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내면엔 나물이 지천이랑께”, 상원사에서 오대산 두도령을 넘어 달둔마을 앞머리까지(2007년 5월 26일)

 
당일치기가 가능할까? 새벽, 진부행 첫 차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한다. 오대산 상원사야 널리 알려진 만큼 쉬이 갈 수 있으나 오대산 넘어 명개리나 광원리쪽은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군내버스를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출발할 땐 ‘까짓 못 나오면 하루 더 있다 오지 머’라며 가벼이 생각하기는 했어도, 일요일 아침 어중간한 시간에 서울로 오게 되면 애꿎게 하루를 그냥 보낼 수 있기에 어찌해서든 서울로 나오는 버스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연신 안절부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진부에서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에 오르니 우통수(于筒水)에서부터 시작된 한강 물줄기가 전나무 숲 사이로 시원스레 흐르는데 걸으면서 느끼는 맛과는 또 다르다. 하지만 차를 이용하게 되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맛볼 수 없으니 필히 차를 두고서 두 발로 걸어야 한다.
 
상원사 앞은 어제가 초파일이어서인지, 5월이라는 계절 탓인지, 황사가 있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알록달록 등산복 차림의 등산객들로 가득이다. 우리야 산을 오르는 게 아니기에 크게 개의치 않다지만 오대산이라는 이름값에 사람도 산도 몸살이다.
 
버젓이 446번 지방도로라는 딱지를 갖고 있으나 일년 중 절반 이상 차량 통행을 허용하지 않는 비포장도로가 눈앞이다. 분단의 상처를 안고 생겨났지만 이제는 오대산의 너른 품안에 안겨 길과 숲이 하나가 된 이 길은 상원사에서 시작해 명개리까지 50리 길이니 넉넉잡아 6시간 정도면 충분하니 서붓서붓 걸으며 온 산을 오롯이 품을 수 있다.
 
북대사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초입길이라 다행이지 중도에 이런 길을 만났다면 꽤 시간이 들었을테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도 해야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숨이 턱 밑까지 올라와 잠시 발길을 멈추고는 서울에부터 짊어지고 배낭을 풀어 헤친다. 비록 찬도 없는 김밥 세 줄이지만 진수성찬이 따로 없고 맛은 또 얼마나 꿀맛인가. 이렇게 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앉아 한가로이 밥 먹을 수 있는 지방도로가 몇이나 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높이가 1,310m로 비로봉(1,563m)과는 불과 250여m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두도령에 오르니 12시 40분이다. 상원사에서 10시 35분에 출발했으니 2시간이 걸렸는데, 북대사에서 15분 정도 김밥 먹으며 시간 보낸 걸 빼고 나면, 1시간 40분 걸린 셈이다. 오대산의 자랑인 전나무며, 소나무를 맘껏 볼 수 있어 시간이 언제 이렇게 된 줄 모른다.
 
가파른 오르막길에 이어 한참을 평지에서와 같은 길이 이어지더니 두도령을 지나면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또아리를 튼 뱀 마냥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쪽 구비를 지날 땐 멀리 점봉산이니 한계령이 머리를 내밀고, 이쪽 구비를 돌아설 땐 시원스런 계곡물과 마주친다. 상원사를 출발해 세 시간이 넘게 걷고 있지만 딱 한 팀, 것도 달랑 세 명의 산 타는 사람만 만났으니 오대산을 전세 낸 거나 다름없고, 오랜만에 매연 속에서 벗어나 산길을 걸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명개리쪽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도착하니 네 시가 안됐다. 여기서 다시 56번 국도와 만나는 곳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렸고, 표지판을 보니 상원사까지 19.6km다. 구불구불 산길을 여섯 시간이나 걸었는데도 피곤하지 않은 걸 보니 울창한 나무들이 내뿜는 숲 내음 덕이리라.
 
당초 광원리까지 무리라 판단했지만서도 달둔마을 앞머리에 이르니 어느덧 여섯시고 아쉬운 마음이 가득이다. 명개리까지 거슬러 올랐던 군내버스가 저만치서 오는데, 막차는 아니지만 창촌에서 홍천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저 차에 올라야 한다. 아예 하루 머물면서 삼둔사가리 중 하나인 달둔마을 구경에 나설까도 싶지만 결국 떠나기 전 안절부절이 버스 안으로 몸을 디밀게 한다.
 
창촌에 도착하니 홍천으로 나가는 버스시간이 한참 남았다. 홍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 시간을 확인하니 아무래도 이곳에서 간단하게나마 요기를 할 수밖에 없다. 해서 변변한 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은, 이곳에 정착한지 이제 6년이 조금 넘었다는, 슈퍼인지 분식점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가게 집에 들어서는데, 나물향이 가득이다.
 
