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니 다시 길은 시작되고: 거진 등대와 화진포를 찬찬히 둘러보며 마차진에서 초도리까지만(2010년 2월 7일)
 
며칠 집구한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더니 몸이 성치 않다. 그래도 집을 구했다면 한 이틀 쉬면 괜찮겠지만. 서울만치 비싼 값은 하지 않아도 터무니없는 가격에, 믿지 못할 계약 방법을 들이미는데. 맘까지 상하고 집은 구하지도 못하니. 이건 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해서 엊저녁 물치항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컴퓨터라면 리셋이라도 시키겠지만 사람 머리니 그러지도 못하고. 겨울바다라도 보면 좀 낫겠거니 싶어서다. 그래, 차에 올라 창밖으로 쏟아지는 별을 보며 가만 생각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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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등대에서 본 동해바다>
 
7번 도로와 만나는 대대삼거리에서 바다와 함께 걸을까, 기왕 이렇게 된 거 더 올라가볼까, 하던 게 일 년 전이니. 참, 오랜만인데. 그동안 벼르고 별러 집을 나서려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건만. 어찌된 일인지 그때마다 머뭇머뭇 떠나지 못하고. 결국 이 느닷없음이 짐을 꾸리게 하니. 길을 걷기가 쉽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인연이 아니라면 어찌해도 이어지지 않을 터이고, 인연이라면 아무리 싫어도 되는 게 세상일인 걸. 기를 쓰고 바동거려봐야 몸과 마음만 아플 뿐. 정 일이 어렵게 된다면 좀 더 번잡스럽고 신경 쓰이겠지만. 그건 또 그때 가서 생각하고 방도를 찾아보면 될 것을. 너무 조급한 마음을 가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이래저래 참, 잘 왔다, 싶다. 그리고 오늘 내내 바닷길을 걷는 동안. 
 
 
몽실몽실 화진포니 대진과 거진에 있다는 등대니. 이것저것 구경도 하며 가볼 때까진 가보자, 란 마음으로 올라와. 길이야 돌아서면 거기가 끝이고 다시 시작이니. 여기면 어떻고 저기면 또 어떻겠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왕지사 적당한 곳을 찾다 여기가 어딘가, 보니. 속초에서 떠난 1번 버스가 줄곧 바다와 함께 달리고는 멈춰선 곳. 마차진의 너른 바다를 보니. 정말 잘 왔다, 싶고.
 
 
 
 
 
 
 
작은 어촌을 두어 개 지나면서 비릿한 바다냄새에 갓 잡아 올린 고기며, 털게 구경에. 발자국 하나 나 있지 않은 좁고 긴 모래사장을 거닐기도 하고. 난생처음 하는 등대 구경에, 꽁꽁 얼어붙은 화진포 구경까지. 입장료까지 받아 챙기는, 이름만 요란할 뿐인, 이런저런 별장들만 빼면. 또 겨울이라 짧은 해 땜시 많이 걷지 못한 것도 같이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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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옆 화진포>
 
바다와 나란히 걷는 이 걷기. 벌써부터 두근두근. 호기심과 기대가 만땅이다. 
 
 
* 첫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거진읍 마차진리에서 낭만가도를 따라 초도리 화진포까지 4시간여 동안 약 6km.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거진으로 가는 시외버스 첫차는 7시 10분이다. 이 차를 놓치면 다음 오후 차 이외에는 홍천을 경유하거나 속초로 돌아가야 하는데. 홍천을 경유하게 되면 버스 시간을 맞추는 것도 맞추는 것이지만 다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직행버스를 타야하므로. 속초까지 무정차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속초로 간 다음 속초에서 마차진까지 운행하는 1번 버스를 타는 것이 조금 나을 수 있겠다. 하지만 1번 버스 역시 여기저기 설 곳 다 서가며 가니 꽤나 시간이 걸리긴 한다. 허니 시간 맞추기만 잘 하면 이것이나 저것이나 매한가지인 듯싶다. 물론 비용면에서도 대동소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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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1 11:13 2011/09/21 11:13

길을 걸어온 사람에게는 끝일런지 모르나(2008년 12월 15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다 왔다, 싶으니 어디서 돌아서야 할지 망설여진다. 첨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까진 가본다, 였는데. 생각해보니 다른 이들은 모두 다 거기서 멈췄으나 걸음을 돌리려는 우리에겐 굳이 거기까지 가야할 이유가 딱히 없다. 7번 국도를 따라 긴 바다 길을 걷기로 했으니 이 길과 만나는 대대삼거리가 적당할 듯도 싶다. 헌데 마음 한구석엔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화진포니 대진과 거진에 있다는 등대니 이것저것 구경도 하며 가볼 때까진 가보자, 란 마음도 몽실몽실하다.  

