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날, 동강을 뒤로하고 아라리의 고향 정선으로(2006년 11월 9일)

 

평창 땅의 오대산에서 시작되는 오대천과 정선 땅을 흐르는 조양강을 모아 흐르는 동강의 신비로움은 그 이름만큼이나 세상 밖으로 온전히 다 나온 건 아닌 듯하다.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그 내면의 깊이까진 맛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강줄기를 따라가는 이야기는 드문드문 이름난 곳들에만 남아 있어 강을 온전히 이어주고 있지 않다. 아마도 돌고 도는 여울은 이어졌으되 길은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동강과 만나는 길은 네 곳이다. 영월쪽 거운리에서 절운재를 넘어 강을 거슬러 오르며 만나는 길과 정선쪽 광하리에서 뼝대를 따라 강과 함께 나란히 걷는 길, 그리고 평창쪽 한탄리에서 장리천을 따라가는 길, 마지막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정선쪽 예미리에서 구러기재를 넘어 고림물굴이니, 양치동굴이니 벌말굴을 구경하며 휘 돌아가는 강줄기와 만나는 길이 그것이다. 동강과 만난다는 설레임만 가득하다면야 어느 길에 됐건 그리 중요치 않다. 다만 봄만 되면 수난을 겪는 동강할미꽃과 이제는 보기 힘든 어름치, 다묵장어, 묵잡나루 등을 떠올리며 다가서면 될 것이다.

 

가수리는 여울이 아름답다는 가탄과 물이 아름답다는 수미라는 마을 지명에서 따왔다. 마을 사람들의 후하기로 소문난 돈이치와 일조시간이 길어 살기 좋다는 기일, 골이 깊은 기곡, 샘물이 많아 물 걱정 없는 수동, 몇 고개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점재를 품고 있는 운치리는 동강 강물로 인해 물안개가 늘 산마루를 떠돌기 때문이다. 마을의 높은 세 봉우리로 하루에도 달이 세 번 뜨고 진다는 연포마을. 칠족령 산길을 낸 개 이름 ‘문희' 마을. 센 물살과 바위 덕에 먹이를 찾기 위해 황새들이 몰려들었던 황새여울. 어라연과 만지나루사이 뗏군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된꼬까리.

 

“저긴 용수골이래요. 저 저기 뭐 용눈이 두 개가 있대요. 고 용눈에서 물이 요렇게 나온대요. 그래서 거 물구뎅이 두 개라서 용수골이라 해요. 가물믄은 저 저 백은 사람이 와서 개를 잡어서 그 밖에서 인제 도랑에서 낄애 먹고 대가릴 짤라 놓으면 대번 아주 그 이튿날 사흘만이면 고만 아주 하 진흙물이 고만 막 휘둘러가지우서 이 밖으로 시냇물이 나온대요. 그래니까 그 안에 뭐 큰 짐승이 미신 있죠”

 

“금오곡이라는데가 저 있어. 거는 엣날에 대왕쥐가 있다고해서 금오곡이라고 한데나. 뭐. 그런데 대왕쥐가 있나. 요만한 게 큰 긴데. 읍고 말고지. 시방은 안 그렇지만 엣날에 지관쟁이들이 거다가 거 어데다가 묘를 쓰민 장사가 난다고 그랬지. 그래 금오곡이여. 장사가 칼을 휘두르고 칼춤을 추고 이래가지고 금오곡이라고 하지. 뭐시기 한매디로 거기가 묘자리가 좋다는 거여”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줄기를 따라 옛이야기들도 굽이굽이다.

 

눈을 뜨니 코앞에 느티나무 하나가 가득하다. 굳이 동강 12경을 들먹이지 않아도 될 지경이다. 밤사이 비가 왔는지 강물이 불었지만 되레 그 때문에 단풍이 짙게 든 느티나무 너머 푸른빛의 물이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당초 오늘은 걷지 않기로 해 늦게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모자랄 수 있지만 그래도 오래 머물 수 없다.

