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서원계곡에서 505번 지방도로를 따라 속리산 법주사로(2006년 9월 2일)

불과 일주일 사이인데 한결 가을 날씨다. 지난주만 해도 목덜미로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아스팔트 위에 열기가 후끈후끈했는데 시원한 가을바람 한 줄기에 금새 땀이 마르는 걸 보니. 여름 내 많이 걷는다고 걸었는데도 그리 많이 걷지 못했고, 이제 걷기에 더없이 좋은 날들이니 부지런히, 많이 걸어야겠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는데도 장내에 도착하니 어느새 버스에 오른지 세 시간이 훌쩍 넘었다. 중간중간 쓸 때 없이 시간을 많이 낭비한 탓이다. 충주에서 20분, 보은에서 15분을 하릴없이 쉬었다 가는데, 처음부터 그러하다 이야기도 없었고, 쉬면서도 아무 이야기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고 속았다는 느낌이다.
 
<속리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법주사를 찾아 에둘러 가는 길>
 
선병국가옥이니 선명무가옥은 이미 한 번씩 둘러보았기에 때늦은 점심으로 자장면 한 그릇씩을 비우고는 바로 출발인데, 황해동 쉼터까지는 걸었던 길이라 그런지 걸음이 빠르다. 그래도 쉼터에서는 잠시 쉬어가며 새로 장만한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꺼내들고 계곡 풍경이며,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본다.
 
법주사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의 부인이라며 ‘정부인송’이라고도 불리는 서원리 소나무는 속리산 남쪽의 삼가저수지에서부터 내려오는 삼가천을 옆에 두고 나란히 이어지는 505번 지방도로 가에 있는데, 계곡 이곳저곳에서 고기를 굽는 둥 물놀이를 하는 둥 해서 썩 쉴만한 장소는 안 된다. 사람도 고기 냄새에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데 소나무라고 별 수 있을까? 아무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말이다.
 
‘정부인송’을 지나니 곧 오르막이고 지도상으로는 삼가저수지 쪽으로 이어지는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데, 저수지 쪽 길은 댐 공사관계로 폐쇄돼 있고 대신 지도에도 없는 잘 닦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는데 웬걸 오르막도 오르막인데 저 멀리 터널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낭패다.
 
                                                                                     <갈목재에 이르는 길에서 본 삼가저수지>
다행이 터널은 방금 지나온 길처럼 최근에 지어져서인지 잘 닦여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도 환하고, 갓길도 찻길과는 다른 높이로 넓게 확보돼 있어 걱정이 없다. 다른 터널들도 이만큼만 환하고 갓길이 넓었으면. 도로뿐만 아니라 터널, 다리 모두가 차에게는 좋은 길이겠지만 걷는 이들에게는 좋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질주하는 차들의 굉음에 발걸음은 빨라진다.
 
터널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올라가서야 이 고개가 갈목(葛目)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꼬부랑꼬부랑 발아래 저만치 저수지가 보이는데 390m라고 하니 믿기지는 않지만 지금부터 내리막길이겠거니 생각에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다.
 
 
 
 
 
 
 
 
 
 
터널에서 갈목재, 다시 법주사로 이어지는 길은 올 해 들어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가을 날씨, 가을풍경이다. 맑은 날씨, 높은 하늘, 낮은 뭉게구름, 적당한 바람, 이처럼 걷기 좋을 때가 또 있을까 싶다. 해서 걸음은 자꾸만 늦어지고 결국 법주사 근처에 당도하니 벌써 빨간 노을이 하늘에 가득이다.
                                                                                        
둘째 날, 산길을 넘어 괴산군 사담계곡까지(2006년 9월 3일)
 
술이 과했다. 적당한 음주는 그 날의 노독을 풀어주는데 아주 그만이지만, 어제는 과한 술에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다. 덕분에 8시가 넘어서야 겨우 겨우 일어났다. 헌데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속이 편치 않아 대충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는 길을 나서는데, 민박집 아주머니가 카메라를 달라더니 여기도 서보라고 저기도 서보라고 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신다. 시간은 없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파 기분은 과히 좋지 않지만 뷰파인더로 이리저리 우리 모습을 보고 있을 아주머니를 생각해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어째 영 아니다.
 
“이게 다 지나고 나믄 추억잉께 이짝 우리 집 문 앞에도 서 보소”
 
결국 민박집을 배경으로 두어 컷이 넘는 사진을 찍히고 나서야 길을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아스팔트 길 대신 흙 길을 걷겠다며 접어든 산길을 때문에 이건 걷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조금 걷다 조금 쉬고, 또 조금 걷다 또 조금 쉬고, 아예 길바닥에 눕기도 하니 아무래도 이러다 일정에 차질이 생길지 싶다.
 
아스팔트로 덮이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산길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한참을 내려오니 국도다. 게다가 오가는 차도 많은데다 속리산 인근이어서 인지 관광버스가 유난히 많이 지난다. 덕분에 길을 걷는 게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길옆으로 줄곧 계곡물이 흐르고 가을바람은 목덜미를 시원하게 하니 기분 하나는 좋다.
 
백현리라는 마을에서는 상회라는 간판을 달기는 했어도 겉보기에도 그렇고 실제도로 그냥 평범한 농가에서 냉장고 하나 갖다놓고 이것저것 음료수만 파는 그런 곳에서 목을 축일 음료수도 사서 마시기도 하고, 경상북도 상주로 넘어와서는 손두부마을에서 두부정식에 점심을 먹기도 하며 부지런히 걷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아침 내내 괴롭혔던 술독도 많이 빠져 기운이 난다. 또 충북 괴산으로 넘어와 만나게 되는 사담리 유원지에서는 계곡 물이 발을 담그며 어린아이들처럼 물장난에 한참을 재미나게 놀기도 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당초 괴산 청천까지 걸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아침 시간을 허비해서인지 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무리해서 청천까지 걷는다면 해가 지기 전에는 당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울로 올라가는 차편이 걱정이다. 해서 사담유원지 앞을 지나는 군내버스를 일단 세우고 본다. 다행이 청천으로 나가는 버스다. 차창으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옷 속으로 스며든다.
 
<시원한 가을하늘이 돌아오는 길을 가볍게 한다>
 
 
* 열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서원계곡에서 법주사까지 약 11km. 걸은 시간 3시간 30분.
- 둘째 날 : 법주사에서 산길을 넘어 37번 국도를 따라 괴산 사담리 계곡까지 약 18km. 걸은 시간 7시간 30분.
 
* 가고, 오고
다행이 보은군 장내리까지는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청주, 보은 경유 시외버스가 있어 버스를 갈아타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주에서 20분, 보은에서 15분씩 정차를 하는 바람에 아침 10시 20분에 출발한 버스가 장내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다되어서였다. 올라오는 길은 괴산 사담계곡에서 청천, 청천에서 다시 괴산으로 버스를 갈아타야만 동서울터미널로 오는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청천에서 괴산으로 나오는 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다니나 사담계곡에서 청천으로 가는 버스는 자주 다니지 않으니 미리 버스시간을 알아두어야 한다.
 
* 잠잘 곳
법주사 인근에는 호텔에서부터, 유스호스텔, 여관, 모텔, 민박 등이 많아 성수기가 아니라면 잠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법주사에서 괴산 사담계곡까지는 드문드문 식당과 민박(펜션)이 있으나 사전에 머물 곳을 잘 알아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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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5 22:17 2009/09/15 2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