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내면엔 나물이 지천이랑께”, 상원사에서 오대산 두도령을 넘어 달둔마을 앞머리까지(2007년 5월 26일)

 
당일치기가 가능할까? 새벽, 진부행 첫 차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한다. 오대산 상원사야 널리 알려진 만큼 쉬이 갈 수 있으나 오대산 넘어 명개리나 광원리쪽은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군내버스를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출발할 땐 ‘까짓 못 나오면 하루 더 있다 오지 머’라며 가벼이 생각하기는 했어도, 일요일 아침 어중간한 시간에 서울로 오게 되면 애꿎게 하루를 그냥 보낼 수 있기에 어찌해서든 서울로 나오는 버스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연신 안절부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진부에서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에 오르니 우통수(于筒水)에서부터 시작된 한강 물줄기가 전나무 숲 사이로 시원스레 흐르는데 걸으면서 느끼는 맛과는 또 다르다. 하지만 차를 이용하게 되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맛볼 수 없으니 필히 차를 두고서 두 발로 걸어야 한다.
 
상원사 앞은 어제가 초파일이어서인지, 5월이라는 계절 탓인지, 황사가 있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의 등산객들로 가득이다. 우리야 산을 오르는 게 아니기에 크게 개의치 않다지만 오대산이라는 이름값에 사람도 산도 몸살이다.
 
버젓이 446번 지방도로라는 딱지를 갖고 있으나 일년 중 절반 이상 차량 통행을 허용하지 않는 비포장도로가 눈앞이다. 분단의 상처를 안고 생겨났지만 이제는 오대산의 너른 품안에 안겨 길과 숲이 하나가 된 이 길은 상원사에서 시작해 명개리까지 50리 길이니 넉넉잡아 6시간 정도면 충분하니 서붓서붓 걸으며 온 산을 오롯이 품을 수 있다.
 
북대사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초입길이라 다행이지 중도에 이런 길을 만났다면 꽤 시간이 들었을테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도 해야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숨이 턱 밑까지 올라와 잠시 발길을 멈추고는 서울에부터 짊어지고 배낭을 풀어 헤친다. 비록 찬도 없는 김밥 세 줄이지만 진수성찬이 따로 없고 맛은 또 얼마나 꿀맛인가. 이렇게 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앉아 한가로이 밥 먹을 수 있는 지방도로가 몇이나 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높이가 1,310m로 비로봉(1,563m)과는 불과 250여m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두도령에 오르니 12시 40분이다. 상원사에서 10시 35분에 출발했으니 2시간이 걸렸는데, 북대사에서 15분 정도 김밥 먹으며 시간 보낸 걸 빼고 나면, 1시간 40분 걸린 셈이다. 오대산의 자랑인 전나무며, 소나무를 맘껏 볼 수 있어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된 줄 모른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이어 한참을 평지에서와 같은 길이 이어지더니 두도령을 지나면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또아리를 튼 뱀 마냥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쪽 구비를 지날 땐 멀리 점봉산이니 한계령이 머리를 내밀고, 이쪽 구비를 돌아설 땐 시원스런 계곡물과 마주친다. 상원사를 출발해 세 시간이 넘게 걷고 있지만 딱 한 팀, 것도 달랑 세 명의 산 타는 사람만 만났으니 오대산을 전세 낸 거나 다름없고, 오랜만에 매연 속에서 벗어나 산길을 걸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명개리쪽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도착하니 네 시가 안됐다. 여기서 다시 56번 국도와 만나는 곳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렸고, 표지판을 보니 상원사까지 19.6km다. 구불구불 산길을 여섯 시간이나 걸었는데도 피곤하지 않은 걸 보니 울창한 나무들이 내뿜는 숲 내음 덕이리라.
 
당초 광원리까지 무리라 판단했지만서도 달둔마을 앞머리에 이르니 어느덧 여섯시고 아쉬운 마음이 가득이다. 명개리까지 거슬러 올랐던 군내버스가 저만치서 오는데, 막차는 아니지만 창촌에서 홍천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저 차에 올라야 한다. 아예 하루 머물면서 삼둔사가리 중 하나인 달둔마을 구경에 나설까도 싶지만 결국 떠나기 전 안절부절이 버스 안으로 몸을 디밀게 한다.
 
창촌에 도착하니 홍천으로 나가는 버스시간이 한참 남았다. 홍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아무래도 이곳에서 간단하게나마 요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해서 변변한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은, 이곳에 정착한지 이제 6년이 조금 넘었다는, 슈퍼인지 분식점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가게 집에 들어서는데, 나물향이 가득이다.
 
