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걸어온 사람에게는 끝일런지 모르나(2008년 12월 15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다 왔다, 싶으니 어디서 돌아서야 할지 망설여진다. 첨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까진 가본다, 였는데. 생각해보니 다른 이들은 모두 다 거기서 멈췄으나 걸음을 돌리려는 우리에겐 굳이 거기까지 가야할 이유가 딱히 없다. 7번 국도를 따라 긴 바다 길을 걷기로 했으니 이 길과 만나는 대대삼거리가 적당할 듯도 싶다. 헌데 마음 한구석엔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화진포니 대진과 거진에 있다는 등대니 이것저것 구경도 하며 가볼 때까진 가보자, 란 마음도 몽실몽실하다.  

 

날이 무척 포근하다. 한겨울 날씨를 생각하고 옷도 여러 겹 껴입고 왔는데 다 소용없다. 아니다. 아예 봄옷으로 갈아입어도 걷기엔 하나도 춥지 않다. 아까 차안에서 그리고 읍내에서 또 싸우느라 출발이 늦긴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꽤 많이 걸을 수 있겠다, 싶다.

 

7번 국도와 만나는 대대삼거리를 지나니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유난히 먼 곳까지 둥글게 보이는 하늘이며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오는 비린내 때문이다. 또 언제 나타났는지 갈매기 무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빙빙 돈다. 저 보성 득량만에서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뒀던 그 파란 바다를 근 4년 여 만에 다시 보게 된 거다. 발이 몹시도 시리겠지만 당장에라도 뛰어들고프다. 허나 구경은 다음번으로 미뤄두자, 하고 길을 나섰기에 먼발치서만 눈으로만 들여다보고 서둘러,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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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날 같이 햇살이 따사롭기는 한데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아니 바다와 가까이 하고 있어 그런가, 조금씩 바람이 차갑게 분다. 그래도 바지 안에 쫄쫄이까지 입으며 준비한 탓에 매섭단 느낌은 아직 아니다. 근처에 대나무와 소나무가 번갈아 보이더니 송죽리라는 이름을 드러낸 조그만 마을을 지나 조그만 모래사장을 갖고 있는 반암해수욕장까지 오랜만에 걷기도 한 탓에 조금 힘도 들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뿐사뿐 걷는다.

 

여기저기 멀쩡한 도로 놔두고 또 땅 파서 길 낸다고 공사하느라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질주한다. 하루 종일 있어봐야 고작 몇 백대나 지나갈까 말까한 길옆에 여름 한 철 잠깐 차 좀 밀린다고 뭉텅뭉텅 산 깎고 굴 뚫고 물위에 다리 놓는 일이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려는지. 하긴 어떻게 해서든 운하 만들려고 홍수피해는 조그만 지방 하천에서 더 많이 나는데 4대 강 유역에다 뭔 정비를 한다고 어마어마한 돈을 퍼붓는 나라에서 이까짓 일이야 뭐 그리  일이나 될까. 아무튼 바람은 점점 세지지 덤프트럭 피하느라 길 바깥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힘이 부친다.    

 

지도로만 보면 한 걸음이면 될 듯한데, 어째 걸어도, 걸어도 거기서 거길까. 비슷한 오르막길을 두 개나 오르고 이리 굽이 저리 굽이 꼬부랑길을 두 개나 지났는데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보니 아침에 싸우느라 어디까지 갈 건지 정하질 않았네. 통일전망대는 아니란 것만 이심전심이지 어디서 길을 돌아 나올 건지 확인도 하지 않았던 거네. 에구구. 김밥이랑 건빵이랑 먹으면서 쉬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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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운동부족인 것 같다. 장딴지며 엉덩이까지 결리는 게. 혹여 바지 속에 입은 쫄쫄이 때문에 혈액순환이 안 되서 그런가, 싶어 벗었는데 그때뿐이다. 별 수 없다. 조금가다 쉬고 또 조금가다 또 쉬고, 자주 쉬어가는 수밖에. 그리고 쉴 때마다 몸을 풀어주는 수밖에. 그래도 대진읍내에 못 미쳐선 논두렁을 걸어 철새 때를 쫓아가기도 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는 모래톱을 밟아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바다를 향해 지어진 마을 안 정자에 올라 발 뻗고 쉬기도 하고 이름 모를 포구에선 방파제 위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니 몸이 피곤해도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애당초 처음부터 걷기여행을 어디까지로 하자, 얘기하지도 않았거니와 오늘 아침엔 한바탕 싸우느라 또 정하지 않아 일단 가보자, 나선지라 그저 돌아서면 그만이겠지만 쉽게 돌아서질 못한다. 그렇다고 해질녘까지 걷긴 지금은 괜찮다지만 몸 상태도 그렇거니와 바람이 걱정이어서 아무래도 안 될 듯하다. 길이야 돌아서면 거기가 끝이고 다시 시작이니 어디면 어떻고 어디면 또 어떻겠냐만은 그래도 이왕지사 적당한 곳을 찾아보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해서 그저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다시 길을 돌아서기로 하고 여기가 어딘가 둘러보니, 마차진이란 곳이란다.

