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초겨을 걷기에 앞서 부석사에 오르다(2010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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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얼마나 많은 절들이 의상대사와 관련이 있을까. 지난 번 걷기 때 들렀던 낙산사도 그렇고. ‘배흘림기둥’으로 알려진 무량수전 서쪽 편에 있는 바위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신라 때 지어진 화엄종(華嚴宗) 근본도량(根本道場)인. 잔뜩 구름 낀 하늘 탓에 모처럼 나온 여행이 도무지 흥이 나지 않고. 차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서야 겨우 만날 수 있는 부석사(浮石寺)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한쪽이 무량수전에서부터 시작해 삼층석탑, 석조여래좌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재를 갖고 있으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반면. 다른 한쪽은 소박한 절, 바다에 떠 있는 부석이 오히려 설화와 더 어울리나 다른 절에 가려져 있다는 점에서 꽤나 대조적인 듯하지만. 영주에 자리 잡고 있는 부석사나 충남 서산 부석에 있는 부석사나. 모두 이름도 같고. 의상(義湘)과 선묘(善妙) 사이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애틋한 사랑(?)을 창건설화를 갖고 있다는 점 모두 같다. 이쪽, 저쪽마다 조금씩은 다르고 조금씩은 윤색됐긴 하지만 이를테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의상은 지장사에서 지엄법사라는 스님을 스승으로 삼고 정진했다. 이때 지장사 아랫마을에 살던 선묘가 의상을 흠모하게 됐는데 의상은 이를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가려는 의상 앞에 선묘가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하지만 의상은 이미 출가한 사람으로 불가함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묘는 자신도 불교에 귀의해서라도 스님 곁에 머물겠다며 애원했다. 그러나 의상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며 거듭 만류했고 이에 낙담한 선묘는 배를 타고 떠나는 의상을 따라 바다에 몸을 던졌다. 선묘는 의상이 무사히 고국에 닿을 수 있게 대룡(大龍)이 된 것이다.”와 같은 얘기들을 말이다.
 
보름만 일찍 왔더라면 마지막 단풍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아니 다 떨어진 노란 단풍이라도 밟으며 오를 수 있었을 것을. 단풍나무고 은행나무고 잎이 남아 있는 게 없다. 하지만 늦게 온 만큼 더 고즈넉한 경내를 즐길 수 있고, 무량수전 기둥에 기대어 척척 겹쳐놓은 산등성이 너머를 오랫동안 볼 수 있었으니. 몸은 피곤하고, 또 절을 나서면 먼 길을 가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그래도 기분은 조금씩 나이진다.
 
둘째 날, 황사와 바람에 지쳐 겨우 소돌에서 멈추다(2010년 12월 4일)
 
예전엔 섬이었으나 지금은 육지와 연결된, 사시사철 송죽이 울창해 이름 붙여진 죽도(竹島)를 둘러보기 위해 등산로(?)에 오르니 엊저녁 묵었던 숙소에서 보던 바람과는 생판 다르다. 밤새 황사가 온다니 강풍이 불겠다니 하는 예보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 설마 했고. 이러다 아침 내내 방구석에 있을 것 같은 불길한 마음을 떨치고 나오긴 했지만.
 
이거 심상치가 않다. 가까이 보이는 파도도 그렇고 멀리 내다보는 바다도 그렇고, 바람이 바다 쪽으로 불어서인지 영, 바람이 세지 않을 듯한데. 바다와 가까운 산책길을 걸을 때부터 심상치 않던 게 결국 죽도정(竹島亭)에 오르는 길에 접어드니, 허걱. 자칫 잘못하면 날아갈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여기서 좌절할 순 없지. 가보는 데까지 가보는 거다. 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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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황사, 바람에 걷기가 힘들지만 바다만큼은 눈부시다> 