“5월, 내면엔 나물이 지천이랑께”
 
어머니 49재 음식을 준비할 때였다. 동그랑땡이니 적을 만드느라 돼지고기를 만졌는데 전에 없이 빨간 두드러기가 몸 여기저기에 생기는 게 아닌가. 첨엔 그냥 고기가 상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두 번인가 돼지고기를 먹을 기회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은 입안에 넣었고 한 번은 만지기만 했는데도 예의 그 두드러기가 또 나타났다. 이를 어째, 별수 없어 이번엔 한의원엘 찾았더니, 체질이 바뀌었으니 고기를 끊던가, 약을 먹던가 하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쩝. 하지만 어쩌랴. 애당초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되면 ‘공산품 고기는 그만 먹어야지’ 하고 맘먹고 있었던 차라. 아예 잘 됐다 싶어 이번 기회에 끊기로 했다. 그리고는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왔으나 이제껏 관심 밖에 머물러 있던 나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때맞춰 봄나물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맛을 들이기에는 제격인 듯싶었고, 된장에, 고추장에, 초장에, 들기름에, 이렇게 저렇게 맛을 내니 어느새 나물 맛에 흠뻑 빠지게 됐다. 그런데 여기 이 깊은 산골마을에 들어서 봄나물을 한가득 보니 어찌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지 않을 수 있을까.
 
요기를 할 만 것이라고는 달랑 떡볶이가 전부지만 아주머니의 마을 자랑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덩달아 우리도 오랜만에 수다를 풀어내는데 어느새 홍천 나가는 버스에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린다.
 
* 스무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오대산 상원사에서 홍천 내면 달둔마을 입구까지 약 24km. 걸은 7시간.
 
* 가고, 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를 거쳐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30분을 시작으로 3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진부에서 상원사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는 시간이 8시 30분, 9시 40분이니 6시 30분 첫차나 7시 10분에 출발하는 다음 차를 놓쳐서는 안 된다. 명개리나 달둔마을, 혹은 인근 광원리에서 서울로 오는 길은 창촌과 홍천을 거쳐야만 하는데 하루 몇 차례 운행하는 버스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다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따라서 사전에 창촌터미널, 홍천터미널 등지에서 버스 시간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 잠잘 곳
상원사에서 명개리까지 50리 길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으니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명개리에서 광원리까진 드문드문 민박집과 음식점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큰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삼봉자연휴양림이 자리 잡고 있으니 이곳에서 하루 머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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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0 23:40 2010/11/10 23:40

진부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을 거쳐 상원사까지(2007년 4월 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4월 초 날씨엔 봄철 입산통제가 아니라도 두도령을 넘는 일정이란 쉽지 않을 듯하다. 서울만 하더라도 여의도에 벚꽃이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고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나뭇가지들에 새순이 파릇파릇 돋지만 여기 강원도는 아직 녹지 않은 눈 구경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바람은 매섭고 해 떠 있는 시간은 짧아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넉넉지가 않다. 해서 요번엔 당일치기로 걷되, 다만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볼 수 있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으로 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에 밥 한술 뜨지 못 하는 부산을 떨었는데도 진부에 도착하니 그새 9시가 훌쩍 넘었다. 부족한 잠이야 차안에서 채우기는 했지만 어째 아침은 한 술 뜨고 가야 출발해야 할텐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터미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상원사로 향하는 59번 국도로 올라선다. 하지만 지난 해 수해 때문인지 도로 위에 온통 덤프트럭 천지다. 읍내엔 그래도 인도가 있어 다행이지만 읍내를 벗어나니 걷기가 쉽지만은 않다.

 

한 시간 가량 질주하는 덤프트럭들을 피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걸었더니 몸이 지치는 건 둘째고 길을 걷는 맛이나 흥이 당체 생기질 않는다. 심지어는 괜히 왔나 싶다. 게다가 잠시 허기진 배도 채울 겸 기분전환도 할 겸 상원사로 이어지는 삼거리 앞 슈퍼에서 이것저것 주전부리 할 만 한 것들을 찾는데. 이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삶은 계란이라고 생각하고 집어 들었던 것이 구운 계란이라 ‘비린 맛’ 때문에 다른 것을 고르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삶은 것보다 덜 비리다며 까탈스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어쩜.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걸 모르고 저러시는 걸까? 대충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들고는 서둘러 가게를 빠져 나온다.

