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새 10년이나 지났지만. 그때만 해도 담 없는 대학, 지역주민에게 도서관을 개방한 대학은 드물었지요. 김동춘 샘이니 조희연 샘, 신영복 샘이 있었고 또 여기저기 단체나 노동조합에 힘을 보태고 있는 샘들이 꽤나 많았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만. 아, 그렇다고 그 학교가 운영면에서나 자치면에서 민주적이었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생일을 맞은 학생들을 위해 학생식당 테이블마다 케이크를 사다놓고. 또 한 달에 한 번 자취나 하숙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식당을 개방하기도 했지만(이 비용은 총창이 사비를 털어 댔답니다. ^^). 주먹구구식 학사행정, 열악한 교육환경, 학교 당국의 권위주의는 여느 학교나 마찬가지였단 말이지요. 또 요 근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청소, 경비 등 학내 비정규직 문제도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을 축제 땐 ‘윤밴’을 보러 온 가족이 놀러오기도 하고, 날 좋은 주말엔 샘들과 공을 차기도 하고.
 
2.
애당초 논문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해서 학기를 마치자마자 곧 노동조합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는 춘천으로 이사하기까진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았으니. 더는 학교에 가는 일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핑계로 학교 근처에 집을 얻었던 게. 어찌어찌 동네에 정도 들고 또 그만한 돈으로 어디 또 다른 데를 찾기가 쉽지 않아 몇 년을 그대로 더 있었더니. 곧잘 학교 도서관엘 가게 되더라구요(지역주민회원제도 있었지만 수료라도 했다고 졸업생회원 자격을 주더군요). 암튼 햇볕 좋은 날엔 도서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이 책 저 책 뒤적거리고.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엔 DVD를 빌려 와 하루종일 영화를 보기도 하고. 또 그땐 집에서까지 인터넷을 하지 않았던 터라 인터넷도 하고. 물론 척 보기에도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분들도 꽤나 많았었구요. 그 사람들 틈에 끼어 학교를 떠난 지 5, 6년이 지나도록 그렇게 도서관을 맴돌았답니다. 그러니요. 참 이만치도 열린 학교가 또 어디 있을까,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3. 
홍익대가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네요. 얼마 전엔 동국대가 그러더니 이번엔 홍익대가 문젠데, 아마도 총학생회 때문에 더 요란한 듯합니다. 보기엔 총학생회도 총학생회지만 학교법인 홍익학원이 벌이는 짓거리가 손가락질 받을 일인데. 어찌된 게 총학으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으니. 물론 홍대 총학이 저지른 일들 때문에 일이 더 커지고 있으니 문제 해결을 위해선 되레 잘됐다고 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런데도 홍대 총학생회가 여전히 ‘외부단체’라는 말을 쓰는 걸 보니. 왜 자신들이 욕을 먹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초, 중, 고 12년 그리고 대학 4년을 배우는 동안 노동권에 대해, 노동조합에 대해 제대로 배우질 못했단 점을 고려하면 상처가 조금은 깊지 않다,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 물론 그렇다고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를 두둔하잔 건 아닙니다. 정규교육과정에서 가르치지 않았다고,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이 덮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아무리 대학이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했다하더라도 스스로 시민으로서의 권리, 노동자로서의 권리마저 내팽개칠 순 없단 말이지요. 
 
4.
춘천으로 오고서도 한동안은 학교란 데를 갈일이 없었습니다. 간혹 책을 빌려봐야 할 일이 있으면 시립도서관엘 갔고 또 거기 열람실에서 공부를 했거든요. 요즘은 어느 도서관이든 책을 빌리면 언제 반납을 해야 하는지도 문자로 알려주고. 여름엔 시원하게 에어컨을, 겨울엔 따뜻하게 난방을 해주니 어떨 땐 집보다 낫기도 하단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름만 시립일 뿐 책이 많지 않더군요. 그리고 그래서이겠지요. 그나마 있는 책들도 다양하지 않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요즘 들어 부쩍 들여다보고 있는 환경, 생태, 농업 관련 책들은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있으니. 그렇게 자주 찾아가게 되진 않더라구요. 헌데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하고 나니. 그나마 시립도서관은 더 멀어지게 됐고, 그나마 동내도서관이 있긴 한데 시립보다도 더 작으니. 보고 싶은 책을 찾는 게 더 어려워졌습니다.
 
5. 
작년 가을쯤인 걸로 기억합니다. 춘천엔 큰 대학이 3개가 있지요. 국립대인 교육대와 강원대 그리고 사립인 한림대 이렇게 말이지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이 세 대학 중 두 곳과 매우 가깝습니다. 걸어서 10여분 내외면 정문이니 말이지요. 해서 처음 이쪽으로 오고나선, 마음먹기에 따라 내 집 드나들듯 대학시설을 이용할 수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이니 학교식당이니, 박물관, 운동장 등등을 말이죠. 헌데 말이죠. 교대는 담이 없어 비교적 학교 출입에 대한 거부감이 없긴 한데 도서관은 개방을 하지 않더라구요. 물론 첨부터 그런 건 아니었는데 작년 가을쯤부턴 학생증이 없으면 출입 자체를 못하게 만들더군요. 그리고 지역주민회원제 같은 건 아예 없구요. 
 
