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어온 사람에게는 끝일런지 모르나(2008년 12월 15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다 왔다, 싶으니 어디서 돌아서야 할지 망설여진다. 첨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까진 가본다, 였는데. 생각해보니 다른 이들은 모두 다 거기서 멈췄으나 걸음을 돌리려는 우리에겐 굳이 거기까지 가야할 이유가 딱히 없다. 7번 국도를 따라 긴 바다 길을 걷기로 했으니 이 길과 만나는 대대삼거리가 적당할 듯도 싶다. 헌데 마음 한구석엔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화진포니 대진과 거진에 있다는 등대니 이것저것 구경도 하며 가볼 때까진 가보자, 란 마음도 몽실몽실하다.  

 

날이 무척 포근하다. 한겨울 날씨를 생각하고 옷도 여러 겹 껴입고 왔는데 다 소용없다. 아니다. 아예 봄옷으로 갈아입어도 걷기엔 하나도 춥지 않다. 아까 차안에서 그리고 읍내에서 또 싸우느라 출발이 늦긴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꽤 많이 걸을 수 있겠다, 싶다.

 

7번 국도와 만나는 대대삼거리를 지나니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유난히 먼 곳까지 둥글게 보이는 하늘이며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오는 비린내 때문이다. 또 언제 나타났는지 갈매기 무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빙빙 돈다. 저 보성 득량만에서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뒀던 그 파란 바다를 근 4년 여 만에 다시 보게 된 거다. 발이 몹시도 시리겠지만 당장에라도 뛰어들고프다. 허나 구경은 다음번으로 미뤄두자, 하고 길을 나섰기에 먼발치서만 눈으로만 들여다보고 서둘러,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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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날 같이 햇살이 따사롭기는 한데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아니 바다와 가까이 하고 있어 그런가, 조금씩 바람이 차갑게 분다. 그래도 바지 안에 쫄쫄이까지 입으며 준비한 탓에 매섭단 느낌은 아직 아니다. 근처에 대나무와 소나무가 번갈아 보이더니 송죽리라는 이름을 드러낸 조그만 마을을 지나 조그만 모래사장을 갖고 있는 반암해수욕장까지 오랜만에 걷기도 한 탓에 조금 힘도 들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뿐사뿐 걷는다.

 

여기저기 멀쩡한 도로 놔두고 또 땅 파서 길 낸다고 공사하느라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질주한다. 하루 종일 있어봐야 고작 몇 백대나 지나갈까 말까한 길옆에 여름 한 철 잠깐 차 좀 밀린다고 뭉텅뭉텅 산 깎고 굴 뚫고 물위에 다리 놓는 일이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려는지. 하긴 어떻게 해서든 운하 만들려고 홍수피해는 조그만 지방 하천에서 더 많이 나는데 4대 강 유역에다 뭔 정비를 한다고 어마어마한 돈을 퍼붓는 나라에서 이까짓 일이야 뭐 그리  일이나 될까. 아무튼 바람은 점점 세지지 덤프트럭 피하느라 길 바깥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힘이 부친다.    

 

지도로만 보면 한 걸음이면 될 듯한데, 어째 걸어도, 걸어도 거기서 거길까. 비슷한 오르막길을 두 개나 오르고 이리 굽이 저리 굽이 꼬부랑길을 두 개나 지났는데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보니 아침에 싸우느라 어디까지 갈 건지 정하질 않았네. 통일전망대는 아니란 것만 이심전심이지 어디서 길을 돌아 나올 건지 확인도 하지 않았던 거네. 에구구. 김밥이랑 건빵이랑 먹으면서 쉬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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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운동부족인 것 같다. 장딴지며 엉덩이까지 결리는 게. 혹여 바지 속에 입은 쫄쫄이 때문에 혈액순환이 안 되서 그런가, 싶어 벗었는데 그때뿐이다. 별 수 없다. 조금가다 쉬고 또 조금가다 또 쉬고, 자주 쉬어가는 수밖에. 그리고 쉴 때마다 몸을 풀어주는 수밖에. 그래도 대진읍내에 못 미쳐선 논두렁을 걸어 철새 때를 쫓아가기도 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는 모래톱을 밟아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바다를 향해 지어진 마을 안 정자에 올라 발 뻗고 쉬기도 하고 이름 모를 포구에선 방파제 위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니 몸이 피곤해도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애당초 처음부터 걷기여행을 어디까지로 하자, 얘기하지도 않았거니와 오늘 아침엔 한바탕 싸우느라 또 정하지 않아 일단 가보자, 나선지라 그저 돌아서면 그만이겠지만 쉽게 돌아서질 못한다. 그렇다고 해질녘까지 걷긴 지금은 괜찮다지만 몸 상태도 그렇거니와 바람이 걱정이어서 아무래도 안 될 듯하다. 길이야 돌아서면 거기가 끝이고 다시 시작이니 어디면 어떻고 어디면 또 어떻겠냐만은 그래도 이왕지사 적당한 곳을 찾아보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해서 그저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다시 길을 돌아서기로 하고 여기가 어딘가 둘러보니, 마차진이란 곳이란다.

