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⑧ 시대를 앞서갔던 이, 허균․허난설헌의 애틋함을 쫓아(2013년 6월 6일)
 
허균은 누이 허난설헌에게 세 가지 잘못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잘못이요, 둘째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잘못, 마지막으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이 잘못이란다.  그 역시 지배계급의 일원인 양반가, 그것도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긴 했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누이가 그 재능을 세상에 떨쳐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사랑을 저리 표현했다.     
 
누이 난설헌에 대한 애틋함은 이것 말고도 또 있다. 자신이 지은 시 구절처럼 27세라는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언마저 지키지 않았던 거다. 자기가 죽으면 자기 시를 모두 태워버리라 했음에도. 초희가 친정에 남긴 것들과 자신이 외우던 시들을 모아 <난설헌집>을 펴낸 것이니. 지독한 누이 사랑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을까.
 
碧海浸瑤海
靑鸞倚彩鸞
芙蓉三九朶
紅墮月霜寒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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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조선 왕조가 끝날 때까지 복권되지 못했다. 그가 남긴 글들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거나, 몇몇 목숨을 건 이들 덕분에 겨우 전해질 수 있었다. 이전에는 겨우 <홍길동전>을 쓴 이로, 어느 책들에선 균이란 이름만 남겨졌는데. 근래 새삼스레 관심을 받고 있으니. 봉건왕조가 물러난 뒤에야 겨우 살아나고 있다.

 
허난설헌은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중국과 일본에서 그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정작 그가 살았던 조선에서는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아니 고루하고도 비루한 유생들로부터 철저히 따돌림을 당했으니. 일곱 살 때, 하늘나라 황제가 살고 있다는 백옥루에 올릴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樑文’을 써냈던 그이가 그렇게도 못마땅했나.
 
솔직히 오죽헌은 세계최초 부자 화폐 인물이라는 요란한 현수막 때문에 못마땅한 구석이 있고. 김시습문학관은 그저 구색만 맞춰 놓았다는 인상이 짙긴 하나. 오죽헌에서 허난설헌 생가까지 이어지는 길은 문학길이라 이름 붙여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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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도 그렇고 그 아들 율곡 이이에. 호수를 사이에 두고 이쪽에는 김시습과 저쪽에는 허균, 허난설헌 남매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길 끝에서 만나는 작은 도서관. 그 툇마루에 앉아 이들이 남긴 글들을 읽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애틋한 두 오누이를 뒤에 두고 솔 숲길을 나서자 경포호수다. 바우길과는 5코스 바다 호숫길과 연결된다. 시내 어디서 또 이런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싶은 둔치길 끝에 바닷길이 있는 것이다.
 
찻길을 가운데 놓고 한 번은 바다 옆 솔숲 길로. 또 한 번은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솔숲 길을 번갈아 걸으면. 어느새 송정과 안목해변을 지나 솔바람 다리에 이르는 길이니. 이번에도 쉬엄쉬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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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네 번 째 여행에서 걸은 길
사천해변에서 시작하는 5구간 바다 호숫길과 위촌리 송양초교에서 출발한 11구간 신사임당길과는 경포대에서 허균.허난설헌 생가까지 겹친다. 이후 5구간은 6구간 출발점이기도 한 솔바람다리 건너 남항진으로 이어진다. 허균.허난설헌 생가에서 만난 작은도서관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던 탓에 고작 7Km 정도를 1시간 반 남짓이나 걸었는데 시간은 반나절 넘게 걸렸다.  
 
* 가고, 오고
아직까진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을 챙겨야 한다.  
 
* 잠잘 곳
경포해변에서 남항진까지 이어지는 5구간에는 식당도, 숙박시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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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1 10:55 2014/07/01 10:55

바우길 ⑦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다시 만난 신사임당길(2013년 5월 25일)

 
오죽헌 입구에는 세계 최초 모자 화폐 인물이라는 요란한 문구가 걸려있다. 처음 신사임당이  5만 원 권에 선정됐을 때 벌어졌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워낙에 ‘세계 최초’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가만 생각해보니 이도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닌가 싶다. 유관순 열사도 좋았겠고. 신사임당길 끝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초희도 있었다는 데에 이른다면 말이다.
 
