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어느 해안가 민박집 간판 ‘글랑블루’가 딱 어울리는, 바다가 연이어 펼쳐지니 눈만큼은 호사다. 그것도 바로 길 앞으로 20여 분이 넘게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묵호로 이사와 매일 바다를 봤지만 여긴 또 다르다. 조금 가다 바다보고 또 조금 가다 쉬고. 넉넉히 시간 잡아 걷기로 한 게 참 다행이다.






그래도 어느 해안가 민박집 간판 ‘글랑블루’가 딱 어울리는, 바다가 연이어 펼쳐지니 눈만큼은 호사다. 그것도 바로 길 앞으로 20여 분이 넘게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묵호로 이사와 매일 바다를 봤지만 여긴 또 다르다. 조금 가다 바다보고 또 조금 가다 쉬고. 넉넉히 시간 잡아 걷기로 한 게 참 다행이다.



스물일곱 번째 여행 - 해파랑길 ⑥ 태풍, 27구간(2019년 10월 13일)
또 태풍이다. 일본을 통과하고 있다지만 어찌나 큰 것인지 동해안 전역이 파랑주의보다. 버스 안에서 울리는 주의문자, 창밖으로 보이는 흔들리는 나무. 심상치가 않다. 더구나 삼척을 지나면서부터는 여기저기 흙이 밀려 내려왔던 흔적들. 집 안에까지 물이 찼던지 창문까지 다 뜯어내고 청소 중인 집들. 얼마 전 태풍 피해만 해도 아직 가시질 않았는데. 걱정이다.

부구에 내리니 바람이 그새 더 거세졌다. 온갖 쓰레기가 날라 다니고 때 이른 낙엽까지 지고. 핵발전소서부터 이어진 고압송전선이 머리 위에 어수선한데, 굉음까지 내지르고 있으니 이거야 원. 아스팔트 오르막이 아니라도 이런 고역이 또 어디 있을까. 뛰다시피 발길을 재게 놀린다. 어서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고목1리쯤 왔을 때서야 겨우 버스정류장에서 잠깐 쉰다. 그나마도 가는 날이 장날이던가. 해가 정류장 맞은편에서 내려 보고 있어 앉지는 못한다. 그래도 스트레칭으로 몸도 풀고. “환경이 숨 쉰다”는 되도 않는 말이 쓰여 있는 광고판을 보고 궁시렁도 대고. 겨우 요기밖에 안 왔나, 가야할 길도 짚어보고.
재미없고 지루한 길을 근 1시간이 걷다보니 길이 끊긴지도 모르고 지나쳤다. 헌데 그도 그럴 것이 교량 놓는다고 둑길을 다 헤쳐 놨으니 헤매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길이 저쪽으로 이어졌다고 표시가 됐는데 그걸 또 놓쳤으니 누굴 탓하랴. 조심조심 무너지지 않게 제방으로 올라서야지. 묶어 놓은 개쯤이야 이번엔 놀랄 일도 아니다.
후정2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면서부터는 한결 낫다. 바람은 여전하고 찻길이긴 하지만 오가는 차도 없고 송전선도 없다. 비 피해도 태풍이 지난 흔적도 없다. 느닷없이 나타난 활주로에 어안이 벙벙하다가도 곧 두 팔 벌려 누웠으니 쉬어가기 좋다. 사진촬영도 안 된다던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차만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느닷없이 나타난 강릉 어디쯤에서 걸었던 듯한 오솔길을 따라 죽변읍에 들어서니 4시가 살짝 넘었다. 죽변터미널까지만 가면 오늘 일정은 끝이니 여유를 부려본다. 걷기여행을 하면서 중간에 뭘 마시는 건 처음이지 싶다. 혹시나 해서 책을 넣어오긴 했는데 30분 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니.
드라마 세트장 이름과 딱 맞아떨어진다. 어찌나 파도가 센지. ‘폭풍 속으로’ 바닷가로 내려가기는커녕 눈에 찔릴까 대숲 사이를 지나기도 쉽지 않다. 여기저기 전망대가 놓여 있지만 여기도 통과. 멀찍이서 눈만 빼꼼 내밀고 까치발만 굴린다. 급기야 해변으로 갈 엄두가 나질 않긴 했지만. 길 중간이 허물어져 내려 앉아 있다.


하는 수 없다. 등대 쪽으로 올랐다 곧장 죽변항으로 내려가야지. 어디선가 본 듯하지만 크기가 커 남다른 항구를 따라 내처 터미널까지 걸었다. 시간상으로야 밥 먹고 차 타야겠지만 어째선지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맘이다. 찬바람에 걸어서일까 오랜만에 걸어서일까. 비, 태풍, 바람 때문인가 돔, 송전선 때문인가.

