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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국정원 개입’은 왜 규명대상에서 빠졌나

[단독]4대강 사업 ‘국정원 개입’은 왜 규명대상에서 빠졌나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입력 : 2017.09.23 12:54:00 수정 : 2017.09.23 14:54:44

 

2010년 2월 8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양화지구에서 새마을운동 중앙회 주최로 열린  ‘녹색새마을 4대강·하천 살리기 실천 다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새마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지윤 기자

2010년 2월 8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양화지구에서 새마을운동 중앙회 주최로 열린 ‘녹색새마을 4대강·하천 살리기 실천 다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새마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인터뷰할 때 95%는 망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 망했습니다. 하천부지 점용허가가 취소된 후 점용허가가 있는 사람에 한해 평당 9300원인가 9700원인가 이전비가 나왔습니다. 당시 우리는 개간비를 달라고 했었는데 개간비는 줄 수 없다고 하고….” 

9월 21일 기자와 통화한 백선기씨(70·충남 부여군)의 말이다. 

“정비 후요? 이제 갈대도 나고 버드나무도 있긴 한데 잡초가 우거져 사람들 들어갈 정도는 못됩니다. 관리가 안돼서겠죠. 자전거 도로도 제방에 만들긴 했는데 외지 사람들은 거의 지나가지 않고 여기 주민이나 운동 삼아 산책하는 정도네요.” 

2009년 5월, 기자는 4대강 사업 금강지구로 선정된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 가서 그를 비롯한 마을대책위원회 사람들을 만났다. 마을 주민들은 금강 하천부지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하천부지는 당시 국토해양부 관할이다. 하천부지가 국가 소유이므로 농민들은 매년 관례적으로 점용허가를 갱신해 이용했다. 4대강 사업으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농민들은 대책위를 만들어 보상을 요구했다. 

특이했던 것은 이들의 하소연을 듣겠다고 방문한 사람들이었다. 국정원이라고 했다.

마을사람들이 기자에게 내미는 명함을 보니 틀림없었다. 이름과 전화번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명함. 전형적인 국정원 명함이다. 

국정원 직원 두 사람은 마을사람들을 만나 의견도 청취하고 토마토 밭, 제방 사진도 찍어갔다. 군청에도 들러 군 유지들과 식사자리를 가진 것도 확인되었다. 이들이 상경시위를 하려 하자 직원들은 전화를 걸어 “(위에) 밉보일 수도 있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기자는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국정원, 4대강 사업에 개입했다”는 기사를 작성했다.(<주간경향> 826호, ‘국정원, 4대강 정비사업 개입했다’ 기사 참조) 

운하 반대 교수모임 등의 사찰에 국정원 관여 정황 내지는 의혹이 나왔지만 구체적으로 개입한 직원 이름 등이 밝혀진 최초 케이스다. 

그해 국무총리실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이성남 의원이 <주간경향> 보도사례를 거론하며 서면문의한 자료에 대해 총리실 측이 “국정원의 4대강 살리기 사업 관여는 국정원의 직무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음”이라고 밝혔다가 “착오였다”고 정정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 4대강 국정원 개입 최초 케이스 

조국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현 청와대 민정수석)가 당시 <주간경향>에 한 코멘트와 같이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작성·배포하는 것은 국정원 고유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로, 명백한 위법”이다. 국정원 직원의 직무를 규정한 국정원법 3조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의 직무상 정보수집 대상은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기자가 주목한 부분은 이들 국정원 직원 2인이 지역(대전·충남)이 아닌 서울에서 직파되었다는 점이다. 마을 주민들을 만난 국정원 직원들은 ‘청와대 높은 분’을 연결시켜주겠다는 제안도 했다. 당시 조국 교수는 “정황상 청와대 직보 체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4대강과 관련해 그런 식으로 청와대와 연결되는 것도 물론 위법”이라고 밝혔다. 

이 국정원 직원들은 당시 기자와 통화에서 앞서 총리실 서면답변처럼 “정보수집 차원”이라고 밝혔다. 

9월 20일, 이들이 쓰던 011번호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본 결과 모두 해지되어 있었다. 명함에 나와 있는 이들의 이메일(네이버, 다음메일)로 문의메일을 보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당시 <주간경향> 기사에 코멘트한 국정원 대변인실 서기관은 9월 21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이제는 정년퇴임한 상황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도 “부서가 달라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국민의 국정원으로 거듭나겠습니다.” 

국정원 홈페이지의 적폐청산TF 코너의 안내말이다. 

적폐청산TF는 조사사건 대상을 15개 범주로 제시하고 있다. 