 

투덜투덜 서로 말도 없이 걷기만 하는데 언제부터였는지 푸른 잎의 전나무가 길 양옆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 또 이름 모를 꽃들이 나무 아래에 은하수처럼 깔려 있다. 어느 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겨우내 문을 닫고 있다 엊그제서야 다시 문을 연 자생식물원 구경은 다음으로 미룬다. 지금 가봐야 꽃도 피어 있지 않을 거라는 위안은 식물원으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개 한 마리에 막혀 길을 돌아서면서 했을테니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상원사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산수명산’이란 음식점에서 맛나게 산채백반에 감자전을 곁들여 동동주를 한 잔 걸치니 마치 오늘 걸어야 할 길을 다 걸은 듯하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진 많이 잡아도 3시간이면 될 터이니 때 아닌 느긋함을 부리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오전에 보았던 전나무는 맛보기였다. 월정사대가람(月精寺大伽藍)이라는 편액 아래 일주문을 걸어야만, 그것도 차를 놓고 걷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는 월정사 전나무 숲은 쌀쌀한 바람과 차디찬 햇살과는 다른 파란 세상으로의 통로다. 한겨울의 추위 동안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갔던 이름 모를 새들이 긴 침묵을 깨듯 맑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하늘 아래로부터 이파리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전나무 숲길의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까지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적광전이며, 수광전이며, 성보박물관까지 절 구경을 마치고 나니 아직 해가 머리 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야 아무리 산길이라도 3시간이면 충분하니 서둘지 않아도 될 터이나 진부로 나가는 막차가 5시 20분인데다 이 차를 놓치게 되면 꼼짝없이 월정사까지 다시 되돌아 나오지 않으면 안 되기에 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산길로 접어든다.

 

계곡을 끼고 도는 길이라 그런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군데군데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 겨울 분위기지만 절을 벗어나자마자 만나는 흙 길을 옆에 두고 흐르는 계곡 물은 따스한 햇살만큼이나 나근나근하다.

 

상원사에 도착하고 보니 월정사를 출발한지 두 시간이 조금 지났다. 올라오는 길에 마주치기는 했지만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서있는 버스를 보니 상원사 구경은 다음으로 미룰까도 싶다. 하지만 오늘 하루 걸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데다 두도령을 넘어 명개리를 지나야 하는 다음 번 걷기를 생각해보면 오늘 절 구경을 해두는 게 낫다 싶어 상원사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오른다. 게다가 아직 막차가 남아 있지 않은가.

 

상원사는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왕이 된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둘이 있는데, 목욕하며 만난 문수보살과 법당 앞에서 자객을 일러준 고양이가 그것이다. 보살은 후에 문수동자상으로 상원사에 남겨졌고, 고양이 역시 상원사 청량선원 앞에 석상으로 남았다. 재미난 것은 후대 사람들이 고양이 석상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무튼 우리도 고양이 석상을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는데, 우리 하는 짓이 궁금했는지 한 아주머니가 빼꼼이 머리를 내밀고 쳐다본다. 해서 이래저래 해서 우리도 고양이를 만진다 했는데, 우리말이 그치기가 무섭게 그 아주머니 왈.

 

“열심히 만지세요”

 

찬바람이 쌩. 오전에는 슈퍼에서 까탈스런 목소리를 듣더니 오후에는 절에서 쌀쌀한 목소리를 듣는 게, 어째 오늘은 사람일진이 좋지 않다. 머 언제고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은 마음 상처가 크다.

 

절 구경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남았더라면 가까운 적멸보궁까지 둘러보겠지만 어중간한 시간 때문에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절 아래 정류소로 일지감치 내려간다. 그새 해가 저만치 산 너머로 지고 바람이 조금 세졌다.

 

정류장에 분명 5시 20분이 막차시간이라고 써 있음에도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불안해서인지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었던 것 때문에.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도 한참 동안이나 운전기사 아저씨의 꿍얼꿍얼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랴. 그저 진부에 도착할 때까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볼 수밖에.

 

* 열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진부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을 지나 상원사까지 약 21km. 걸은 6시간 30분.

 

* 가고, 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를 거쳐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30분을 시작으로 30여분 간격으로 있다. 상원사에서는 진부로 나오는 막차가 17시 20분이므로 시간을 잘 맞춰야 하며, 진부에서 동서울로 오는 시외버스는 역시 30여분 간격으로 막차 20시 45분이다.

