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식이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또 당(黨) 하고도 같이 이런저런 사업을 한다는 얘길 들어서일까요. 아님 때맞춰 국회에 입성한 의원이 10명이나 생겨서였을까요. 지금은 “MBC뉴스도 KBS와 똑같아. 차별이 없어”라고 말씀하실 만큼 정치를 꿰뚫어 보시긴 하지만. 그땐 “이번엔 누구 찍어야 하냐?”라 물으시던 게. 정말 꿈만 같았지요. 그때까지 적어도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 모습은. 지게에 솥단지 하나 짊어지고 올라온 전라도 ‘깽깽이’가 출신성분을 감추려 민주정의당 당원으로 가입도 하고. 가겟집 간판도 ‘충남상회’로 달고. 반장을 거쳐 통장까지 도맡아 했었던. 그래요. 그런 아버지께서 선거 때만 되면 몇 번 찍어야 하느냐고 전화를 하셨던 겁니다.
 
2.
지금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국민승리 21>시절 가입했던 민주노동당 당원번호. 그땐 버는 돈도 없었던 백수시절이었는데도. 꼬박꼬박 당비 내는 당원으로 가입을 했지요. 물론 그 후 대학원을 거쳐 연맹에서 일을 할 때까지도. 아니 그보다 더 후에도. 당 활동이라고는 지구당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도 않을 만큼 전무했지만. 그래도 선거 때가 되면 컬러링도 바꾸고. 경기도 모 지역에 파견을 자처, 보름 넘게 국회의원 선거 지원활동도 하고. 일이 일인지라 가끔은 당과 함께 이런저런 정책도 만들기도 했지요. 생각해보면 “부자에겐 세금을 민주노동당, 서민에겐 복지를 민주노동당”이란 노랠 많이 조금이라도 더 듣게 하려고 부러 신호가 한 참 간 후에 받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3.
당이 쪼개지고 난 후. 민주노동당에 남긴 죽어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진보신당에 들어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뭐, ‘농사짓는 사람이 돈이 어디 있어.....’라는 핑계거리를 둘러 대긴 했지만 솔직한 속마음은. 북쪽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나 비판하는 사람들이나. 당비대납에 대리투표, 위장전입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나 이를 패권주의니 다수파니하며 몰아가며 탈당 명분으로 삼은 이들이나. ‘민주정부’ 수립 이외엔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그건 또 죽어도 못 받아들이겠다는 사람들이나. 모두 똑같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차피 합법 정당을 만들었을 땐. 그리고 그 정당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후보를 냈을 땐. 권력을 잡는 게 당연한 목표고 또 그럴 때야만 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또 그 과정에서 1명, 10명 의원이 늘어나면 날수록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서 빠질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둘 다 옹고집, 아니 똥고집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4. 
먼저 진보신당이 부결시켰더군요. 내심 부결되길 바라기도 했지만 속은 편치 않았습니다. 뒤이어 민주노동당도 부결됐습니다. 이 역시 내심 부결 돼야지, 부결 될 거야, 했지만. 똑같이 속은 쓰렸습니다. 하지만 심상정, 노회찬 전 대표가 당을 뛰쳐나가고. 유시민과 책까지 냈던 이정희 대표가 찬성표를 던지는 모습을 보니. 편치 않고 쓰렸던 속이 언제 그랬냐는 듯, 연신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남들이야 급격한 우경화니, 금뺏지에 넘어갔다느니 하지만. 역시나. 짝사랑, 외사랑이었던 겁니다.
 
5.
작년 지방선거 하루 전날에도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었습니다. 안 그래도 투표를 앞두고 전화가 올 거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심상정이 막 사퇴를 하고난 터라 마땅히 드릴 말씀이 없어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하다. 결국 받았습니다. “이번에 심상정 나왔던데. 심상정 찍으면 되냐?”는 어머님 물음. 잠깐사이 ‘아니요. 심상정은 사퇴했으니까 김문수 빼고 아무나 맘에 드는 사람 찍으세요.’라는 하나마나한 얘길 할까. ‘어머니 심상정은 사퇴했으니까요. 유시민 찍으세요. 김문수가 되면 안 되니까 유시민 찍으세요.’라는 맘에도 없는 말을 할까. 정말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더군요.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던 거고. 그걸 받아들일 것이냐, 말 것이냐는. 어머님 몫이 아니었던 겁니다. 
 
6.
민주노동당은 물론이고 진보신당 홈페이지엔 기웃거리기조차 하질 않은 지 꽤 오래됐습니다. 간간이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으로 들려오는 소식만 듣는 셈이지요. 당을 나올 때도 그랬지만 당체 들어가 보고 싶질 않더라구요. 인신공격이야 안 보면 그만이지만. 넘쳐나는,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 말깨나 한다는 사람들 얘기가 더 보고 싶지도, 더 듣고 싶지도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돌아가는 꼴을 드러내놓고 말하기도 뭐하고. 또 아직까지 당을 떠난 줄 모르고 있는 아버지, 어머님이 이것저것 물어 오실 때 딱히 드릴 말씀도 없는 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20년 전만도 못한 것 같으니.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7.
5세훈이 몽니부리다 쫓기듯 내놓은 시장 자리를 누가 차지할 건가를 놓고 연일 요란합니다. 헌데, 한나라당이야 말할 것도 없으니 그렇다 쳐도. 또 안철수와 박원순 열풍에서마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민주당까지 그렇다 쳐도. 대체 ‘진보’를 내거는 두 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요. 뭐, 당이 또 쪼개질 판이니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핑계를 대려나요. 아님 그래도 우린 후보라도 내서 경선에 참여했으니 면피했다고 하려나요. 서울시장 선거니 아버지가 전화를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야당 쪽에서 박원순으로 됐던데 어떠냐? 박원순 찍어야겠지.”라는 뻔한 물음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올 겁니다. 하지만, 벌써부터 고민입니다. 대체 이번엔 뭐라 답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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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4 17:36 2011/10/04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