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락, 지리산을 걷다: <수철-동강> 구간(2015년 4월 24일)
 
지리산자락 어디 한 곳 가슴 아픈 사연을 품지 않은 곳이 있을까요. 조금 멀게 갑오년 농민군에서부터 가깝게는 한국전쟁 전, 후 '빨치산'까지. 또 이들 틈바구니에서 무고하게 목숨을 잃어야했던 무수한 이름 없는 이들 말입니다. 해서 지리산은 어느 노랫말처럼 "떨리는 비명 소리"에 숨죽어 있는 "죽음의 저 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처럼 파란 하늘을 보여주고 있는 오늘, 산길 따라 걷다 그 끝에 만나게 되는 방곡마을 역시 그렇습니다. 똑같은 일이 있었던 거창에서는 그래도 학살 당시 알려졌지만. 가현과 방곡, 점촌, 서주마을에서 벌어졌던 학살은, 맞습니다. '민주화' 이후에야 겨우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추모 묘역이 조성돼 있으니 이만하면 '명예회복'까진 이뤄진 걸까요.  
 
그래도 한 날, 남들 알까 모르게 제사상을 차려야했던 아픔이 어디 쉽게 치유되겠습니까. 묘역으로 오르는 저 높은 계단만큼이나 세상과 단절됐던 마음속 아픔들 말입니다. 그러니 이 구간을 걷는 동안만큼은 옷깃을 여미며 걸어야겠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고 말하기조차 그 아픔을 오롯이 알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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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원에서부터 경호1교까지는 건너뛰고 시작합니다. 둘레길 걷기 첫 번째 여행 때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땐 성심원에 게스트하우스가 생기기 전이라 수도원 피정시설에 묵었었는데요. 저녁나절 살랑살랑 부는 강바람을 맞으며 가뿐히 걸었더랬지요. 그러니 산청터미널에서부터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다.
 
다만 잠시 둘레길 산청센터에 들릅니다. 저녁에 잘 곳을 알아봐야 하니까요. 사실 어제 낮 까지만 해도 길을 나설지 정하지 못했습니다. 해서 미리 예약을 못했습니다. 물론 방곡마을회관 전화번호를 챙겨오긴 했지만, 거기 말고도 다른 민박집들을 알아봐야 합니다. 휴일도 아닌데다 예전만치 둘레길 걷는 이들이 많지 않아 문 연 곳이 많지 않으니까요. 
 
다행이 바뀐 전화번호에, 몇 군데 민박집이 적힌 메모지를 받았습니다. 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걱정을 했는데 조금은 안심입니다. 바로 머리 위에서 내려쬐는 햇볕이 따갑기는 하지만 이제 속도를 내서 걸어야겠지요. 수철마을까진 그래도 강을 따라 걷는 길이라 수월하지만. 고동재와 쌍재를 넘는 산길은 만만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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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처음부터 꼬였습니다. 경호1교에서 길을 잘못 들어선 겁니다. 한참을 갔다 되돌아와 봤던 이정표는 분명 강 쪽으로 향해 있는데. 대체 무슨 얘기를 하다 그리됐는지요. 아니 뭘 보다 그리됐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만 마을 길로 곧장 갔던 겁니다. 생각했던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싶었는데 여기서 다 까먹었습니다.
 
애초 둘레길을 역방향으로 걸으려 했던 이유는 해를 등지고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동에서 산청까지 길들이 대략 북쪽으로 난 길이니 말입니다. 물론 뜻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아침에 걸을 때와 낮에 걸을 때, 해질 때 걸을 때에 따라 다 달랐으니까요. 하지만 산청구간으로 오니, 그것도 오후에 걸으려니 해를 정면에서 마주보고 걷게 생긴 겁니다. 아, 어쩌지요. 
 
대장마을을 지나 평촌마을까지 땡볕에 내처 걷습니다. 길이 아니라는 표지판에 되돌아 걷기도 하고. 강을 따라 걷는 길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보이는 보(洑)를 보며 4대강 얘기도 하며. 줄줄이 이어지는 다랑이 논들에 놓여있는 모판들을 보며 그새 날이 이렇게 됐나, 하며. 머리 위 따가운 해 때문에 속도는 나지 않지만 간간이 부는 강바람에 힘을 내봅니다. 
 
