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하늘빛 따라 눈부시게 파란 바닷길(2015년 5월 25일) 

 

사람들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正) 동쪽에 있다는 정동진을 어떻게 기억할까. 드라마 ‘모래시계’에 잠깐 나왔다 지금까지도 그 여배우 이름으로 불리는 소나무가 있는 곳? 새해가 되면 누구랄 것도 없이 해 뜨는 것 보러 가는 곳? 세상에서 그 어느 곳보다 바다가 가까운 역(驛)? 젊은 시절 밤기차 타고와 벌건 눈으로 깡소주를 마시며 새벽을 맞이하던 곳?

 

작년 이맘 때 한 청년이 이곳에서 목숨을 끊었다. ‘해가 뜨는 곳’에서,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승리하길 기원하면서. 그 청년은 자신을 이곳에 뿌려 달라 했다. 하지만 유언을 배반하도록 부추긴 자본에 의해 어딘지도 모를 곳에 뿌려졌고. 그렇게 정동진에는 자본이 세운 거대한 모래시계만 남았다. 

 

씁쓸한 모래바람이 산 쪽으로 휘몰아치는 정동진을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드는데. 이 산길, 만만치가 않다. 헉헉 숨을 참고 뒤돌아 멀리 바다를 볼 땐 좀 낫지만. 저기가 끝이겠지 싶은 고갯길이 계속 이어지고. 이건 숫제 등산이다. 그나마 등에 짊어진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예상을 했으니 망정이지. 만만하게 봤다간 딱 큰 코 닥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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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서보니 높이 올라온 만치 보이는 풍경이 장관이다. 또 산길을 다 내려와 만나는 심곡항 바다색은 눈이 다 부시다. 뭐, 이제 바닷길을 걷겠거니 싶었는데 또 숨이 꼴딱 넘어가는 고개를 넘긴 하지만. 그 정도야 아까 지나온 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보상치곤 꽤나 크다.

 

헌화로(獻花路)는 신라시대 강릉 태수로 부임한 순정공(純貞公)과 그 부인, 그리고 한 노인이 얽힌 일화로부터 붙여졌다고 한다. 예컨대 순정공 부인이 절벽에 핀 철쭉을 탐냈고,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위험을 무릎 쓰고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부른 노래가 헌화가(獻花歌)라는 설(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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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차하면 바닷물이 넘쳐 길을 덮치는 헌화로는 옥계면 낙풍리에서 정동진리 정동진역 삼거리까지 이어진다. 그러고 보니 정동진에서 산길을 타는 바우길만 아니었다면 이 헌화로를 따라 쭉 왔을 것을. 때론 에둘러가는 길이 아기자기하고 색다른 볼거리를 주긴 해도. 이번처럼 때 아닌 고생길이기도 하다.

 

여름 피서철에는 북적이는 차들로 몸살을 앓았겠지만 다행히 지나는 차도 드물다. 덕분에 심곡에서 금진해변까지 헌화로를 제대로 걸을 수 있다. 해안 단구와 해안 절벽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바위들, 떡두꺼비바위, 구선암, 괴면암, 합궁골, 저승골, 백두대간, 해룡신전, 공룡가족 등을 차례로 둘러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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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진항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고 나니 시간이 빠듯해 보인다. 옥계까지는 해변길과 솔숲길, 아스팔트길을 차례로 지나야하지만 평지길이라 해 넘어가기 전에 갈 것도 같고. 하지만 곧 금진초 앞에서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좀 전에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었나. 배가 살살 아파오는 게 탈났나보다. 딴 건 몰라도 이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날, 바우길 안녕(2015년 5월 30일)

 

분명 비가 오질 않는다고 했는데 오락가락한다. 버스 안에서도 그랬고 종점인 여기 금진초등학교 앞도 그렇다. 비 핑계 삼아 어디 먹을 데 없나 찾아 두리번 두리번. 다행히 지난 번엔 문을 닫았던 바로 앞 카페가 문을 열었다. 떼 지어 오토바이 타는 사람들이 입구에서 왁자지껄하지만 재고자시고 할 것 없다. 일단 문 열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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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요기를 하고 나니 요란한 오토바이들도 안 보이고. 하늘을 보니 잔뜩 흐르긴 해도 비는 그친 듯. 솔숲 길로 접어들어 발걸음을 빨리 한다. 거리상으로 따지자면 넉넉잡아 한 시간 반이면 될 듯해도 언제 또 비가 올지 모르니. 게다가 얼마 전 오염물질 유출로 크게 문제가 됐던 곳이 코앞이라. 더 머물러 있으라고 해도 서둘렀을 터.

 

오랜만에 갓길도 좁은 2차선 도로를 걷는다. 때맞췄는지 잠잠하던 하늘에 비가 다시 내리고. 산만한 덤프트럭들은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질주한다. 급기야 도로 공사로 한 차선이 없어지고 그나마 있던 갓길도 없다. 그래도 지난 번 해질 녘에 멈추길 잘했지. 어둑어둑한 시간에 여길 지났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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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옥계IC를 지나면서부터는 동네 마실 나온 듯. 농로를 따라 이제 막 모내기한 논 사이를 걷기도 하고. 한참 잘 여문 마늘밭과 이제 막 모종을 옮겨 심은 옥수수밭도 곁을 지나고. 옥계초등학교 옆으로 난 길을 놓치긴 했어도, 이제 딱 한 시간 지났으니 딱 여기까지다. 그래도 바우길이 이제 끝이다 싶으니, 좀은 아쉽다.

 

 

* 열여덟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헌화로 산책길을 마지막으로 바우길 걷기는 끝이다. 바우길 9구간 헌화로 산책길은 12.8km로 그다지 길지 않지만 정동진에서 심곡항까지는 등산에 가까운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넉넉히 시간을 잡아야한다. 첫날은 등산을 한데다 여기서 쉬고 저기서 쉬고, 밥 먹고 어쩌고 하느라 5시간 정도 걸렸고 다음엔 동네 산보 하듯 2시간 정도 걸었다.

 

 

* 가고, 오고

강릉 시내버스 노선(http://www.gangneung.go.kr/sub/bustime/main.jsp?pp=sub01) 참고.

 

 

* 잠잘 곳, 먹을 곳

정동진에는 너무 복잡하다 싶을 만치 식당도, 숙박할 곳도 많다. 이후 심곡항, 금진항, 옥계로 이어지는 길에는 제법 맛집들이 있으니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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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7 14:43 2016/04/07 1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