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지나온 흔적도 남기지 않아야..... 월둔마을에서 아침가리로(2008년 6월 19일)
 
밤새 또 가니, 못 가니 하다, 오랜만에 김밥 싸고 계란 삶고 벼락 준비에 정신없다. 그러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버스 편 확인하다 울고불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두도령을 넘어 달둔마을까지 왔던 게 작년 5월이니 그새 1년이 지났고, 그 동안 아주 잠깐이라도 걷기를 했었다면 이러진 않았을 거다. 농사짓겠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겠다, 마음먹고 춘천으로 오기까지 남들 눈엔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시간이었겠지만 그만큼 긴 시간이었던 거고 몸도 마음도 알게 모르게 물갈이 중이었나 보다.
 
같은 강원도면서도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세 시간이나 걸려야 달둔마을에 올 수 있으니 그만큼 외지긴 외진 듯하다. 그래도 군내버스 한 칸 가득 맑은 목소리를 가진 아이들의 모둠 노래자랑에 지루하지 않다. 또 차창 너머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계곡이며 푸른 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해 덩달아 콧노래다. 올망졸망 아이들을 내려놓은 차는 그새 달둔마을에 다다라 잠시 멈춘 후 굽이굽이 구룡령 넘어 바다로 향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정감록에 나온다는 삼둔사가리 가운데 삼둔 중 하나인 월둔마을에서 시작해 사가리 중 하나인 아침가리로 이어지는 이름 없는 이 숲길은 지나온 흔적마저 남기지 않아야 한다. 때론 거친 길을 질주하고픈 욕망도 어쩌면 저 끊어진 다리 위에 멈춰 세워야 할 것이고, 하룻밤 별을 헤며 세상사를 나누고 싶다 해도 길 위에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이라곤 월둔마을과 조경분교 근처 젊디젊은 부부 한 쌍 외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니, 부디 이 한 곳만이라도 조용히 그렇게 남겨둬야 마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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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덕봉 바로 아래 명지가리까지는 그래도 뒷산 산책하듯 오른다. 지천에 널린 야생화 구경에 문득문득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빛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기에. 또 조경동까지 이어진 긴 내리막길은 내내 이름 모를 새소리와 계곡 물 소리에 지친 몸과 마음이 맑아지기에. 헌데 다 내려왔나 싶은 그 순간, 길은 다시 끝없는 오르막으로 구절양장 돌고 도는데,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맛보기다.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데, 그러다, 어느 순간 아찔 하기만한 아스팔트 내리막길에 이르면 천근만근, 무거운 몸, 누일 곳을 찾는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에 당일치기로 다녀올 것인지, 미뤄뒀던 남은 길을 모두 걸을 것인지 선뜻 결정하지 못했더니 해는 지는데, 차 시간은 간당간당한데, 어찌할지 몰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외지긴 외진 데라 그런지 버스마저 일찍 끊기고 오가는 차는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일기예보로는 주말에나 되어야 장맛비가 내린다고 하니 하루 정도 여유가 있긴 한데, 몸이 너무나 무겁다.
 
하룻밤 묵어가는데 이틀 치 방값을 내라는 그럴듯한 펜션을 뒤로하고 때마침 읍내로 나가는 듯한 택시를 집어타고 현리로 나오니 이런, 홍천이고 인제고 버스 끊긴지가 이미 오래다. 사실 어제 밤 느닷없이 준비를 한 탓도 있었지만 혹여 하는 마음에 차 시간을 확인했기에 망정이지 갑자기 바뀌어버린 버스 시간에 하루를 그냥 길에서 보내거나 아예 떠날 생각도 못할 뻔 했었는데 결국엔 예상치도 못한 현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하룻밤을 보내야 할 상황이다. 
 
허탈한 마음을 뒤로하고 어찌어찌 잠잘 만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지만 가뜩이나 찜찜한 마음인데다 제법 괜찮다고 보여 들어간 첫 번째 모텔에서 방이 없단 얘기를 듣자 차라리 다시 택시를 타고 방동리로 돌아가자며 터미널로 나온다. 헌데, 천운인지 다행인지 진동리까지 운행하는 통학버스 한 대가 이번엔 교복 입은 학생들을 한차 가득 싣고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  
 
다음부턴 50원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버스 뒤로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는다. 정류장 바로 앞 민박집에 1만원을 깎아 방을 정하고는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그제서야 방동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아주 잠깐 물소리를 듣기 위해 방을 나온 것 빼곤 숟가락을 놓자마자 곯아떨어지는데, 몸 피곤한 것과 달리 밤새 가위에 눌려 버둥버둥 대느라 제대로 잠을 못 이룬다.   
 