 

* 잠잘 곳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길에는 오대산장이 있으며, 월정사 부근에는 민박촌이 형성돼 있다. 상원사에서 두로령을 넘어 구룡령까지는 숙박할 곳이 따로 없으니 일정 잡는데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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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23:39 2010/10/20 23:39
첫째 날, 꼬마기차 타고 자개골 입구로(2007년 3월 1일)
 
증산에서, 지금은 아우라지역으로 불리는 여량까지 하루 두 차례 운행하는 꼬마열차를 타고 지난 번 걸었던 길을 되짚어 오르니 길을 걸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다. 완연한 봄기운은 창안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에 담겨 있고, 정선에서부터 기찻길과 쭉 함께 하는 조양강의 풍경과 천 미터를 오르내리는 정선의 산들의 협곡들은 기차여행의 맛을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이별하는 골짜기’라는 이름답게 이제는 뭇사람들과 ‘이별’하는 별어곡역, 지난 1966년 12월 30일 준공된, 기차여행가들의 성지로 된 선평역, 지금은 철거가 중단된 몇 안 되는 목조역사인 나전역, 전에는 여량역으로 불리었으나 이웃한 아우라지의 명성으로 이름마저 바뀐 아우라지역 등 역무원조차 없는 간이역이 시간을 세워놓고 기다리니 쉬엄쉬엄 가야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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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열차에서 본 아우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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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을 속 껍질째 갈아 까뭇까뭇한 가루를 여러 번 치대며 반죽을 해 제물에 삶아 내는 데 국수발이 하도 쫄깃쫄깃해 들여 마실 때 국수꼬리가 콧등을 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콧등치기 국수를 아우라지 역 앞 이름 모를 식당에서 한 그릇 씩 먹고 나니 금세 4시가 가깝다. 오늘은 자개골 입구까지만 걷기로 했으니 대략 2시간 내외면 될 터이지만 아직은 해 떠있는 시간이 짧기만 한데다 산골짜기 길이라 서두르지만 오만 군데 여행 정보지에 담긴 구절리 레일바이크 구경을 빼놓을 수는 없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자개에 도착하니 시간은 5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째, 날이 흐려서인지 아님 산골이라 해가 짧아서인지, 벌써 어둑어둑하다. 서둘러 쉬어 갈 곳을 정해야겠는데 전화를 돌려보는 곳마다 방이 없다는 둥, 겨울에는 민박을 하지 않는 다는 둥 마땅치가 않다. 여기서 더 가봐야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서든 머물 곳을 찾아야 할 텐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돌린 동신하우스라는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두말없이 일단 올라오란다. 빈방은 없지만 자기 자는 곳 한켠에서 잔다면야 돈 안 받아도 된다는 말과 함께. 어찌 마다할까.
 
민박 집 앞에서 아주머니를 부르니 집 뒤편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아주머니가 내려오시는데, 아주머니를 따라 2층 거실에 들어서니 생각지도 못했던 강아지 새끼 네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고약한 발 냄새가 나는 발목을 번갈아 휘어 감으며 킁킁 냄새를 맡는데 대략 난감이다. 그래도 씩씩하게 우리 집인 양 번갈아 가며 따뜻한 물에 목욕까지 하고 나와 곧 다가올 정월 보름을 앞두고 몇 가지 나물을 했다며 내준 저녁밥을 두 그릇씩 얻어먹고는 아주머니 자식 자랑에, 남편 흉보기에, 우리들 여행이야기에, 밤이 깊어간다.
 
  
 
둘째 날, 악천고투, 빗속을 뚫고 봉산재를 넘어 진부로(2007년 3월 2일)
 
정선의 자개골과 평창의 신기를 이어주는 옛 길은 전에는 오솔길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가파른 길을 다소 돌아가거나 차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넓혔다고 한다. 하지만 정선쪽 자개골쪽이나 평창쪽 신기리쪽 어느 곳에서 길머리를 잡든 포장되지 않은 흙 길을 걸을 수 있는데다 마을 사람들 이외에는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우니 길을 걷는 맛만큼은 여느 길보다 좋다. 하지만 오지마을이라고 할 봉두곤리가 겨우 흔적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지난해 수해로 큰 피해를 입어, 구절양장 이어지는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발걸음만큼이나 마음 또한 무겁기만 하다.
 
6시, 멀리 봉산재 위로 햇살이 퍼진다. 혹여 아주머니가 깨실까 조심조심 세면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고 나서니 햇살위로 먹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어제 저녁 뉴스에, 기상청 예보에, 비가 올 거라 들었고, 마침 비옷까지 준비를 해오기는 했지만 아주머니로부터 지난 해 수해 이야기를 들었던 차라 조심조심할 수밖에 없다. 일단 봉산재 아래 상자개와 봉산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대광사까지 가보기로 한다. 물론 비 내리는 모양이 범상치 않다면 바로 발길을 되돌리기로 하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자개에서 상자개를 거쳐 대광사까지 이르는 동안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곳곳에 계곡 물로 길이 끊겨 있어 흔적을 겨우 찾을 수 있는 옛길을 걸어야 하고, 때로는 발목까지 차가운 계곡 물에 담가야만 길을 이어갈 수 있어 무척 힘이 든다. 급기야 대광사를 지나 봉산재 아래 하늘마을 봉산리에 이르러서는 흔적 없이 사라진 마을이 길을 막아 다리에 힘이 쭉 풀리고 만다. 준비해간 지도에는 다리며, 아무개 집이며, 휴양지관리사무소며, 봉산분교며 이것저것 표시도 많지만 대광사와 봉산분교터와 마을 표석과 봉산리 마을 입구 성황당만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허참.
 
