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한푼도 안받았다"는 사이먼김 계좌엔 김 경위 송금 내역이 있었다
이른바 'GPS 간첩 사건' 등 대형 공안 사건의 '결정적 제보자' 뉴질랜드 교민, 그리고 그 사건을 수사한 경찰 수사관, 둘 사이에 수상쩍은 돈 거래가 빈번하게 있었다면? 두 차례나 간첩을 '신고'한 제보자와 두 사건 모두 수사한 경찰 사이에서는 왜 돈이 오가고 있었을까?
정상적인 금전 거래라고 주장하지만 수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정보원 매수를 통한 증거 조작으로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 떠오르는 일이다. <프레시안>은 두 건의 간첩 사건에서 결정적 '제보자'로 활약한 뉴질랜드 교민 사이먼 김 씨, 그리고 두 사건을 수사하며 사이먼 김 씨와 '합'을 맞춘 김민수(가명) 경위 사이의 돈거래 내역을 추적했다.
수사관이 피고인 항공료 대주고 환전 심부름까지?
이른바 'GPS 간첩 사건'은 지난 2012년 대북사업가 이대식 씨가 북한에 국내 위치정보시스템(GPS) 교란 기술 등을 북한에 넘긴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당시 재판 당시 검찰이 제시한 유일한 증거는 이 씨와 함께 대북사업을 했던 뉴질랜드 교포 출신 사이먼 김 씨의 진술이었다. 이대식 씨가 자신에게 GPS 교란 장비를 구매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 진술로 사이먼 김 씨는 이대식 씨와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이대식 씨가 수집하려 했다는 물품이 국가 기밀이 아니라는 점, 증인이자 공동 피고인인 김 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는 점 등이 인정돼 이대식 씨는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이먼 김 씨 역시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이대식 씨의 주장에 따르면, "이대식으로부터 구매 지시를 받았다"고 사이먼 김 씨가 밝힌 물품은, 도리어 사이먼 김 씨가 이대식 씨에게 '군대에 납품을 해보라'며 사업을 권했던 품목이라고 했다. 자신을 공범으로 내세우면서까지 굳이 수사기관에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데, 참으로 의아한 대목이다.
관련해 이대식 씨는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재판 중간에 잠깐 말을 할 기회가 생겨서 제가 사이먼 김한테 '내가 너와 뭐 그렇게까지 원수진 게 있느냐, 네가 어떻게 기름 치고 불 속에 들어가려 하냐'고 하니, 사이먼 김이 '난 괜찮다'라고 했다. 그래서 '아 저 자는 든든한 뒤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대식 씨와 사이먼 김 씨의 사연은 다음 기사에서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관련기사 : "날 모함한 자 뒤에 국정원이 있었다")
이 '든든한 뒤'의 정체 무엇일까? <프레시안>이 입수한 사이먼 김 씨의 개인 계좌 입금 내역에는, 김 씨가 해당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수사관들과 돈을 주고받은 기록이 나온다.
사이먼 김 씨는 'GPS 간첩 사건'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2014년 3월 14일 서울청 보안수사대 소속 김민수 경위로부터 200만 원을, 2015년 10월 12일에는 또 다른 강모 경위로부터 50만 원을 받았다. 반대로 2015년 12월에는 사이먼 사이먼 김 씨가 강모 경위에게 400만 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먼저 김민수 경위가 사이먼 김 씨에게 보낸 200만 원에 대한 설명이다.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한 검찰은 2014년 3월 14일 김민수 경위의 송금 사실에 대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 입장에서도 사이먼김이 재판의 가장 중요한 증거였기 때문에 사이먼김의 출석이 필요한 터라 사이먼 김이 사용한 비용의 일부를 보전해 준다는 차원에서 수사팀의 수사비에서 출석 여비 등 명목으로 200만 원을 사이먼 김에게 지급했다"고 밝혔다.