6. 
강원대는 워낙 학교가 넓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담을 두르고 정문이나 후문도 그럴듯하게 세워놨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은 지역주민들에게 개방을 한다는 얘길 어디서 들은 것 같아. 작년 가을쯤인가 도서관에 문의를 했지요. 지역주민회원 가입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하구요. 헌데, 나 원. 제한된 수에 한해 회원을 받는데 지금은 다 찼다고 하더라구요. 거기까진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럼 언제 회원에 가입할 수 있겠느냐 물었는데. 글쎄, 무조건 안 한다고, 학생들 도서관 이용에 불편이 많아 당분간은 안 받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아, 스팀. 한 마디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서관 홈페이지엔 지역주민회원제라는 게 분명 명시돼 있고, 어차피 회원은 열람실 이용이 제한돼 있으니 학생들에게 피해가 얼마나 가는지 모르겠지만 장서실 이용하는데 그렇게 불편을 초래하느냐, 국립대면 도서관만큼은 지역주민들에게 되도록 제한 없이 개방해야 하는 거 아니냐,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너, 어디 사느냐, 는 말로 시작해 끝내는 욕설이 나오더군요.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과 더 말을 해봐야 도통 먹히질 않을 것 같아 대학본부로 연락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 그 문제 때문에 지금 학교 규정을 바꾸려고 한다, 규정을 개정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랍디다.  
 
7.
올 겨울은 강원대 도서관 5층 장서실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규정을 개정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얼마 전 지역주민회원으로 가입을 할 수 있었거든요. 해서 가끔 책도 빌려보기도 하다, 4월에 있을 시험 준비도 할 겸 아침부터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지요. 헌데 말입니다. 가끔은 온종일 돌아가는 난방 때문에 골이 아프기도 하지만요. 넓은 책상에, 국립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고마다 책이 잔뜩 꽂혀있어 바로바로 딱 맞는 책들을 찾아 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공부하기에 좋을 순 없겠더군요. 게다가 단돈 2천원이면 3가지 반찬에 김치와 국까지 따라 나오는 식당에서 밥도 먹을 수 있고(후식으로 200원짜리 커피도 마실 수 있답니다). 얼마 전에 갔을 땐 청소하느라 못 봤지만 박물관도 곧 구경할 수 있을 테고, 날이 풀리면 푹신푹신한 운동장 트랙에서 운동도 할 수 있을 테니.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 같은데. 이거, 이래도 되는 될까, 괜한 걱정도 해봅니다. 어차피 3월, 학기가 시작되면 아무리 5층 장서실이라도 지금 같은 호사는 눈치 때문에 쉽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8.
대학이 ‘지성의 요람’이었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더구나 ‘민주주의의 보루’였던 시대는, 대체 그런 때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아득합니다. 그러니 대학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노동자들과 함께 보다 나은 내일을 얘기했던 68을 기대하는 건 택도 없는 일이지요. 도서관 열람실은 미어터지다 못해 좌석예약제까지 생기는데, 장서실 서고엔 면접요령이니 취업전략이니 하는 책들만 인기를 끌고. 이런저런 자격증도 모자라 문과계열 학생이 CPA를, 이과계열 학생은 고시를. 자신만은 10%에 들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에, 아니 자신만은 나머지 절반의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두 눈 다 감고, 두 귀 다 닫고 어학연수, 유학으로 보내는 4년. 경제단체로부터, 재벌기업으로부터 장학금 타 쓰는 총학생회, 동아리, 학회. 지금 우리 대학은 취업학원, 고시학원일 뿐인 것이지요. 아니 많게는 수백억 원에 달하는 적립금을 가져다주는 황금알 낳는 대기업일 뿐인 겝니다. 상황이 이러니 노동조합을 ‘외부단체’라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일 터이고. 동네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책 좀 본다고, 열람실에 공부 좀 한다면 그걸 불편해하고 성가셔하는 것이겠지요. 누구나 편하게, 시립도서관만큼이나 열린 도서관. 길이 참 멀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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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22:44 2011/01/13 22:44

  <저 문을 나서면 곧 도서관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됩니다>

아침나절에 첫물고추를 따왔습니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얘기에 서둘러 나갔는데도 밭에 도착한 지 삼십분 남짓 됐을까요.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고작 한 이랑밖에 일을 하지 못했네요. 그래도 수확한 고추가 무려 7.3kg이나 된답니다. 첫물고추가 이 정도니 올 고추 농사, 잘 된 듯싶네요.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데, 따가운 햇볕과 적당한 바람, 아무래도 하늘이 많이 도와줘야겠지요.