스물여섯 번째 여행 - 영화제를 사수하라!(2018년 9월 1일)
어쩌다보니, 아니 낮에 영화제를 가려니 땡볕에 걷을 수밖에 없다. 느긋이 점심까지 먹고 차를 탔다면 좀 늦게 돌아와서 그렇지 땀은 덜 흘릴텐데. 1년에 한번, 영화제라고는 정동진에서 하는 것 빼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없으니. 하기야 극장이라야 멀티플렉스빼곤 독립영화전문극장이 전부니 언감생심 영화제는 무슨. 그러니 10년 넘게 장애인인권영화제를 여는 것만도 대단하다.

모처럼 맞은 한가한 휴일 아침이 해서 소란하다. 눈뜨자마자 빵 한 조각 집어먹고 머리감고 옷 갈아입고. 평소 1시간도 넘게 걸리던 일들이 30분 만에 끝. 그래도 그 부산함 덕에 일찍 호산에 도착했다. 11시. 마음이 급하니 밥 먹는 것도 서두른다. 눈에 보이는 데로 중국집으로 직행. 허겁지겁. 먹는 게 아니라 우겨넣고 있다.
날이 너무 좋은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파란 하늘과 솜사탕 같은 구름은 보기엔 좋지만 피부엔 쥐약. 썬크림 잔득 바르고 모자로는 모자라 수건으로 얼굴을 꽁꽁 싸매니 이 좋은 날에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햇살에 반짝반짝, 호산천과 기곡천을 잇달아 건너고, 파랗다 못해 옥빛으로 빛나는 바다를 옆에 끼고 걸으니. 강도 바다도 이리 좋을 수가 없네.


다만 해파랑길이 바닷길로만 쭉 이어진 것이 아닌 탓에 이번에도 절반만 해파랑길을 따라 걷게 돼 아쉽다. 하지만 예쁜 월천해수욕장도 만나고 미역으로 이름 난 고포항도 오롯이 둘러보고. 이것도 꽤 괜찮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동해안 걷기는 해파랑길이 생기기 전부터 시작했던 것이니. 온전히 다 걷는다는 것도 큰 의미는 없다.
하얀 담길에 아기자기한 그림이 예쁜 고포마을에서는 버스정류장 그늘에서 한참을 쉬어간다. 늦어도 3시전에는 부구에 도착해야 영화제 끝부분이라도 볼 수 있으니 마음은 급하지만. 지도를 보니 예서부터는 오르막길이기도 하고 여태 해를 보고 걸었더니 땀도 나서다. 목도 축이고 마을이며 해변까지 두루두루 둘러본다.


오르막길 끝 어수선한 쓰레기 처리장까지 뛰다시피 지나고나니 곧 내리막이다. 거꾸로 자전거로 올라오는 이들이 있어 갓길을 내줘야 하니 차를 피해 섰다 가다 할 수밖에 없는데. 자전거 일주 도로와 걷는 길이 겹치는 부분은 꼭 이렇다. 다행이 갓길도 넓고 차도 많지 않아 빗겨가기 쉽지. 꼬부랑길이라도 되면 그게 또 여간 신경 쓰이는 곳이 아닐 수 없다.
가까이 핵발전소 돔이 보이는 곳인데도 바다에서 뭘 잡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도 물장구를 치고 있다. 괜한 걱정을 하는 걸까. 그 모습이 하등 좋아보이질 않는다. 곳곳에 서 있는 송전탑으로도 늘어선 콘크리트 건물들로도 위험은 감지되지 않는 듯. 눈에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으니 그럴 터인데 따뜻한 수온 덕에 낚시만 잘 되는 걸까.
터미널에 도착하니 강릉 가는 버스는 5시가 넘어서야 있다. 하는 수 없다. 시내버스타고 울진가서 갈아타야한다. 그래도 시간이 딱딱 맞았고 동해는 무슨 일인지 서지도 않아 늦진 않을 듯. 하지만 오랜만에 걸어서일까, 땡볕에 걸어서일까. 차에서 내내 곯아떨어졌는데도 피곤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영 틀린 것 같다. 아침부터 그리 부산을 떨었건만. 영화제 사수는 물 건너갔다.
* 스물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호산터미널에서 핵발전소가 있는 부구까지 바닷길을 따라 약 10km.
* 가고, 오고
부구에서 강릉은 오후 시간에 차가 별로 없으니 꼭 확인해야 한다. 안 그러면 울진을 거쳐 오는 수밖에 없다.
* 잠잘 곳, 먹을 곳
출발지와 도착지를 빼곤 여름 한 철 장사하는 곳밖에 없다.


스물네 번째 여행 - 그냥, 다시 바닷길 따라 걷는 길(2017년 9월 30일)
가뜩이나 시간에 쫓기고 있는데 신남항에서 일이 생겼다. 그놈의 개. 묶여 있긴 하지만 어찌나 사납게 짖어대던지. 근래 하도 개에 물려 다친 사람들이 많아 잔뜩 긴장하고 다녔건만. 언제나 그렇듯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소리. 또 가까운 길 놔두고 돌아간다. 그것도 왔던 길 되돌아서. 못해도 30분은 허비했으니. 뒤에 임원항 입구에서 마주친 늑대 같던 개도 다 이 때문이다.
이 글에 관한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