 
그렇게 죽도를 한 바퀴 돌고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니 바람이 아까보다 더 심한 게 아닌가. 게다가 황사가 다 지나지 않았는지 목도 따끔따끔하다. 모자에 마스크, 겨울옷까지 완벽하게 바람을 막았다 싶은데도 여기저기 바람이 들이친다. 게다가 걷는 방향과 같기라도 하면 달려갈 듯 발걸음 나도 모르게 옮겨지는 게 걱정되긴 하지만 좀 낫지. 맞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이건 눈도 뜨기 힘들고 발을 내딛기가 어렵다. 그야말로 난감지사다. 그래도 꿋꿋이 앞으로 나간다. 점심때가 지나면 바람이 좀 잦아들겠지, 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길이 있을 거란 짐작만 갖고 수풀을 헤치다, 또 해변을 따라난 길이 있을 거란 짐작만 갖고 을 철책을 따라 가다, 결국 건너야 할 나무다리가 철책 너머 있는 걸 보고는 되돌아오길 30여 분. 그렇게 바람 뚫고 길 헤매며 겨우겨우 남애항에 도착하니. 배꼽시계 벌써 지났고 화장실이 급해 허겁지겁 들어간 식당에 겨우 시킨 게 물회라니. 한 여름 그 많은 항구를 지나면서 거들떠도 안 봤던 걸 여기 와서 시키고 나니, 참 어이없다. 게다가 그 세찬 바람 속에 생고생을 하며 와 몸은 으슬으슬 추운데. 뭐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셈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시킨 음식이고 이미 차려진 음식이니 먹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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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한 사람은 맛나게 먹었지만 한 사람은 비릿한 맛에 수저를 통 들지 못했다. 게다가 겨우 몇 숟가락 뜬 음식이 찬 거라 길을 다시 나서니 추위가 되레 전보다 더하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바람도 아침보다 더 거세다. 아무래도 이러다 일 나겠다, 싶다. 그래 어쩔 수 없다, 싶어 발걸음을 멈추고 슈퍼에 들러 빵이랑 우유를 사들고 버스정류장에 서니. ‘소돌’이란 글자가 보이고, 다행히 강릉까지 가는 버스도 있다. 또 당초 강릉 사천항까지 걷고자 했지만. 소돌도 강릉이고 하니 다음 번 시작도 여기면 괜찮을 듯. 저만치 오는 강릉 시내버스에 주저 없이 오른다. 
 
* 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인구항에서 강릉 주문진 소돌까지 약 10km.
 
* 가고, 오고
걷기여행 전날 영주에 있는 부석사를 들렀는데 다행히도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어 번잡스럽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주문진이나 인구항 모두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속초방면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면 되니 어느 곳에서 출발하든지 일단 강릉으로 가야 할 듯. 차 시간도 자주 있는 편이고 또 늦게까지 있으니 계획 세우는데 그리 어렵지 않음
 
* 잠잘 곳
괜한 걱정이 화를 부를 듯. 너무 많은 정보가 때론 마음을 상하게도 하니 현지에서 물어물어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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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3 09:13 2012/05/23 09:13

사용자 삽입 이미지심심한 7번 국도, 해 넘어 도착한 곳 인구항(2010년 9월 18일)

 

꼭 한 달만이다. 날씨가 좋아 걷기로 했지만 곧 추석이고. 길게는 9일 가까이나 되는 연휴인지라 길이 많이 막힐 것 같아 연휴 시작에 갈까, 연휴 끝에 갈까 고민도 됐고. 이제 막 마르기 시작한 고추도 하루, 이틀은 더 바싹 말려야 안심이 될 것 같아 어쩔까 걱정도 됐지만. 또 며칠 전부터 속도 좋지 않고 조금만 무리해도 피곤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잠만 쏟아지고 있지만. 이런 저런 일을 생각하다보면 언제 또 가려나 싶어, 이렇게라도 걸어야 운동이 되려나 싶어. 일단 가자, 새벽차를 탄다.

 

오색령을 넘어갈 때까진 썩 기분이 좋질 않았다. 또 이 이유 없이 싸우다 그리됐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꽤나 재밌었을 듯싶다. 보기엔 웃기지도 않는 걸로 둘이 싸우는 가 싶더니, 잠깐 섰다 가던 원통터미널에선 급기야 울기까지 하고. 그러다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가는데 뭐가 좋은지 웃고 떠드니. 지겹기만 하진 않았을테다.   