수철마을 매점에서 간단히 배를 채웁니다. 마음 같아서는 ‘금방 가버리면 뭐하느냐, 천천히 쉬었다 내일 아침에 가라’는 할머니 말처럼 쉬었다 가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선 길인데다 빠듯한 시간이 좀은 걱정되긴 하지만, 결국 길을 나섭니다. 곧 겹벚꽃나무에 홀려 길을 잃고 오르막길을 한참이나 올랐다 되돌아오면서도 말입니다. 
 
길이 가파르게 이어집니다. 마치 지난 번, 두 번째 여행에서 올랐던 웅석봉과도 같습니다. 이런 걸 데쟈뷰라고 하던가요. 저 고개만 돌아서면 나올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돌아서면 또 고개가 나오고 급기야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말입니다. 그런데 아차차, 같이 걷던 걸음이 서서히 차이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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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거기선 좀 나았습니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쌍재에 이르기까지는 보이지가 않을 정도로 떨어져 버린 겁니다. 길도 오르기만 했던 아까보단 훨씬 나은 능선길이었는데요. 산길이라 길을 잘 못 들어설 수도 있고,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 생길수도 있는데. 뭐가 그리도 바빴던 걸까요. 소리치면 들릴 정도는 아니, 보일만큼은 거리를 뒀어야지요. 
 
아닙니다. 함께 길을 걷기로 나섰으니 좀 늦어 밤길을 걸으면 어떻고, 혹여 잘 곳이 없어 택시를 불러야 한다 해도 어떻습니까. 무조건 같이 갔었어야지요. 산길로 접어들기 전처럼,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경치도 보고 말입니다. 지난 번 여행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또 그랬습니다. 그것도 산길에서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쌍재부터는 길이 좁아지는 계곡 옆을 걸을 때만 빼곤 나란히 걸었습니다. 전처럼 도란도란, 소곤소곤. 내리막길이기도 했지만 훨씬 힘이 덜 듭니다. 다만 시간이 있었다면 계곡에 발도 담그고 쉬었다 가겠지만 민박집과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해 마음이 급합니다. 해서 조금은 서두릅니다. 해지기 전에 도착해야 추모 묘역도 둘러보고 할 수 있으니까요.
 
다행히 해가 뉘엿뉘엿 할 때 쯤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우려했던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추모비에 들를 여유는커녕 마을 어디서고 잠 잘 곳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을회관은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하고. 회관에서 알려준 어느 할머니는 아들 집에 와 있다 하고. 또 다른 민박집은 2명은 안 된다고 하네요. 하는 수 없습니다. 늦기 전에 동강마을로 가야겠습니다.
 
배낭에서 후레쉬도 꺼내들고 해는 져서 어둑어둑해진 길을 나섭니다. 여기저기서 개들이 짖고 난리도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잠했었는데, 깜깜해지니 그치들도 경계를 하는 가봅니다. 더구나 멀리서보니 줄에 묶여 있지 않아 보이는 산만한 개도 보입니다. 어찌해야 하나요. 다행히 저 쪽 길 아래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 보입니다.
 
두릅을 따고 계셨던 두 분 덕에 민박집을 찾았습니다. "안 되면 우리 집으로 와, 우리 집에도 방 있어"라고 하며 넉넉한 웃음을 지어어보이던 두 분이 아니었으면 어찌됐을까요. 깜깜한 밤도 밤이었지만, 그 덩치 크고 목소리도 무서운 개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막막합니다. 게다가 버스는 진즉에 끊겼고 돌아가는 길은 어딘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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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을 걸었던 세 번째 여행 만에 처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또 계곡물에 귀도 기울여보구요. 그러니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동강마을까지 길은 동네 산보나간 정도였으니 딱히 소개할 것이 없네요. 한 30분이나 됐을까요, 금세 도착했거든요. 아, 어제 밤 그 줄도 안 묶여 있던 산만한 개요? 어째요. 그냥 논길을 빙 둘러 갔답니다.
 
* 지리산 둘레길 걷기 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여전히 둘레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함양읍에서 수철마을과 방곡마을을 거쳐 동강마을까지 약 18.5km입니다. 
 