봉산리에서 시작된 긴 오르막길에 접어들자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한다. 비야 대광사 못 미쳐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해 아무렇지 않지만 모처럼 만난 흙길 때문에 되려 발걸음이 무겁다. 그래도 조금 쉬고 조금 오르고 또 조금 쉬고 조금 오르고 하며 한참을 오르니 어느새 고갯마루다. 올라온 길을 뒤로는 하얗게 눈 덮인 두루봉이 코앞이고 내려갈 길 앞으로는 역시 하얗게 눈 덮인 박지산이 코앞이다. 이제 서울에선 보기 힘든 눈 구경에 잠시 마음이 들뜨기도 하지만 잠시 숨만 고르고는 곧 길을 나선다.
 
봉산재 옛길에 대해 알려주는 여러 정보에 의하면 신기리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면 될 듯한데, 빗줄기는 더 굵어지지, 핸드폰은 터지지 않아 시간은 알 수 없지, 길은 갈수록 진흙탕 길이지, 오가는 사람 하나 볼 수 없지, 기온은 떨어지지, 준비해 온 간식은 다 떨어졌지, 막상 신기리에 도착하니 어째 하루 종일 걸은 듯하다. 그야말로 악천고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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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양장 봉산재 옛길을 걷다>
 
가까운 곳에 청심대(淸心臺)가 있으나 둘러보지 못하고 신기리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쏟아지는 비만 잠시 피하고는 또 바삐 걸음을 옮긴다. 이젠 걷는 다기 보단 그저 발을 앞으로 내딛을 뿐이다. 멀리 진부가 손에 잡힐 듯 보이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아까 쉬었던 곳에서 1시간을 넘게 또 걸어야 했다. 파김치 몸을 이끌고 체면도 없다. 처음 눈에 들어온 중국집에 들어서니 몸과 방바닥이 어느새 하나다. 그렇게 누워 한쪽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시계 바늘이 3과 12에 걸렸다. 자개골에서 7시에 출발했으니 꼬박 8시간을 쉬지 않고 빗속을 걸은 셈이다.
 
* 열여덟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아우라지에서 자개골 입구 하자개까지 약 4km. 걸은 시간 1시간 30분.
- 둘째 날 : 아우라지에서 봉산재를 넘는 옛길을 따라 신기리까지 여기서 다시 59번 국도를 따라 진부까지 약 30km. 걸은 시간 8시간.
 
* 가고, 오고
증산에서 아우라지를 왕복하는 꼬마열차는 오전 9시, 오후 2시 두 차례 정선에서 출발하는데, 청량리에서 오전 10시 출발하는 무궁화 열차를 이용하면 내린 곳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하는 꼬마열차로 갈아 탈수 있으니 이편을 놓쳐서는 안 된다. 진부에선 대관령 너머에서 오는 시외버스가 잠시 들렀다 서울로 오는데 꽤 자주, 그리고 늦게까지 있다.
 
* 잠잘 곳
자개골 입구 하자개에는 산수갑산, 동신하우스, 자개골민박 등 민박이 몇 있으나 겨울철에는 민박을 하지 않으니 미리 사전에 확인을 해야 하며, 이곳을 지나 봉산재를 넘어 신기리까지는 민박은커녕 민가조차 없으니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신기리쪽은 신기리에서 진부까지 1시간 거리니 진부쪽에서 숙박을 하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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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6 13:18 2010/09/06 13:18
아라리의 고향, 정선(2007년 1월 19일)
 
어제, 밤늦게 정선에 왔다. 2일과 7일에 열리는 정선 장날과 운 좋게 맞아떨어진다면 기차로 쉬이 올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4시간이 넘게 장평과 증평을 거쳐야하니 시작부터 혹사다. 혹여, 시간만이 아니라도 하루 두 번, 증산에서 아우라지를 왕복하는 꼬마열차를 타볼 요량이라면 꼼꼼히 잘 챙겨야 한다.
 