번잡한 오죽헌을 뒤로 하고 선교장으로 가는 농로로 올라서려는데. 어라, 농로가 막혔네. 경포에 생태습지원을 만든다고 하던데. 얼추 공사는 끝나 보이건만, 어째 바우길 표지판만 그대로이고 길이 막힌 것이다. 농로로 올라서는 길은 가로수로 막혔고. 농로는 농로인가 싶을 만치  황량하다. 이런 황당할 데가. 공사가 마무리되면 길이 연결되려나. 아님 길이 딴 데로 나려나.
 
지난 번 걷기 때만해도 봄이 오는 건지 마는 건지 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여름 날씨다. 덕분에 점심을 먹고도 한참이나 지나 집을 나섰는데도 찻길은 땡볕이고. 농로였다면 그나마 나았을 터인데. 아스팔트길을 걸으려니 고역이다. 게다가 근처가 모두 관광지라 가게가 많을 거라 생각해 물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없다. 어쩔 수 없다. 부지런히 걸어야지. 선교장에 가면 뭔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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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장에 도착하니 북적북적 사람들이 꽤 많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집 구경도 하고 목도 축이려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가보다. 단체관광이라도 왔나. 안 그래도 헉헉 숨 돌릴 틈도 없이 걸어와 땀이 송골송골한데. 서둘러 앞질러 가던가, 뒤로 처져 쉬었다가 구경해야겠는데. 어랏, 선교장이 어쩌고저쩌고.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 속에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첨엔 쭈뼛쭈볏 무리 뒤를 따라가며 설명을 들었는데. 얘길 듣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것들을 하나, 하나 다시 보고. 안채 대청에 서서 경포들을 멀리 내다보기도 하고. 행랑채 툇마루에 앉아 열화당 채양시설도 보고. 그러다 몽양 여운형 얘기가 나올 때쯤엔. 어느새 바로 코앞에서 고개를 끄덕끄덕. 눈 깜짝할 새에 다 둘러본다.
 
하지만 율곡과 신사임당이 어제의 사람이라면 허균과 허난설헌은 오늘의 사람이라는 말은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할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 오르막길이며, 지나는 이와 동물마저 배려해 만든 문지방. 줄행랑의 행랑채, 안주인들의 애환이 담긴 숨구멍과 내외벽엔 자꾸만 눈길이 간다. 무엇보다 여운형이 영어 선생을 했다던 동진학교 터에선 오랫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니. 생각지도 못한 호사스런 집 구경이다.
 
반대로 선교장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김시습 기념관은 호젓하게 둘러보고 쉬어가기 좋다. 애니메이션으로 들려주는 김시습 일대기와 금오신화도 보고 있노라면. 먼 길을 걸어오면서 뻣뻣해진 다리를 풀기 좋기 때문. 또 경포대를 찾아가는 산길을 걷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들러야 할 듯. 다행히 따갑던 해도 많이 수그러진 데다. 때마침 구경 온 사람도 없어 퍼질러 앉아 둘러보고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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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선교장, 김시습 기념관을 차례로 들렀다면 이번엔 산길이다. 하지만 해는 산을 넘어 보이질 않고 바람만 살랑살랑. 경포들 너머 아파트 숲과 높다란 시청 건물을 보며 산길을 걷는데. 이렇게 시내 가까운 곳에 솔향 숲길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시루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엔. 멀리 동해바다와 경포호까지 보이니. 산길이 아니라 보물이다.

 
해가 진 경포 호숫길을 길게 돌아 허균과 허난설헌이 태어났다고 하는 초당동에 이르니 어둑어둑하다. 생가(生家)야 전에도 한 번 둘러본 적이 있고. 버스 한 번이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 밥 먹을 곳을 찾아야겠는데. 다행히 그 유명하다던 초당 순두부 집들이 많아 허기를 달래기엔 안성맞춤. 다만 호숫길을 길게 돌아야 겨우 버스 종점에 이르니. 발길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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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세 번 째 여행에서 걸은 길
신사임당길은 오죽헌, 선교장, 김시습문학관을 거쳐 허균.허난설헌 생가를 이어준다. 이번 걷기에선 이곳 모두를 다 천천히 둘러봤으니 걸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시간은 많이 걸렸다. 오죽헌에서 허균․허난설헌 생가까지 대충 6.6km 정도.
 
* 가고, 오고
이번에도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을 참조.
 