* 가고, 오고
거리가 먼만큼 시간도 많이 걸리네요. 차 시간이 잘 맞아도 대략 5시간에서 6시간 남짓 걸리니까요.   
 
* 잠잘 곳
수철마을이나 방곡마을, 동강마을에는 민박집이 많습니다. 하지만 둘레길 걷는 사람이 많을 때가 아니면 문을 열지 않는 곳이 꽤 됩니다. 그러니 출발하기 전에 확인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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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 17:22 2017/06/07 17:22

다섯째 날, 동강을 뒤로하고 아라리의 고향 정선으로(2006년 11월 9일)

 

평창 땅의 오대산에서 시작되는 오대천과 정선 땅을 흐르는 조양강을 모아 흐르는 동강의 신비로움은 그 이름만큼이나 세상 밖으로 온전히 다 나온 건 아닌 듯하다.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그 내면의 깊이까진 맛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강줄기를 따라가는 이야기는 드문드문 이름난 곳들에만 남아 있어 강을 온전히 이어주고 있지 않다. 아마도 돌고 도는 여울은 이어졌으되 길은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동강과 만나는 길은 네 곳이다. 영월쪽 거운리에서 절운재를 넘어 강을 거슬러 오르며 만나는 길과 정선쪽 광하리에서 뼝대를 따라 강과 함께 나란히 걷는 길, 그리고 평창쪽 한탄리에서 장리천을 따라가는 길, 마지막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정선쪽 예미리에서 구러기재를 넘어 고림물굴이니, 양치동굴이니 벌말굴을 구경하며 휘 돌아가는 강줄기와 만나는 길이 그것이다. 동강과 만난다는 설레임만 가득하다면야 어느 길에 됐건 그리 중요치 않다. 다만 봄만 되면 수난을 겪는 동강할미꽃과 이제는 보기 힘든 어름치, 다묵장어, 묵잡나루 등을 떠올리며 다가서면 될 것이다.

 

가수리는 여울이 아름답다는 가탄과 물이 아름답다는 수미라는 마을 지명에서 따왔다. 마을 사람들의 후하기로 소문난 돈이치와 일조시간이 길어 살기 좋다는 기일, 골이 깊은 기곡, 샘물이 많아 물 걱정 없는 수동, 몇 고개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점재를 품고 있는 운치리는 동강 강물로 인해 물안개가 늘 산마루를 떠돌기 때문이다. 마을의 높은 세 봉우리로 하루에도 달이 세 번 뜨고 진다는 연포마을. 칠족령 산길을 낸 개 이름 ‘문희' 마을. 센 물살과 바위 덕에 먹이를 찾기 위해 황새들이 몰려들었던 황새여울. 어라연과 만지나루사이 뗏군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된꼬까리.

 

“저긴 용수골이래요. 저 저기 뭐 용눈이 두 개가 있대요. 고 용눈에서 물이 요렇게 나온대요. 그래서 거 물구뎅이 두 개라서 용수골이라 해요. 가물믄은 저 저 백은 사람이 와서 개를 잡어서 그 밖에서 인제 도랑에서 낄애 먹고 대가릴 짤라 놓으면 대번 아주 그 이튿날 사흘만이면 고만 아주 하 진흙물이 고만 막 휘둘러가지우서 이 밖으로 시냇물이 나온대요. 그래니까 그 안에 뭐 큰 짐승이 미신 있죠”

 

“금오곡이라는데가 저 있어. 거는 엣날에 대왕쥐가 있다고해서 금오곡이라고 한데나. 뭐. 그런데 대왕쥐가 있나. 요만한 게 큰 긴데. 읍고 말고지. 시방은 안 그렇지만 엣날에 지관쟁이들이 거다가 거 어데다가 묘를 쓰민 장사가 난다고 그랬지. 그래 금오곡이여. 장사가 칼을 휘두르고 칼춤을 추고 이래가지고 금오곡이라고 하지. 뭐시기 한매디로 거기가 묘자리가 좋다는 거여”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줄기를 따라 옛이야기들도 굽이굽이다.