 

날이 무척 포근하다. 한겨울 날씨를 생각하고 옷도 여러 겹 껴입고 왔는데 다 소용없다. 아니다. 아예 봄옷으로 갈아입어도 걷기엔 하나도 춥지 않다. 아까 차안에서 그리고 읍내에서 또 싸우느라 출발이 늦긴 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꽤 많이 걸을 수 있겠다, 싶다.

 

7번 국도와 만나는 대대삼거리를 지나니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유난히 먼 곳까지 둥글게 보이는 하늘이며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오는 비린내 때문이다. 또 언제 나타났는지 갈매기 무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머리 위를 빙빙 돈다. 저 보성 득량만에서 마지막으로 눈에 담아뒀던 그 파란 바다를 근 4년 여 만에 다시 보게 된 거다. 발이 몹시도 시리겠지만 당장에라도 뛰어들고프다. 허나 구경은 다음번으로 미뤄두자, 하고 길을 나섰기에 먼발치서만 눈으로만 들여다보고 서둘러,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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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날 같이 햇살이 따사롭기는 한데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아니 바다와 가까이 하고 있어 그런가, 조금씩 바람이 차갑게 분다. 그래도 바지 안에 쫄쫄이까지 입으며 준비한 탓에 매섭단 느낌은 아직 아니다. 근처에 대나무와 소나무가 번갈아 보이더니 송죽리라는 이름을 드러낸 조그만 마을을 지나 조그만 모래사장을 갖고 있는 반암해수욕장까지 오랜만에 걷기도 한 탓에 조금 힘도 들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뿐사뿐 걷는다.

 

여기저기 멀쩡한 도로 놔두고 또 땅 파서 길 낸다고 공사하느라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질주한다. 하루 종일 있어봐야 고작 몇 백대나 지나갈까 말까한 길옆에 여름 한 철 잠깐 차 좀 밀린다고 뭉텅뭉텅 산 깎고 굴 뚫고 물위에 다리 놓는 일이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려는지. 하긴 어떻게 해서든 운하 만들려고 홍수피해는 조그만 지방 하천에서 더 많이 나는데 4대 강 유역에다 뭔 정비를 한다고 어마어마한 돈을 퍼붓는 나라에서 이까짓 일이야 뭐 그리  일이나 될까. 아무튼 바람은 점점 세지지 덤프트럭 피하느라 길 바깥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힘이 부친다.    

 

지도로만 보면 한 걸음이면 될 듯한데, 어째 걸어도, 걸어도 거기서 거길까. 비슷한 오르막길을 두 개나 오르고 이리 굽이 저리 굽이 꼬부랑길을 두 개나 지났는데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보니 아침에 싸우느라 어디까지 갈 건지 정하질 않았네. 통일전망대는 아니란 것만 이심전심이지 어디서 길을 돌아 나올 건지 확인도 하지 않았던 거네. 에구구. 김밥이랑 건빵이랑 먹으면서 쉬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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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운동부족인 것 같다. 장딴지며 엉덩이까지 결리는 게. 혹여 바지 속에 입은 쫄쫄이 때문에 혈액순환이 안 되서 그런가, 싶어 벗었는데 그때뿐이다. 별 수 없다. 조금가다 쉬고 또 조금가다 또 쉬고, 자주 쉬어가는 수밖에. 그리고 쉴 때마다 몸을 풀어주는 수밖에. 그래도 대진읍내에 못 미쳐선 논두렁을 걸어 철새 때를 쫓아가기도 하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는 모래톱을 밟아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바다를 향해 지어진 마을 안 정자에 올라 발 뻗고 쉬기도 하고 이름 모를 포구에선 방파제 위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니 몸이 피곤해도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애당초 처음부터 걷기여행을 어디까지로 하자, 얘기하지도 않았거니와 오늘 아침엔 한바탕 싸우느라 또 정하지 않아 일단 가보자, 나선지라 그저 돌아서면 그만이겠지만 쉽게 돌아서질 못한다. 그렇다고 해질녘까지 걷긴 지금은 괜찮다지만 몸 상태도 그렇거니와 바람이 걱정이어서 아무래도 안 될 듯하다. 길이야 돌아서면 거기가 끝이고 다시 시작이니 어디면 어떻고 어디면 또 어떻겠냐만은 그래도 이왕지사 적당한 곳을 찾아보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해서 그저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다시 길을 돌아서기로 하고 여기가 어딘가 둘러보니, 마차진이란 곳이란다.

 

* 스물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거진읍 대대삼거리에서 마차진해수욕장까지 7번 국도를 따라 약 18km를 4시간 30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거진으로 가는 시외버스 첫차는 7시 10분이다. 이 차를 놓치면 다음 오후 차 이외에는 홍천을 경유하거나 속초로 돌아가야 한다. 마차진이나 그 위 명파리까진 속초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자주 있으니 이 차를 타고 거진이나 속초로 나와 춘천행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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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4 13:42 2011/07/04 1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