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걷기, 양양 물치항에서 읍내까지(2010년 8월 19일) 
 
애당초 1박 2일로 계획을 세웠는데. 어찌어찌하다보니 반나절, 아니 겨우 세 시간 남짓밖에 걷질 못했다. 몸도 무겁고 머리도 아프고. 아무래도 밤늦도록 마셔댄 술에. 아침나절부터 설악에 올랐던 피로가 쌓인 탓이렷다. 멀리 양양 읍내가 보이고. 6시 40분, 춘천으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선 서둘러야 하는데도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간단히 요기라도 하고 버스에 올라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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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서둘러야 할 일이 없기에 한계령으로 향했다. 또 내일이면 걷다 만날 터이지만 낙산도 들렀고, 물치항에서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설악엘 올랐으니. 뭐. 남들이야 산보했다, 싶을 만큼만 걸어 올랐지만. 그래도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 맛좋은 점심을 먹고 다시 물치항으로.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헤어지고 길을 나서는데.
 
 
 
 
 
 
 
 
 
 
 
 
 
 
 
휴가철이 다 됐나. 만나는 해수욕장마다 파라솔이니 그늘막이니 이것저것 많이는 보이는데. 그것들 숫자만큼이나 되려나. 통 사람이 없다. 하긴 빠른 데는 벌써 고등학교가 개학을 했고. 다음 주면 대학들도 학기를 시작하니. 또 절기상으로도 처서(處暑)니 이제 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터이지. 허나 무더위는 이제 막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 다행히 먹구름이 햇살을 가려주고 있긴 하지만, 무지하게도 덥고. 짧기 만한 휴가를 즐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에겐 참 고역이 아닐 수 없겠다. 어느 나라들처럼 여름휴가가 한 달씩 이기는커녕 이 눈치, 저 눈치 봐가며 고작 사나흘. 사람에 치이고 차에 치이고. 휴가이긴 한 건가. 
 
걷다, 쉬다. 또 걷다, 쉬다. 보이는 마을마다 들러 이것저것 먹기도 하고 둘러보기도 하고. 산만한 덩치로 따라오는 개를 피해 신호등도 무시하고 뛰다시피 곤충박물관으로 피신하기도 하고. 걷기 좋은 소나무 숲길을 보면서도 쭉 가던 길을 걷다. 후덥지근하지만 그래도 바닷바람이라고 그나마 나은 해변 길을 걷다. 남대천을 따라 늘어선 파란 잔디 밭, 송이 머시기 머시기 공원도 멀건이 바라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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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읍내가 보이자, 시계바늘이 6시를 향하자, 당초 내일 하루 더 머물면서 양양을 훑어보기로 했지만. 무거운 발걸음에, 무더운 날씨에. 더는 말도 없이 서둘러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하는데. 헉. 시외버스 요금이 또 올랐단다. 울며 겨자 먹기로 표를 끊을 수밖에 없는데. 이거야 원. ‘친서민정책’은 다 어디 있는 거지. 
 
* 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물치항에서 양양 읍내까지 약 10km.
 
* 가고, 오고
물치항은 행정구역상 양양에 속해 있으나 속초를 경유해 가는 편이 빠르고 편하다. 하지만 그게 다 산을 관통해 만든 미시령터널 때문인지라 마음은 편치 않다. 구불구불 한계령을 넘는 길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도 피곤하지만 설악 경치를 볼 수 있으니. 서둘러 가야할 일만 없다면 더 나은 길이긴 한데. 이 역시 산허리를 잘라내 만든 길이라 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 
 
* 잠잘 곳
당분간 잠잘 곳, 먹을 것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조금만 가면 해수욕장에 항구가 연이어 나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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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2 13:16 2012/02/02 13:16

첫째 날, 세상 밖으로 나온 길, 은비령(2008년 8월 26일)