 

눈을 뜨니 코앞에 느티나무 하나가 가득하다. 굳이 동강 12경을 들먹이지 않아도 될 지경이다. 밤사이 비가 왔는지 강물이 불었지만 되레 그 때문에 단풍이 짙게 든 느티나무 너머 푸른빛의 물이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당초 오늘은 걷지 않기로 해 늦게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모자랄 수 있지만 그래도 오래 머물 수 없다.

 

 

 

 

 

 

 

 

 

 

 

 

 

 

 

 

 

 

 

정선까지 대략 30리 길이라며, 동강을 걷는 사람들을 많이 재워주기도 했다며, 이른 점심을 우리 덕에 맛나게 먹을 수 있다며, 맑은 웃음을 보여주시던 하귤하 동강매점 할머니와 헤어지고 나니 12시가 가까워온다. 서둘러 길을 나서는데 마른하늘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여우비다. 문이 잠겨 있기는 하나 처마가 있어 비를 피할 수 있는 노인회관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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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머하니”

 

한참을 그렇게 처마 밑에서 쉬니 애당초 마른하늘이었기에 금새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이 열린다. 다시 출발이다.

 

닷새 만에 다시 국도와 만난다. 덕분에 오가는 차도 많아진다. 또 42번 국도로 이어지는 광하교에 이르니 곧 오르막이이고, 오르막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않고 있어서인지, 닷새 동안 무리해서 걸은 탓인지,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다. 해서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내내 서로 말 한마디 없다. 콧노래라도 부르며 올라야 지루하지 않을 텐데 덕분에 오르막이 더 길게만 느껴진다. 안되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쉬었다 가야지.

 

420m 높이의 솔치재 정상에 오르니 2시가 넘었다. 애초 일정대로라면 집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아직 정선읍내에도 이르지 못했으니 큰일이다. 그래도,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겠거니 싶으니 좀 낫다. 하지만 갓길도 없는데다가 조금 걷고 마주치고, 또 조금 걷고 마주치게 되는 차량행렬과 차에 받혀 죽어 있는 동물들로 자꾸만 처진다.

 

결국 정선읍내에는 3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울행 시외버스에 오르니 배고픔도 잠시고 곧 잠이 쏟아진다. 창 밖 동강에 다섯 날 동안 함께 했던 빨간 낙엽이 진다. 안녕. 동강아.

 

* 열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단양 매포 평동에서 가곡 향산까지 7시간 동안 약 20km를 걷다.

- 둘째 날 : 단양 가곡 향산에서 영월읍까지 9시간 동안 약 28km를 걷다.

- 셋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 동강이와 함께 한 길, 영월읍에서 정선읍까지 약 52km.

 

* 가고, 오고

단양 평동으로 가는 길은 기차편도 그렇고 버스편도 마찬가지로 단양 쪽 보다는 제천 쪽이 더 수월하다. 또 단양에서 평동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제천에서 평동으로 이동하는 것이 쉽다. 정선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는 대략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니나 안흥 등 평창 내 여러 곳을 경유한다. 기차편은 하루 세 차례 운행하는 증산-아우라지 간 꼬마열차를 이용해 증산으로 나간 후 청량리행 열차로 옮겨야 하므로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거니와 시간도 많이 걸린다. 시간을 절약할 요량이라면 시외버스를 이용하되, 시간에 구애됨 없이 색다른 경험을 할 생각이라면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 잠잘 곳

동강에는 생각보다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꽤 있는 편이다. 다만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음식점은 문을 열지 않으니 전날 묵었던 곳에서 반드시 도시락을 싸달라고 해야 하며, 숙박시설은 하루 전날 꼭 예약 사항을 확인해야 한다. 그 외 지역은 최근 우후죽순 들어선 펜션에서부터 마을 민박에 이르기까지 숙박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음식점은 변변치 않으니 식당이 나오면 바로 그때가 밥 먹을 때다, 하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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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5 11:25 2010/06/05 11:25

넷째 날, 재를 두 개나 넘으며, 동강이와 함께 하는 길(2006년 11월 8일)

 

이른 아침, 길을 나서려는데 오늘 하루는 아마도 쫄딱 굶을 거라며 도시락을 내민다. 어제 밤 편안히 쉬어 갈 수 있었던 것도 이제까지의 여행 중에서 처음 접했던 고마운 일이었는데, 도시락까지 챙겨주다니. 게다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 앞에 서 있는 모습이라. 정말 마음 한 곳에 따뜻함이 머물게 하는 사람이다.