 

* 스물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거진읍 대대삼거리에서 마차진해수욕장까지 7번 국도를 따라 약 18km를 4시간 30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거진으로 가는 시외버스 첫차는 7시 10분이다. 이 차를 놓치면 다음 오후 차 이외에는 홍천을 경유하거나 속초로 돌아가야 한다. 마차진이나 그 위 명파리까진 속초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자주 있으니 이 차를 타고 거진이나 속초로 나와 춘천행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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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3:42 2011/07/04 13:42
끝내 바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네(2008년 10월 3일)
 
날이 춥다. 불과 일주일 사이라지만 설악산엔 단풍이 들었다, 하고, 대관령엔 첫 서리가 내렸다, 하니, 어느 틈엔가 그렇게 가을은 이만치 다가섰다. 10월이라는 숫자가 주는 것보다 더 무겁게 옷을 걸치고는 그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채 해가 뜨기도 전에 이리도 서둘러 집을 나서는 지. 원통을 거쳐 속초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이른 추위만큼이나 이른 히터가 조용히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운전기사 아저씨는 자판기 커피를 홀짝홀짝 넘기다 조용히 표만 받아든다.
 
그렇게 다시 길 위에 섰다.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올랐던 그 진부령 그 꼭대기에. 성큼 다가선 가을 날씨 탓인지, 아님 고갯마루라서인지, 이도 저도 아닌 인적 없는 이른 아침이 주는 황량함 때문인지, 바람이 쌀쌀맞기만 하다. 또 아쉬움에 에둘러 옆길로 많이도 샜는데 이제 끝이 저만치다 생각하니 마음까지 추워진다. 이젠 더도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필요 때문에, 다만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걸어갈 때 그 쇠약함이 느껴질 뿐이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걸어갈 때 그 쇠약함 속에는 가끔 출발할 때 느꼈던 고통을 스르르 녹일 정도의 힘과 아름다움이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길에 부대껴 말갛게 씻겨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필요 때문에 침식당한 나머지 고통은 그 날카로움이 무뎌진 것이다. -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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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추위도 피할 요량으로 미술관 문을 밀어보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내부수리란다. 하는 수 없이 혹여나 하고 준비해온 겉옷을 하나씩 더 걸치고는 신나게 내리막길을 내달으니 몸에서 열이 나는 듯 어느새 추위가 한결 가신다. 이내 발걸음에 맞춰 노랫가락을 흥얼흥얼, 이 얘기 저 얘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돌이켜보니 걷는 내내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얘기하며 마음을 나누고 영겁의 인연을 생각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가끔은 길이 주는 아름다움에 겨워 한참을 나아가지도 못하고 서성거렸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또 때때로 자연이 주는 성스러움에 한없는 영적인 충만함에 떨려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이, 그 수많은 겸허가 이렇게 또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일런지. 
 
걷는 사람은 겸허하다. 그는 자신을 지배하는, 그리고 삼켜버릴 수 있는 자연의 가운데에서 스스로가 작다는 것을 느낀다. - 『걷기의 철학』. 크리스토프 라무르.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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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을 다 내려왔나 싶으니 오늘은 바다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중간중간 웃옷을 벗느라, 아침대신 준비한 감자며 옥수수를 먹느라 잠시 서기는 했어도 두 시간 넘게 가방 내려놓고 다리 뻗으며 그렇게 쉬지 않고 걸어왔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갓길마저 좁은데다 이쪽저쪽으로 굽어진 길로 차 또한 조심을 떠느라 온통 신경이 날카로웠는데도 말이다. 어째 이 국도라 불리는 길들을 걸을 때마다 이 모양인지. 차량이 뜸해진 틈을 타 길 가운데로 걸어보기도 하지만 이내 득달같이 달려드는 바퀴를 피하느라 되레 더 피곤하기만 할뿐이다. 포기하고 길 가에 바짝 붙어 열심히 걷는다.
 