 
춘천으로 이사 온 후 두 번째 걷기다. 서울이라면 강원도 산골짜기든 남도 바닷가든 쉽게 갈 수 있어도. 춘천과 같은 작은 도시에선 가깝던 멀던, 산이든 바다든 그게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해서 서울이나 대구, 혹은 대전과 같이 ‘특별’하거나 혹은 ‘광역’하거나 하는 도시로 나가야만 한다. 그래도 같은 도내라 그런지 지난 번 여행도 그렇고 이번 여행도 그렇고 산골짜기이지만 나름 버스 편이 있어 생각보단 어렵지 않게 끝마쳤던 곳으로, 시작하는 곳으로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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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령(隱秘嶺)을 만나러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다. 소설 은비령에서 ‘나’와 ‘선혜’가 눈 내리는 은비령(銀飛嶺)을 차를 타고 넘었던, 원통에서 한계령을 넘어 가는 길과 ‘나’와 ‘그’가 걸어서 한 시간도 더 걸렸다던, 우풍재를 인제 쪽에서 넘어서 가는 길이 그것이다. 다른 모든 옛 길들이 그렇듯 언제든 깨끗이 포장된 채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책이 조금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 그만큼은 덜 알려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덕분에 그 길을 알고 또 걸을 수 있으니 고마움도 또 생긴다.

 
   <은비령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은비령 길이 아니라면 한참 전에 대간을 넘어 동해 바다 쪽을 걷고 있을 테다. 오대산 구룡령 쪽도 그렇고, 또 오대산 진고개 쪽도 그렇다. 어느 쪽으로 걸었어도 산을 넘어도 진즉에 넘었을 거란 얘기다. 또 그렇게 산길을 걸었다면 이 걷기여행도 모르긴 몰라도 지난 번 혹은 지지난 번 걷기로 끝을 봤을 게다. 마음 한구석엔 점점 가까워지는 종착지에 왠지 모를 서운함에 에둘러 대간을 목전에 두고 숲길과 옛길들을 걸어보자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댔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덕분에 좋은 길을 둘러, 둘러 걸을 수 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게 아닌 가 싶고, 이번 은비령 길 역시 이런 핑계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그리 걷기로 했다. 
 
우기인 마냥 여름 내내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서늘한 바람을 몰고 왔나 싶어 긴 옷을 꺼내 입었던 게 엊그제 인데 막상 길을 나서니 아직은 햇볕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될지 싶다. 홍천에서 한 번 버스를 옮겨 타고 현리에 도착해 길을 나설 땐 10시도 채 못됐는데도 목덜미가 따가우니 말이다.
 
집 잃은 개 한 마리가 무서워 갓길에 바짝 붙어 무서움에 뒤돌아보지 않고 걷기만 하고, 부실한 지도 덕에 난데없다 느껴진 기다란 포사고개를 넘기도 하고, 시골학교지만 제법 큰 귀둔초등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김밥과 삶은 감자로 배를 채우기도 하고, 이름 모를 계곡 가에서 발도 담그고 쪽잠도 자기도 하면서, 또 오늘 하루 쉬어갈 필례약수를 코앞에 두고 다시 나타난 성난 개 두 마리 때문에 차를 얻어 타고 가야하나, 조금 전 지나쳤던 마을로 되돌아가야 하나 어쩔 줄 모르기도 하고, 그렇게 걸어, 걸어 은비령 아래 당도하니 짧아진 여름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 
 
둘째 날, 다시 2천 5백만 년 만 후, 이렇게 또 걷겠지만.....(2008년 8월 2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애당초 은비령이란 이름은 없었다 한다. 지금이야 은비령이란 이름이 더 알려졌지만. 그저 오색령의 저쪽을 가리키는 것뿐이었기도 하고. 약수 이름을 따 필례령이라 불리기도 하고. 그게 필례령이고 오색령이지 은비령인건 아니었단 얘기다. 글쓴이는 그렇게 예쁜 이름을 붙였지만 글을 쓴 후에나 그 곳엘 가보았다 한다. 별의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린 후에야 만나게 되는 길을 그는 그렇게 글을 다 풀어 낸 후에야 만난 것이다.
 
은비령 역시 은비령을 다녀온 후에나 봤다. 은비령 고개를 넘어야겠다, 마음먹은 후 줄곧 ‘이번엔 읽어야지, 이번엔 꼭 읽어야지’하다, 결국 은비령엘 다녀와서야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게 된 거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의 기다림, 그 이야기를.
 