 

디지털시대입니다. 버스를 타도, 길을 걷다가도 손 안에 자그마한 단말기로 영화도 보고 메일도 확인하니 말입니다. 하기야 지금은 뭐, 이런 모습이 제법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은 그래도 가끔은 이 작은 기계로 책까지 읽는 걸 보고 있자면 놀라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아무리 디지털시대라고는 하지만 무릇 책장을 넘겨가며 읽어야 제 맛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써는 말입니다. 하지만 작년이었던가요. 60돌을 맞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가장 큰 화두가 전자책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콘텐츠의 성장세였다고 하니 조만간 열에 넷, 다섯은 종이책 대신 디지털기기를 들여다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엔 밭보단 도서관에 가려했었습니다. 평소에도 일주일에 두어 번, 저녁을 먹고 난 후나 졸음이 몰려오는 주말 오후쯤엔 으레 산책삼아 길을 나서 도서관에 들르곤 했었는데 지난주엔 무에 그리 바쁜 일이 많았는지 그러지를 못했거든요. 헌데 비가 온다는 소식에 밭엘 먼저 들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긴 했지만 아직은 배가 그리 고프지도 않고 빗줄기도 굵지 않아 우산을 받쳐 들고 집을 나섭니다.

 

     

  <문을 지나면 갈림길인데요, 왼쪽은 제철 야생화가 오른쪽은 자작나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자책은 대부분 ‘플래시 애니메이션’, ‘XML', 'PDF', 'iBOOK' 파일 형태로 제공된다고 하지요. 종이책에 비해 40-50% 수준으로 저렴한 가격에 인터넷만 연결되면 언제 어느 때고 다운 받아 편하게 읽을 수가 있으니 사실 매력덩이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서 더욱 많은 정보를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저자와 독자들 간에 양방향 소통이 이루어짐에 따라 독서환경과 출판문화에 평등과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어찌 보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방식의 읽기는 당연한 결과인 듯싶기도 하고, 이렇게라도 책을 가까이 하고 비록 가상공간이라 할지라도 서로 소통할 수만 있다면야 되려 좋은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자책이 읽기의 즐거움을 오롯이 만끽할 수는 있을까요.   

 

                                                                                                                              <한여름에도 시원한 오솔길입니다>

10분 정도만 시간을 내면 답답한 아파트 숲을 벗어나 제철 한껏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며, 개미초가 반겨주는 오솔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입니다. 그런 점에서 도서관 가는 길은 굳이 책을 보러 가지 않더라도 그저 산책삼아 걷기에도 제격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나선 발걸음은 늘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으로 향하고는 하는데요. 아마도 그곳에서 풍겨오는, 오래된 책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각사각, 고요함 속에 들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또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입니다. 거기에다 발돋움을 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에서 꺼내든 오래된 책 표지에 내려앉은 먼지들이며, 누군가 옮겨 적으려 끼어놓은 작은 종잇조각들을 발견할 때면 왠지 모를 설렘이 생겨나곤 한답니다. 또 때론 따뜻한 햇볕을 한가득 받으며 창가에 책을 베개 삼아 쪽잠을 자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는 이와 마주 앉아 몇 시간이고 눈과 책을 번갈아 마주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이는 전자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읽기가 갖는 또 다른 즐거움이지 싶습니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책 세 권을 빌렸습니다. 잭 런던의 <강철군화>, 김재호가 쓴 멕시코 여행기 <멕시코 일요일 2시>, 한길사에서 나온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 이렇게 세 권을 말입니다. 잭 런던의 <강철군화>는 10년도 전에 읽었기는 한데 하도 오래돼놔서 기억나는 내용이 없어 다시 읽어보려 꺼내들었구요. 1년에 한 권씩 모두 15년에 걸쳐 15권이 나왔다고 하는데 1년에 한 권씩만이라도 읽어볼까 해서 <로마인 이야기 1>을 빌렸답니다. 마지막으로 김재호씨의 책 <멕시코 일요일 2시>는 화장실에서 쉬엄쉬엄 읽기에 딱 좋을 것 같아 보였구요. 아무튼 그렇게 세 권의 책을 들고 도서관을 나서는데, 이런. 아까 집을 나왔을 때 보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곳에 따라 집중호우도 있을 거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올려나 봅니다. 그래도 어떻습니까. 지난 번 장맛비에 고추 몇 주를 뽑아내기도 해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간만에 비오는 오솔길도 걸었고 재밌는 책도 세 권이나 빌렸으니. 이만하면 도서관 가는 길, 좋지 아니한가요.

 

<이제 도서관에 다와갑니다>

 

<누군가 급히 들어갔나 봅니다. 도서관 앞 의자에 종이컵만이 홀로 비를 다 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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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2 19:32 2009/08/12 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