 혁명’은 ‘말’과 ‘글’을 버릴 수밖에 없지요. ‘성공한 쿠데타’가 찍는 ‘줄투표’는 당당하지만 ‘실패한 혁명’의 ‘80%’는 ‘폐쇄’라 손가락질 받습니다.
 
‘호남상회’엔 ‘호남’사람들만 드나들고 ‘충남상회’엔 팔도 사람이 모입니다. ‘광주’는 가깝지만 멀고 ‘부산’은 멀지만 가깝습니다. ‘목포상회’는 ‘회칼’과 ‘용(龍)문신’으로 찍히지만 ‘부산상회’는 ‘근면’과 ‘성공’신화가 됩니다.
 
6.
‘충남상회’ 쌀가게 주인아저씨는 87년 6월 항쟁 뒤 첫 국회의원 선거 개표 날, 이상수씨가 당선됐다는 소식에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선거에 이겼던 날엔 마치 집안사람이 대통령이 된 듯했구요.
 
‘충남상회’를 20년 넘게 하셨던 아저씨는 통일민주당에서 평화민주당으로 다시 돌고 돌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바뀌었어도 늘 ‘민주당’이라 부릅니다. 딴 건 몰라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때면 여전히 2번을 찍으십니다. 투표 전에 꼭 자식들에게 물어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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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0 14:45 2014/08/20 14:45
사용자 삽입 이미지세계사에서 ‘아나키즘’이 조명을 받았던 적은 많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파리코뮨’ 정도지요.  하지만 ‘아나키즘’은 진보를 향한 투쟁이 있던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그 자취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 내전’이 그러하고 ‘러시아 혁명’도 그렇습니다. 가깝게는 ‘5.18 광주’에서도 공동체와 자율이라는 이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아나키즘’은 사상사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중요한 사상(思想)이자 원동력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 혹은 ‘무질서주의’ 정도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협동조합’이 각광을 받으며 ‘열풍’이 부는데 비하면 거의 푸대접에 가까운 상황인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전에도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 ‘아나키스트의 초상’등을 쓰며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던 하승우가 쓴 ‘세계를 뒤 흔단 상호부조론’은 지금 시점에서 꼭 봐야할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말로 ‘상호부조론’이라고 알려진 크로포트킨의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이란 책이 어떤 배경에서 쓰여 졌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당대에 그리고 또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풀어 쓰는 방법을 통해서 ‘아니키즘’의 역사와 내용, 유산을 간결하게 정리했으니 말입니다. 또 이회영과 신채호 등 우리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나키스트’들을 만날 수도 있고, 무한경쟁에 내몰린 우리 사회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드니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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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8 09:40 2013/06/28 0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