15개 목록은 구체적이다. 1번으로 제시되어 있는 ‘국정원 간부의 청와대 비선보고 사건’은 “국정원 C 전 국장이 청와대에 비선보고를 해온 의혹”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른바 우병우-최순실 인맥으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핵심 관련자로 거론되고 있는 국정원 추명호 국장 관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9번으로 제시되어 있는 ‘언론보도 현안 관련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도 ‘OO일보 보도문건 관련 작성 경위 및 청와대에 보고한 의혹’라고 부연 설명되어 있다. 세계일보의 2014년 정윤회 문건 보도 관련이다. 

‘15. 사회 주요인사 불법사찰 사건’ 역시 “종교계·문화예술계 등 사회 각계 유력인사에 대해 불법적으로 사찰한 의혹”으로 한정지어져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핵심 사업이었던 4대강 사업에 대한 개입은 국정원이 해명한 것처럼 ‘일상적인 정보수집 업무’ 차원이었을까. 

 

■“4대강 찬성 거절 후 탄압 노골화” 

“협박까지는 아니고 술을 마시며 굽실굽실하는 분위기였다. 처음에는 ‘왜 최열 대표님은 우리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하느냐’고 물었다. 싫어하긴 누굴 싫어하냐고, 왜 그런 소리를 하시느냐고 되물었다. 그런 식으로 두 번 만났는데 마지막 만날 때는 지금 대표님이 어려운 상황이지 않으냐, 환경재단이 연구용역도 하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용역 한 번 하시겠습니까. 4대강 관련으로. 단 결론은 찬성으로 나와야 한다’고. 4대강 관련으로 한 번 도와주시면 뭐든지 하겠다고…”

이미경 환경재단 사무총장의 말이다. 

‘4대강 사업에 찬성해달라’는 요청을 뿌리친 뒤, 국정원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환경재단과 최열 대표에 대한 공격과 탄압은 노골화되었다는 것이다. 

<주간경향>은 환경재단이 작성한 국정원 일지를 단독 입수했다.

일지에 따르면 박OO 조정관이라는 국정원 직원은 2009년 10월 27일 한 시민사회 인사의 소개로 만나자는 연락을 해온다. 이틀 후 재단 근처 찻집에서 첫 미팅이 있었다. 환경재단 측에서는 국정원이 환경부, 서울시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고, 또 기업들에 국정원 직원들이 찾아다니며 환경재단에 기부하지 말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을 항의한다. 

이 총장이 언급한 위 발언이 나온 것은 이듬해 4월 5일 2차 면담 자리였다. 오고간 대화를 일부 옮기면 다음과 같다. 

국정원: 4대강에 대해 환경재단 입장 없더라. 

환경재단: 우리는 정치적 중립이다. 이사들도 그렇고. 

국정원: 최 대표님은 아직도 우릴 미워하나. 

환경재단: 언제 미워한 적 있었나? MB와 친했는데 이런 처우 받을 줄 몰랐다.

국정원: 정부 연구 프로젝트 받을 수 있나? 

환경재단: 있다. 

국정원: 단, 4대강 지지 연구가 되었으면 한다. 

환경재단: 결과를 예단하는 게 연구인가. 주면 해보겠지만 그쪽 의도와 다르게 나오면 어쩌나? 중립적으로 할 수 있다면 해볼 의향이 있다. 

국정원: 4대강만 찬성하면 다 해드릴 수 있는데…. 
 

환경재단이 작성한 2009년에서 2010년까지 국정원 관련 일지. 2009년 4월 5일, ‘4대강만 찬성하면 다 해드릴 수 있다’는 회유를 거절하자, 국정원 및 이명박 정부는 후원 기업에 전화해 기부 중지 요구, 환경영화제 및 환경재단 행사관련 지자체·단체·기업에 대한 압박을 노골화했다. 환경재단 제공

환경재단이 작성한 2009년에서 2010년까지 국정원 관련 일지. 2009년 4월 5일, ‘4대강만 찬성하면 다 해드릴 수 있다’는 회유를 거절하자, 국정원 및 이명박 정부는 후원 기업에 전화해 기부 중지 요구, 환경영화제 및 환경재단 행사관련 지자체·단체·기업에 대한 압박을 노골화했다. 환경재단 제공

[전문공개]환경재단 국정원 회유·협박 일지 “4대강만 찬성하면 다해줄 수 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http://www.khan.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 국정원 직원이 ‘4대강만 찬성하면 다 해드릴 수 있다’는 대목이다. 또한 이 직원이 밝힌 자기 소속도 눈길을 끈다. 

4월 27일에는 최열 대표에게, 다시 5월 6일에는 환경 쪽 원로인 이세중 이사장에게 자기 상사와의 면담을 요청한다. 그는 ‘상사’가 박성도 2차장이라고 밝혔다. 환경재단 일지에는 2차장이 해외·북한 담당이라고 적혀 있지만 당시 국정원 직제에서는 2차장이 국내 담당이고 1차장이 해외, 3차장이 북한 담당을 하게 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것은 원장과 차장급까지다.