* 잠잘 곳
경포호 주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관광지라 값이 비쌀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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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17:36 2014/03/24 17:36
바우길 ⑥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난 신사임당길(2013년 4월 27일)
 
믿기지가 않을 정도다. 불과 지난주,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오락가락, 바람이 쌩쌩. 한옥학교 가는 길과 학교가 있는 대관령 꼭대기, 진부엔 눈까지 내리고. 도로 겨울이 오나 싶을 만치 쌀쌀한 날씨가 계속됐었는데. 모처럼 걷기를 한다고 소문이라도 났나. 하늘은 맑고 바람은 솔솔. 이게 무슨 조환가 싶다.
 
버스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송양초등학교 앞부터 시작된 임도가 죽헌저수지에 이를 때쯤, 막 가파른 길을 걸어 올라와 숨이 가쁘고 땀이 몽글몽글 뒷덜미를 타고 내려올 그때쯤. 이미 시내엔 벚꽃과 개나리가 자취를 감췄건만. 그래서 벼르고 별렀던 왕벚꽃도 구경하지 못했었는데. 솔바람을 타고 흐드러지게 맑은 물 위로 떨어지는 하얗고 빨간 꽃망울들. 모처럼 봄이 오는 길목에서 눈이 호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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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봄철 날씨가 변덕스러운 거야 원래 그랬거니 싶으며 넘기는 경우가 일쑤다. 예컨대 시베리아기단이니 북태평양기단이니 하며 세력싸움 탓으로 돌리거나. 일사량이니 복사냉각이니 하며 일교차가 큰 이유를 설명하는 것들이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언제부턴가 봄과 가을은 그 계절을 느끼기도 전에 삼복더위와 동장군에 밀려나고. 최첨단 슈퍼컴퓨터가 있어도 급작스런 폭우와 폭설을 알아내기는 점점 어려워지니. 이만하면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말하기엔 다 설명이 되질 않겠다. 물론 이런 이상 현상들에 대해 기후가 변화해 그렇다는 말들도 있지만.
 
일주일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차를 끌고 대형 마트로 가서. 지구 반대편에서 온 과일이며 생선을 카트에 담고. 이제 막 겨울을 벗어났을 뿐인데도 넘쳐나는 푸른 채소들을 골라내고. 크고 선명한 텔레비전 앞에서 우리 집 텔레비전도 바꿔야 하는데, 잠시 쉬기도 하다. 삼겹살에 갈비살, 닭가슴살 통조림까지 사고 나면. 요동치는 날씨는 그저 애꿎은 기상청 탓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신사임당길 들머리에서 산만한 덩치를 가진 개 때문에 뒤돌아 갈까도 했었는데. 죽헌저수지를 지나 농로로 접어드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누렁이 한 마리. 삼십분 넘게 개 사라지길 기다리다 겨우 출발. 헌데 외따로이 떨어진 어떤 집 앞에서 다시 들리는 개소리에 또 멈칫.
 
전에는 마을이 얼른 나오길, 사람 흔적이 보이길 했는데. 요즘은 마을이나 집 근처를 지나게 되면 어디서 개가 나오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대부분 묶어 놓고 있기는 하나. 워낙 크기도 하거니와 소리도 무진장 커 움찔움찔. 동네 길을 걷는 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피해를 주는 일이니 조심스레 걷는 게 당연하겠지만. 본의 아니게 소란스럽게 만드는 것 자체가 신경 쓰이는 일이라 걷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나. 조심, 또 조심하는 수밖에.
 
사방 대나무가 있어 그 이름과 걸맞은 죽림사 근처를 지나는데, 푸른 대나무 사이로 검은 오죽이 드문드문 보인다. 근처가 오죽헌이라더니 역시 그 이름값을 하는 가보다.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어느새 해도 뉘엿뉘엿. 오늘은 저기까지만 이다,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이런 둔치는 공사 중인데 길 끝엔 굴삭기가 가로막고까지 있다. 게다가 차들은 어찌나 쌩쌩 달리는지. 막바지에 와서 고생이다.
 
하지만 조금 늦은 봄맞이 길이었던 신사임당길. 시내엔 개나리꽃이 지고 벚꽃도 보이질 않았지만 봄을 느끼기에 안성맞춤. 이어지는 길도 더 늦기 전에 걷고 싶게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열두 번 째 여행에서 걸은 길
바우길 11구간 신사임당길은 위촌로 송양초등학교에서 시작해 허난설헌 생가터까지 이어지는 16.3km 길이인데 이날은 오죽헌까지만 걸었다. 거리로는 9.7km, 시간은 천천히 봄을 만끽하며 걷느라 4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 가고, 오고
강릉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을 참조.
 
* 잠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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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12:00 2013/09/25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