 

새벽에 나선 탓에 세 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왔는데도 양양에 도착하니 10시도 못됐다. 하루 종일 걸어 남애항이나 인구항까지 가고자 계획을 세웠는데. 둘러가고, 돌아보고 가도 대충 20km정도니 무리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느긋한 마음에 찬찬히 길을 나선다. 어딜 가도 읍내는 구경하지 않는 법인데. 터미널 주변이긴 해도 이곳저곳 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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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남짓이나 걸었을까. 전날 미리 사 놓은 김밥에 과일까지 바리바리 싸 가져와 버스 안에서 주섬주섬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다. 국도를 벗어나 오랜만에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며 호젓함을 느끼려면 아무래도 뭘 먹지 않으면 안 되겠다. 헌데 이 아침부터 밥하는 데가 있을까. 한참 휴가철이라면 걱정 없겠지만. 어딜 가나 때를 놓치면 밥 한 끼 먹기도, 하룻밤 묵어가기도 쉽지 않으니. 그래도 선사유적지 근처에 가니 아침밥을 하는 곳이 있어 청국장에 밥 한 그릇씩 뚝딱. 든든히 배를 채운다.

 

먹었으니 이제 힘을 내 길을 걸어야겠는데. 동해안 일주여행 하면 으레 떠오르는 길. 7번 국도. 하지만 그 7번 국도는 옛 명성에 통 걸맞지 않다.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느리게 내려가던 그 2차선 길은 다리미질 한 것 마냥 일직선, 게다가 바다는 저 멀찍이 떨어져 있어. 걷기엔 참 재미없고 심심하기만 한데. 당분간은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힘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어쩌겠나. 잔뜩 구름낀 흐린 날씨지만 벌써 노랗게 패인 벼들과 울긋불긋 코스모스들이 있어, 그 보는 재미에 겨우겨우 나간다. 또 수산항과 동호리에선 등나무 아래, 쉼터 의자에서 오랫동안 이 얘기, 저 얘기 이야기꽃을 피우며 쉬엄쉬엄 가니.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해가 나왔다, 들어갔다. 한 여름 불볕더위 못지않은 햇볕을 피해 쉬었다가, 선선한 가을바람에 또 걸었다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메밀전병에 막국수 한 그릇씩 후루룩 말아먹고는 다시 7번 국도 위에 서는데. 좀 전에 걷던 지방도하고는 달리 널찍한 갓길이 있어 둘이 나란히 걸을 수도 있지만. 바람과도 같이 질주하는 차들 때문에 손잡고 걷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뒤꿈치를 보며 걷다. 하조대에 이르러서는 안 되겠다, 바다에 발 담그고 한참을 놀다. 절벽위에 선 하얀 등대 보러 삼십분 넘게 되돌아가는 길을 걷기도 하고. 이리저리 심심함을 달래보니 아까보단 낫다.

 

그래도. 기사문항을 지나고부터 다시 만난 이 널찍한 도로. 게다가 흐린 날씨 탓에 다섯 시도 안 됐는데 어둑어둑. 두 번을 갈아 타야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어찌됐든 인구항까진 가야 하기에. 열심히 걷기만 해야 해서. 참 재미없는 걷기다. 하지만 어째, 죽을 힘 다해 부지런히 걸을 수밖에.

 

결국 지나는 포구마다 그저 눈길 한 번씩만 돌리고. 조금만 돌아가면 이 심심한 길을 벗어날 수 있겠건만. 자동차 불빛이 하나, 둘 켜지는 걸 보며 급한 마음에 거의 뛰다시피. 다행히 조기 눈에 보이는 곳이 인구라고는 하지만. 겨우 숨 한번 돌려 쉬고 또 걸어. 겨우겨우, 강릉 가는 시외버스 표를 끊고 나니 금세 어둠이 짙게 깔리는데. 피곤함에, 배고품에, 맥이 탁 풀린다. 

 

* 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양양 읍내에서 인구까지 약 23km.

 

* 가고, 오고  

춘천에서 양양은 한계령을 넘어가는, 홍천, 인제, 원통 등을 거쳐 가느라 시간이 다소 걸리는 시외버스를 타거나 미시령 터널을 지나가는, 중간에 들르는 곳이 없어 조금 빠르긴 하지만 속초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인구에서는 도로 양양으로 나오는 것보다는 강릉으로 가서 무정차 춘천행 시외버스를 타는 게 좋다. 양양에서보다 늦게까지 있을 뿐만 아니라 자주 있기 때문이다.