 

* 스물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거진읍 대대삼거리에서 마차진해수욕장까지 7번 국도를 따라 약 18km를 4시간 30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거진으로 가는 시외버스 첫차는 7시 10분이다. 이 차를 놓치면 다음 오후 차 이외에는 홍천을 경유하거나 속초로 돌아가야 한다. 마차진이나 그 위 명파리까진 속초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자주 있으니 이 차를 타고 거진이나 속초로 나와 춘천행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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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3:42 2011/07/04 13:42
끝내 바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네(2008년 10월 3일)
 
날이 춥다. 불과 일주일 사이라지만 설악산엔 단풍이 들었다, 하고, 대관령엔 첫 서리가 내렸다, 하니, 어느 틈엔가 그렇게 가을은 이만치 다가섰다. 10월이라는 숫자가 주는 것보다 더 무겁게 옷을 걸치고는 그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채 해가 뜨기도 전에 이리도 서둘러 집을 나서는 지. 원통을 거쳐 속초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이른 추위만큼이나 이른 히터가 조용히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운전기사 아저씨는 자판기 커피를 홀짝홀짝 넘기다 조용히 표만 받아든다.
 
그렇게 다시 길 위에 섰다.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올랐던 그 진부령 그 꼭대기에. 성큼 다가선 가을 날씨 탓인지, 아님 고갯마루라서인지, 이도 저도 아닌 인적 없는 이른 아침이 주는 황량함 때문인지, 바람이 쌀쌀맞기만 하다. 또 아쉬움에 에둘러 옆길로 많이도 샜는데 이제 끝이 저만치다 생각하니 마음까지 추워진다. 이젠 더도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필요 때문에, 다만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걸어갈 때 그 쇠약함이 느껴질 뿐이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걸어갈 때 그 쇠약함 속에는 가끔 출발할 때 느꼈던 고통을 스르르 녹일 정도의 힘과 아름다움이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길에 부대껴 말갛게 씻겨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필요 때문에 침식당한 나머지 고통은 그 날카로움이 무뎌진 것이다. -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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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추위도 피할 요량으로 미술관 문을 밀어보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내부수리란다. 하는 수 없이 혹여나 하고 준비해온 겉옷을 하나씩 더 걸치고는 신나게 내리막길을 내달으니 몸에서 열이 나는 듯 어느새 추위가 한결 가신다. 이내 발걸음에 맞춰 노랫가락을 흥얼흥얼, 이 얘기 저 얘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돌이켜보니 걷는 내내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얘기하며 마음을 나누고 영겁의 인연을 생각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가끔은 길이 주는 아름다움에 겨워 한참을 나아가지도 못하고 서성거렸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또 때때로 자연이 주는 성스러움에 한없는 영적인 충만함에 떨려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이, 그 수많은 겸허가 이렇게 또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일런지. 
 
걷는 사람은 겸허하다. 그는 자신을 지배하는, 그리고 삼켜버릴 수 있는 자연의 가운데에서 스스로가 작다는 것을 느낀다. - 『걷기의 철학』. 크리스토프 라무르.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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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을 다 내려왔나 싶으니 오늘은 바다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중간중간 웃옷을 벗느라, 아침대신 준비한 감자며 옥수수를 먹느라 잠시 서기는 했어도 두 시간 넘게 가방 내려놓고 다리 뻗으며 그렇게 쉬지 않고 걸어왔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갓길마저 좁은데다 이쪽저쪽으로 굽어진 길로 차 또한 조심을 떠느라 온통 신경이 날카로웠는데도 말이다. 어째 이 국도라 불리는 길들을 걸을 때마다 이 모양인지. 차량이 뜸해진 틈을 타 길 가운데로 걸어보기도 하지만 이내 득달같이 달려드는 바퀴를 피하느라 되레 더 피곤하기만 할뿐이다. 포기하고 길 가에 바짝 붙어 열심히 걷는다.
 
