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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6

 

(§6) 진리가 취하는 참다운 형태는 이와 같은 학문성이라고 명제화할 때, 똑 같은 의미이지만 달리 표현하면, 진리가 현존하는 터전은 오직 개념이라고 주장할 때, 나의 이런 주장이 우쭐거리는[1] 것 외 기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시대에 확신으로 폭 넓게 퍼져 있는 생각과 그런 생각이 가져오는 결과와 정면 대립하는 것으로 고개를 든다는[2]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이 모순을 좀 설명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이것이 결코 쓸데없는 짓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이 설명이 지금 이 자리에선 우리의 비판대상이 일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정 이상의 것이 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우리시대가 진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살펴보면[3] 이랬다 저랬다 횡행하는 사조인데, 이런 사조는 진리가 현존하는 터전이란, 아니 현존진리 자체란 <절대자에 대한 직관이다[4]>, <아니다 직접적인 지다[5]>라고 다투기 일쑤고, 한발 짝 나아가서 <진리는 종교다>, <아니다 존재 자체다>라고 윽박지르기 일쑨데, 여기서 존재라고 떠드는 것도 신이 참으로 사랑하는 참다운 존재가 아니라[6] 단지 있다는 것 그 자체로서의 존재일 뿐이다. 이런 생각아래 철학을 서술하는데 있어서도 개념의 형식보다는 오히려 그것과 반대되는 것을 우리시대는 요구하고 있다. 즉 절대적인 것을 개념적으로 파악해서는 안되고 대려 감지하고 직관해야만 하고, 절대자가 갖는 개념이 아니라 그에 대한 느낌과 직관의 주도아래 그에 상응하는 것들만 허용하는[7] 철학서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 원문 . 자기가 마치 기준(Mass) 되는 것처럼/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이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행동.

[2] 원문 . 처음에 단지 모순으로 보이지만 헤겔은 이것을 <감각과 지>에서 등장하는 지의 첫 모습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3] 원문 ämlich>

[4] 원문

[5] 원문

[6] 원문 öttlichen Liebe>. 신 사랑의 중심에 서 있는 존재

[7]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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