 

* 잠잘 곳

역시 널린 게 먹을 곳, 잠잘 곳이다. 너무 많아 탈이라면 과한 표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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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12:10 2012/03/27 12:10
반나절 걷기, 양양 물치항에서 읍내까지(2010년 8월 19일) 
 
애당초 1박 2일로 계획을 세웠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반나절, 아니 겨우 세 시간 남짓밖에 걷질 못했다. 몸도 무겁고 머리도 아프고. 아무래도 밤늦도록 마셔댄 술에. 아침나절부터 설악에 올랐던 피로가 쌓인 탓이렷다. 멀리 양양 읍내가 보이고. 6시 40분, 춘천으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선 서둘러야 하는데도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간단히 요기라도 하고 버스에 올라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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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서둘러야 할 일이 없기에 한계령으로 향했다. 또 내일이면 걷다 만날 터이지만 낙산도 들렀고, 물치항에서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설악엘 올랐으니. 뭐. 남들이야 산보했다, 싶을 만큼만 걸어 올랐지만. 그래도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 맛좋은 점심을 먹고 다시 물치항으로.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헤어지고 길을 나서는데.
 
 
 
 
 
 
 
 
 
 
 
 
 
 
 
휴가철이 다 됐나. 만나는 해수욕장마다 파라솔이니 그늘막이니 이것저것 많이는 보이는데. 그것들 숫자만큼이나 되려나. 통 사람이 없다. 하긴 빠른 데는 벌써 고등학교가 개학을 했고. 다음 주면 대학들도 학기를 시작하니. 또 절기상으로도 처서(處暑)니 이제 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터이지. 허나 무더위는 이제 막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 다행히 먹구름이 햇살을 가려주고 있긴 하지만, 무지하게도 덥고. 짧기 만한 휴가를 즐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에겐 참 고역이 아닐 수 없겠다. 어느 나라들처럼 여름휴가가 한 달씩 이기는커녕 이 눈치, 저 눈치 봐가며 고작 사나흘. 사람에 치이고 차에 치이고. 휴가이긴 한 건가. 
 
걷다, 쉬다. 또 걷다, 쉬다. 보이는 마을마다 들러 이것저것 먹기도 하고 둘러보기도 하고. 산만한 덩치로 따라오는 개를 피해 신호등도 무시하고 뛰다시피 곤충박물관으로 피신하기도 하고. 걷기 좋은 소나무 숲길을 보면서도 쭉 가던 길을 걷다. 후덥지근하지만 그래도 바닷바람이라고 그나마 나은 해변 길을 걷다. 남대천을 따라 늘어선 파란 잔디 밭, 송이 머시기 머시기 공원도 멀건이 바라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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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읍내가 보이자, 시계바늘이 6시를 향하자, 당초 내일 하루 더 머물면서 양양을 훑어보기로 했지만. 무거운 발걸음에, 무더운 날씨에. 더는 말도 없이 서둘러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하는데. 헉. 시외버스 요금이 또 올랐단다. 울며 겨자 먹기로 표를 끊을 수밖에 없는데. 이거야 원. ‘친서민정책’은 다 어디 있는 거지. 
 
* 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물치항에서 양양 읍내까지 약 10km.
 
* 가고, 오고
물치항은 행정구역상 양양에 속해 있으나 속초를 경유해 가는 편이 빠르고 편하다. 하지만 그게 다 산을 관통해 만든 미시령터널 때문인지라 마음은 편치 않다. 구불구불 한계령을 넘는 길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도 피곤하지만 설악 경치를 볼 수 있으니. 서둘러 가야할 일만 없다면 더 나은 길이긴 한데. 이 역시 산허리를 잘라내 만든 길이라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 잠잘 곳
당분간 잠잘 곳, 먹을 것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조금만 가면 해수욕장에 항구가 연이어 나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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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2 13:16 2012/02/02 13:16

첫째 날, 왕곡마을을 둘러보고 해안길을 따라 작은 항구들을 차례로 지나다(2010년 6월 23일)