 

 

 

 

 

 

 

 

 

 

 

 

 

 

 

 

 

 

 

정선까지 대략 30리 길이라며, 동강을 걷는 사람들을 많이 재워주기도 했다며, 이른 점심을 우리 덕에 맛나게 먹을 수 있다며, 맑은 웃음을 보여주시던 하귤하 동강매점 할머니와 헤어지고 나니 12시가 가까워온다. 서둘러 길을 나서는데 마른하늘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여우비다. 문이 잠겨 있기는 하나 처마가 있어 비를 피할 수 있는 노인회관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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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머하니”

 

한참을 그렇게 처마 밑에서 쉬니 애당초 마른하늘이었기에 금새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이 열린다. 다시 출발이다.

 

닷새 만에 다시 국도와 만난다. 덕분에 오가는 차도 많아진다. 또 42번 국도로 이어지는 광하교에 이르니 곧 오르막이이고, 오르막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않고 있어서인지, 닷새 동안 무리해서 걸은 탓인지,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다. 해서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내내 서로 말 한마디 없다. 콧노래라도 부르며 올라야 지루하지 않을 텐데 덕분에 오르막이 더 길게만 느껴진다. 안되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쉬었다 가야지.

 

420m 높이의 솔치재 정상에 오르니 2시가 넘었다. 애초 일정대로라면 집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아직 정선읍내에도 이르지 못했으니 큰일이다. 그래도,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겠거니 싶으니 좀 낫다. 하지만 갓길도 없는데다가 조금 걷고 마주치고, 또 조금 걷고 마주치게 되는 차량행렬과 차에 받혀 죽어 있는 동물들로 자꾸만 처진다.

 

결국 정선읍내에는 3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울행 시외버스에 오르니 배고픔도 잠시고 곧 잠이 쏟아진다. 창 밖 동강에 다섯 날 동안 함께 했던 빨간 낙엽이 진다. 안녕. 동강아.

 

* 열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단양 매포 평동에서 가곡 향산까지 7시간 동안 약 20km를 걷다.

- 둘째 날 : 단양 가곡 향산에서 영월읍까지 9시간 동안 약 28km를 걷다.

- 셋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 동강이와 함께 한 길, 영월읍에서 정선읍까지 약 52km.

 

* 가고, 오고

단양 평동으로 가는 길은 기차편도 그렇고 버스편도 마찬가지로 단양 쪽 보다는 제천 쪽이 더 수월하다. 또 단양에서 평동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제천에서 평동으로 이동하는 것이 쉽다. 정선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는 대략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니나 안흥 등 평창 내 여러 곳을 경유한다. 기차편은 하루 세 차례 운행하는 증산-아우라지 간 꼬마열차를 이용해 증산으로 나간 후 청량리행 열차로 옮겨야 하므로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거니와 시간도 많이 걸린다. 시간을 절약할 요량이라면 시외버스를 이용하되, 시간에 구애됨 없이 색다른 경험을 할 생각이라면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 잠잘 곳

동강에는 생각보다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꽤 있는 편이다. 다만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음식점은 문을 열지 않으니 전날 묵었던 곳에서 반드시 도시락을 싸달라고 해야 하며, 숙박시설은 하루 전날 꼭 예약 사항을 확인해야 한다. 그 외 지역은 최근 우후죽순 들어선 펜션에서부터 마을 민박에 이르기까지 숙박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음식점은 변변치 않으니 식당이 나오면 바로 그때가 밥 먹을 때다, 하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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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5 11:25 2010/06/05 11:25

넷째 날, 재를 두 개나 넘으며, 동강이와 함께 하는 길(2006년 11월 8일)

 

이른 아침, 길을 나서려는데 오늘 하루는 아마도 쫄딱 굶을 거라며 도시락을 내민다. 어제 밤 편안히 쉬어 갈 수 있었던 것도 이제까지의 여행 중에서 처음 접했던 고마운 일이었는데, 도시락까지 챙겨주다니. 게다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 앞에 서 있는 모습이라. 정말 마음 한 곳에 따뜻함이 머물게 하는 사람이다.

 

어제 길을 잃었던 곳에 이르니 할아버지께서 집 밖에까지 나오셔서 다시 길을 일러주신다. 우리는 밭 위쪽 끝까지 올라가서 길을 찾았는데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다 쓰러져 가는 폐가 뒤쪽으로 길이 나 있다고 하신다. 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한참이나 더 올랐으니 길을 찾을 수가 있나.