“5월, 내면엔 나물이 지천이랑께”
 
어머니 49재 음식을 준비할 때였다. 동그랑땡이니 적을 만드느라 돼지고기를 만졌는데 전에 없이 빨간 두드러기가 몸 여기저기에 생기는 게 아닌가. 첨엔 그냥 고기가 상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두 번인가 돼지고기를 먹을 기회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은 입안에 넣었고 한 번은 만지기만 했는데도 예의 그 두드러기가 또 나타났다. 이를 어째, 별수 없어 이번엔 한의원엘 찾았더니, 체질이 바뀌었으니 고기를 끊던가, 약을 먹던가 하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쩝. 하지만 어쩌랴. 애당초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되면 ‘공산품 고기는 그만 먹어야지’ 하고 맘먹고 있었던 차라. 아예 잘 됐다 싶어 이번 기회에 끊기로 했다. 그리고는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왔으나 이제껏 관심 밖에 머물러 있던 나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때맞춰 봄나물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맛을 들이기에는 제격인 듯싶었고, 된장에, 고추장에, 초장에, 들기름에, 이렇게 저렇게 맛을 내니 어느새 나물 맛에 흠뻑 빠지게 됐다. 그런데 여기 이 깊은 산골마을에 들어서 봄나물을 한가득 보니 어찌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지 않을 수 있을까.
 
요기를 할 만 것이라고는 달랑 떡볶이가 전부지만 아주머니의 마을 자랑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덩달아 우리도 오랜만에 수다를 풀어내는데 어느새 홍천 나가는 버스에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린다.
 
* 스무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오대산 상원사에서 홍천 내면 달둔마을 입구까지 약 24km. 걸은 7시간.
 
* 가고, 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를 거쳐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30분을 시작으로 3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진부에서 상원사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는 시간이 8시 30분, 9시 40분이니 6시 30분 첫차나 7시 10분에 출발하는 다음 차를 놓쳐서는 안 된다. 명개리나 달둔마을, 혹은 인근 광원리에서 서울로 오는 길은 창촌과 홍천을 거쳐야만 하는데 하루 몇 차례 운행하는 버스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다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따라서 사전에 창촌터미널, 홍천터미널 등지에서 버스 시간을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 잠잘 곳
상원사에서 명개리까지 50리 길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으니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명개리에서 광원리까진 드문드문 민박집과 음식점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큰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삼봉자연휴양림이 자리 잡고 있으니 이곳에서 하루 머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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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0 23:40 2010/11/10 23:40

진부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을 거쳐 상원사까지(2007년 4월 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4월 초 날씨엔 봄철 입산통제가 아니라도 두도령을 넘는 일정이란 쉽지 않을 듯하다. 서울만 하더라도 여의도에 벚꽃이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고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나뭇가지들에 새순이 파릇파릇 돋지만 여기 강원도는 아직 녹지 않은 눈 구경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바람은 매섭고 해 떠 있는 시간은 짧아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넉넉지가 않다. 해서 요번엔 당일치기로 걷되, 다만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볼 수 있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으로 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에 밥 한술 뜨지 못 하는 부산을 떨었는데도 진부에 도착하니 그새 9시가 훌쩍 넘었다. 부족한 잠이야 차안에서 채우기는 했지만 어째 아침은 한 술 뜨고 가야 출발해야 할텐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터미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상원사로 향하는 59번 국도로 올라선다. 하지만 지난 해 수해 때문인지 도로 위에 온통 덤프트럭 천지다. 읍내엔 그래도 인도가 있어 다행이지만 읍내를 벗어나니 걷기가 쉽지만은 않다.

 

한 시간 가량 질주하는 덤프트럭들을 피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걸었더니 몸이 지치는 건 둘째고 길을 걷는 맛이나 흥이 당체 생기질 않는다. 심지어는 괜히 왔나 싶다. 게다가 잠시 허기진 배도 채울 겸 기분전환도 할 겸 상원사로 이어지는 삼거리 앞 슈퍼에서 이것저것 주전부리 할 만 한 것들을 찾는데. 이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삶은 계란이라고 생각하고 집어 들었던 것이 구운 계란이라 ‘비린 맛’ 때문에 다른 것을 고르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삶은 것보다 덜 비리다며 까탈스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어쩜.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걸 모르고 저러시는 걸까? 대충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들고는 서둘러 가게를 빠져 나온다.