기사들은 걷지 않고 말을 탔으며,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말을 탔다. 그들은 터벅터벅 걷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말들은 길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말 때문에 길가로 밀려난 보행자들은 말에게 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말을 탄 사람은 먼지와 오물 속에서 뒤따라오는 보행자들을 앞서 나갔으며, 심지어 그들을 데려다가 자신의 말을 먹이고 돌보는 일을 시키기도 했다. -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 조지프. A. 야마토.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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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유원지를 지나는 동안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쉬는 틈에 잠시 내려 가볼까, 하면 저만치 발아래로 보이는 게 내려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해서 소똥령마을에서는 때마침 배도 고픈 김에 쉴만한 물가를 찾아 나서는데 물은 많으나 당체 그늘이 보이질 않아 또 그게 쉽지가 않다. 하는 수 없어 마을 입구 호두나무 아래 잘 짜 맞춘 평상에 올라선다. 헌데 꿩 대신 닭이라고 하나. 키 큰 나무 그늘에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적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오랜만에 양말 벗고 다리까지 쭉 뻗은 채 누워 김밥으로 배도 채우고 쪽잠도 잔다. 또 아침나절 걸었던 길을 끄적끄적 되새김질해본다. 진부령 꼭대기 찬바람, 돌고 돌아가는 46번 국도, 샛노랗게 물들어가는 논, 구름 한 점 없는 높디높은 하늘, 무엇을 적을까 연필을 굴려보지만 역시나 시간만 적어두고는 곧 일어선다. 아마도 언제나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것들을 말로, 글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말은 길과 같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번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서사적 요소 혹은 시간적 요소로 보건대, 쓰기와 걷기는 서로 닮았다. 미술과 걷기가 서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 『걷기의 역사』. 레베카 솔닛. p.416
 
사용자 삽입 이미지결국 한낮에 잠깐 평상에 누웠던 것이 마지막으로 쉰 게 됐다. 아침과는 달리 머리 위에 내리쬐는 햇볕이 도로 여름으로 되돌아 간 것처럼 뜨거운데다 쉬면서 아무생각 없이 물을 다 마셔버렸는데 도대체 가게는커녕 인적 없는 집들만 쭉 길가에 서 있었던 게다.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오겠지, 조금만 더 가면 물이라도 마실 수 있겠지, 아니 주유소 자판기라도 있지 않을까, 라며 걷고 또 걸었는데 어느새 간성읍까지 오고 말았으니. 끝내 바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한 숨도 돌리지 못하고 걷고 또 걷고, 걷기만 했다.
 
거의 탈진상태로 대대삼거리에 도착한 것도 모자라 거진읍내를 한 바퀴 다 돌고서야 겨우 터미널을 찾았는데, 이런, 춘천행 버스가 분명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없다. 더위에 치치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미친 듯이 걷기만 한 건 버스 시간을 맞추려고 한 것도 있는데. 이리 되고 나니 허탈함에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하지만 어쩌겠나. 확실하지 않은 정보만 믿고 길을 나선 게 죄지. 덕분에 시원한 물냉면으로 갈증도 풀고 지친 다리도 주물러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제나 올지, 저제나 올지, 승강장에 쭈그리고 앉는다. 건너편 택시 승강장엔 손님 없는 택시들만 줄줄이 서있고 그 너머로 언듯언듯 보이는 설악산 줄기 위로 짧은 가을 하늘이 금세 붉어진다.
 
* 스물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진부령 꼭대기에서 46번 국도를 따라 거진읍 대대삼거리까지 약 23km를 6시간 동안 걸음.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진부령을 거쳐 거진이나 속초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기는 하나 원통에서 한 번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다. 거진에서 춘천으로 오는 시외버스는 오후 2시 10분이 막차이므로 부득이 홍천을 경유해야 한다. 홍천으로 가는 시외버스 역시 자주 있는 편이 아닌데다 버스 시간도 최근에 바뀌었으므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홍천에서 춘천은 꽤 늦은 시간까지 버스가 다니니 일단 홍천으로만 나오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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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8:10 2011/05/11 08:10

사용자 삽입 이미지천근만근 진부령 고갯길에서 멈추다(2008년 9월 27일)

 
정말 천근만근이란 말이 이럴 때 딱 맞는 말이지 싶다. 영동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고갯길 가운데 제일 낮다는 진부령 길을 오르는데 이렇게 몸이 무거워서야. 아무리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감기 기운이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한다 싶다. 암만 생각해도 몸도 몸이지만 오늘 걸어온 길이 최악의 길이어서 그런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말이다.
 
가을 가뭄이 오래 지속되다 겨우 이틀 그것도 아주 쬐끔 비가 왔는데 가뭄 해결은 고사하고 날씨만 갑작스레 추워졌다. 한낮엔 20도 가까이 오른다고는 하지만 산간지방에선 첫 서리가 내린다고 하고 춘천만 하더라도 10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져 쌀쌀함이 이만저만 하지 않다. 물론 아침, 저녁 이외엔 맑은 하늘에 선선한 바람이 딱 가을 날씨를 보여주긴 하지만 밤과 낮 기온차가 심해 감기 걸리기엔 딱인 날씨다. 그래서인지 느닷없이 여행가자 마음먹긴 했지만 출발부터 걱정이 앞선다. 안 그래도 어제 저녁부터 재채기가 슬슬 나오는 게 아무래도 수상하다.
 