 
왕곡마을은 남달랐다. 비교적 규모가 큰 읍성마을들과 달리 작고 소박한 마을에. 기와집과 초가집이 한 집에 어울려 있는 모습에. 요란한 시설들도 없고 되레 변변한 안내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게 없으니. 적당히 나무그늘 아래 자리 잡고 앉아 책도 읽고 쪽잠도 자면. 길을 떠나기 쉽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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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는 큰 길을 버리고 샛길로, 동네 길로 접어드는데. 왼쪽으로는 송지호가 햇살을 반짝이며 일렁이고. 오른쪽으로는 고만고만한 텃밭이며 논두렁이 따라온다. 또 사람 그림자는커녕 개짓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은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말끔히 식혀주니. 이거야 말로 숨은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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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그렇게 오붓하게 걷고 나니 이번엔 쪽빛 바다가 기다리고 있는데. 백도라는 곳에서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소나무 밑 평상에서 꿀맛 나는 쪽잠도 자고. 교암이라는 곳에서는 맛난 김치찌개로 출출한 배를 채우고 바로 옆 천학정 바위에 걸터앉아 한참을 바다만 바라보기도 하고. 또 아야진항에서도 한 낮 햇빛을 피해 쪽잠을 잔 후 청간정에 들러 수평선만 바라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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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저 철조망보다 마음에 새겨진 철조망이 더 얽혀있겠건만. 어디나 경치 좋은 곳이면 바다를 가로막고 서 있는 철조망이 눈에 자꾸만 거슬린다. 그리고 여기저기 파 놓은 참호에. 초소와 군인들. 대전차 방호벽까지. ‘천안함 침몰’을 호기 삼아 전쟁 불사를 외치는 이 정권 아래서는 저 철조망이 더 튼튼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단 생각에. 또 난데없는 전쟁 드라마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있으니. 이건 ‘6.25’를 상기하며 한판 붙어 보자는 심보가 아니고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착잡한 마음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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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대로 머물 수만은 없어 쉬엄쉬엄 다시 길을 나서는데. 속초를 앞둔 봉포항에 이르러서는 무거워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다행히 싹싹하면서도 정겨운 민박집을 어렵지 않게 찾아 동쪽 바다에선 보기 드문 저녁노을도 보고. 걷기여행 중 처음으로 밥도 해 먹으니. 기분만은 밤을 새도 모자란데. 아까부터 무거워진 몸과 마음 때문에 겨우겨우 허기만 때우고는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진다.     
 
둘째 날, 등대도 올라가고 갯배도 타고, 속초를 걷다(2010년 6월 24일)
 
늦은 아침에 커피까지 타 마시고 나니 그새 9시가 훌쩍 넘는다. 한 달 전만해도 이 시간이면 딱 걷기 좋은 날씨이었겠지만. 지금은 내리쬐는 햇빛이 벌써부터 심상치가 않다. 애초에 12시부터 3시까진 무조건 쉬기로 했으니. 오전에 걸을 수 있는 시간은 채 3시간도 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으면 땡볕에 걸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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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시내에 접어드니 기껏 한 시간 남짓 걸었나. 하지만 벌써부터 목덜미가 뜨끈뜨근하다. 잠깐 속초 등대에 올라 땀도 식히고 등대도 구경하니 다시 걸을 힘이 나긴 하는데. 이번엔 배가 ‘꼬르륵’. 색다른 먹을거리를 찾아 서둘러 갯배에 오르는데.
 
모 방송국 프로그램 출연진이 거의 도배가 되다시피 한 아바이마을은 이런저런 북녘 음식들이 입맛을 당기는 것 빼곤. 이방인, 아니 잠시잠깐 지나가는 이의 헛된 생각이겠지만. 조만간 놓일 다리와 함께 옛 추억이 사라지지나 않을런지.
 
여기까지 와서 대형 마트에 간다는 게 조금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한 낮 더위도 피하고 세 시간 남짓 책도 볼 수 있다는 유혹에. 애들 놀이방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단편소설도 하나 읽고. 방전된 충전지를 대신할 건전지도 하나 사고. 모처럼 이것저것 눈 구경도 하니. 여전히 뜨겁긴 하지만 아까보단 조금 낫다.
 