▲3월 14일 입금자 '김ㅇㅇ'은 당시 GPS 간첩 사건 수사를 담당한 서울청 보안수사대 김모 경위다. GPS 간첩 사건 제보자 김 씨는 누군가로부터 'NZ 목장', '목장운영비' 명목으로 정기적으로 100만 원 내지 150만 원을 받았다. 이 돈의 출처는 어디일까. ⓒ프레시안(서어리)
그러나 이같은 해명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피고인은 준비기일이 아닌 재판기일에는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출석하지 않을 경우 강제 구인된다. 사이먼 김 씨의 경우 주거지가 외국이지만, 이러한 경우 국제형사사법공조에 의해 강제 구인이 가능하다. 따로 여비를 보전해줘야 할 법적 근거가 없는 셈이다.
다음은 강모 경위가 사이먼 김씨에게 2015년 10월 12일 보낸 50만 원에 대한 해명.
사이먼 김 씨는 검찰 진술 과정에서 "사이먼 김과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맺고 있던 강ㅇㅇ(경위)은 사이먼 김의 부인이 뉴질랜드 건강식품을 판매하고 있어 개인적으로 뉴질랜드 건강식품(프로폴리스, 스쿠알렌, 혈액순환제)을 구매하기 위해 송금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사이먼 김 씨의 검찰 진술과 법정 진술 내용이 조금 다르다.
사이먼 김 씨는 재판에 나와서는 "강 수사관이 비염이 심해서 비염 관련한 것(프로폴리스)하고 아들 (먹을) 초유하고 몇 개월 치를 제가 가격을 싸게 준다고 해서 가져가서 준 적이 있다"고 했다.
품목과 복용자에 대한 진술에서 일관성을 찾을 수 없다.
반대로 사이먼 김 씨가 강모 경위에게 2015년 12월 400만 원을 송금한 내용의 경우.
사이먼 김 씨는 '2개월 뒤에 한국에 갈 텐데 환전 수수료를 아끼려 하니 달러를 뉴질랜드 달러로 환전을 해달라'고 부탁하며 강모 경위에게 돈을 보냈다고 했다. 환전 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수사관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사이먼 김 씨는 재판 과정에서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가족이 있으면서 왜 수사관에게 환전 심부름을 부탁하느냐는 질문에는 "(가족 중에) 한가한 사람들도 없고 그 부분(환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가족보다 강모 경위가 더 믿음직하다?
따박따박 100만 원씩 들어오는 '목장비'의 정체는?
두번째 사건에서도 사이먼 김 씨와 김민수 경위는 수상한 일을 벌인다.
사이먼 김 씨는 'GPS 간첩 사건'에 이어 또 한 번 간첩 사건의 제보자로 나서는데, 대북 사업가 한모 씨와 김모 씨가 북한에 대형타이어를 수출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른바 '폐타이어 간첩 사건'이 그것이다.
사이먼 김 씨는 "피고인들이 대한민국에 위험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순수한 마음에 제보를 하게 되었다"며 피의자들의 음성을 몰래 녹음한 파일 등을 수사기관에 증거로 건넸다. 이 녹음 파일은 두 피의자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로 인정됐고, 결국 피의자 한모 씨는 징역 2년에 자격정지 2년, 또 다른 피의자 김 씨는 징역 2년 6월에 자격정지 2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
피의자들은 그러나 이 사건의 제보자인 사이먼 김 씨가 오히려 폐타이어 매매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자신들을 간첩으로 몰기 위해 함정을 팠다는 주장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GPS 간첩 사건' 피의자 이대식 씨의 증언과 비슷하다.
문제는 이 사건 재판을 앞두고 사이먼 김 씨가 또다시 서울청 보안수사대 수사관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점이다. GPS 간첩 사건 항소심 당시 김 씨에게 200만 원을 송금했던 김민수 경위는 2016년 6월 20일, 8월 19일 각각 200만 원과 100만 원을 다시 입금한다. 김민수 경위는 GPS 간첩 사건에 이어 폐타이어 간첩 사건 수사도 맡았다.
검찰은 이번 송금 역시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피고인들이 범행을 부인할 수 없도록 피고인들과 제보자인 사이먼 김 씨를 대질시켜야겠다는 판단 하에 뉴질랜드에 있던 김 씨에게 수사 협조를 요청했고, 사이먼 김 씨가 이에 응하기로 해 항공료, 숙박비 등을 보전해줬다는 것이 검찰 측 설명이다.