 

어제 길을 잃었던 곳에 이르니 할아버지께서 집 밖에까지 나오셔서 다시 길을 일러주신다. 우리는 밭 위쪽 끝까지 올라가서 길을 찾았는데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다 쓰러져 가는 폐가 뒤쪽으로 길이 나 있다고 하신다. 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한참이나 더 올랐으니 길을 찾을 수가 있나.

 

일러주신 대로 폐가 뒤쪽으로 올라서니 아니나 다를까 낙엽이 쌓여 있어 언뜻 보면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법 사람들이 많이 다닌 듯, 길이 나 있다. 또 등산로임을 알려주는 알록달록한 리본들까지 보인다. 또 때맞춰 저 아래서 할아버지께서 길은 찾았는지, 고개를 넘으면 마을이 보인다며 큰 목소리로 알려주시니 이래저래 걱정이 가신다. 

 

   <겨우 산길을 너머 절벽 건너편으로 오니 이런....>

한 시간 가까이 등산 아닌 등산을 한 후 진탄나루에 도착해보니 어제 절벽에 막혀 되돌아갔던 곳이. 세상에, 바로 코앞이다. 이런. 그래도 어제오늘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또 맛난 도시락을 먹으며 동강을 바라볼 수 있어, 오히려 기분은 좋기만 하다. 

 

 

 

 

 

 

 

 

 

 

 

 

 

 

 

 

 

 

발 가득 옻나무진을 묻히고 산을 넘은 개 한 마리로 길이 생겼다는 칠족령(柒足領)을 넘기 위해 문희마을에서 잠시 길을 확인하고 나니 12시다. 재 넘어 제장마을까지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는 말에 여유를 부리며 마을 구경을 해볼까도 하지만 여행 첫날부터 일정이 계속 어긋나고 있어 그리 하진 못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칠목령이라고도 불리는, 칠족령을 넘어가는 길은 백운산 등산로와 함께 많은 이들이 걸었던 길이어서 비교적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또 동강의 가을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만큼 푹신한 낙엽길에, 굽이돌며 멀리서 푸른빛을 내는 강줄기가 있어 힘들지가 않다. 다만 전망대를 지나면서 시작되는 하산 길은 곳곳에 ‘낙석주의’, ‘추락주의’ 표지판이 서 있는 대로 곳곳에서 절벽과 만나고 있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 사람들이라면 한 시간, 외지인이라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하던데. 산을 내려와 제장마을에 도착하고 나니 두시가 훌쩍 넘었다. 아마도 칠족령까지가 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려오는 길에 마주친 절벽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기 했어도 한 시간, 한 시간 반은 아무래도 무리일 듯싶은데.

 

힘겹게 재를 두 개나 넘었기에, 문산나루와 진탄나루에 이어 세 번째 나루이자 가장 예스러운 정취를 품고 있는 나루터이기에, 마땅히 쉬어가야 하나 이제는 나루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다리 위에서 잠시 강이며, 마을 구경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지도상으로는 제장마을에서부터 정선까지는 강을 따라서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이 이어져 있다고 되어 있는데 소동에서부터 납운교까지는 강을 따라 가는 길은 없고 고성산성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야 한다. 덕분에 우리도 소동까지 갔다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길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길을 돌아서야 했다.

 

납운교부터 우리가 동강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한 가수리까지는 왼편으로 강이 줄곧 따라오는 길이다. 간혹 긴 오르막이 나타나기도 하고, 아스팔트길과 흙 길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기도 하고, 또 올 여름 수해 때문에 자주 출몰하는 대형 트럭들이 나타나 길을 걷기가 수월치는 않지만 용바위니, 삼형제바위니 등 눈요깃감이 있어 지루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어째, 가탄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더니 바람도 거세지고 먹구름까지 몰려든다. 아침에 잠시 먹구름이 하늘을 덮었으나 칠족령을 넘고 나니 파란 하늘이 열려 비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걱정이다. 지도를 들여다보니 가수리까지는 아직 한참이고, 마을이라고는 제장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번평마을 하나를 지났으니 앞으로 마을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어제그제 만났듯이 여름 한철만 민박을 하는 곳이 많아, 또 마땅히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전혀 없어 가수리에 당도한다 해도 잠잘 곳이 있을런지, 배를 채워줄 곳이 있을런지, 이래저래 걱정이다.