느긋한 아침에, 크지 않은 읍내라 금방 찾겠거니 싶어 찾아 나섰던 아우라지 촌(村) 때문에 12시가 다되어서야 길을 나설 수 있었다. 그것도 점심까지 먹고서. 하지만 지붕을 어떤 것으로 했느냐에 따라, 귀틀집, 너와집, 굴피집, 돌집, 저릅집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옛집들을 둘러볼 수 있어 시간이 아깝지만은 않다.
 
읍내를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오르막길이 이제 내려가겠거니, 하면 또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오르막길이야 적응이 돼서 그렇지 곳곳에 발걸음을 늦추는 빙판은 오가는 차가 없어 다행이지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이 높으니 당연 길도 높을 것이나 따뜻한 날이 꽤 오래 되어도 쉽게 녹지 않는 눈들을 어쩌랴.
 
중간에 한 번 주유소에서 잠깐 쉰 것 빼곤 한 시간 가까이나 긴 오르막을 올랐는데, 에게, 겨우 해발 450m라네. 발아래 마을이 언뜻 까마득히 보이는데 어째 요 높이일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번 여행 때도 정선 들어가는 긴 오르막길 끝 솔치재도 요만한 높이였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근동의 마을들에 들거나 나거나 할 땐 이 정도 고개 하나씩은 넘어야 할 듯하다.
 
 
반점재로 오르는 길에서는 답사여행을 나온 일단의 젊은이들로부터 수군수군 눈초리를 받기도 하고, 반점재 꼭대기에서는 그래도 숨 한번 고르고 나니 어느새 내리막길이다. 따뜻한 햇살을 한껏 받으며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는데, 길을 가운데 두고 오른편은 얼어붙은 얼음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겨울 강줄기, 왼편은 고작 하루 네 번 열차만 실어주기만 하면 되는 기찻길이, 때 이른 봄 풍경이다.
 
 
진부로 이어지는 59번 지방도로와 만나는 나전에 이르니 2시가 넘었다. 12시 정선을 출발해 반점재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린 것 이외에는 쉬지 않고 걸었으니 몸이 뻐근할만도 한데 봄 풍경 때문인지 힘든지 모른다. 그래도 앞으로 이만큼은 또 걸어야 하기에, 그리고 때맞춰 멈춰선 꼬마열차 구경에 잠시 쉬어간다. 헌데.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영월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새인가부터 눈에 자꾸만 걸리기 시작한 ‘평창동계올림픽’ 간판이 유난히 거슬린다. 차가 많이 오가는 국도는 물론이고 지방도로에 지번도 없는 작은 소로에까지 여기저기 스키 타는 모습들이다. 아마도 평창에 가까워지면서 덩달아 간판들도 늘어난 것일 테다. 그래도 그렇지. 가만 생각해봐도 산허리를 절딴 내고서야 겨우, 그것도 내리지 않는 눈을 기다리다 못해 가짜 눈을 만들고서야 스키를 탈 수 있는데 뭔 ‘경제유발효과’인지. 한쪽에서는 온난화로 인해 앞으로 아열대기후로 변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다른 한쪽에서는 뭉턱뭉턱 나무를 밀어내고 산을 깎아내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양이 ‘냄비 언론' 탓만은 아니리라.
 
당초 오늘 걷기는 여기까지다, 생각했던 여량에 가까이 다가오니 4시가 넘어도 한참이다. 해가 짧아지기는 했어도 어째 좀, 시간이 어정쩡하다. 오늘 하루 걸은 길이 대략 50리 길에 시간상으로도 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데다 이 시간에 잠자리를 찾아 여관을 기웃거리는 것도 좀 그렇다. 더구나 내처 경전선의 끄트머리인 구절리역까지 걷기에는 더욱 시간이 애매하다. 어찌할까.
 
결국 인근 임계에서 군내버스로 1시간이면 동해바다를 볼 수 있다는 말에 혹하고 넘어가 밤바다 구경에 나서는데, 꾸불꾸불한 길 이쪽 아래 여량 읍내의 불빛과 저쪽 아래 동해 읍내의 불빛이 잠깐의 시차를 두고 사라졌다, 나왔다 하며 길을 밝힌다. 아무래도 길을 잘 나선 것도 같다. 게다가 오랜만에 듣는 파도 소리에 요 며칠 찌뿌둥했던 기분이 싹 가셔지니 꽤 쌀쌀한 밤바람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정선에서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 하나
정선읍내를 벗어나면서 시작되는 긴 오르막길 끝에 반점재가 있다. 높이는 450m. 옛 길은 반점재로 오르다 오른쪽으로 국일관이라는 식당이 보이는 건너편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시작되는데, 길 입구, 뭐 하나 알려주는 표지판도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고개를 넘지 않고 질러간다고 해서 ‘지르러미’라고도 불렸다는데, 비록 채 10km가 되지 않은 짧은 길이지만 강과 함께 걷고자 한다면 이 옛 길을 놓쳐서는 안 된다.
 