그러나 이 사건 변호인 측은 "공식적인 여비 보전이라면 경찰청 명의로 입금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반박했다. 수사관 개인 명의로 송금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고 절차상으로도 부적절하다는 얘기다. 왜 항공료와 숙박비를 수사기관 명의가 아니라, 김민수 경위 개인 명의로 송금했을까?
▲김 씨는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서울청 보안수사대 김모 경위로부터 다시 돈을 받는다. 검찰은 대질신문을 위한 여비 명목의 돈이라고 해명했지만, 공식적인 여비 보전이라면 경찰청 명의로 입금되는 것이 맞다. 검찰 조사 관련 여비 대금에는 '중앙참고인' 명의로 입금됐다. ⓒ프레시안(서어리)
의문은 또 있다. 사이먼 김 씨의 거래 내역들이다. 이 거래 내역은 입금자가 불분명하다. 사이먼 김씨의 계좌에는 2014년 초부터 2015년 5월 8일까지 'NZ 목장', '목장운영비', '목장비' 명목으로 100만 원 내지 150만 원 정도가 총 21회에 걸쳐 입금돼 있다.
2015년 5월 19일부터는 취급점이 '목장비' 명목의 입금 때와 같거나 비슷하면서도 적요가 '건강식품', '복분자', '오메가' 등으로 바뀌어 100만 원씩 일정하게 2016년 8월까지 20회가량 입금됐다.
몇 가지 의심이 든다. 건강식품 등 사업은 본인이 아니라 부인의 사업이다. 그런데 △사이먼 김 씨 부인 사업 대금임에도 사이먼 김 씨 명의의 통장을 통해 거래된 점, △제품 판매 대금이라면 금액이 일률적으로 100만 원 정도로 고정적일 수가 없다는 점, △상대방 계좌 내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점 등 풀리지 않는 점들이 있다.
'목장비', '건강식품' 명목의 수백만 원을 누가, 왜 사이먼 김 씨에게 준 것일까?
"커피 한 잔밖에 얻어먹은 게 없다"는 거짓말
목장비 등의 출처 의혹은 차치하더라도, 사이먼 김 씨와 김민수 경위 등간의 돈거래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이먼 김 씨는 경찰로부터 "한 푼도 받은 것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사이먼 김 씨는 "보안수사대 정보협력자로 그 활동에 대해 금품을 지급받고 있는가요?"라는 변호인 측 질문에 "커피 몇 잔 얻어 마신 것 외에는 한 푼도 받은 것이 없다"고 답했다. 또 "포상금 이야기에 대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생활의 여유도 있고, 아들 둘 다 취업해 있고, 뉴질랜드에 입도 있다"며 포상금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고 했다.
결정적으로 2016년 10월 10일 사이먼 김씨는 폐타이어 간첩 사건 첫 공판기일에서 수사 협조 시 항공료 등을 자신의 돈으로 충당했다고 밝혔다. 수사관으로부터 여비를 받았음에도 법정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거나, 수사관으로부터 받은 돈이 '여비'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관련해 변호인 측은 제보자와 경찰의 돈거래 자체만으로 재판의 신빙성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인 측은 "정보 제공의 대가로 수사기관으로부터 뒷돈을 받은 사실 자체만으로도 진술의 신빙성은 유지될 수 없다"며 "'GPS 간첩 사건 당시에는 피고인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으로부터 200여만 원의 뒷돈을 제공받았었다는 점에서 김 씨의 증언은 더욱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사건의 피고인들은 사이먼 김 씨에 대해 모해위증 혐의로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수사기관과 결탁해 자신들을 모해할 목적으로 허위 진술을 해 위증을 했다는 것이다.
단순 위증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그러나 목적범인 모해 위증죄 위반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처벌된다.
변호인 측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당시에도 국가정보원이 협력자에게 금품을 지급하고 증거를 위조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며 "수사기관, 정보기관에서 정보원을 매수하는 식의 수사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법원이 김 씨에 대한 모해위증죄를 밝힘으로써 더 이상 억울한 국가보안법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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