 

멀리 가로등 불빛이 보이는 게 가수리인 듯싶다. 가탄마을을 지난지도 벌써 1시간이 지났고, 어둠과 먹구름과 바람 때문에 쉬지도 않았고, 평상시보다도 빠른 속도로 걸었으니, 꽤 먼 거리를 지나온 듯하다. 파김치 몸을 이끌고 가수리에 들어서니 다행히 끼니도 때우고 잠도 청할 곳이 몇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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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4 19:52 2010/03/24 19:52
셋째 날, 눈이 부시게 푸른 동강, 그 안에서 길을 잃다(2006년11월 7일)
 
일기예보를 통해 추워질 거란 이야기를 들었어도, 또 어제 내린 비로 추워질 거라 예상했어도, 갑자기 마주친 추위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름대로 옷을 준비해오기는 했지만 어째 걱정이 앞선다. 해서 나름 햇살이 퍼진 이후에 출발하기로 하고 오랜만에 늦잠에 읍내 구경까지 해본다.
 
읍내를 가로지르는 강변길을 따라 10여분 만에 고갯길과 마주한다. 하지만 조금만 가면 동강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숨이 차지는 않는다. 또 여기저기 동강이 지척임을 알려주는 표지판들이 서 있고 동강의 물줄기임을 보여주는 강이 어제, 그제 우리와 함께 하고 있으니 콧노래까지는 아니어도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거운리 입구에서 본 동강, 하늘 빛을 띠고 있다>
한적하기만 한 시골길을 세 시간 가량 걸으니 어라연으로 이어지는, 동강의 끝 지점이라고들 이야기하는 거운리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이름과는 달리 마을이 참 썰렁하다. 아마도 철지난 탓이리라. 아무튼 여기서부터 강을 따라 걷기로 했으니 어라연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겠는데, 강을 건네줄 분의 바뀐 전화번호를 알 수 없어 시작부터 난관이다. 간단히 요기라도 해야 할 시간이고, 혹 어라연을 건널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해서 슈퍼에 들어서는데, 다들 절운재를 넘어 문산으로 가야한다고 한다. 
 
"거그는 강 건널 수 없는디. 전화번호라꼬? 읎어. 저그 절운재 넘어 문산으로 가소"





 
 
 
 
 
 
 
절운재에 올라와서 보니 높이가 겨우 457m이라는데, 어째 지리산을 넘어온 것 마냥 무척 힘이 부친다. 점심을 건너 뛴 것도 한 몫 했으리라. 그래도 처음 보는 머루나무 구경에, 또 한없이 펼쳐진 배추밭 구경에 지루하지만은 않다.
 
절운재를 넘어 문산나루터에 당도하니 나루터라는 옛 정취를 느낄 수는 없으나 그래도 강 이쪽저쪽에 자리 잡은 자그만 마을이며, 강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하얀 자갈들과 울긋불긋한 산줄기들이 있어 예쁘기만 하다.
 
동강에 와서 어라연을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여서부턴 강을 따라 걸을 수 있기에 아쉽지는 않다. 다만 제대로 된 동강 걷기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기에 부실하기만 한 지도와 먼저 걸었던 이들이 남긴 기록들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걱정이다.

 
                                                                                 <저 오르막을 오를 때까진 콧노래가 나왔지만 ....
                                                                                                              결국 깜깜해지고 나서야 겨우 내려올 수 있었다>
강 건너 문산마을을 이어주는 문산교 아래서부터는 지번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길을 따라 가야 한다. 벌써 세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기에 서둘러, 차 한 대 지나기 채 어려운, 흙 길과 아스팔트길이 번갈아 이어지는 옛길에 접어든다. 고갯길을 넘어 두 번째 인가와 만날 때까지는 오랜만에 걷는 흙 길에,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 하나 만날 수 있을까, 할 만한 길을 걷는 맛에 별 걱정이 없다. 그리고 길이 끊긴 걸 모르고 무심코 접어든 강변 자갈밭을 한참을 걸을 때만 해도 강 구경에 아무생각이 없다. 그러다. 