어째 약수라 그런지 씁쓸한 맛이 나는 필례약수 물을 가득 채우고는 은비령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초봄, 늦은 겨울눈을 맞으며 은비령을 넘었다면 지금 우리는 그 녹다 남은 겨울눈이 이슬비 되어 내리는 은비령을 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글쓴이가 글의 주인공 들이 거슬러 갔던 그 길을 온전히 따라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우리는 반대로 되짚어 걷고 있으니 마치 시간이 멈추어 선 듯 하다.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긴 오르막길을 오르다 지쳐 쉬다, 가다를 반복하니 한참을 오른 것 같은데도 여전히 산꼭대기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더구나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더 거세진 데다, 이런 시간에 이런 길을 누가 걷겠냐 싶어 속도를 줄이지 않고 한달음에 내려오는 차들을 피하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내딛으니 끝날 줄 모르던 오르막이 어느새 한 구비 너머 구름 속으로 두 갈래 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비를 뿌리는 구름이 아니었다면 멀리 푸른 바다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은비령을 넘으면서 조금씩 내리던 비가 한계령 쉼터에 다다르니 제법 굵어졌다. 비 때문이 아니더라도 겨우 감자와 삶은 달걀로 배를 채우고 오르막길을 두 시간이 넘도록 걸었기에 잠시 쉬면서 요기를 할 요량으로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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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가량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이른 점심에, 느긋하게 쉬지만. 어째 구름 모양새로는 조만간 비가 그칠 모양새는 아니다. 어제, 오늘 일기예보론 영서지방에 비 소식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장수대나 옥녀탕까지는 가야 비구름에서 벗어날 듯싶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비옷도 없이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내려 가려니 막막하긴 해도 조금만 내려가면 비구름에서 벗어나겠지 싶어 빗줄기가 조금 가라앉은 틈을 타 길을 나선다.
 
  <한계리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은비령과 한계령을 휘감았던 비구름은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곧 벗어났지만. 호랑이 혼인하는 날 온다는 마른 비는 장수대를 지나서야 겨우 피할 수 있다. 혹여나 비가 더 거세질까 급한 데로 옷가지를 싸두었던 비닐들을 다 끄집어내 여차하면 머리에 뒤집어쓸까 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까진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한계리까진 쉬엄쉬엄 가도 해 지기 전에 도착할 것이고, 해서 설악의 산세 구경에 자주자주 쉬어 가는데. 비구름 속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한계령 고갯길 그리고 저 편 은비령 길을. 다시 2천 5백만 년 후, 이렇게 또 걷겠지만.....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스물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인제군 현리에서 필례약수까지 21km. 걸은 7시간.
- 둘째 날 : 필례약수에서 은비령과 한계령을 넘고 넘어 한계리까지 약 22m, 걸은 시간 약 8시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홍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첫차 6시 5분을 시작으로 2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홍천터미널에서 현리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시간이 들쑥날쑥하니 이편을 먼저 확인하고 기준으로 잡아 출발시간을 정해야 한다. 한계리에서 원통으로 나오는 시내버스는 꽤 자주 있는 편이며 원통에서 춘천으로 오는 시외버스는 직통의 경우는 19시 50분 막차로 하루 여섯 차례 운행한다. 또 번잡스럽기는 하지만 버스 편이 많아 참고할 만한 방법은 홍천에서 차를 한 번 갈아타고 오는 것이다.    
 
* 잠잘 곳
현리에서 필례약수까지는 숙박할 만한 곳이 없고 식당도 눈에 띄지 않고 드문드문 동네 가게들만 보일 뿐이다. 그래도 필례약수까지만 가면 식당을 겸한 민박집이 꽤 있다. 필례약수를 지나 은비령과 한계령을 넘어 한계리까지는 역시 숙박할 만한 곳이 없다. 식당은 중간에 한계령 쉼터에서 해결할 수 있으나 자리 몫 때문인지 가격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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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21:41 2011/01/28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