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됩니다. 6월 16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에너지위원회 권고 사항을 받아들여 2년 뒤 가동 연장을 신청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결국 1978년 첫 운전을 시작한 후 첫 핵발전 폐로(閉爐)라는 또 다른 기록을 남기게 됐습니다.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이하 ‘기본계획안’)도 공개됐습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조금씩 그 내용이 알려지긴 했습니다만,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이를 보고하면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셈입니다. 2015년부터 15년간에 대한 전력 공급 기본 계획 말입니다.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는 지난 금요일(에너지위원회가 열린 12일)에 사실상 결정됐습니다. 이에 앞서 7차 기본계획안은 8일 제출됐구요. 불과 1주일 사이에 에너지 문제와 관련된 중요 결정들이 나온 겁니다. 그렇지만 메르스 때문일까요. 별다른 반응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고리 1호기 영구 정지만 해도 첫 폐로 결정이라는 상징성은 물론이고. 이미 한 차례 연장된 월성 1회기가 다시 수명 만료일이 되는 2022년부터 29년까지. 무려 11기나 되는 노후 핵발전소 문제를 본다면, 맞습니다.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최근 미세먼지로 주목을 받고 있는 화력발전소 건설은 취소된 반면. 신규 핵발전소 2기를 건설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및 신재생에너지의 공급을 확대 하겠다는 7차 기본계획안 역시 꼼꼼히 살펴봐야 할 문제입니다.
 
우선 고리 1호기는 그 동안 핵발전소를 둘러싼 경제성 평가에서 늘 지적돼왔던 폐로 후 처리 비용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폐로 과정에서 나오는 사용 후 핵연료 및 각종 중.저준위 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따진다면 결코 만만찮은 일이 아닙니다.
 
또 이미 수명이 연장된 월성 1호기를 비롯, 향후 15년 동안 11기의 핵발전소가 수명만료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고리 1호기 폐로 논의 과정에 있었던 제도적 허점 역시 이번 기회에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별 뾰족한 수가 없어 보여 걱정입니다.
 
기본계획 역시 우선 6차 기본계획에서는 유보했던 영덕 1, 2호기 건설을 확정한 데다 신규 핵발전소 2기를 추가로 더 짓겠다고 하는데. 앞서 봤듯이 핵발전은 폐로과정은 물론 짓는 과정과 운영상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 밖에 안 됩니다.
 
더구나 기본계획은 에너지 문제를 공급 측면에서만 접근했습니다. 그러니 추가 발전소 건설에 초점이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배출감소량을 맞추려다보니 엉뚱하게도 핵발전이 친환경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고리 1호기를 영구 정지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계속 핵발전소를 짓겠다고 한 데에는. 이들보다 조금 앞선 11일에 발표됐던 205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이하 ‘목표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답이 있는 것 아닌가도 싶습니다.
 
뭐, 벌써부터 산업계라는 이름 아래 목표치를 더 낮게 잡아야 한다는 볼 멘 소리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2005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오히려 배출량이 증가하고, 2020년 목표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으로 제시된 감축 목표 말입니다.
 
이 목표안에 따르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BAU)이 연평균 1.3% 증가하는 것으로 잡혀있습니다. 결국 203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 전망(BAU)이 8억 5,060만톤CO2-e로 늘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에너지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86.9%입니다.
 
결국 늘려 잡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맞추기 위해서 핵발전소와 민간발전설비 증가라는 답 아닌 답을 내놓은 것입니다. 사실 정부는 지난 2011년 순환정전 사태 이후 발전 설비를 늘릴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목표안이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황까지 나서서 환경 관련 회칙까지 준비하고 있는 마당에 ‘개발도상국’이라는 되도 않는 엄살을 되풀이 하고 있는 건 좋은 모양새가 아닙니다. 전세계가 나서서 지구를 살리자는 데 우리만 ‘지금 이대로’를 외칠 수는 없으니까요.
 
온 나라가 메르스와 가뭄으로 시름을 앓고 있습니다. 메르스야 의학기술이 발전하면 백신도, 치료약도 만들 수 있겠지만. 매년 악화되는 가뭄과 잦아지는 집중호우와 같은 기상이변은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피할 수가 없습니다.
 
고리 1호기 폐로는 10년 연장 후 나온,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한 발 앞으로 나아간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앞서 발표된 목표안과 기본계획안은 에너지 문제에 있어 오히려 뒤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늦진 않았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안과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은 말 그대로 목표안과 계획안이니까요. 지금부터라도 이 목표안과 계획안이 핵발전소 폐쇄라는 결정에 뒤이어 좀 더 나아간 계획들로 바꿔지길 기대해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5/06/19 17:58 2015/06/19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