어둑어둑한 새벽녘에 출발한 덕에 한계삼거리에 일찍 도착했다. 원래는 중간에 한 번 군내버스로 갈아타야하지만 운전기사 아저씨께 부탁해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내릴 수 있어 더 빨리 도착한 게다. 그래봐야 20여분이지만 이 추운 날 표 다시 사고 버스 기다리지 않은 게 어디냐 싶고, 정말 그런 게 버스 바깥은 생각보다 더 춥기만 하다. 서둘러 휴게소로 들어가 인삼차에 생강차를 마셔보지만 잠깐뿐이다. 아무래도 좀 걸어야 몸에서 열이 나려나.
 
헌데, 출발부터 고약하다. 날씨 좋은 주말이라 그런지 웬 차가 이리도 많은지. 것도 순 관광버스다. 거기에 걸으면서 안 거긴 하지만 곳곳에 길을 내느라, 혹은 넓히느라 공사장이 널려 있어 거기서 오고가는 웬 트럭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것도 순 츄레라에 덤프트럭이다. 또 길은 어찌나 좁은지. 갓길마저 거의 없다시피한 길이라 양쪽으로 트럭이나 버스가 지나칠라면 걷기를 멈추고 길 바깥으로 저만치 물러서야한다. 며칠 전 달리기 하던 이가 여기 이곳 진부령을 넘다 차에 치었다고 하던데 남 일 같지 않다. 신경이 곤두선다.
 
결국 한 시간도 채 걷지도 못하고 가드레일을 넘어 강가 소나무 숲으로 피신하고는 주섬주섬 아침과 점심때 먹을 요량으로 어제 밤 준비해 둔 감자며 김밥을 하나씩 꺼내든다. 날씨는 무쟈게 좋은데 길은 엉망이고, 코스모스에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흔드는데 눈은 함부로 돌릴 수는 없고. 아무리 봐도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라지는 곳까지는 가야 한 숨 돌릴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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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로 햇볕이 따가워질 무렵까지는 그렇게 질주하는 차들을 피하느라 어기적어기적 걷는데 그 와중에도 길 위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 줍기에, 길가에 피어 있는 해바라기 씨 털기에 할 짓은 다 한다. 또 학교 안에 자그마한 공원까지 갖고 있는 용대초등학교에선 뒤늦은 밤 줍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니 이 재미라도 없었으면 무신 재미로 걸었을까.
 
솔직히 백담사는 그닥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백담사를 찾을지 모르겠지만.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는 되레 그 대가로 대통령까지 지낸데다 아직도 국가원로라고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신문이며 티비에서 난리를 치는 그 잘난 대머리를 덥석 받아준, 그걸로 마치 이승에서의 죄를 다 속죄 받은 양 고개를 뻗뻗이 쳐들 수 있게 만든, 그놈의 절이 대체 모하는 절이고 어떤 절인가 궁금하긴 했었지만 말이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길부터 꼬였다. 입구에서 확인했을 땐 분명 칠백 미터만 가면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는데 한참을 가도 보이질 않는데, 겨우겨우 도착해보니 여기저기 임시 주차장마다 관광버스가 그득그득. 걸어서는 2시간이고 차로는 10분이라는데 버스 값은 1,800원, 또 버스타려는 줄은 끝이 보이질 않네. 이럴 줄 알았다. 아까 입구에 길 물어보고 난 후 별 생각 없이 걸어 들어온 게 잘못이지. 애당초 별 구경할 맘 없다는 걸 이심전심으로 알았다면 여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괜스레 시간만 버리고 배만 잔뜩 고프다. 에라. 배나 채우자.
 
순두부와 콩비지로 맛나게 점심을 먹고 나니 아침에 그렇게 쌀쌀했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후텁하다. 이제 뭐가 그리 바빠 멀쩡한 길 나두고 산허리를 뚫어내고 또 길을 낸 미시령터널길과 갈라지는 곳까지만 가면 한 시름 놓을 것이니 쉬엄쉬엄 따가운 가을 햇살을 피해 걷는다. 계곡가 바위에서 잠시 쉬기도 하나 누가 버리고 간 것인지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하고 길 이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길 저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길 이쪽에서 ‘컹컹’ 소리가 나면 또 길 저쪽으로 뛰어갔다 하기도 하고, 맑은 가을 하늘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며 한참을 쉬기도 하고, 그렇게 다문다문 걸으니 어느새 진부령 꼭대기다.
 