 

일러주신 대로 폐가 뒤쪽으로 올라서니 아니나 다를까 낙엽이 쌓여 있어 언뜻 보면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법 사람들이 많이 다닌 듯, 길이 나 있다. 또 등산로임을 알려주는 알록달록한 리본들까지 보인다. 또 때맞춰 저 아래서 할아버지께서 길은 찾았는지, 고개를 넘으면 마을이 보인다며 큰 목소리로 알려주시니 이래저래 걱정이 가신다. 

 

   <겨우 산길을 너머 절벽 건너편으로 오니 이런....>

한 시간 가까이 등산 아닌 등산을 한 후 진탄나루에 도착해보니 어제 절벽에 막혀 되돌아갔던 곳이. 세상에, 바로 코앞이다. 이런. 그래도 어제오늘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또 맛난 도시락을 먹으며 동강을 바라볼 수 있어, 오히려 기분은 좋기만 하다. 

 

 

 

 

 

 

 

 

 

 

 

 

 

 

 

 

 

 

발 가득 옻나무진을 묻히고 산을 넘은 개 한 마리로 길이 생겼다는 칠족령(柒足領)을 넘기 위해 문희마을에서 잠시 길을 확인하고 나니 12시다. 재 넘어 제장마을까지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는 말에 여유를 부리며 마을 구경을 해볼까도 하지만 여행 첫날부터 일정이 계속 어긋나고 있어 그리 하진 못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칠목령이라고도 불리는, 칠족령을 넘어가는 길은 백운산 등산로와 함께 많은 이들이 걸었던 길이어서 비교적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또 동강의 가을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만큼 푹신한 낙엽길에, 굽이돌며 멀리서 푸른빛을 내는 강줄기가 있어 힘들지가 않다. 다만 전망대를 지나면서 시작되는 하산 길은 곳곳에 ‘낙석주의’, ‘추락주의’ 표지판이 서 있는 대로 곳곳에서 절벽과 만나고 있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 사람들이라면 한 시간, 외지인이라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하던데. 산을 내려와 제장마을에 도착하고 나니 두시가 훌쩍 넘었다. 아마도 칠족령까지가 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려오는 길에 마주친 절벽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기 했어도 한 시간, 한 시간 반은 아무래도 무리일 듯싶은데.

 

힘겹게 재를 두 개나 넘었기에, 문산나루와 진탄나루에 이어 세 번째 나루이자 가장 예스러운 정취를 품고 있는 나루터이기에, 마땅히 쉬어가야 하나 이제는 나루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다리 위에서 잠시 강이며, 마을 구경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지도상으로는 제장마을에서부터 정선까지는 강을 따라서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이 이어져 있다고 되어 있는데 소동에서부터 납운교까지는 강을 따라 가는 길은 없고 고성산성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야 한다. 덕분에 우리도 소동까지 갔다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길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길을 돌아서야 했다.

 

납운교부터 우리가 동강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한 가수리까지는 왼편으로 강이 줄곧 따라오는 길이다. 간혹 긴 오르막이 나타나기도 하고, 아스팔트길과 흙 길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기도 하고, 또 올 여름 수해 때문에 자주 출몰하는 대형 트럭들이 나타나 길을 걷기가 수월치는 않지만 용바위니, 삼형제바위니 등 눈요깃감이 있어 지루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어째, 가탄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더니 바람도 거세지고 먹구름까지 몰려든다. 아침에 잠시 먹구름이 하늘을 덮었으나 칠족령을 넘고 나니 파란 하늘이 열려 비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걱정이다. 지도를 들여다보니 가수리까지는 아직 한참이고, 마을이라고는 제장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번평마을 하나를 지났으니 앞으로 마을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어제그제 만났듯이 여름 한철만 민박을 하는 곳이 많아, 또 마땅히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전혀 없어 가수리에 당도한다 해도 잠잘 곳이 있을런지, 배를 채워줄 곳이 있을런지, 이래저래 걱정이다.

 

멀리 가로등 불빛이 보이는 게 가수리인 듯싶다. 가탄마을을 지난지도 벌써 1시간이 지났고, 어둠과 먹구름과 바람 때문에 쉬지도 않았고, 평상시보다도 빠른 속도로 걸었으니, 꽤 먼 거리를 지나온 듯하다. 파김치 몸을 이끌고 가수리에 들어서니 다행히 끼니도 때우고 잠도 청할 곳이 몇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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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4 19:52 2010/03/24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