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혹시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감독이자 2006년도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를 알고 있는지요. 우리나라에는 <레이닝 스톤>을 시작으로 <랜드 앤 프리덤>, <빵과 장미>, <칼라송> 등이 극장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졌고, 좀 다른 경로이긴 하나 <명멸하는 불꽃>이나 <네비게이터>와 같은 작품으로도 알려진 사람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바로 감독 켄 로치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애기를 하곤 합니다. 켄을 얘기할라치면 늘 주된 화제가 되고 마는 정치성과 계급성에 대해 조금은 자유로워야 그의 절반의 영화들을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절반의 영화를 못 봐서인가요. 아직까진 켄 로치의 영화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정치성과 계급성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아마도 그건 가장 최근에 본 <보리밭을 흐드는 바람>에서도 여전한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서 소개한 그 어떤 영화들보다 <랜드 앤 프리덤>을 가장 먼저 봤기 때문일 겁니다.
 
<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니로부터 지원을 받은 프랑코 군대에 맞서 스페인 민중과 인민전선정부를 지키기 위해 전세계에서 모여든 이름 없는 혁명가들의 싸움으로 밖에 알려진 바 없는 그 스페인 내전을 말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 <랜드 앤 프리덤>란 영화, 사실 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도 말입니다. 처음 봤던 그 순간에 아, 이 영화는 단순히 스페인 내전만을 다룬 영화가 아니구나, 라는 걸 느꼈더랬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은,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더 복잡한 배경을 갖고 있더라는 걸, 더 복잡한 이념형의 각축장이었음을 알아차렸더랬습니다. 도대체 시도 때도 없이 영화 중간중간마다 튀어나오는, 대체 왜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긴 ‘토론’ 장면들. 사실 지금이야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알겠지만 처음 봤을 땐 통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무슨 얘기들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던 그 긴 ‘토론’ 시간들을 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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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나 환경과 관련된 책, 혹은 자연주의적 색채를 띠는 저서들 가운데 종종 이 책을 언급한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꼭 100년이 조금 넘은 때이던 1906년, 당시 미국 육가공산업이 급성장한 경을 된 비밀을 폭로한, 그로인해 식품의약품위생법과 육류검역법 등이 제정되게끔 한 <정글 The Jungle>을 말입니다.
 
업튼 싱클레어는 이 책 한 권으로 일약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가로 알려지게 됐는데요. 사실 그가 쓴 글을 읽고 있노라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는 육가공 공장의 내부 모습이 놀랍기만 합니다. 헌데 말입니다. 싱클레어도 지적했듯이 <정글>이 육식의 안전성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가 더 큰 주의를 기울였던 자본의 무자비한 이윤추구의 현장에 대한 생생한 고발에 대한 환기는 뒤로 밀려난 듯 해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이윤 추구라는 목적 하에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가 서슴지 않고 자행될 수밖에 없는 게 어디 이 소설에서 고발하고 있는 육가공 산업뿐이겠습니까. 
 
<정글>은 이미 1979년에 한 번 출간 된 적이 있었습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채광석의 번역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때 출간된 <정글>은 번역자의 표현대로라면 주인공인 유르기스의 미래상에 대한 저자와의 여러 가지 상이점 때문에 29-31장이 빠진 채였음에도 판매 금지 도서로 지정됐답니다. 물론 아는 사람들만은 몰래몰래 책을 보았구요. 그러다 1982년에 동녘출판사에서 재출간하기에 이르렀구요, 다시 10년 흐른 1991년, 초판 번역본 당시 누락됐던 29-31장이 추가되어 완역본이 나오게 됩니다.
 
3. 
초판 번역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29-31장의 내용은 어찌 보면 도식적이다, 싶을 만한 내용들입니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이주노동자로서 갖은 착취와 불의 속에 가족을 모두 잃다시피 한 유르기스가 ‘사회주의’ 활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이 특별한 개연성 없이 서술되고 있으니까요. 더구나 작가가 가지고 있던 진보에 대한 확고함 때문이었을까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문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이 들 정도라니까요. 하지만 말입니다.
 
그처럼 도식적이고 강고한 문체로 읽기가 까탈스러우면서도 말입니다. 오래 전에 봤던 <랜드 앤 프리덤>의 그 긴‘토론’ 장면이 내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그리고 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할아버지의 유품을 통해 스페인 내전을 알게 된 손녀가 장례식에서 윌리엄 모리스의 시 “전투에 참여하라. 아무도 실패할 수 없다. 육신은 쇠하고 죽어가더라도 그 행위들은 모두 남아 승리를 이룰 것이므로”를 낭송하는 모습과 사회주의자로서 처음 맞은 선거에서 사회당의 놀라만한 성과에 감탄한 유르기스에게 “우리는 그들을 조직할 것입니다 그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승리를 위해 단결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적을 압도할 것이며, 우리 앞에서 그들을 쓸어버릴 것입니다”를 외치는 연사의 외침이 겹치는 건, 또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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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9 22:19 2009/08/19 2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