출발할 땐 내처 걸어 하룻밤 잔 뒤 간성까지 걷자 했는데 막상 진부령에 오르고 나니 아침 내내 그리고 백담사에서의 헛걸음에 오후엔 덩치가 산만한 개들 때문에 녹초가 됐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해서 때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서 있는 원통행 버스에 오른다. 더 걷다가는 제대로 감기에 걸릴 것 같기에. 오늘 하루 종일 씨름하며 걸었던 길이 휙휙 순식간에 차창 밖으로 지나쳐간다. 아, 힘들다.
 
* 스물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한계삼거리에서 진부령까지 44번 국도를 따라 약 23km, 걸은 시간 약 8시간 30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원통을 거쳐 속초로 가는 시외버스는 한계삼거리에서 정차하지 않지만 맘 좋은 기사분만 만난다면 내릴 수 있으니 시도할 만하다. 아님 원통에서 군내버스로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춘천에서 첫차를 타면 곧 한계삼거리를 거쳐 진부령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를 탈 수 있다. 시간상으로는 전자가 후자보다 20여분 빨리 도착한다. 진부령에서는 반대로 군내버스를 타고 원통에 와서 다시 춘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거진에서 춘천으로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있긴 한데 진부령에서 정차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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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23:23 2011/03/10 23:23

첫째 날, 세상 밖으로 나온 길, 은비령(2008년 8월 26일)

 
춘천으로 이사 온 후 두 번째 걷기다. 서울이라면 강원도 산골짜기든 남도 바닷가든 쉽게 갈 수 있어도. 춘천과 같은 작은 도시에선 가깝던 멀던, 산이든 바다든 그게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해서 서울이나 대구, 혹은 대전과 같이 ‘특별’하거나 혹은 ‘광역’하거나 하는 도시로 나가야만 한다. 그래도 같은 도내라 그런지 지난 번 여행도 그렇고 이번 여행도 그렇고 산골짜기이지만 나름 버스 편이 있어 생각보단 어렵지 않게 끝마쳤던 곳으로, 시작하는 곳으로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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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령(隱秘嶺)을 만나러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다. 소설 은비령에서 ‘나’와 ‘선혜’가 눈 내리는 은비령(銀飛嶺)을 차를 타고 넘었던, 원통에서 한계령을 넘어 가는 길과 ‘나’와 ‘그’가 걸어서 한 시간도 더 걸렸다던, 우풍재를 인제 쪽에서 넘어서 가는 길이 그것이다. 다른 모든 옛 길들이 그렇듯 언제든 깨끗이 포장된 채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책이 조금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 그만큼은 덜 알려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덕분에 그 길을 알고 또 걸을 수 있으니 고마움도 또 생긴다.

 
   <은비령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은비령 길이 아니라면 한참 전에 대간을 넘어 동해 바다 쪽을 걷고 있을 테다. 오대산 구룡령 쪽도 그렇고, 또 오대산 진고개 쪽도 그렇다. 어느 쪽으로 걸었어도 산을 넘어도 진즉에 넘었을 거란 얘기다. 또 그렇게 산길을 걸었다면 이 걷기여행도 모르긴 몰라도 지난 번 혹은 지지난 번 걷기로 끝을 봤을 게다. 마음 한구석엔 점점 가까워지는 종착지에 왠지 모를 서운함에 에둘러 대간을 목전에 두고 숲길과 옛길들을 걸어보자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댔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덕분에 좋은 길을 둘러, 둘러 걸을 수 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게 아닌 가 싶고, 이번 은비령 길 역시 이런 핑계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그리 걷기로 했다. 
 
우기인 마냥 여름 내내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서늘한 바람을 몰고 왔나 싶어 긴 옷을 꺼내 입었던 게 엊그제 인데 막상 길을 나서니 아직은 햇볕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될지 싶다. 홍천에서 한 번 버스를 옮겨 타고 현리에 도착해 길을 나설 땐 10시도 채 못됐는데도 목덜미가 따가우니 말이다.
 
집 잃은 개 한 마리가 무서워 갓길에 바짝 붙어 무서움에 뒤돌아보지 않고 걷기만 하고, 부실한 지도 덕에 난데없다 느껴진 기다란 포사고개를 넘기도 하고, 시골학교지만 제법 큰 귀둔초등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김밥과 삶은 감자로 배를 채우기도 하고, 이름 모를 계곡 가에서 발도 담그고 쪽잠도 자기도 하면서, 또 오늘 하루 쉬어갈 필례약수를 코앞에 두고 다시 나타난 성난 개 두 마리 때문에 차를 얻어 타고 가야하나, 조금 전 지나쳤던 마을로 되돌아가야 하나 어쩔 줄 모르기도 하고, 그렇게 걸어, 걸어 은비령 아래 당도하니 짧아진 여름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 
 
