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의 고향, 정선(2007년 1월 19일)
 
어제, 밤늦게 정선에 왔다. 2일과 7일에 열리는 정선 장날과 운 좋게 맞아떨어진다면 기차로 쉬이 올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4시간이 넘게 장평과 증평을 거쳐야하니 시작부터 혹사다. 혹여, 시간만이 아니라도 하루 두 번, 증산에서 아우라지를 왕복하는 꼬마열차를 타볼 요량이라면 꼼꼼히 잘 챙겨야 한다.
 
느긋한 아침에, 크지 않은 읍내라 금방 찾겠거니 싶어 찾아 나섰던 아우라지 촌(村) 때문에 12시가 다되어서야 길을 나설 수 있었다. 그것도 점심까지 먹고서. 하지만 지붕을 어떤 것으로 했느냐에 따라, 귀틀집, 너와집, 굴피집, 돌집, 저릅집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옛집들을 둘러볼 수 있어 시간이 아깝지만은 않다.
 
읍내를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오르막길이 이제 내려가겠거니, 하면 또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오르막길이야 적응이 돼서 그렇지 곳곳에 발걸음을 늦추는 빙판은 오가는 차가 없어 다행이지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이 높으니 당연 길도 높을 것이나 따뜻한 날이 꽤 오래 되어도 쉽게 녹지 않는 눈들을 어쩌랴.
 
중간에 한 번 주유소에서 잠깐 쉰 것 빼곤 한 시간 가까이나 긴 오르막을 올랐는데, 에게, 겨우 해발 450m라네. 발아래 마을이 언뜻 까마득히 보이는데 어째 요 높이일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번 여행 때도 정선 들어가는 긴 오르막길 끝 솔치재도 요만한 높이였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근동의 마을들에 들거나 나거나 할 땐 이 정도 고개 하나씩은 넘어야 할 듯하다.
 
 
반점재로 오르는 길에서는 답사여행을 나온 일단의 젊은이들로부터 수군수군 눈초리를 받기도 하고, 반점재 꼭대기에서는 그래도 숨 한번 고르고 나니 어느새 내리막길이다. 따뜻한 햇살을 한껏 받으며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는데, 길을 가운데 두고 오른편은 얼어붙은 얼음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겨울 강줄기, 왼편은 고작 하루 네 번 열차만 실어주기만 하면 되는 기찻길이, 때 이른 봄 풍경이다.
 
 
진부로 이어지는 59번 지방도로와 만나는 나전에 이르니 2시가 넘었다. 12시 정선을 출발해 반점재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린 것 이외에는 쉬지 않고 걸었으니 몸이 뻐근할만도 한데 봄 풍경 때문인지 힘든지 모른다. 그래도 앞으로 이만큼은 또 걸어야 하기에, 그리고 때맞춰 멈춰선 꼬마열차 구경에 잠시 쉬어간다. 헌데.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영월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새인가부터 눈에 자꾸만 걸리기 시작한 ‘평창동계올림픽’ 간판이 유난히 거슬린다. 차가 많이 오가는 국도는 물론이고 지방도로에 지번도 없는 작은 소로에까지 여기저기 스키 타는 모습들이다. 아마도 평창에 가까워지면서 덩달아 간판들도 늘어난 것일 테다. 그래도 그렇지. 가만 생각해봐도 산허리를 절딴 내고서야 겨우, 그것도 내리지 않는 눈을 기다리다 못해 가짜 눈을 만들고서야 스키를 탈 수 있는데 뭔 ‘경제유발효과’인지. 한쪽에서는 온난화로 인해 앞으로 아열대기후로 변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다른 한쪽에서는 뭉턱뭉턱 나무를 밀어내고 산을 깎아내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양이 ‘냄비 언론' 탓만은 아니리라.
 
당초 오늘 걷기는 여기까지다, 생각했던 여량에 가까이 다가오니 4시가 넘어도 한참이다. 해가 짧아지기는 했어도 어째 좀, 시간이 어정쩡하다. 오늘 하루 걸은 길이 대략 50리 길에 시간상으로도 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데다 이 시간에 잠자리를 찾아 여관을 기웃거리는 것도 좀 그렇다. 더구나 내처 경전선의 끄트머리인 구절리역까지 걷기에는 더욱 시간이 애매하다. 어찌할까.
 
결국 인근 임계에서 군내버스로 1시간이면 동해바다를 볼 수 있다는 말에 혹하고 넘어가 밤바다 구경에 나서는데, 꾸불꾸불한 길 이쪽 아래 여량 읍내의 불빛과 저쪽 아래 동해 읍내의 불빛이 잠깐의 시차를 두고 사라졌다, 나왔다 하며 길을 밝힌다. 아무래도 길을 잘 나선 것도 같다. 게다가 오랜만에 듣는 파도 소리에 요 며칠 찌뿌둥했던 기분이 싹 가셔지니 꽤 쌀쌀한 밤바람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정선에서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 하나
정선읍내를 벗어나면서 시작되는 긴 오르막길 끝에 반점재가 있다. 높이는 450m. 옛 길은 반점재로 오르다 오른쪽으로 국일관이라는 식당이 보이는 건너편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시작되는데, 길 입구, 뭐 하나 알려주는 표지판도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고개를 넘지 않고 질러간다고 해서 ‘지르러미’라고도 불렸다는데, 비록 채 10km가 되지 않은 짧은 길이지만 강과 함께 걷고자 한다면 이 옛 길을 놓쳐서는 안 된다.
 
* 정선에서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 둘
지르러미를 지나 강, 길, 기찻길이 나란히 가는 42번 국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나전이다. 이곳에서 나전중학교 담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한국가스공사 연수원이 보이고 다시 여기서 왼쪽으로 난 길이 봉화치를 넘어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의 시작이다. 이 길은 정선과 아우라지를 이어주는, 42번 국도와 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으로 나란히 이어진다. 비록 시멘트로 발라져 옛 길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봉화치에서 내려다보이는 물길이 아름답기에 이 옛 길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 열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정선 읍내에서 아우라지가 마주 보이는 여량까지 5시간 동안 약 20km를 걷다.
 
* 가고, 오고
정선으로 가는 길은 증산을 거쳐 꼬마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길과 장평, 증평을 경유하는 시외버스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이 됐건 4시간 정도가 소요되므로 시간상으로는 차이가 없다. 다만 하루 두 차례 증산에서 아우라지까지 운행하는 꼬마열차를 타보는 것도 색다른 맛일 것이다.
 
* 잠잘 곳
정선읍내에는 쉬어가기 좋은 모텔이 몇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만 여량에는 유명한 옥산장 이외에 민박이 몇 없으니 사전에 잘 알아봐야 하며 정선읍내에서 여랑까지는 숙박시설은 물론 음식점도 보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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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1 13:18 2010/07/21 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