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학도 그렇지만 경제학이란 학문은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의 ‘현실세계’를 얼마나 잘 설명하고 있느냐 또는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느냐에 따라 부침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시대와 장소에 따라 한때는 정설로 믿어져왔던 것들이 폐기처분되기도 하고. 새로운 이론들이 나오기도 하고. 종교나 신념과도 같이 돼버린 것들을 고수하기 위해 다양한 분석기법들을 도입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에서만큼은 단언컨대 딱, 부러지게 정답이라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인류가 경제활동이란 걸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했다는 그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거의 모든 대학에 경제학과가 있을 만큼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것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 때론 곡해하고 또 때론 자기 편의대로만 해석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2.

신입생이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워낙 여기저기서 10년, 20년 뒤로 퇴보하는 모습들이 많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거의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 있었지요. 교수 채용에 있어 어떤 결정권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 ‘공개강의’란 형태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겁니다. 등록금 투쟁하다 짤리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총학생회마저 유명무실한 지금으로 보면. 맞습니다. 딴 나라 얘기지요. 아무튼. 그때 당시 학과에서 ‘경제사’ 전공 교수를 뽑으려 공개채용을 했습니다. 물론 미국유학파가 대부분이었던 교수들 사이에선 입맛에 맞는 사람을 뽑으려 했고. ‘경제사’만큼은 맑스주의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회는 학생회대로 지원자들 가운데 적임자를 찾으려 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2번 공개강의를 했었던 것 같고. 공개강의를 들었던 학생들과 학생회 측 의견도 교수들에게 전달됐던 것 같고. 일본에서 공부를 한, ‘식민지근대론’을 수용하는 한 지원자를 채용하려는 움직임에 싸움을 했던 것도 같고. 그러다 막판에 학생회가 요구하는 다른 어떤 것과 바꾼 것도 같은데. 20년도 더 된 일이니 정말 가물가물하기는 하네요.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보면 결국 학교와 과 교수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임용된 그 교수는 그때까지만해도 완고하기 짝이 없는 학과를 더 공고히 하는데 일조를 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엔 ‘한국판 새역모’라 할 수 있는 자들이 쓴 <해방전후사의재인식>이라는 책에도 글을 써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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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봉건시대부터 현대까지 경제체제가 어떠한 점진적 발전과정을 걸어왔나를 매우 흥미 있게 관찰’할 만큼만. ‘위대한 사상가들이 전개시키는 주요사상의 역사를 추적’할 만큼만. ‘다양한 그룹들의 특수한 諸 문제와  관심이 매우 특수한 경제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냈으며, 이들 이데올로기들은 현상유지를 위한 변명으로서 또한 급진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로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게 될 것’만큼만. 알려줄 수 있는 교수가 없었던 건가 의문이 듭니다. ‘현재의 구태의연한 경제학에 산적해 있는 개념의 쓰레기장에서 참신한 경제학이 탄생하기까지는 아직도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말이지요. 그래서일까요. E. K. Hunt가 쓴 <소유의 역사 Property & Prophet>를 지금에서야 읽을 수밖에 없는 건. 너무 긴 시간을 돌아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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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8 16:08 2011/10/28 1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