9월 21일 박OO 조정관의 소속과 직제를 묻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국정원 측은 “알 수 없다”고 답했다. 

2차장 관여 부분은 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이명박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서울시·박원순 시장의 ‘고발(고소)장’에 따르면 이명박·원세훈 이외에도 민병주 국정원 심리전단장, 민병환 2차장, 이종명 3차장과 함께 신승균 국익전략실장 등도 지목하고 있다. 박 시장 고소의 계기가 된 이른바 박원순 제압문건과 반값등록금 문건은 “민병환이 차장으로 되어 있던 국정원 2차장 산하의 국익전략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고발(고소)장은 적고 있다. 민병환 2차장은 전임 박성도 2차장에 이어 2009년 9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역임했다. 

고발(고소)장에 따르면 국익전략실은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대공정책실이 국정원 개혁의 일환으로 명칭과 기능을 바꿔 국내정치에 불개입하고 동북아 허브를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부서로 바뀌었던 부서’였지만 원세훈 청장 취임 이후 다시 국내정치 개입을 시도하며 위 문건들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을 동원한 국가정보원 ‘댓글 부대’를 운영한 혐의를 받는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과(가운데), 국정원 전직원 문모씨(뒤에 모자쓴 여성) 민간인 사이버 외곽팀장 송모씨가(모자이크) 9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민간인을 동원한 국가정보원 ‘댓글 부대’를 운영한 혐의를 받는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과(가운데), 국정원 전직원 문모씨(뒤에 모자쓴 여성) 민간인 사이버 외곽팀장 송모씨가(모자이크) 9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2013년 5월 진선미 민주당 의원을 통해 공개된 이 문건들에 대해 당시 검찰은 “국정원이 제출한 문건과 양식이 다르다”며 불기소(각하) 처분을 했다. 하지만 이 문서들은 원세훈 청장의 지시로 일주일에 1건 청와대 민정수석 및 비서실장에게 보고되고, 대통령을 독대할 때는 국정원장이 지참하는 ‘특상보고서’ 양식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박원순 시장이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정치관여죄, 직권남용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한 것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시킨 이유다. 
 

 

■박원순 고소에 MB 포함된 이유 

“우리가 조사하러 나가면 ‘북한 도발 옹호하는 4대강 반대세력 물러나라’는 플래카드도 붙여놓고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일정을 어떻게 알았는지….” 

 

4대강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그뿐 아니라 지방에 강의를 갈 때마다 강의장 앞에 스피커를 갖다놓고 유인물 나눠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국정원을 빼놓고 다른 배후를 생각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에 대한 교육부 감사도 석연치 않았다고 했다. “외부 강의 나간 것을 보고양식에 맞게 다 보고하라고 했는데, 아주 지저분하게 받았다. 결국 몇 년 전에 수업시간을 30분 늦게 시작한 것을 꼬투리 잡아 사유서를 쓰게 하고, 그 후 외부 강의는 일일이 보고하도록 했다. 나도 기억 못하는 몇 년 전 일을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박창근 관동대 토목학과 교수는 4대강 반대운동의 핵심 인사였다. 김두관 경남도지사 시절, 경상남도 낙동강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부산 쪽 국정원에서 그에 대한 ‘뒷조사’를 했다고 했다. “국정원이 학교에서 나와 관련된 자료를 다 가져갔다. 2011년, 2012년에도 용역과제를 진행했던 모 지자체와 국영기업에서도 국정원이 관련 자료들을 가져갔다는 말을 담당공무원들에게 들었다.”

국정원의 4대강 개입의 전모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4대강 문제, 좌파들이 계속 발목 잡으려는 부분에 대해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홍보·여론전을 하라 하면 ‘국정원이 4대강 관여합니까’, ‘국정원이 세부 정치 관여합니까’ 그러면 정보기관으로서의 정체가 없는 거야.”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가 8월 29일 공개한 원세훈 녹취록이다. 2009년 12월 18일자 발언이다. 

현재 나오고 있는 국정원 4대강 관련 자료는 댓글공작을 ‘키워드’로 찾아낸 자료 중 여기저기 분산돼 언급될 뿐이다. 

지난주 <주간경향>은 MB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4대강 관련 공작이 소위 ‘박영준 비선과 국정원’을 통해 이뤄졌다는 의혹을 다뤘다. 

국정원을 활용한 비선활동이 두드러지는 시점은 박영준 전 총리실 차장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있다가 바깥에 나와 머물렀던 2008년 하반기 6개월여다. 지금 드러나는 2009년에서 2012년까지 4대강 사업에 대한 국정원의 개입은 통상적인 불법 정보수집활동을 넘어선 내부전담 TF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부분의 진실은 앞으로 규명될 수 있을까. 

