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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개글

  • 분류
    riverway
  • 등록일
    2008/06/02 23:08
  • 수정일
    2008/06/02 23:08
  • 글쓴이
    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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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자님의 [너를 보내는 숲] 에 관련된 글.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 삶에서 새롭게 발견한 죽음의 흔적을 영화 속 주인공과 감독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가와세 나오미라는 여자 감독이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치열하게 영화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치유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끌렸습니다. 끝으로 노인을 돌보는 일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진정한 돌봄’이 무엇인지를 보고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을 이유라 하겠습니다.


1. 죽음의 흔적


영화의 두 주인공은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했던 사연을 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그 죄책감에 시달렸던 마치코가 노인들이 모여사시는 그룹홈에서 일하게 되면서 33년전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 살고 있는 시케키 할아버지를 만났던 것입니다.

30대의 젊은 마치코는 사고로 잃게 된 아이의 그 천진무구함과 순수함을 시케키 할아버지에게서 보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가까워진 마치코에게 시케키는 자신의 간절한 염원을 이루게 해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물론,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고 불쑥 행동으로 옮겨 버림으로써 협조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준 체 먼저 떠나 버린 아내를 못 잊어하며 살아온 33년이란 긴 세월동안의 한과 감정을 시케키는 33권의 노트에 담았습니다.

그 강요당한 분리, 이별을 그렇게 참아오면서 언제가는 숲속에 고이 묻혀 있는 아내의 무덤을 찾아 33권의 노트를 바치면서 자신의 몸을 평안히 눕히리라는 것이 그의 간절한 소망이었던 것입니다.

마치코는 아내의 무덤을 찾아 숲속을 마구 헤매는 시케키를 쫒아 그를 지키려 안간힘을 씁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시케키가 죽음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을 때

사고에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던 그 죄책감이 되살아나 돌아오라 소리치며 통곡을 합니다.

그러나, 마치코는 시케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봅니다. 그 슬픔과 기쁨에 공감하며 아내의 무덤가에 웅크리고 누운 자그마한 시케키의 몸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제 나이 열 살 때 맞아야 했던 어머니의 죽음도 한 순간의 헤프닝이 아니었습니다. 사십이 훌쩍 넘은 이 나이가 되도록 그 흔적이 얼마나 깊이 그리고 단단히 남겨져 있었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마치코처럼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고, 시케키처럼 오랜 동안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없이도 온전히 살아갈 수 있노라 고집하며 저를 다그치면서 그 흔적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는 사이 흔적은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더군요.

그래서 가족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게 그 슬픔을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고, 드러내놓고 힘들어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주장하고 싶어집니다.

일본에는 "모가리"라고 불리는 기간이 있는데, 이는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풀어내는 기간이라고 합니다. 옛부터 사별가족에 대한 돌봄이 중요함을 깨달은 지혜로운 전통이니 본받을 만하지 않은가요?


2. 자기연민을 영화로 표현하기


감독인 가와세 나오미는 어릴적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결핍과 고독, 그리움에 사무친 십대 시절을 지나 스무살 되던 해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세상에 내놓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부모의 흔적을 찾아간 다큐멘터리 “따뜻한 포옹”으로 영화를 통한 인생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감독에 대한 평을 찾아보면, 그녀의 작품은 바로 자신의 운명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 그 자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너를 보내는 숲’은 그 답이 거의 찾아졌음을 보여주는 후기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뷔작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수자쿠”로 1997년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답니다. 생명의 탄생에 대한 감동에 주목한 “사라소주”와 “출산”이라는 작품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유독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연주회를 가든 그 작품과 작자를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이 믿을만하면, 삶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훨씬 더 끌리고 싶고, 공감하고 싶고, 높이 평가해주고 싶은 편향성을 제가 지니고 있습니다.

한 인간의 삶이 완성된다는 것은 사고와 감정, 감각, 몸으로 분리된 개체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좌충우돌하던 인격이 차츰 차츰 하나로 통합되어짐을 그리고 그것을 잘 전달해줄 수 있는 수단이나 도구를 통해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음을 의미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래서 가와미 나오세 감독으로부터 자기연민과 끈질긴 노력, 그리고 용기는 아름답고 소중한 자산임을 배웠습니다.


3. 노인 돌보기


영화의 배경이 일본의 노인 그룹홈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노인을 돌보는 현장을 잠시 엿볼 수도 있습니다. 그룹홈 주임의 "규칙 따윈 없으니 마음 가는대로 하라"는 대사에서 일본의 시설들이 정해진 틀과 규범에 노인분들을 가두어 두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노인 한분 한분에게는 저마다 평생을 품어온 한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주인공 할아버지는 직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룹홈 노인분들 중에서 관리(?)하기 매우 어려운 분이었습니다. 말이 없고,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대면 가차없이 밀어쳐서 마치코가 손을 다치기도 했으니까요. 게다가 글씨를 쓰는 집단프로그램 시간에도 잘 호응하지 못하시는 분이었지요. 까다롭고 다루기 힘든 노인이라는 편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던 듯 합니다. 신참 직원인 마치코는 잘 모르니까 편견없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게지요.

노인들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넘어 그 아픔과 슬픔 깊이 맺혀 있는 ‘한’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곧 노인을 돌보는 일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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