둘째 날, 다시 2천 5백만 년 만 후, 이렇게 또 걷겠지만.....(2008년 8월 2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애당초 은비령이란 이름은 없었다 한다. 지금이야 은비령이란 이름이 더 알려졌지만. 그저 오색령의 저쪽을 가리키는 것뿐이었기도 하고. 약수 이름을 따 필례령이라 불리기도 하고. 그게 필례령이고 오색령이지 은비령인건 아니었단 얘기다. 글쓴이는 그렇게 예쁜 이름을 붙였지만 글을 쓴 후에나 그 곳엘 가보았다 한다. 별의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린 후에야 만나게 되는 길을 그는 그렇게 글을 다 풀어 낸 후에야 만난 것이다.
 
은비령 역시 은비령을 다녀온 후에나 봤다. 은비령 고개를 넘어야겠다, 마음먹은 후 줄곧 ‘이번엔 읽어야지, 이번엔 꼭 읽어야지’하다, 결국 은비령엘 다녀와서야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게 된 거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의 기다림, 그 이야기를.
 
어째 약수라 그런지 씁쓸한 맛이 나는 필례약수 물을 가득 채우고는 은비령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초봄, 늦은 겨울눈을 맞으며 은비령을 넘었다면 지금 우리는 그 녹다 남은 겨울눈이 이슬비 되어 내리는 은비령을 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글쓴이가 글의 주인공 들이 거슬러 갔던 그 길을 온전히 따라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우리는 반대로 되짚어 걷고 있으니 마치 시간이 멈추어 선 듯 하다.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긴 오르막길을 오르다 지쳐 쉬다, 가다를 반복하니 한참을 오른 것 같은데도 여전히 산꼭대기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더구나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더 거세진 데다, 이런 시간에 이런 길을 누가 걷겠냐 싶어 속도를 줄이지 않고 한달음에 내려오는 차들을 피하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내딛으니 끝날 줄 모르던 오르막이 어느새 한 구비 너머 구름 속으로 두 갈래 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비를 뿌리는 구름이 아니었다면 멀리 푸른 바다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은비령을 넘으면서 조금씩 내리던 비가 한계령 쉼터에 다다르니 제법 굵어졌다. 비 때문이 아니더라도 겨우 감자와 삶은 달걀로 배를 채우고 오르막길을 두 시간이 넘도록 걸었기에 잠시 쉬면서 요기를 할 요량으로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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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가량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이른 점심에, 느긋하게 쉬지만. 어째 구름 모양새로는 조만간 비가 그칠 모양새는 아니다. 어제, 오늘 일기예보론 영서지방에 비 소식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장수대나 옥녀탕까지는 가야 비구름에서 벗어날 듯싶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비옷도 없이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내려 가려니 막막하긴 해도 조금만 내려가면 비구름에서 벗어나겠지 싶어 빗줄기가 조금 가라앉은 틈을 타 길을 나선다.
 
  <한계리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은비령과 한계령을 휘감았던 비구름은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곧 벗어났지만. 호랑이 혼인하는 날 온다는 마른 비는 장수대를 지나서야 겨우 피할 수 있다. 혹여나 비가 더 거세질까 급한 데로 옷가지를 싸두었던 비닐들을 다 끄집어내 여차하면 머리에 뒤집어쓸까 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까진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한계리까진 쉬엄쉬엄 가도 해 지기 전에 도착할 것이고, 해서 설악의 산세 구경에 자주자주 쉬어 가는데. 비구름 속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한계령 고갯길 그리고 저 편 은비령 길을. 다시 2천 5백만 년 후, 이렇게 또 걷겠지만.....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스물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인제군 현리에서 필례약수까지 21km. 걸은 7시간.
- 둘째 날 : 필례약수에서 은비령과 한계령을 넘고 넘어 한계리까지 약 22m, 걸은 시간 약 8시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홍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첫차 6시 5분을 시작으로 2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홍천터미널에서 현리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시간이 들쑥날쑥하니 이편을 먼저 확인하고 기준으로 잡아 출발시간을 정해야 한다. 한계리에서 원통으로 나오는 시내버스는 꽤 자주 있는 편이며 원통에서 춘천으로 오는 시외버스는 직통의 경우는 19시 50분 막차로 하루 여섯 차례 운행한다. 또 번잡스럽기는 하지만 버스 편이 많아 참고할 만한 방법은 홍천에서 차를 한 번 갈아타고 오는 것이다.    
 