 
멀리 절벽이 보이는 게 어째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절벽 가까이에 다가가니, 길은 자갈밭에 들어설 때부터 없었으니 그렇다 쳐도, 절벽이야 멀리서부터 봐왔으니 그렇다 쳐도, 이런,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물이 자갈밭을 끊어 놓은 게 아닌가. 이를 어째나. 물은 그리 깊어 보이지는 않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선뜻 신발을 벗어 들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길이 끊긴 데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되돌아가려니 꽤 많이 온 듯하고, 어찌해야 하나. 

결국 30분 넘게 다시 자갈밭을 되돌아 산 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가본다. 혹 절벽을 돌아가는 길이 아닐까 해서. 하지만 어째 길이 돌아가기는커녕 산으로만 이어진 것이 걱정스럽다. 해서 문산교부터 여기까지 오는 도중 유일하게 만나게 된, 이곳에서 오랜 옛날부터 살고 계셨던 것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께 길을 여쭌다. 

“진탄나루로 간다꼬? 거는 여그 뒤 산을 넘어가야 헌데”
 
어허, 엎친 데 덮진 격이다. 혹 산을 타게 될지 몰라 등산화에 스틱까지 준비하기는 했어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산을 올라야 할 줄이야. 할아버지 말씀이라면 저 위 밭 너머로 산을 넘어야 하는데. 해는 벌써 지기 시작했고, 산을 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으니 섣불리 산에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발길은 밭 꼭대기에까지 이르고 있으니. 이젠 산길을 찾는 수밖에. 
 
할아버지의 말과는 달리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밭 여기저기를 아무리 찾아봐도 산을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게다가 밭에 접어들면서 지기 시작한 해는 이젠 햇살을 찾아볼 수 없고 이미 날은 완연히 어둑어둑하다. 아무래도 지금 길을 찾는다 해도 산을 넘기는 틀린 것 같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문산나루로 가야 할 듯하다. 
 
멀리 문산교 가로등이 보이는 곳에 다다르니 길은 아직 멀기는 해도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다. 하지만 문산마을에 하루 쉬어갈 수 있을 곳이 있을는지 걱정이다. 영월읍내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는 동안 몇 곳 민박할 만한 동네를 지나오기는 했어도 다들 여름철 장사 이후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문산교 넘어 마을 입구에 당도하자마자 보이는 민박집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는 전화를 돌려본다. 헌데 핸드폰 저쪽에서 이제 막 사람 목소리가 들리려 하는 순간, 우리 앞에 차 한 대가 미끄러지며 선다.

 
“타세요. 민박할 곳 찾으시죠? 저희 집도 민박하거든요”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차에 오르고 본다. 

차는 우리가 탔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내 멈춰 섰는데, 이런. ‘너무 좋은 데 아냐.’ 맨 눈으로만 언제 한 번 저런데서 자봐야지 했던 흰색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펜션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은근 숙박비가 걱정이다. 하지만 차까지 얻어 타고 왔으니, 어쩔 수 없다. 될 대로 되라지. 
 
추운 몸을 녹이라며 약간의 알콜을 가미한 따뜻한 녹차에 이어, 배고플 땐 그저 이게 최고라며 커다란 냄비에 한가득 라면을 끓여오는 모습에서, 이 사람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웬걸, 아니나 다를까. 낮에 우리가 절운재를 걸어 넘는 걸 봤었고, 또 다리에서 우리를 다시 만난 건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또 언젠가는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들과 밤새 이야기 하고 싶었다며. 안방까지 내주며. 오늘 하루는 아무 걱정 없이 푹 쉬라 하는데. 어쩜.
 
덕분에 몸은 피곤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여행이며, 동강에 대해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그 애정을 풀어 가는 자신만의 방법, 믿음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동강의 별을 보며 함께 했으니. 어찌 편안히 쉬어가지 않았다 할 수 있을까. 창밖으로 동강을 밝게 비추는 별들을 다시 헤아리니 어느새 꿈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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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0 11:06 2010/02/10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