* 정선에서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 둘
지르러미를 지나 강, 길, 기찻길이 나란히 가는 42번 국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나전이다. 이곳에서 나전중학교 담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한국가스공사 연수원이 보이고 다시 여기서 왼쪽으로 난 길이 봉화치를 넘어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의 시작이다. 이 길은 정선과 아우라지를 이어주는, 42번 국도와 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으로 나란히 이어진다. 비록 시멘트로 발라져 옛 길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봉화치에서 내려다보이는 물길이 아름답기에 이 옛 길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 열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정선 읍내에서 아우라지가 마주 보이는 여량까지 5시간 동안 약 20km를 걷다.
 
* 가고, 오고
정선으로 가는 길은 증산을 거쳐 꼬마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길과 장평, 증평을 경유하는 시외버스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이 됐건 4시간 정도가 소요되므로 시간상으로는 차이가 없다. 다만 하루 두 차례 증산에서 아우라지까지 운행하는 꼬마열차를 타보는 것도 색다른 맛일 것이다.
 
* 잠잘 곳
정선읍내에는 쉬어가기 좋은 모텔이 몇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만 여량에는 유명한 옥산장 이외에 민박이 몇 없으니 사전에 잘 알아봐야 하며 정선읍내에서 여랑까지는 숙박시설은 물론 음식점도 보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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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1 13:18 2010/07/21 13:18

다섯째 날, 동강을 뒤로하고 아라리의 고향 정선으로(2006년 11월 9일)

 

평창 땅의 오대산에서 시작되는 오대천과 정선 땅을 흐르는 조양강을 모아 흐르는 동강의 신비로움은 그 이름만큼이나 세상 밖으로 온전히 다 나온 건 아닌 듯하다.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그 내면의 깊이까진 맛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강줄기를 따라가는 이야기는 드문드문 이름난 곳들에만 남아 있어 강을 온전히 이어주고 있지 않다. 아마도 돌고 도는 여울은 이어졌으되 길은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동강과 만나는 길은 네 곳이다. 영월쪽 거운리에서 절운재를 넘어 강을 거슬러 오르며 만나는 길과 정선쪽 광하리에서 뼝대를 따라 강과 함께 나란히 걷는 길, 그리고 평창쪽 한탄리에서 장리천을 따라가는 길, 마지막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정선쪽 예미리에서 구러기재를 넘어 고림물굴이니, 양치동굴이니 벌말굴을 구경하며 휘 돌아가는 강줄기와 만나는 길이 그것이다. 동강과 만난다는 설레임만 가득하다면야 어느 길에 됐건 그리 중요치 않다. 다만 봄만 되면 수난을 겪는 동강할미꽃과 이제는 보기 힘든 어름치, 다묵장어, 묵잡나루 등을 떠올리며 다가서면 될 것이다.

 

가수리는 여울이 아름답다는 가탄과 물이 아름답다는 수미라는 마을 지명에서 따왔다. 마을 사람들의 후하기로 소문난 돈이치와 일조시간이 길어 살기 좋다는 기일, 골이 깊은 기곡, 샘물이 많아 물 걱정 없는 수동, 몇 고개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점재를 품고 있는 운치리는 동강 강물로 인해 물안개가 늘 산마루를 떠돌기 때문이다. 마을의 높은 세 봉우리로 하루에도 달이 세 번 뜨고 진다는 연포마을. 칠족령 산길을 낸 개 이름 ‘문희' 마을. 센 물살과 바위 덕에 먹이를 찾기 위해 황새들이 몰려들었던 황새여울. 어라연과 만지나루사이 뗏군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된꼬까리.