* 잠잘 곳
현리에서 필례약수까지는 숙박할 만한 곳이 없고 식당도 눈에 띄지 않고 드문드문 동네 가게들만 보일 뿐이다. 그래도 필례약수까지만 가면 식당을 겸한 민박집이 꽤 있다. 필례약수를 지나 은비령과 한계령을 넘어 한계리까지는 역시 숙박할 만한 곳이 없다. 식당은 중간에 한계령 쉼터에서 해결할 수 있으나 자리 몫 때문인지 가격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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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21:41 2011/01/28 21:41
첫째 날, 지나온 흔적도 남기지 않아야..... 월둔마을에서 아침가리로(2008년 6월 19일)
 
밤새 또 가니, 못 가니 하다, 오랜만에 김밥 싸고 계란 삶고 벼락 준비에 정신없다. 그러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버스 편 확인하다 울고불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두도령을 넘어 달둔마을까지 왔던 게 작년 5월이니 그새 1년이 지났고, 그 동안 아주 잠깐이라도 걷기를 했었다면 이러진 않았을 거다. 농사짓겠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겠다, 마음먹고 춘천으로 오기까지 남들 눈엔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시간이었겠지만 그만큼 긴 시간이었던 거고 몸도 마음도 알게 모르게 물갈이 중이었나 보다.
 
같은 강원도면서도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세 시간이나 걸려야 달둔마을에 올 수 있으니 그만큼 외지긴 외진 듯하다. 그래도 군내버스 한 칸 가득 맑은 목소리를 가진 아이들의 모둠 노래자랑에 지루하지 않다. 또 차창 너머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계곡이며 푸른 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해 덩달아 콧노래다. 올망졸망 아이들을 내려놓은 차는 그새 달둔마을에 다다라 잠시 멈춘 후 굽이굽이 구룡령 넘어 바다로 향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정감록에 나온다는 삼둔사가리 가운데 삼둔 중 하나인 월둔마을에서 시작해 사가리 중 하나인 아침가리로 이어지는 이름 없는 이 숲길은 지나온 흔적마저 남기지 않아야 한다. 때론 거친 길을 질주하고픈 욕망도 어쩌면 저 끊어진 다리 위에 멈춰 세워야 할 것이고, 하룻밤 별을 헤며 세상사를 나누고 싶다 해도 길 위에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이라곤 월둔마을과 조경분교 근처 젊디젊은 부부 한 쌍 외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니, 부디 이 한 곳만이라도 조용히 그렇게 남겨둬야 마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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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덕봉 바로 아래 명지가리까지는 그래도 뒷산 산책하듯 오른다. 지천에 널린 야생화 구경에 문득문득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빛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기에. 또 조경동까지 이어진 긴 내리막길은 내내 이름 모를 새소리와 계곡 물 소리에 지친 몸과 마음이 맑아지기에. 헌데 다 내려왔나 싶은 그 순간, 길은 다시 끝없는 오르막으로 구절양장 돌고 도는데,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맛보기다.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데, 그러다, 어느 순간 아찔 하기만한 아스팔트 내리막길에 이르면 천근만근, 무거운 몸, 누일 곳을 찾는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에 당일치기로 다녀올 것인지, 미뤄뒀던 남은 길을 모두 걸을 것인지 선뜻 결정하지 못했더니 해는 지는데, 차 시간은 간당간당한데, 어찌할지 몰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외지긴 외진 데라 그런지 버스마저 일찍 끊기고 오가는 차는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일기예보로는 주말에나 되어야 장맛비가 내린다고 하니 하루 정도 여유가 있긴 한데, 몸이 너무나 무겁다.
 
하룻밤 묵어가는데 이틀 치 방값을 내라는 그럴듯한 펜션을 뒤로하고 때마침 읍내로 나가는 듯한 택시를 집어타고 현리로 나오니 이런, 홍천이고 인제고 버스 끊긴지가 이미 오래다. 사실 어제 밤 느닷없이 준비를 한 탓도 있었지만 혹여 하는 마음에 차 시간을 확인했기에 망정이지 갑자기 바뀌어버린 버스 시간에 하루를 그냥 길에서 보내거나 아예 떠날 생각도 못할 뻔 했었는데 결국엔 예상치도 못한 현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하룻밤을 보내야 할 상황이다. 
 
허탈한 마음을 뒤로하고 어찌어찌 잠잘 만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지만 가뜩이나 찜찜한 마음인데다 제법 괜찮다고 보여 들어간 첫 번째 모텔에서 방이 없단 얘기를 듣자 차라리 다시 택시를 타고 방동리로 돌아가자며 터미널로 나온다. 헌데, 천운인지 다행인지 진동리까지 운행하는 통학버스 한 대가 이번엔 교복 입은 학생들을 한차 가득 싣고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  
 
다음부턴 50원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버스 뒤로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는다. 정류장 바로 앞 민박집에 1만원을 깎아 방을 정하고는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그제서야 방동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아주 잠깐 물소리를 듣기 위해 방을 나온 것 빼곤 숟가락을 놓자마자 곯아떨어지는데, 몸 피곤한 것과 달리 밤새 가위에 눌려 버둥버둥 대느라 제대로 잠을 못 이룬다.   
 