 
 
 
 
 
 
바닷가에 왔으니 해수욕은 아니더라도 발은 담가야겠는데. 마음 급한 피서객들은 벌써 수영을 즐기기도 하고. 바나나 보트에 몸을 싣고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외옹치항 못 미쳐 이름 모를 해변가에 신발이며 양말을 벗어들고 바닷물에 뛰어드니. 목덜미며 등 뒤에 흐르는 땀이 금세 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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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항구를 넓히느라 번잡스런 대포항에 이르니 번잡스런 만큼이나 사람도 참 많다. 그래도 그만큼 또 싱싱한 활어들도 많으니 쉬엄쉬엄 배를 채우기에도 딱 좋은데. 잠깐만 쉬었다 간다는 게. 벌건 대낮에 소주까지 곁들인 회 한 접시. 비릿한 바다 냄새, 어깨를 연신 부딪치는 사람들, 시끌시끌한 포구 모습에 술이 술술 들어간다. 
 
결국 뉘엿뉘엿 설악을 넘어가는 해를 오른편에 두고 겨우 삼십분 남짓을 더 걷질 못 한다. 그런데 가만, 여기가 어딘가 보니. 지난 번 느닷없이 달려와 바다구경을 하고 돌아갔던 물치항. 어째 낯이 익다, 싶었다. 그러나저러나 도로 시내버스를 타고 속초로 되돌아가니. 이거야 원. 술기운인지 노독인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겨우겨우 춘천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오르니 눈이 스르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지경이다. 
 
* 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첫째 날은 왕곡마을을 들러 봉포항까지 약 19km, 둘째 날은 갯배도 타고 낮술도 마시며 느긋이 물치항까지 17km를 걸었다.
 
* 가고, 오고
두 번째 여행과 같은 방법으로 가고, 왔으니 그때를 참고.
 

* 잠잘 곳   

당분간 잠잘 곳 걱정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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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4 17:01 2011/12/24 17:01

첫째 날, 거진등대와 해맞이 공원을 둘러보다(2010년 5월 21일)

  

연휴에 길을 나서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자마자 시작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들에. 결국 새로 놓은 길을 두고 옛 국도를 이리저리 돌아보아도. 인제를 지나 원통에 들어서자 엉금엉금. 예정치도 않은 휴게소에 잠시 쉬어 보기도 하지만. 밀려드는 차들에 채 10분도 여유가 없고. 승객들도 승객들이지만. 한 번이라도 더 버스를 몰아야 하는 기사아저씨로서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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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리는 길목에 이르니 조금씩 길이 뚫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시령 터널을 지나니 평소 속도를 되찾는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계획했던 것과는 어긋나고 있었고.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한참 차가 밀릴 때 기사분이 겁을 준 것과는 다르긴 하지만. 역시나 30여분 이상 늦었다. 
 
시간이 늦긴 했지만 일단 요기는 하고 본다. 그리고는 곧장, 시내버스긴 하지만 고성군, 그것도 마차진까지 운행하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운 좋게도. 금방 버스에 오를 수 있다. 바다를 오른쪽으로 끼고 한없이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는 1-1번 버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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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번 여행 때 다음 여행의 출발지로는 조금 애매한 화진포에서 멈췄던 데에는. 짧은 겨울 해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일정을 짰던 탓도 있었지만. 역시나 별 일도 아닌 것으로 대판 말싸움을 한 탓이 컸다. 무슨 이유였는지 지금도 가뭇가뭇한 걸 보니. 필시 웃기지도 않을 이유였을 테지만. 어쨌든. 그때 거진까지 갔었더라면 속초에서 직행버스를 탈 수도 있고. 홍천에서 시외버스를 탈 수도 있었을 것을.
 
그래도 저번엔 꽃을 볼 수 없었지만. 이번엔 빨갛게 봉오리가 올라온 해당화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고. 황량한 느낌이었던 화진포도 그세 봄옷을 갈아입고 마중하니 오히려 더 낫다. 또 바쁜 시간에 쫓겼다면 그냥 거진읍내로 허겁지겁 들어갔을 터이지만. 지금은 거진등대 해맞이 공원까지 덤으로 걸을 수 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채 세 시간도 안 되게 걸었지만. 오랜만에 참 걷기 좋은 날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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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관동별곡 8백리 길을 따라 왕곡마을 입구까지(2010년 5월 22일)
 
