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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론 번역초안을 마치면서 1

우선 임석진 교수님께 큰절한다.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데 엄청나게 좋은 것을 하나 훔쳐와서 그렇다. 도둑놈한테 도둑질 잘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절을 받으면 어떤 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절은 해야 할 것 같다.

 

음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성이 아닌가 한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임석진 교수의 개정번역본을 읽으면서 정신현상학의 조성에 귀가 확 뚫리게 되었다. 거침없이 훔쳐왔다. 조성에 귀가 뚫리니 읽어 내려가는데 또한 거침이 없다.

 

웹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녀보니 정신현상학 번역에 대하여, 그리고 번역하는 일 자체에 대하여 이상한 생각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 한글 번역본>을 운운하면서 일본 번역본의 도움을 받아 원서를 읽어 내려가겠다는 의지다. 대단한 의지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원서를 일본 번역본을 <매체로> 하여 우리말로 <고스란히>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 깔려있는 기본정서는 <직역>이다. 악보를 읽을 줄 알면 다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혹시나 하고 가서 보니 독어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기 그지없다. 정신현상학을 읽어 내려가면서 <>자가 붙은 모든 것이 어떤 호통을 받는지 귀가 뚫렸으면 한다.

 

이것이 정신현상학을 이해하는데 두 번째 어려움인 것 같다. 처음에는 귀가 뚫리지 않아서 헤맸는데, 이제 귀가 뚫리니 헤겔의 곤장이 나를 때리는 곤장소리다. 그냥 맞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리저리 피해보지만 잘도 때린다. 어쩌면 그렇게 내 안에 있는 끈적끈적하고, 우쭐거리고,덜 되고이런 생각들을 하나하나 들춰내는지 귀신 같다. 정신현상학에 들어가는 정문에는 라고 간판이 걸려있다. 내가 하는 짓이 심판대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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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론 §16/17

(§16) 의식은 이와 같은 [피할 수 없는] 필연성을 두루 거치면서[1]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학문으로 향하는 이 도정 자체가 이미 [학문의 형식을 취하는] 학문이며 그 내용에 푹 빠져 들어가[2] 이름 짖는다면 의식이 하는 경험 속에 스며있는 학문이다[3].

(§17) 의식이 자기를 뛰어넘는 행위를 하면서 얻은 경험은[4] 그 개념상 의식이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담아내는 완성된 체계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멈출 수가 없고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 완성된 체계가 바로 진리가 다스리는 온전한 정신 제국이다[5]. 이 제국은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과는 달리] 이렇게 의식이 행하는 모든 경험을 담은 제국이기 때문에 거기서 진리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나타난다. 정신제국을 다스리는 진리의 몸체에는 마디마디마다[6] [의식이 도정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고비마다 의식의 몸체에 새겨지고 또 거기에 매듭지어진] 독특한 형태가[7] 스며들어 있다. 이렇게 진리의 몸체 마디마디에 새겨진 매듭들은[8] [의식의 구체적인 경험과정을 잘라내 버린 논리학에서 그러듯이] 추상적이고 투명한 [변증법적 운동의] 계기로[9] 나타나지 않고 어디까지나 그것들이 의식에 대해서 있는 것으로, 다시 말해서 의식이 그것과 관계하는 가운데 스스로 등장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정신제국을 온전한 총체로 만드는 대목에는[10] 의식이 고비마다 취한 형태가 [반드시] 있다. 의식은 참다운 모습으로 실존할 때까지 자신에게 거듭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마침내 자신의 궤도의 종착점에 이르게 되고 거기에 도달하면 의식은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에서[11] 그 옷이 자기 것이 아니라 남에게서 얻어온 낯설은 것이고 아무리 두르고 있어도 그에게는 남의 것으로만 남아있다고 여기고 [자기가 진정 입어야 할 옷은 다른 것인데 하는 부끄러움,  허위의식, 기세 등 먼지 같은 모든 생각을] 털어내 버리고 [자기의 이런 찢긴 모습을 모두 품고서 아무런 허위의식이 없는] 본향으로 귀향하는 것이다.[12] 의식이 이런 자신의 궤도의 종착점에 이르면 의식에 대한 서술 역시 완성되고 드디어 정신이 군림하는 본래적인 학문의 장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의식은 자기의 본질을 두르고, 그리고 이 옷은 절대지가 정말 어떤 것이지 그 참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옷이 될 것이다.



[1] 원문 . 여기서 라는 문장에서 쓰여진 와 같은 의미로 번역해야 하겠다. <우리는 시내를 돌아 다녔다.> 그래서 <두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2] 원문 . 에 스며있는 의미와 관련하여 ou-topia의 블로그에서 <헤겔묘소에서 유럽유태인학살추모공원으로 간 이유> 참조

[3] 원문 .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여기서 사용되는 소유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즉 목적격적 소유격인지 아니면 주격적 소유격인지 그 답에 따라서 본문은 다양하게 해석되고 번역될 수 있겠다. 그 중 <의식이 하는 경험에 대한 학문> <의식이 하는 경험 속에 스며있는 학문>이 대치되고 헤겔이 논하는 내용인 것 같다 (§15의 결론 참조)

[4] 원문 über sich macht>. 여기서 사용된 전치사 <über>가 어렵다. 과는 달리 여기서는 의식이 자신을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점이 조명 되었다.

[5] 원문 . 단락은 §5에서 잠깐 내보인 것(Exposition)을 재개하여 진리가 다스리는 정신제국과 그에 상응하는 학문이 시작하는 점, 관점을 달리 해서 말하면 의식이 자기 도정을 마치고 진리가 다스리는 정신제국에 들어가는 지점을 설명하고 있다. §5에서는 의식의 도정을 서술하는 학문이 ümlichen Gestalt sich bewegende Wissenschaft>인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문과 함께 진리가 다스리는 정신제국은 자기 특유의 형태 안에서 온갖 요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제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제국)의 어원은 (풍요로움) (올바름)이란 낱말과 같다. 아무튼, 마르크스의 <자본론>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필연성이 다스리는 제국>(„Reich der Notwendigkeit“) <자유가 다스리는 제국>(„Reich der Freiheit“)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그리고 의식 경험의 완전한 체계와 진리가 다스리는 정신제국과의 관계가 <필연성이 다스리는 제국> <자유가 다스리는 제국>간의 그것과 유사하다. 틀린 점이 있다면 자유가 다스리는 제국이 되려면 <노동시간 단축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6] 원문 . 헤겔의 사용하는 terminus technicus 중에서 알듯하면서도 가장 애매모호한 개념이 다. 변증법적이진 않지만 따로 한번 정리해 보겠다.

[7] 원문 ümliche Bestimmtheit

[8] 원문

[9] 원문

[10] 원문 . 역자는 여기서 소유격을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파악한다.

[11] 원문 . 서설을 번역할 때 을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겠다. 그때 가서 자세히 보자. 본문에서 을 <벗다>(ablegen)해서 을 <옷>으로 옮겨 보았다.

[12] 원문 . 이 문단은 좀 고무된 분위기다. 이 분위기를 옮기는데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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