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세라던 인기 그룹 멤버들이 안중근 의사를 몰라본 일로 시끌벅적합니다. 급기야 SNS에 사과 글을 올린데 이어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않지 않았는데요. 이번엔 앨범 발표회를 중계하던 포털 앱이 문제였습니다. '안중근'을 금칙어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미 찍힌 '낙인'에 겹쳐 반응이 싸늘하기만 합니다.
 
반면 늘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던 한 연예인은 어렸을 적 안중근 이름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단번에 '천재' 소리를 들었습니다. 더구나 묘하게도 엇비슷한 때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까요. 비교당하는 건 기본이었습니다. 누군 역사의식 없는 요즘 아이돌로, 누군 '역사의 신'으로까지 등극하고 있는 겁니다.
 
그 밖에 1932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를 묻는 질문에 안창호를 택했던 사람. 초대 대통령으로 이수만을 외쳤던 이. 급기야 주말 예능프로그램에서마저 '조선무역팀', '칠공주' 같은 답들을 써낸 아이돌들까지. 뭐, 이번 일이라고 안 그렇겠습니까마는. 한동안은 비슷한 일만 생기면 또 이러쿵저러쿵 꺼내질 게 뻔합니다.
 
2.
예전 이맘때면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단골 뉴스였지요. 하지만 지금은요, 철 가리지 않고 발생하기 때문인가요. 황사보다는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어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대낮인데도 어둑어둑하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던 날씨가. 글쎄 미세먼지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정부가 갑작스레 미세먼지 대책으로 경유 값 인상을 솔솔 흘리고 있습니다. 물론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한 차량으로 '저공해차량인증제'를 통해서이긴 했지만요. 환경개선부담금 유예, 통행료 감면, 환승주차장 및 공영주차장 할인 등을 통해 디젤차 인기를 주도할 때는 언제더니 말입니다.
 
그러니 경유차 운전자들이 뿔날 수밖에요. 더구나 담배 값 인상 때 한 차례 경험도 했습니다. 값을 올려봐야 그때뿐, 결국 세금 더 걷으려는 꼼수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왜 그런지를 찾기보다는 말입니다. 없애버리거나 혹은 엉뚱한 곳에서 원인을 찾아왔으니 더 그렇습니다.
 
3.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국가가 발행하는 단 하나의 교과서로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또 역사교육 강화라는 목적으로 한국사를 수능필수과목으로 지정했구요. 취임 때부터 단골로 등장했던 ‘비정상의 정상화’가 역사교육에도 등장한 것인데요. ‘올바른 역사의식’과 ‘자랑스런 현대사’를 국정화와 수능으로 하겠다는 겁니다.
 
역사에서 ‘올바른’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생각부터 대단하다고 생각됐지만요. 그동안 교육부에서 검정해왔던 교과서를 이제와 '비정상'으로 내모는 지 당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또 ‘역사지식’말고도 외워야할 게 많은 아이들에게 뭘 더 외우라고 하는 건가요.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은 아버지가 ‘자랑스런 현대사’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닌 건가요.
 
'안중근'이 어떻게 생겼고 어렸을 적 이름이 '안응칠'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 역사의식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더구나 내가 아니 너도 반드시 알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또 그걸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구요. 역사적 사실을 줄줄 꿰어 차고 있다고, 수능 '1등급'이 수능 '6등급'보다 역사의식이 반드시 높은 것 또한 아닙니다.
 
4.
하다하다 이젠 식당에서 구어 주는 고등어에 돼지고기까지 미세먼지 주범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하기야 정부로서는 공장과 화력발전소로 불똥이 튀는 걸 막아야 하니 무슨 얘긴들 못하겠습니까. 이쪽에서 때리고 저쪽에서 또 때리고. 기업 눈치 보랴 여론 눈치 보랴 방향을 잃는 건 당연합니다.
 
또 생색내기 대책입니다. 노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거나 LNG로 대체하겠다는데, 지금 만들고 있거나 만들 예정인 석탄발전소 설비용량만 그것에 6배에 달하니 그렇습니다. 또 중국발 미세먼지 탓은 하면서도 함께 대책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는 없고, 나머지 미세먼지 절반을 뿜어내는 국내 기업과 공장에 대해서는 아예 무대책이니 말입니다.
 
분명 화력발전소보다야 못하겠지요. 또 공장 굴뚝보다야 낮을 겁니다. 하지만 경유차 역시 미세먼지를 내뿜으며 질주합니다. 정도만 다를 뿐이지요. 그러니 이런 저런 이유를 붙인다고 해도 말입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과시욕에 경쟁하듯 굳이 그렇게 큰 차들을 끌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요.
 
5.
오래 전, 한 사람은 월남 파병에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갈비에 기름덩어리가 나왔다고 '분개'하는 옹졸한 자신을 시로 옮겼습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안중근 의사를 몰라봤다고 '분개'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금, 우리는 지구를 먹고 자라는 자본주의에는 '반항'하지 못하면서 세금 못 내겠다, '분개'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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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3 23:18 2016/06/13 2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