 

투덜투덜 서로 말도 없이 걷기만 하는데 언제부터였는지 푸른 잎의 전나무가 길 양옆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 또 이름 모를 꽃들이 나무 아래에 은하수처럼 깔려 있다. 어느 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겨우내 문을 닫고 있다 엊그제서야 다시 문을 연 자생식물원 구경은 다음으로 미룬다. 지금 가봐야 꽃도 피어 있지 않을 거라는 위안은 식물원으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개 한 마리에 막혀 길을 돌아서면서 했을테니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상원사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산수명산’이란 음식점에서 맛나게 산채백반에 감자전을 곁들여 동동주를 한 잔 걸치니 마치 오늘 걸어야 할 길을 다 걸은 듯하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진 많이 잡아도 3시간이면 될 터이니 때 아닌 느긋함을 부리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오전에 보았던 전나무는 맛보기였다. 월정사대가람(月精寺大伽藍)이라는 편액 아래 일주문을 걸어야만, 그것도 차를 놓고 걷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는 월정사 전나무 숲은 쌀쌀한 바람과 차디찬 햇살과는 다른 파란 세상으로의 통로다. 한겨울의 추위 동안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갔던 이름 모를 새들이 긴 침묵을 깨듯 맑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하늘 아래로부터 이파리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전나무 숲길의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까지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적광전이며, 수광전이며, 성보박물관까지 절 구경을 마치고 나니 아직 해가 머리 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야 아무리 산길이라도 3시간이면 충분하니 서둘지 않아도 될 터이나 진부로 나가는 막차가 5시 20분인데다 이 차를 놓치게 되면 꼼짝없이 월정사까지 다시 되돌아 나오지 않으면 안 되기에 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산길로 접어든다.

 

계곡을 끼고 도는 길이라 그런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군데군데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 겨울 분위기지만 절을 벗어나자마자 만나는 흙 길을 옆에 두고 흐르는 계곡 물은 따스한 햇살만큼이나 나근나근하다.

 

상원사에 도착하고 보니 월정사를 출발한지 두 시간이 조금 지났다. 올라오는 길에 마주치기는 했지만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서있는 버스를 보니 상원사 구경은 다음으로 미룰까도 싶다. 하지만 오늘 하루 걸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데다 두도령을 넘어 명개리를 지나야 하는 다음 번 걷기를 생각해보면 오늘 절 구경을 해두는 게 낫다 싶어 상원사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오른다. 게다가 아직 막차가 남아 있지 않은가.

 

상원사는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왕이 된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둘이 있는데, 목욕하며 만난 문수보살과 법당 앞에서 자객을 일러준 고양이가 그것이다. 보살은 후에 문수동자상으로 상원사에 남겨졌고, 고양이 역시 상원사 청량선원 앞에 석상으로 남았다. 재미난 것은 후대 사람들이 고양이 석상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무튼 우리도 고양이 석상을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는데, 우리 하는 짓이 궁금했는지 한 아주머니가 빼꼼이 머리를 내밀고 쳐다본다. 해서 이래저래 해서 우리도 고양이를 만진다 했는데, 우리말이 그치기가 무섭게 그 아주머니 왈.

 

“열심히 만지세요”

 

찬바람이 쌩. 오전에는 슈퍼에서 까탈스런 목소리를 듣더니 오후에는 절에서 쌀쌀한 목소리를 듣는 게, 어째 오늘은 사람일진이 좋지 않다. 머 언제고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은 마음 상처가 크다.

 

절 구경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남았더라면 가까운 적멸보궁까지 둘러보겠지만 어중간한 시간 때문에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절 아래 정류소로 일지감치 내려간다. 그새 해가 저만치 산 너머로 지고 바람이 조금 세졌다.

 

정류장에 분명 5시 20분이 막차시간이라고 써 있음에도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불안해서인지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었던 것 때문에.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도 한참 동안이나 운전기사 아저씨의 꿍얼꿍얼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랴. 그저 진부에 도착할 때까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볼 수밖에.

 

* 열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진부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을 지나 상원사까지 약 21km. 걸은 6시간 30분.

 

* 가고, 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를 거쳐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30분을 시작으로 30여분 간격으로 있다. 상원사에서는 진부로 나오는 막차가 17시 20분이므로 시간을 잘 맞춰야 하며, 진부에서 동서울로 오는 시외버스는 역시 30여분 간격으로 막차 20시 45분이다.

 

* 잠잘 곳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길에는 오대산장이 있으며, 월정사 부근에는 민박촌이 형성돼 있다. 상원사에서 두로령을 넘어 구룡령까지는 숙박할 곳이 따로 없으니 일정 잡는데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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