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 ⑦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다시 만난 신사임당길(2013년 5월 25일)

 
오죽헌 입구에는 세계 최초 모자 화폐 인물이라는 요란한 문구가 걸려있다. 처음 신사임당이  5만 원 권에 선정됐을 때 벌어졌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워낙에 ‘세계 최초’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가만 생각해보니 이도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닌가 싶다. 유관순 열사도 좋았겠고. 신사임당길 끝자락에서 만날 수 있는 초희도 있었다는 데에 이른다면 말이다.
 
번잡한 오죽헌을 뒤로 하고 선교장으로 가는 농로로 올라서려는데. 어라, 농로가 막혔네. 경포에 생태습지원을 만든다고 하던데. 얼추 공사는 끝나 보이건만, 어째 바우길 표지판만 그대로이고 길이 막힌 것이다. 농로로 올라서는 길은 가로수로 막혔고. 농로는 농로인가 싶을 만치  황량하다. 이런 황당할 데가. 공사가 마무리되면 길이 연결되려나. 아님 길이 딴 데로 나려나.
 
지난 번 걷기 때만해도 봄이 오는 건지 마는 건지 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여름 날씨다. 덕분에 점심을 먹고도 한참이나 지나 집을 나섰는데도 찻길은 땡볕이고. 농로였다면 그나마 나았을 터인데. 아스팔트길을 걸으려니 고역이다. 게다가 근처가 모두 관광지라 가게가 많을 거라 생각해 물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없다. 어쩔 수 없다. 부지런히 걸어야지. 선교장에 가면 뭔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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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장에 도착하니 북적북적 사람들이 꽤 많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집 구경도 하고 목도 축이려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가보다. 단체관광이라도 왔나. 안 그래도 헉헉 숨 돌릴 틈도 없이 걸어와 땀이 송골송골한데. 서둘러 앞질러 가던가, 뒤로 처져 쉬었다가 구경해야겠는데. 어랏, 선교장이 어쩌고저쩌고. 무리지어 있는 사람들 속에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첨엔 쭈뼛쭈볏 무리 뒤를 따라가며 설명을 들었는데. 얘길 듣지 않았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것들을 하나, 하나 다시 보고. 안채 대청에 서서 경포들을 멀리 내다보기도 하고. 행랑채 툇마루에 앉아 열화당 채양시설도 보고. 그러다 몽양 여운형 얘기가 나올 때쯤엔. 어느새 바로 코앞에서 고개를 끄덕끄덕. 눈 깜짝할 새에 다 둘러본다.
 
하지만 율곡과 신사임당이 어제의 사람이라면 허균과 허난설헌은 오늘의 사람이라는 말은 계속 머릿속에 맴돌고. 할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 오르막길이며, 지나는 이와 동물마저 배려해 만든 문지방. 줄행랑의 행랑채, 안주인들의 애환이 담긴 숨구멍과 내외벽엔 자꾸만 눈길이 간다. 무엇보다 여운형이 영어 선생을 했다던 동진학교 터에선 오랫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니. 생각지도 못한 호사스런 집 구경이다.
 
반대로 선교장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김시습 기념관은 호젓하게 둘러보고 쉬어가기 좋다. 애니메이션으로 들려주는 김시습 일대기와 금오신화도 보고 있노라면. 먼 길을 걸어오면서 뻣뻣해진 다리를 풀기 좋기 때문. 또 경포대를 찾아가는 산길을 걷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들러야 할 듯. 다행히 따갑던 해도 많이 수그러진 데다. 때마침 구경 온 사람도 없어 퍼질러 앉아 둘러보고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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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선교장, 김시습 기념관을 차례로 들렀다면 이번엔 산길이다. 하지만 해는 산을 넘어 보이질 않고 바람만 살랑살랑. 경포들 너머 아파트 숲과 높다란 시청 건물을 보며 산길을 걷는데. 이렇게 시내 가까운 곳에 솔향 숲길이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시루봉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엔. 멀리 동해바다와 경포호까지 보이니. 산길이 아니라 보물이다.

 
해가 진 경포 호숫길을 길게 돌아 허균과 허난설헌이 태어났다고 하는 초당동에 이르니 어둑어둑하다. 생가(生家)야 전에도 한 번 둘러본 적이 있고. 버스 한 번이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 밥 먹을 곳을 찾아야겠는데. 다행히 그 유명하다던 초당 순두부 집들이 많아 허기를 달래기엔 안성맞춤. 다만 호숫길을 길게 돌아야 겨우 버스 종점에 이르니. 발길이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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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세 번 째 여행에서 걸은 길
신사임당길은 오죽헌, 선교장, 김시습문학관을 거쳐 허균.허난설헌 생가를 이어준다. 이번 걷기에선 이곳 모두를 다 천천히 둘러봤으니 걸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시간은 많이 걸렸다. 오죽헌에서 허균․허난설헌 생가까지 대충 6.6km 정도.
 
* 가고, 오고
이번에도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을 참조.
 
* 잠잘 곳
경포호 주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관광지라 값이 비쌀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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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4 17:36 2014/03/24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