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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8/05/27 14:28
  • 수정일
    2008/05/27 14:28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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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말 그대로 가정의 달인가보다.

지난 주말엔 친정어머님의 기일을 맞아 6남매가 모두 장남인 오빠가 사는 부산에 모였더랬다.

21년만에 처음으로 사위들도 얼굴 모르는 장모님께 술잔 올리고,

몰라볼 정도로 커버린 조카들의 모습에 놀라며 1박2일을 보냈다.

 

2남4녀중 다섯번째인 나에게 형제는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었고, 한없이 의지하고 싶은 언덕이기도 했다.

장녀로 온갖 호사와 관심을 누렸던 큰언니,

팝송가수에 빠져 엄마 병실에도 잘 안갔던 둘째언니,

가출과 흡연, 통기타치기, 반항.. 불량청소년의 모든 행태를 마다하지 않았던 오빠,

어릴 적부터 약골이지만 고집하나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끝내 해내고야 말았던 세째언니는 책을 많이 읽었지만 성적은 별로였지.

막내 남동생은 응석받이였다는 기억이 많다.

날 뺴놓고 만화방에 가서 늦게까지 있다가 저녁에 엄마에게 혼이 났던 오빠와 언니.

개성 강한 형제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나의 전략은

모든 금기사항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었다. 하지말라는 것을 왜 할까? 나의 모든 일탈 욕구는 이렇게 원천적으로 봉쇄되었었다.

 

이제는 저마다 무언가에 매달려서 제대로 살아보려고 애쓰고 있는 듯 했다.

두 딸을 성공적으로 키워내고 그 허탈감을 달래며 노후를 염려하는 큰언니,

약 삼십년간 계속되는 시집살이와 시동생의 사업실패로 인한 경제적 곤란을 두터운 신앙심을 지닌 형부와 함께 견디어내고 있는 둘째언니,

일찍 명퇴를 하고, 새로 시작한 자영업에 인생의 성공을 걸고 밤낮없이 살아가는 오빠,

유방암 수술하고도 매주 산행을 계속하며 산신을 믿는 듯 살아내는 세째언니,

중학생때 작은 도시에서 알아주던 수재 아들이 고등학교 가서 학생회장 하느라 자신의 기대를 다 채워주지 못한다며 안간힘을 쓰는 남동생,

 

형제들의 과거와 현재 모습 속에서

너무도 일찍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체로 성장한 내가 보인다.

욕구를 감추어두었을 뿐이지 없앤 것이, 자유로와진 것이 아니었던 것임을 이제야 본다.

그리고, 더이상 그들이 내게 어두운 그림자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그들을 탓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이게 사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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