어제 읍내 뒷산에 있는 공원 구경을 하지 않고 왔다면. 아침부터 거길 기어오르느라 땀깨나 흘렸을 터인데. 느긋이 해변 길을 따라 거진항을 빠져나오니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그리고 어제 거진에 들어오면서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관동별곡 8백리 길> 표지판이 제법 갈림길이며 마을 입구마다 서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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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광풍에 성수기가 아닌 때에도 비행기 표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가 들린다.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들로서는 때 아닌 걷기 열풍에 한 동안은 많은 동지들이 생긴 것 같아 든든하기도 했는데. 지리산 둘레길도 그렇고. 제주도 올레길도 그렇고. 길을 이어준 사람들 생각, 마음이 지금 길을 걷는 사람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 길과 길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그런 걷기를 얼마나 마음에 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이것도 한때의 유행처럼 번지는 때잔차질이 애꿎은 4대강 삽질 망패막이로 전락하는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 마냥. 우려는 늘 현실이 되고 마는 것일까. 
 
정철이 걸었다던 <관동별곡 8백리 길>은 아직은 다 이어진 길은 아니다. 우선은 총석정과 삼일포가 더 북쪽에 있는 데다. 옛길을 복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콘크리트와 시멘트가 발라져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를 바로 볼 수 없게 막아 선 철책들이. 천안함 사건만 보더라도 언제 걷어질까, 기약 할 수 없으니. 이대로 길을 잇는다손 치더라도 걷는 재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지금처럼 만이라도 따로 손대지 말고, 삽질하지 말고, 있는 길 살며시 이어 놓기만 해도 걷는 재미는 꽤나 있겠다.
 
거진을 출발해 두 시간을 조금 넘게 걸으니 곧 간성읍인데. 선거철은 선거철인가보다. 때맞은 장날을 맞아 여기저기서 맞춰 입은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총출동이다. 1톤 트럭을 개조한 차마다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둘씩 셋씩 짝지은 운동원들은 가겟집마다 머리를 내민다. 이거야 장 구경을 한 건지 선거운동 구경을 한 건지.
 
어수선한 간성읍을 빠져나와 등나무 아래에서 쪽잠을 달게 자고 나니 시계 바늘이 두시를 향해 간다. 오후에는 가까이에 있는 왕곡마을을 둘러보고 되는 데로 걷다 어제 타고 올라온 1-1번 시내버스를 타는 것인데. 한낮 해를 피하고자 한참을 쉬었더니 일정이 조금 애매하다. 어제 밀리는 차를 보건데 아무래도 일찍 출발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러려면 왕곡마을까지는 다소 무리인 듯. 그래도 어쩌겠나. 일단은 출발이다.
 
마냥 해안선을 따라, 모래사장을 따라, 철책선을 따라 걸었다면 꽤나 지루했을 텐데. 오늘 아침부터 이정표가 되 준 <8백리 길>을 따라 걸으니. 둔치를 걷기도 하고, 마을길을 걷기도 하고, 잠시 돌아가기도 하지만 작은 항구도 온전히 둘러볼 수 있으니. 어쩌다 마주치는 동네 개들만 아니라면 쉬엄쉬엄 동네 산보하듯 걷기에 참 좋다. 허나 왕곡마을에 이르러서는 급한 마음에, 또 오랜만에 걸어서인지 여기저기 몸이 쑤시는 덕에. 해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이번 걷기는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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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첫째 날 약 7km, 그리고 둘째 날 18km 합쳐서 25km쯤 걸었다.
 
* 가고, 오고
춘천에서 고성을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춘천에서 진부령을 넘어 곧바로 간성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거나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간 후 다시 고성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는 것. 앞에 것은 한 번에 간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하루에 단 두 번 있는 차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다. 뒤에 것은 비교적 차 시간은 여유가 있는데 비해 속초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이다. 앞에 방법이나 뒤에 방법이나 고성까지 가는 시간은 엇비슷하다.
 
* 잠잘 곳
거진읍내에는 민박과 여관이 꽤 있다. 하지만 연휴나 여름철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그러니 가진이나, 반암, 공현진과 같은 인근 작은 항구에도 민박집이 많으니 그곳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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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7 15:24 2011/11/07 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