 

“저긴 용수골이래요. 저 저기 뭐 용눈이 두 개가 있대요. 고 용눈에서 물이 요렇게 나온대요. 그래서 거 물구뎅이 두 개라서 용수골이라 해요. 가물믄은 저 저 백은 사람이 와서 개를 잡어서 그 밖에서 인제 도랑에서 낄애 먹고 대가릴 짤라 놓으면 대번 아주 그 이튿날 사흘만이면 고만 아주 하 진흙물이 고만 막 휘둘러가지우서 이 밖으로 시냇물이 나온대요. 그래니까 그 안에 뭐 큰 짐승이 미신 있죠”

 

“금오곡이라는데가 저 있어. 거는 엣날에 대왕쥐가 있다고해서 금오곡이라고 한데나. 뭐. 그런데 대왕쥐가 있나. 요만한 게 큰 긴데. 읍고 말고지. 시방은 안 그렇지만 엣날에 지관쟁이들이 거다가 거 어데다가 묘를 쓰민 장사가 난다고 그랬지. 그래 금오곡이여. 장사가 칼을 휘두르고 칼춤을 추고 이래가지고 금오곡이라고 하지. 뭐시기 한매디로 거기가 묘자리가 좋다는 거여”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줄기를 따라 옛이야기들도 굽이굽이다.

 

눈을 뜨니 코앞에 느티나무 하나가 가득하다. 굳이 동강 12경을 들먹이지 않아도 될 지경이다. 밤사이 비가 왔는지 강물이 불었지만 되레 그 때문에 단풍이 짙게 든 느티나무 너머 푸른빛의 물이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당초 오늘은 걷지 않기로 해 늦게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모자랄 수 있지만 그래도 오래 머물 수 없다.

 

 

 

 

 

 

 

 

 

 

 

 

 

 

 

 

 

 

 

정선까지 대략 30리 길이라며, 동강을 걷는 사람들을 많이 재워주기도 했다며, 이른 점심을 우리 덕에 맛나게 먹을 수 있다며, 맑은 웃음을 보여주시던 하귤하 동강매점 할머니와 헤어지고 나니 12시가 가까워온다. 서둘러 길을 나서는데 마른하늘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여우비다. 문이 잠겨 있기는 하나 처마가 있어 비를 피할 수 있는 노인회관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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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머하니”

 

한참을 그렇게 처마 밑에서 쉬니 애당초 마른하늘이었기에 금새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이 열린다. 다시 출발이다.

 

닷새 만에 다시 국도와 만난다. 덕분에 오가는 차도 많아진다. 또 42번 국도로 이어지는 광하교에 이르니 곧 오르막이이고, 오르막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않고 있어서인지, 닷새 동안 무리해서 걸은 탓인지,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다. 해서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내내 서로 말 한마디 없다. 콧노래라도 부르며 올라야 지루하지 않을 텐데 덕분에 오르막이 더 길게만 느껴진다. 안되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쉬었다 가야지.

 

420m 높이의 솔치재 정상에 오르니 2시가 넘었다. 애초 일정대로라면 집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아직 정선읍내에도 이르지 못했으니 큰일이다. 그래도,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겠거니 싶으니 좀 낫다. 하지만 갓길도 없는데다가 조금 걷고 마주치고, 또 조금 걷고 마주치게 되는 차량행렬과 차에 받혀 죽어 있는 동물들로 자꾸만 처진다.

 

결국 정선읍내에는 3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울행 시외버스에 오르니 배고픔도 잠시고 곧 잠이 쏟아진다. 창 밖 동강에 다섯 날 동안 함께 했던 빨간 낙엽이 진다. 안녕. 동강아.

 

* 열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단양 매포 평동에서 가곡 향산까지 7시간 동안 약 20km를 걷다.

- 둘째 날 : 단양 가곡 향산에서 영월읍까지 9시간 동안 약 28km를 걷다.

- 셋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 동강이와 함께 한 길, 영월읍에서 정선읍까지 약 52km.

 

* 가고, 오고

단양 평동으로 가는 길은 기차편도 그렇고 버스편도 마찬가지로 단양 쪽 보다는 제천 쪽이 더 수월하다. 또 단양에서 평동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제천에서 평동으로 이동하는 것이 쉽다. 정선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는 대략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니나 안흥 등 평창 내 여러 곳을 경유한다. 기차편은 하루 세 차례 운행하는 증산-아우라지 간 꼬마열차를 이용해 증산으로 나간 후 청량리행 열차로 옮겨야 하므로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거니와 시간도 많이 걸린다. 시간을 절약할 요량이라면 시외버스를 이용하되, 시간에 구애됨 없이 색다른 경험을 할 생각이라면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 잠잘 곳

동강에는 생각보다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꽤 있는 편이다. 다만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음식점은 문을 열지 않으니 전날 묵었던 곳에서 반드시 도시락을 싸달라고 해야 하며, 숙박시설은 하루 전날 꼭 예약 사항을 확인해야 한다. 그 외 지역은 최근 우후죽순 들어선 펜션에서부터 마을 민박에 이르기까지 숙박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음식점은 변변치 않으니 식당이 나오면 바로 그때가 밥 먹을 때다, 하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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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5 11:25 2010/06/05 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