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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라고 말하기

연초엔 많은 사람들이 다짐을 한다.

 

"새해엔 이래야지..."

 

어제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찾아온 연휴를 즐기느라

(이틀 내내 집에서 잠만 잤지만^^)

 

그러나 어제 우연히 가슴 아픔직한 사연을 듣고 나서

올해엔 "타인에겐 정직하되 내 자신은 현실을 직시하며 살자"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갔다.  



사연은 내 지인이 부산행 열차에서 우연히 옆에 앉게 된 

심상치 않아 보이는 40대 남성의 이야기다.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것은

40대 남자가 꽁지 머리에 청바지,

지퍼가 달린 차이나 칼라 스타일의 니트 위에 자켓을 걸친,

또 이런 차림이 비교적 잘 어울리는 

굉장한 멋장이라는 뜻이다.

(이런 옷차림을 한 40대 남성은 평범치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 남성은 선물 꾸러미를 선반에 올리고 좌석에 앉더니

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들었다.

그는 뿌듯한 표정으로 지갑 속에서

빳빳한 만원 짜리 지폐 한 뭉텅이를 꺼내

한장 한장 세기 시작했다.

 

돈 세기가 끝난 그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난데, 내 지금 너 만나러 기차 타고 부산 가는 길인데,

연말이고 하니 저녁이라고 같이 먹자."

 

전화 속 그녀가 대답한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그녀는 "왜 미리 연락을 못했냐"고 면박을 준 듯 했다.

 

그는 "어제 하루 종일 전화했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더라"고 해명했다.

 

전화 속 그녀는 "바빠서 핸드폰을 받지 못했다"고 해명한 듯 했고

한참 더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그에 대한 타박이 이어졌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덩치 좋은 아저씨는 엄마한테 혼난 아이처럼

금새 기가 죽었다.

 

그리고 애처로이

"미리 연락 못한 건 미안한데, 그래두 연말이고 하니 얼굴이라도 봐야 않겠냐.

너 주려고 선물 산 것도 있다."

 

드문드문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바쁘다"고 거절한 듯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오늘 바빠서 안되면 내일 점심 때라도 보자.

내가 너 보러 부산까지 내려가는데 잠깐만 시간 내면 안되겠냐"고 사정했다.

 

"바쁘다"와 "그러지 말고 잠깐만 시간 내달라"는 실랑이는

기차가 대전역을 빠져 나갈 때까지 계속 됐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통화한 결론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애인과 데이트 하기 위해 준비한 돈을 셀 때의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준 나의 지인은

"왜 바쁘다고 핑계를 대냐. 바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나기 싫은 거 아니냐.

솔직히 만나기 싫다고 했으면 부산까지 선물 사들고 내려가진 않았을 거 아니냐"며

전화 속 그녀를 비난했다.

 

하지만 언제나

'Yes' or 'No' 를 요구하는 순간에

정말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는 어렵다.

 

또 입장 바꿔 내가 상대방에게

'Yes' or 'No' 의 대답을 요구하는 순간에 정말 듣고 싶은 건

솔직한 마음이 아닐 경우가 많다.

 

혹은 솔직한 심정을 전했을지라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가닥 희망에 매달리곤 했을 것이다.

 

"바쁘다"는 건 "널 위해 내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마음이 있는 곳에 시간이 있고 몸이 있다.

 

"난 누구에게 구속받는 걸 싫어한다"는 건 "너에겐 구속받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사랑이란 일정 정도의 소유욕과 독점욕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이다. 이런 속성을 극복하기 위해선 엄청난 시간과 수양이 필요하다.    

 

"난 여자들이 원하는 걸 충족시킬 능력이 없어"라는 건

"난 너란 여자가 원하는 걸 해줄 마음이 없어"라는 말이다.

진정 사랑한다면 상대방에게 불가능한 어떤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설사 '하늘에 별을 따다줘'라는 허황된 요구를 할지라도

일단은 "그래, 따다 주마"라고 애인을 만족시킨 뒤

(사실 애인이 원하는 건 '대답'이다.) 

반디불이, 촛불, 하다 못해 야광 팔찌 등...각종 대체제를 제공한다.

 

"난 결혼제도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건 "너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당신보다 더 나은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라는 고민을 안겨주는 상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덧글 : 새해 처음으로 올린 글 치고는 유치한데다 우울하군.

         어쩌겠나...살아가는 게 그런 걸^^

         이 글 보시는 분들, 새해 좋은 일 많이 생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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