둘째 날, 천근만근 지친 몸을 이끌고 현리로(2008년 6월 20일)
 
이렇게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다니, 어젠 정말 무리했나보다. 어찌어찌 눈을 떠 겨우 얼굴에 물만 묻히고는 썬 크림만 잔뜩 바른다. 뭐에 홀렸는지 모자는 잃어버리고 여덟시도 채 안됐는데 햇빛은 장난 아니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더구나 아침도 거른 채 걸으려니 이거야 걷기도 전에 죽을 맛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대충 머리에 수건만 두르고는 해가 머리위에 뜨기 전에 현리에 도착하길 빌며 길을 나선다. 현리까지야 두 시간이면 충분할 테고 어제 택시며 버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눈여겨보니 군데군데 민박집이며 밥집이 있는 듯 해 일단 아침은 건너뛴다. 하기사 어제 아침도 라면, 저녁도 라면으로 때웠기에 오늘 아침까지 라면을 먹긴 좀 그렇긴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어제 저녁엔 그리도 많아 보이던 가게들이 어째 조롱고개를 넘기 전까지 한군데도 보이지 않는 걸까. 도중에 제법 큰 슈퍼가 한 군데 있긴 했는데 조금만 가면 뭐가 나오려니 하며  참고 걸었는데 시간 반이 넘게 걸어도 당체 요기할 만한 곳이 나오지 않는다. 지친 몸도 몸이지만 뭐라도 채워야 할 텐데. ‘도채동 옛길’로 빠져 길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당체 힘이 나질 않는다. 
 
결국 현리 가까이에 당도해서야 아침 먹을 곳이 나타난다. 오가는 이들이라면 무조건 불러들이고는 이른 아침부터 해장술을 기울이는 나이 드신 농부님들 이야기를 반찬삼아 꿀맛 같은 아침을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그래도 밥이 들어가서인지 힘이 조금 나는 것 같긴 한데 팔월 한낮에 뜨거운 햇빛이 벌써부터 등 뒤에 내리쬔다. 이거야 말로 땡볕에 뭔 고생인지. 
 
겨우겨우 기다시피 현리에 들어가니 이젠 이것저것 생각하기도 싫고 그저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지만 한 시간 가까이 더 기다려야 홍천으로 나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다. 한 바퀴 도는 데 20분이면 너무 많고 그렇다고 10분이면 너무 짧은 동네 산책도 잠깐이고 결국 터미널 의자에 기대 꾸벅꾸벅 잠에 빠진다. 그렇게 삼십분을 졸다 홍천행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졸고, 홍천에서 춘천으로 나가는 시외버스 타고 또 졸고,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는다.
 
* 스물한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홍천군 내면 달둔마을에서 방동약수까지 약 30km. 걸은 9시간.
- 둘째 날 : 방동약수에서 인제군 현리까지 약 8km, 걸은 시간 2시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홍천을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5분을 시작으로 2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홍천에서 내면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시간이 6시 45분이고, 다시 내면에서 달둔마을을 거쳐 양양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9시 05분이니 반드시 6시 5분 첫차를 타야 한다. 다만 첫차보단 6시 15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고속도로로 달려 오히려 첫차보다 조금 빨리 도착하니 이 차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하지만 둘 다 6시 45분 언저리에 도착하니 자칫하면 하루를 차 기다리며 보낼 수 있으니 마음을 편히 가져야한다. 또 현리에서 홍천으로 나오는 차편도 올 6월 1일부터 바뀌었으니 이 역시 전화로 꼭 확인해야 한다. 달둔마을이나 방동약수나 어느 쪽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수월치가 않다. 반드시 확인, 또 확인해야 한다. 
 
* 잠잘 곳
월둔마을에서 명지가리를 거쳐 조경동, 조경령, 방동약수까진 숙박은커녕 매점하나 없다. 계곡물이 워낙 맑아 식수는 따로 준비하진 않더라도 반드시 먹거리만은 준비해야 한다. 방동약수 인근엔 민박이며 펜션이며 숙박할 곳은 꽤 있다. 하지만 여름 휴가철 외에는 밥 먹을 만한 곳이 딱히 없으니 하룻밤 묵어가는 곳에서 해결해야 한다. 방동약수에서 현리까진 두 시간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방동분교 앞 매점을 지나치게 되면 조롱고개를 넘기까지 아침을 해결할 만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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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01:34 2010/12/23 0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