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은 나잇살도 있고 알 수 없는 맹신으로 몸 관리를 하지 않아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고 땀이 나지만. 그래도 한 때는 이것저것 못하는 운동이 없었던 때가 있었지요. 초등학교 때까진 얼굴이 새카맣게 되도록 성수교 아래에서 야구도 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땐 일요일 아침마다, 또 수업이 끝나자마자 농구장으로 달려갔고. 대학에 다닐 땐. 큭. 운동이 운동이긴 한데. 뭐, 따지고 보면 달리고 던지고 휘두르고 하니. 뭐, 운동이네요. 하여튼 그랬구요. 대충 이래저래 생각나는 것만 적어도 이만하니. 몸치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던 거죠.
 
한데 지금은. 밭에 가는 길에 그리고 집으로 오면서 왕복 1시간 남짓 자전거를 타는 거 외엔. 딱히 운동이란 걸 하지 않으니. 열심히 밭일해야 할 봄과 여름, 가을은 그래도 몸이 가뿐하고 뱃살도 나오지 않는데. 슬슬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계절이 오면. 나름 탄력 있던 몸매가 급격히. 게다가 어느 때부턴가 몸을 움직이는 것보단 눈으로 보는 걸 더 즐기기 시작하니. 처음엔 월드컵이니 WBC만 보던 것이. 지금은 어쩔 땐 새벽 2시, 3시에도 하는 EPL 경기까지 챙겨볼 정도니.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암튼. 예전에도 그랬는데 하도 가끔 보는 거라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지. 그 많은 운동 경기 중계를 보는데. 이거. 조금 심하다, 싶을 데가 한 두 번이 아니더라구요. 잘 몰라 그런 건데. 원래 운동 경기 중계는 이렇게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운동 경기가 뭐 이기려고 하는 거긴 하지만. 그리고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가 이기면, 그리고 잘 하면 왠지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좀 과장해서 말하면. 운동 경기를 중계하는 게 아니라. 
 
최전방으로 이어지는 패스 하나로 상대방 방어망을 허물어 뜨렸어요”
대포알 슛으로 선취점을 올렸습니다”
“현란한 드리블로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
“좌, 우 쌍포를 앞세워 상대편 골망을 초토화시켜합니다”
 
거리낌 없이 군사용어가 튀어나오고, 핏대를 세우며 흥분하는 모습들이. 좀 과장해서 말하면.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도 아니더라구요. 그런데 말이지요. 이 정도 멘트는 애교로 봐줄만 하더라구요. 중요한 경기일 경우엔 조금 더 표현이 과격해지는데요. 
 
“팀 홈런 1위 롯데, 쉴 틈 없는 핵폭탄 타선 자랑”
“남자배구, 일본 격파 선봉
“중심타선 맹폭에 미국 무릎!”
“16강 절박, 융단폭격 나선다”
숙적 일본을 상대로 도쿄대첩을 거둔 바 있는 대표팀”
배수진을 치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싸워야
 
이거야 원. 명량에서 사투를 벌이던 조선 수군이 따로 없고. 황산벌에서 몰살당한 백제 군사들이 따로 없네요. 이 정도면. 그야말로 죽기살기이구요. 선수들은 전쟁터에 나간 병사들입니다.
 
원샷 원킬’. ‘스나이퍼’ ‘산소탱크
‘전차군단’ ‘오렌지군단’ ‘무적함대’ ‘태극전사
 
 
2.
어찌된 일인지 올 해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유달리 많이 나오고 있는 듯합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60주년이라서 그런다고들 하는데. 뭐. 운동얘기 하는데서 전쟁하지 못해 안달난 이들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지만. 우연이라고 하기엔 이상하리만치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뭐, 그거야 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김동춘 샘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가 ‘전쟁이 사회 운영원리로 내재화되고 냉전적 정치경제 질서가 가장 철저하게 착근된 사회’가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 중인 사회에서 힘없는 민중들은 끊임없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피난’ 행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피난사회’가 된 것이지요(이전 서평: ‘피난사회’에서 살아남기-<전쟁과 사회>, 김동춘 참고).
 
그리고 조희연 샘은 한국전쟁 이후 철저한 반공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된, 그리고 그것이 정치, 사회 체제를 지배하는 반공규율사회가 됐다고 합니다. 즉 냉전과 내전의 특수한 결합으로 인해 반공이데올로기가 ‘의사합의(pseudo-consensus)’로 내재화된 특유한 우익적 사회라는 겁니다. 이 사회에서 개인 및 집단 간의 사회적 관계와 행위는 철저하게 우익적으로 규정되고, 민중들은 반공의식에 기초한 자기통제 메커니즘이 장착된 일종의 ‘군기(軍紀)’잡힌 병사가 되는 것이지요(<한국의 국가.민주주의.정치변동>, 조희연 참고>.  
 
조금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두 샘 모두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가 북녘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준전시체제 속에서 정치, 사회, 문화, 경제가 질식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두 샘이 이렇게 조금은 낯선 말들을 써가며 분석한 책들을 굳이 읽어보지 않았다 해도 말이지요. 지난 60년 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빨갱이’, ‘반공’ 이데올로기가 결국 이 이상하리만치 호전적인 기질을 만들어 냈다고 하면 비약이 조금 심한 건가요. 그리고 또, 그것이 며칠 전 별 생각 없이 시간이나 때울까 하고 봤던. 학도병을 소재로 한 영화와 겹치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든다면. 억지 춘향일까요?  
 
“운동선수는 군인인가, 군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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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3 21:59 2010/09/23 2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