둘째 날, 천근만근 지친 몸을 이끌고 현리로(2008년 6월 20일)
 
이렇게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다니, 어젠 정말 무리했나보다. 어찌어찌 눈을 떠 겨우 얼굴에 물만 묻히고는 썬 크림만 잔뜩 바른다. 뭐에 홀렸는지 모자는 잃어버리고 여덟시도 채 안됐는데 햇빛은 장난 아니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더구나 아침도 거른 채 걸으려니 이거야 걷기도 전에 죽을 맛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대충 머리에 수건만 두르고는 해가 머리위에 뜨기 전에 현리에 도착하길 빌며 길을 나선다. 현리까지야 두 시간이면 충분할 테고 어제 택시며 버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눈여겨보니 군데군데 민박집이며 밥집이 있는 듯 해 일단 아침은 건너뛴다. 하기사 어제 아침도 라면, 저녁도 라면으로 때웠기에 오늘 아침까지 라면을 먹긴 좀 그렇긴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어제 저녁엔 그리도 많아 보이던 가게들이 어째 조롱고개를 넘기 전까지 한군데도 보이지 않는 걸까. 도중에 제법 큰 슈퍼가 한 군데 있긴 했는데 조금만 가면 뭐가 나오려니 하며  참고 걸었는데 시간 반이 넘게 걸어도 당체 요기할 만한 곳이 나오지 않는다. 지친 몸도 몸이지만 뭐라도 채워야 할 텐데. ‘도채동 옛길’로 빠져 길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당체 힘이 나질 않는다. 
 
결국 현리 가까이에 당도해서야 아침 먹을 곳이 나타난다. 오가는 이들이라면 무조건 불러들이고는 이른 아침부터 해장술을 기울이는 나이 드신 농부님들 이야기를 반찬삼아 꿀맛 같은 아침을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그래도 밥이 들어가서인지 힘이 조금 나는 것 같긴 한데 팔월 한낮에 뜨거운 햇빛이 벌써부터 등 뒤에 내리쬔다. 이거야 말로 땡볕에 뭔 고생인지. 
 
겨우겨우 기다시피 현리에 들어가니 이젠 이것저것 생각하기도 싫고 그저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지만 한 시간 가까이 더 기다려야 홍천으로 나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다. 한 바퀴 도는 데 20분이면 너무 많고 그렇다고 10분이면 너무 짧은 동네 산책도 잠깐이고 결국 터미널 의자에 기대 꾸벅꾸벅 잠에 빠진다. 그렇게 삼십분을 졸다 홍천행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졸고, 홍천에서 춘천으로 나가는 시외버스 타고 또 졸고,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는다.
 
* 스물한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홍천군 내면 달둔마을에서 방동약수까지 약 30km. 걸은 9시간.
- 둘째 날 : 방동약수에서 인제군 현리까지 약 8km, 걸은 시간 2시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홍천을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5분을 시작으로 2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홍천에서 내면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시간이 6시 45분이고, 다시 내면에서 달둔마을을 거쳐 양양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9시 05분이니 반드시 6시 5분 첫차를 타야 한다. 다만 첫차보단 6시 15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고속도로로 달려 오히려 첫차보다 조금 빨리 도착하니 이 차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하지만 둘 다 6시 45분 언저리에 도착하니 자칫하면 하루를 차 기다리며 보낼 수 있으니 마음을 편히 가져야한다. 또 현리에서 홍천으로 나오는 차편도 올 6월 1일부터 바뀌었으니 이 역시 전화로 꼭 확인해야 한다. 달둔마을이나 방동약수나 어느 쪽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수월치가 않다. 반드시 확인, 또 확인해야 한다. 
 
* 잠잘 곳
월둔마을에서 명지가리를 거쳐 조경동, 조경령, 방동약수까진 숙박은커녕 매점하나 없다. 계곡물이 워낙 맑아 식수는 따로 준비하진 않더라도 반드시 먹거리만은 준비해야 한다. 방동약수 인근엔 민박이며 펜션이며 숙박할 곳은 꽤 있다. 하지만 여름 휴가철 외에는 밥 먹을 만한 곳이 딱히 없으니 하룻밤 묵어가는 곳에서 해결해야 한다. 방동약수에서 현리까진 두 시간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방동분교 앞 매점을 지나치게 되면 조롱고개를 넘기까지 아침을 해결할 만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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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01:34 2010/12/23 0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