9월 21일 기자는 국정원 적폐청산TF에 과거 기자가 취재했던 ‘4대강 하천부지 농민들 반발에 국정원 개입’ 사건을 접수하면서 당시 국정원 직원들의 인적사항 및 기타 4대강 개입 의혹사건 등을 취합·정리해 정식 접수했다. 

그와 함께 “4대강 관련으로 국정원이 어떤 별도의 TF를 만들어 운영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규명해줄 것을 요구했다. 국정원 측은 ‘090201’이라는 사건번호를 부여했다.

국정원 개혁위 공보간사를 맡고 있는 장유식 변호사는 “들어온 제보 중 적폐청산TF 실장을 동시에 맡고 있는 국정원 감찰실장이 다뤄야 할 중대사안으로 판단해 안건으로 올리면 정식조사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는 기존 15개 범주 사건 조사만 하더라도 일정이 빠듯해 새로운 카테고리를 추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른바 4대강 사업에 대한 국정원 개입과 관련, 당시 4대강 반대운동을 벌였던 인사·단체들은 조만간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 자료공개 및 진상규명을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경향> 인터뷰로 시작된 박원순 시장과 국정원의 ‘악연’

 

박원순 서울시장이 9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적폐청산TF(태스크포스)에 참석해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이른바 ‘박원순 제압문건’과 관련, 발언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9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적폐청산TF(태스크포스)에 참석해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의 이른바 ‘박원순 제압문건’과 관련, 발언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과이불개시위과의(過而不改是謂過矣). 잘못을 하고도 그것을 고치지 않는다면 진짜 잘못이라는 말이다. 공자의 말이다. 

9월 22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라디오방송에서 인용한 말이다. 정권이 바뀐 뒤,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정치보복’이 아니냐는 반론에 대한 답이다. 사찰과 음해의 주체가 된 정보기관을 고발하는 것이 왜 잘못이냐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시는 9월 1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MB정부 국정원 직원 9명, 그리고 성명불상의 어버이연합과 기타 문건작성, 실행 관여자 전부를 고소·고발했다.

박원순 시장과 국정원의 악연. 그 시작은 <주간경향> 인터뷰였다.

2009년 6월 9일 저녁. 기자는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사무실을 방문한 이종탁 당시 출판국 기획위원(현 신한대 언론학과 교수)은 “이번주 인터뷰할 인물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며 기자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이 위원은 당시 <주간경향>에 ‘이종탁이 만난 사람’이라는 코너를 매주 연재하고 있었다. 

기자가 추천한 인사가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였다. 기자로부터 휴대폰 번호를 건네받은 이종탁 위원은 박 상임이사에게 전화했고, 박 상임이사는 바로 다음날인 6월 10일 오전 일찍 약속을 잡았다. 

“돌이켜 놓고 보면 작심하고 만나자고 한 것”이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평이하게 흘러가던 인터뷰는 박 상임이사가 “이명박 정부가 배제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긴장이 흐른다. 그리고 폭로. 

“저는 이 정부에, 아마도 청와대나 국정원이겠지요, 배제의 정치를 총체적으로 지휘하는 사령부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민간사찰이 복원되고 정치와 민간에 대한 개입이 노골화되면 이 정권의 국정원장은 다음 정권 때 구속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요.” 

원세훈 원장은 박 상임이사의 예언대로 다음 정권인 박근혜 정부에서 구속되었다. 당시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알선수죄였다. 

박 시장이 주장한 2009년 당시의 ‘민간인 사찰’과 ‘정치개입’은 다시 정권이 바뀌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하나둘씩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2015년 10월 보석으로 풀려난 원 전 원장은 2년 후인 지난 8월에 다시 법정구속됐다. 

기자는 박 상임이사가 이 인터뷰에서 국정원 개입 사례로 들었던 희망제작소 지역홍보센터 행정안전부 계약 취소, 그리고 하나은행과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 무산 사례를 취재했다.

행안부 등은 “지역홍보센터 이전 등은 원래부터 계획된 것”이라며 국정원 개입을 부인했었다. 국정원은 ‘대한민국’ 명의로 박 상임이사를 상대로 2억원 명예훼손 소송을 걸었다가 패소했다. 애초부터 국가는 명예훼손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국정원 개입 폭로 이후 박 상임이사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희망제작소가 배제된 후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의 주도권은 뉴라이트로 넘어갔다. 지난 2012년 6월, 선진국민연대 출신이자 뉴라이트 활동을 하던 김모씨는 두 단체의 이름을 이용, 미소금융재단으로부터 총 75억원을 받아 23억3000만원을 유흥비 등으로 탕진해 징역 5년형을 받았다.(<주간경향> 983호, “뉴라이트 인사의 공적 지원금 횡령” 기사 참고) 

한편, 박 시장과 서울시의 고소·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9월 넷째 주 중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소환조사하는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도 피해조사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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