기사들은 걷지 않고 말을 탔으며,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말을 탔다. 그들은 터벅터벅 걷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말들은 길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말 때문에 길가로 밀려난 보행자들은 말에게 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말을 탄 사람은 먼지와 오물 속에서 뒤따라오는 보행자들을 앞서 나갔으며, 심지어 그들을 데려다가 자신의 말을 먹이고 돌보는 일을 시키기도 했다. -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 조지프. A. 야마토.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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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유원지를 지나는 동안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쉬는 틈에 잠시 내려 가볼까, 하면 저만치 발아래로 보이는 게 내려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해서 소똥령마을에서는 때마침 배도 고픈 김에 쉴만한 물가를 찾아 나서는데 물은 많으나 당체 그늘이 보이질 않아 또 그게 쉽지가 않다. 하는 수 없어 마을 입구 호두나무 아래 잘 짜 맞춘 평상에 올라선다. 헌데 꿩 대신 닭이라고 하나. 키 큰 나무 그늘에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적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오랜만에 양말 벗고 다리까지 쭉 뻗은 채 누워 김밥으로 배도 채우고 쪽잠도 잔다. 또 아침나절 걸었던 길을 끄적끄적 되새김질해본다. 진부령 꼭대기 찬바람, 돌고 돌아가는 46번 국도, 샛노랗게 물들어가는 논, 구름 한 점 없는 높디높은 하늘, 무엇을 적을까 연필을 굴려보지만 역시나 시간만 적어두고는 곧 일어선다. 아마도 언제나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것들을 말로, 글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말은 길과 같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번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서사적 요소 혹은 시간적 요소로 보건대, 쓰기와 걷기는 서로 닮았다. 미술과 걷기가 서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 『걷기의 역사』. 레베카 솔닛. p.416
 
사용자 삽입 이미지결국 한낮에 잠깐 평상에 누웠던 것이 마지막으로 쉰 게 됐다. 아침과는 달리 머리 위에 내리쬐는 햇볕이 도로 여름으로 되돌아 간 것처럼 뜨거운데다 쉬면서 아무생각 없이 물을 다 마셔버렸는데 도대체 가게는커녕 인적 없는 집들만 쭉 길가에 서 있었던 게다.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오겠지, 조금만 더 가면 물이라도 마실 수 있겠지, 아니 주유소 자판기라도 있지 않을까, 라며 걷고 또 걸었는데 어느새 간성읍까지 오고 말았으니. 끝내 바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한 숨도 돌리지 못하고 걷고 또 걷고, 걷기만 했다.
 
거의 탈진상태로 대대삼거리에 도착한 것도 모자라 거진읍내를 한 바퀴 다 돌고서야 겨우 터미널을 찾았는데, 이런, 춘천행 버스가 분명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없다. 더위에 치치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미친 듯이 걷기만 한 건 버스 시간을 맞추려고 한 것도 있는데. 이리 되고 나니 허탈함에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하지만 어쩌겠나. 확실하지 않은 정보만 믿고 길을 나선 게 죄지. 덕분에 시원한 물냉면으로 갈증도 풀고 지친 다리도 주물러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제나 올지, 저제나 올지, 승강장에 쭈그리고 앉는다. 건너편 택시 승강장엔 손님 없는 택시들만 줄줄이 서있고 그 너머로 언듯언듯 보이는 설악산 줄기 위로 짧은 가을 하늘이 금세 붉어진다.
 
* 스물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진부령 꼭대기에서 46번 국도를 따라 거진읍 대대삼거리까지 약 23km를 6시간 동안 걸음.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진부령을 거쳐 거진이나 속초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기는 하나 원통에서 한 번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다. 거진에서 춘천으로 오는 시외버스는 오후 2시 10분이 막차이므로 부득이 홍천을 경유해야 한다. 홍천으로 가는 시외버스 역시 자주 있는 편이 아닌데다 버스 시간도 최근에 바뀌었으므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홍천에서 춘천은 꽤 늦은 시간까지 버스가 다니니 일단 홍천으로만 나오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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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8:10 2011/05/11 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